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65
Chapter 65 – 짐승의 꼬리 (3)
핑크 데네브는 머리가 아팠다. 방금 마신 술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 자신에게 닥친 현실의 탓이 더 컸다.
“돌겠네 진짜….”
눈 앞에 보이는 자주빛의 여성은 안 그래도 벅찬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주었다.
본래 눈의 흰자가 있어야 할 자리는 검은색으로 가득하고, 사람의 등에는 없어야 할 날개가 등가죽에 자라나 있다.
저 이형의 모습은 그녀가 사람과 닮아 보일 뿐 사람이 아님을 단 번에 눈치채게 해준다.
비르고는 신나게 웃으며 춤추듯 몸을 회전했다.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는 몸의 결따라 폭죽 같은 빛 알갱이가 튀어 나왔다. 하나하나가 폭약에 비견 될 법한 강력한 파괴자들이었다.
“응! 같이 돌아 보자!”
콰과과광!
아득한 폭발음이 다시 한 번 땅을 뒤흔들었다. 벌 떼처럼 몰려오고 있던 괴인들은 풍선처럼 터지고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건물에는 불이 붙었다.
“예쁘지 않아?”
황홀하단듯 그 풍경을 지켜보던 비르고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등 뒤로 멈추지도 않고 새로운 괴인들의 울음소리와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물에 붙은 불꽃은 그 불길한 진격을 비추는 횃불과도 같았다.
끝없이 밀려오는 적, 새롭게 등장한 최악의 천적.
핑크 데네브는 차라리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울진 않았다.
울어 봤자 나아지는 게 하나 없단 사실은 과거의 경험으로 죽도록 알았기에, 꾹 참아냈다.
다행히 여기 있던 사람 대부분을 피난 시키긴 했다. 그러나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어차피 저 괴인들을 지금 여기서 막지 못하면 기껏 피난 시킨 이유가 다 사라진다.
여기서 마법 소녀가 다 쓰러진다면 저 괴인 무리들이 그대로 피난소까지 향할 테니.
“…선배.”
곧 시선을 돌려 블루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블루 시리우스는 강하다. 이는 반론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최근 갑자기 급성장한 레드 베가도 그녀 앞에선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다. 오랜 시간 쌓은 경험과 마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럼에도, 비르고 앞에선 나약하다.
모든 마법 소녀가 그럴 것이다.
사계자일(四季紫一).
마력을 강탈하여 제 마음대로 다루는 그 힘은 마법 소녀에게 치명적이다.
“으~! 오늘은 좀 쌀쌀하다!”
천 하나 없이 드러난 희고 고운 팔을 문지르며 비르고가 인상을 찡그렸다.
투정과 동시에, 허공에 떠다니던 얼음 조각이 공중 위로 모여들더니 뭉쳐지기 시작했다. 블루 시리우스가 발현했던 마법들이 전부 그녀의 손 아귀 아래 들어갔다. 산발해 있던 마법들은 이내 하나의 거대한 눈뭉치처럼 둥글게 뭉쳐졌다.
“그러니까 그거, 얼음 쓰지 마라. 응? 내가 춥다잖아! 겨울에 무슨 얼음 마법이야.”
점차 눈이나 얼음 조각을 넘어, 길가에 깔린 빙판이나 마법으로 얼려진 괴인에게 있던 얼음들까지 공중으로 올라가 눈뭉치의 일부가 되어 갔다.
어느새 하늘 위엔 달빛을 가리는 얼음으로 조각 된 달이 피어났다.
건물들과 도로 곳곳에는 불이 있었고, 하늘 위에는 얼음의 구체. 두 상반되는 천지의 광경은 아이러니적인 미학을 지니고 있었다.
비르고는 히죽히죽 웃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거대한 눈덩이 위에 날아서 올라섰다.
“이야, 여기 높네.”
그 눈덩이 주위에는 그간 핑크 데네브가 주위에 펼쳐 두었던 홍익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또 그 위엔 자신의 마력인 자줏빛 불꽃을 뒤덮었다.
여러 소음이 뒤섞였다. 얼음이 깨지고 찌그러지는 소리, 벌레 떼를 생각나게 할 법한 새의 날개짓 소리, 불꽃이 공기를 진동하는 소리까지.
콰지직, 후두둑, 화르륵. 하며 끝 없이 소음을 내보냈다.
땅 아래에 있던 괴인은 신나게 도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늘에 오른 압도적인 질량과 크기의 덩어리에선 석양과도 같은 자주색의 빛무리가 쏟아졌다. 괴인들의 진격이 선명하게 보였다.
수 천의 동물들이 달려오자 지진과도 같은 땅울림이 생겨났다. 불꽃을 헤치고 건물의 잔해를 씹고 발로 부수며, 마법 소녀를 향해 마수를 뻗었다.
“젠장할! 선배… 여긴 제게 맡기고…!”
