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68
Chapter 68 – 잘린 흔적 (1)
대리석 바닥에 울림이 수놓인다. 병원 복도에서 뛴다는 행위가 그렇게 권장되는 행위는 아니었으나, 지금 그녀는 가벼운 매너를 지킬 정도로 올바른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살짝 푸른빛이 도는 신비로운 머리카락이 뜀박질 따라 이리저리 흩날렸다.
발은 다급했으며 숨은 조급했고 눈동자는 절급했다. 도망인지 추적인지 알 수 없게 빠르게 발을 놀린 그녀는 이내 어떤 방 앞에서 정지했다.
거칠게 숨을 토하지만 그걸 진정시킬 새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아윤아!”
그 병실의 주인은 조아윤. 이제 더 이상 마법 소녀로 불리지 못할 소녀였다.
“어, 어어… 왔어?”
방의 주인이 어색하게 쓴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억지로 씩씩함을 지어낸 게 분명했다. 미소 한 편에는 쓸쓸함과 처연함이 감돌았다.
윤설화의 눈에 왈칵 슬픔이 차올랐다.
“아, 아윤아 정말로 너….”
“에이 표정이 왜 그래, 죽은 것도 아니고. 어차피 옛날부터 그만두려 했어.”
현대인은 바쁜 일상 속 가끔씩 한숨을 돌리기 위해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가 있다. 윤설화도 그랬을 뿐이다.
그랬을 뿐인데….
모든 사고가 그렇듯, 불행은 조금의 예고도 없이 찾아 온다. 이번에도 그랬다.
갑작스런 괴인 대량 진격과 비르고의 등장. 이를 막기 위해 핑크 데네브가 스스로의 별빛을 소멸시켰다.
아무리 그 본인이 은퇴를 원했었다 한들, 이런 방식의 은퇴를 바란 건 아니었을 터이다.
조금 더 온건하고 따스한, 박수 속에서의 편안한 마지막을 맞았어야 할 사람이었다.
흑색왜성.
이 기술의 대가는 단순히 마법 소녀로서의 힘을 잃는 것만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 순간의 빛으로 만드는 기술.
후유증이 남는다.
최소 시한부.
많아도 20년 최악은 며칠. 흑색왜성 상태를 지속한 시간에 따라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을지 정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사용한 시간은 10분. 남은 삶은 해봤자 10년 정도일 것이다.
뚝. 조아윤의 손을 어루만지는 윤설화의 손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눈물은 멈출기미가 없었다.
“나 때문에… 미안해… 미안해 아윤아… 내가 정말….”
만일 술을 마시자 한 게 그 날이 아니었더라면, 술을 마신 장소가 그곳이 아니었더라면, 만일 자신이 조금만 음주를 조절했더라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어떤 괴인이 와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강했더라면.
여러 ‘만약’이 떠오르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순 없었다. 지금 당장 애환과 후회를 느끼며 과거를 곱씹는 것이 할 일의 전부.
그녀도 알고 있다. 가장 큰 잘못은 괴인에게 있다. 그들이 애초에 습격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 따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좀처럼 자괴감이 사라지진 않았다.
“어… 아니… 선배? 저….”
“내가 정말… 미안해….”
윤설화는 이 불쌍한 소녀에게 매달리듯이 울었다. 무슨 자격으로 눈물을 흘리는 건지 자신이 역겹기도 하였다. 아무것도 못했으면서, 아무것도….
그러나 눈물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언제나 느끼는 죄책감, 그 초라한 감정을 가질 이유 하나가 추가되었다.
지키기 위해 힘을 가졌으면서 왜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가. 진정 지키고 싶은 건 단 하나도 지킬 수 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가장 살았으면 한 자는 죽음에 가까워졌다.
끝없이 자괴감이 밀려왔다. 봄 앞에서 녹아버리는 눈사람처럼,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 앞에 한 없이 무너져 내렸다.
‘왜 항상 빼앗겨야 하는 걸까.’
동시에 억울했다. 연인과 친구, 둘 모두 괴인으로 인해 고통 받았다.
왜 항상 이 행복한 일상을 위협 받아야 하는가. 왜 이들이 고통 받아야 하는가. 왜 이들에게 불행이 닥쳐야 했는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무슨 잘못을 했다고.
괴인들은 언제나 빼앗아 간다. 자신의 행복을, 소중한 것들을.
커져 가는 죄책감의 크기 만큼 증오 역시 커져 갔다.
“선배… 울지 마… 선배 잘못 아니잖아… 그렇게 울면… 히끅.”
설화의 손을 꼭 잡아주던 아윤 역시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도… 슬퍼지잖아… 울지 마아… 선배 울지 마요오오오 으허허헝….”
어느새 그녀는 설화보다 더 크게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 애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다시 한 번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학생 때의 조아윤이 떠올랐다. 감정을 잘 주체 못하고 툭하면 울음을 쏟아내던 소심하던 그녀가.
지금의 처지가 얼마나 서러우면 저리 서럽게 울까.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눈물을 흘릴까.
‘난 이런 아이에게 무슨 짓을…!’
설화는 아윤을 끌어 안았다. 어린애로 돌아간 것처럼 정신 없이 부둥켜 안고 서로의 온기를 전달했다.
“선배가… 아니, 언니가… 잘 해줄게… 내가 너 조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게… 행복하자… 행복해야 해… 응?”
“으어어언니! 울지 마아아! 히끅, 울지 마… 나 진짜 괜찮단 말이야… 나 괜찮아아….”
아윤은 진짜 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펑펑 울었다.
“우으… 시끄러… 나 울잖아요… 그냥 슬프게 냅둬….”
와중에 허공에 뭐라 말을 걸기도 하였다.
‘…! 마스코트를 잃은 실감이 안 나서….’
마법 소녀의 힘을 잃으며 아군인 마스코트 또한 잃었다. 평소 같았으면 마스코트가 위로하고 있을 상황. 실제로 설화 역시 마스코트의 배려를 듣고 있었다.
[수호자… 울지 마세요……]아마 아윤이도 그 일에 익숙해져 마스코트를 잃은 지금에도 저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 그리 생각하니 이 품에 안긴 소녀가 더욱 초라해 보였다.
“아윤아….”
“언니이…..”
둘은 서로를 끌어 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탈수 증상이 올만큼 격하게 운 뒤에야 조아윤의 안정을 걱정한 윤설화가 