“무슨 소리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니? 이런…! 이제 진짜 술을 끊어야.. 겠, 네!”
블루 시리우스는 곳곳에 빙판을 만들며 괴인들이 미끄러지게 유도했다. 넘어지는 족족 얼음 송곳를 던져 즉사시켰다. 넘어지지 않은 괴인에게도 얼음의 송곳을 던져 주었으며, 어딘가엔 얼음으로 된 벽을 만들고 어딘가엔 얼음 칼날의 바람을 불게 했다.
기예에 가까운 마법이었으나, 그 마법들도 반을 넘게 비르고에게 뺏겨 버렸다.
평소보다 마력 소비가 늘어나니 체력 소비도 늘어났다. 안 그래도 알코올로 지쳐 있던 머리에겐 치명적이었다.
핑크 데네브도 가릴 것 없이 마력을 쏟아 부었다. 홍익오들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날아가 괴인들을 찢었다.
죽은 괴인에게선 폭발이 터졌고, 피가 솟았다.
괴인의 시체가 건물의 잔해와 불꽃보다 많아질 무렵, 세상은 채 1 분도 지나지 않았으며, 얼굴과 옷은 검댕과 피로 범벅이 되었다.
당장 저 위에 올라가 비르고를 상대해야 했으나. 조금의 여유도 부릴 틈 없이 괴인이 밀려 들었다.
차고 거친 숨을 끝없이 몰아 내쉬며 사투를 벌였다.
가히 지옥도였다.
위에서 고고히 아래의 소란을 즐기던 비르고가 중얼거렸다.
“난 추운 것도 싫은데 시끄러운 것도 싫더라.”
이 곳에 있던 온갖 마력을 빨아 들은 덩어리는 어느새 이 거리 하나를 전부 가릴 정도가 되었다.
잠시 숨을 고른 핑크 데네브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진짜 세상 좇같다….”
고도는 그리 높지 않았으나 파괴 행위에는 조금의 지장도 주지 못할 게 뻔했다. 저 정도의 질량과 크기라면 이 곳에 문명을 없던 것으로 만들고 거대한 크레이터 하나를 만들기 충분할 테니.
비르고는 히죽 웃으며 자신이 올라서 있던 덩어리에 발을 한 번 굴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달을 가리던 별빛이 부유를 잃고 아래를 향했다. 자주색의 꼬리를 남기며 어미에 품에 달려들듯이 대지를 향해 달려 들었다.
그야말로 살별이었다.
혜성이며,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죽이고 찢을 별.
핑크 데네브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런 씹….”
콰아아아앙!
온갖 마력과 별빛이 뒤섞인 덩어리가 땅에 떨어졌다.
**
콰직!
달려들어온 양 괴인의 머리를 발로 차고, 다시 뒤 돌아선 다른 괴인의 허리를 잘랐다.
촤아아악!
거세게 튄 피를 닦지도 않고 바로 앞으로 나아가 클로를 휘저었다. 번개가 튀고 괴인 여섯 정도가 그대로 재가 되었다.
정신이 없었다. 방금 전보다 많은 수의 괴인을 상대하게 될 줄이야. 다수전에 유리한 두베의 폼으로 싸우는 데도 상당히 힘에 부쳤다.
체력도 별빛도 소비가 많았지만 움직임을 멈출 순 없었다.
시야에 동시에 붉은 선이 다섯 개 나타났다. 벨트가 준 공격 예측 경로, 넷은 막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불가능했다.
네 괴인의 머리를 찢어 발긴 다음, 어깨를 그 예측 경로에 가져다 대었다.
까가각!
흉측한 이빨이 그 어깨의 갑주를 물었다. 강철에 실선이 그어지는 끔찍한 소리를 뒤 이어 나는 팔을 휘둘렀다. 클로가 괴인의 배를 꿇고 번개를 내보냈다.
펑! 뚫린 배를 중심으로 괴인이 폭발했다. 거대한 고기 폭탄 속에서 피 범벅이 되었다만, 바이저를 가리는 혈액만을 대충 문지른 다음 바로 행동을 이어갔다.
“무슨 좀비도 아니고….”
끝이 없었다. 머리를 터뜨리지 않으면 계속 행동했다.
몇이나 죽인 걸까. 수 백, 수 천, 이제 만이 되어갈 지도 모른다. 전부 동일한 생김새의 괴인이라 그런지 쓰러뜨려도 쓰러뜨려도 성취감 따윈 없었다. 무한한 시간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몇이나 되는 수의 사람을 죽이고 이 괴인으로 만든 것일까. 시야 일부에 보티스가 잡혔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답답함에 발을 움직이려 해보지만, 순식간에 양의 머리가 눈 앞을 에워쌌다. 여전히 자신을 키워준 목동에겐 참 친절한 괴인들이다.
저 자가 본인들을 금치산자로 만든 건 지도 모르고.
[SET. 백웅쌍뢰극.]클로에 백록색의 별빛을 모으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해방했다.
파직! 쿠구구궁! 벼락이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그를 뒤 이어 소리가 따라왔고, 천지가 요동쳤다. 지우개로 지워낸 것처럼 재라는 자국만을 남기고 눈 앞이 다시 깔끔하게 변했다.
그러나 그 수만큼 다시 채워져 앞을 가렸다.
“염병할…!”
이를 꽉 물었다.
끝이 없었다. 보티스는 아직 아무런 공격도 취하지 않은 상태. 이 좀비 같은 양 괴인과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설령 이 자들 전부를 쓰러뜨린 뒤에 보티스와 싸우게 되어도 문제다. 기진맥진할 내가 그녀와 싸우며 정상적인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나 할까.
“후우….”
잠깐 거리를 두었다. 시선은 여전히 보티스에게 고정한 채였다.
“내 양들을 너무 죽이는 거 아니야?”
대꾸할 힘도 없어 숨만 고르며 그녀를 노려 보았다. 금색의 눈동자는 터무니 없이 자애로웠다. 이 살육조차 순순히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처럼.
“그래도 뭐… 내가 널 막는 거니까. 할 말은 없네. 너무 급해지지 마렴. 인생은 때론 돌아가기도 해야 되는 법이야. 언제나 직진만 하려고 하면 지쳐. 길의 끝에 닿지도 못하고 엎어질 뿐이란다. 내가 너에게 말해주고 싶은 말은 그것 뿐이야.”
그 말을 한 귀로 넘기며, 난 벨트에게 속으로 한 가지 물었다.
다행히, 대답은 나에게 이득이 되었다.
“게다가 넌 아직 네가 무엇이고 너의 허리에 달린 걸 남용한 결과 그게 어떤 책임으로 돌아올지도 모르잖니.”
보티스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엔 괴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달려들어 봤자 또 괴인이 막아설 뿐이다. 숨이라도 고를 겸 그 이야기를 잠시 들어주었다.
천천히 손 안에 별빛을 모았다.
“넌 지금 눈이 먼 거야. 네 이상에, 그 찬란함에. 그거 아니? 사람의 눈이 멀 때는 어둠이 아니라 빛을 볼 때야. 딱 지금 네 상태지 않니?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이상에 눈이 멀어 아무런 생각 없이 앞으로 가는 것.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그래.”
별빛은 점차 하나의 형태를 갖춰갔다.
“네 말이 맞다. 난 무지하지. 우매함에 봉우리를 오르는 것처럼 애매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다.”
무지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정확한 말이다.
나에겐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다는 건 나를 이루고 있는 기반이 없단 뜻. 기반도 없이 길을 나아가고자 하는데, 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가.
눈이 멀었다. 그 말이 맞다.
앞을 막아서는 벽이 얼마나 두텁고 강대한지, 발에 스치는 가시덤불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늪이 얼마나 깊은지. 나는 아직 모른다.
볼 수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아는 것 없이 길을 나아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무지한 나라도 안다.”
그럼에도 지금 난 나아가야 한다.
“지금 난 너를 막아야 한다.”
지금쯤 도시는 혼란에 빠져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보티스가 부탁한 다른 괴인들에 의해.
괴인이 처음 등장했던 과거의 악몽과도 같은 수의 괴인이 도시를 습격하고 있겠지.
“무고한 사람이 죽는 건 막아야 된다. 이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사실이다.”
손 안에 있는 조각을 벨트의 버클, 렌즈가 있는 중앙 부분에 달았다.
“그러니, 난 그 당연한 일을 할 뿐. 굳이 이상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직 별을 전부 채우진 못했지만, 그 힘을 이끌어내는 건 가능하다.
큰곰자리. 그 야만적인 힘을.
물론 다스리는 건 지금의 나로는 불가능하다. 상관 없다. 여기에 내가 손대중을 할 만한 자는 없으니까.
“네 말 그대로, 눈 먼 짐승이 되어주마.”
벨트의 초점 조절기를 돌리자, 상당히 노이즈가 많이 낀 음성이 흘러나왔다.
[UR■A M■JO■.]**
조아윤은 눈을 떴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은 연기의 구름 속, 시야에 얼음 조각이 잡혔다.
블루 시리우스가 마법을 써 본인을 지켰음을 알았다.
다시 옆을 보았다.
비르고가 그녀의 목을 잡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조아윤은 지켰지만 막상 본인은 지키지 못한 듯 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자신의 목을 잡고 있는 비르고의 팔을 붙잡으며 가날프게 몸을 떨었다.
“어머… 불쌍해라.”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쳐나갔다. 등에는 홍익오를 두르고, 빠르게.
비르고를 낚아채며, 하늘을 접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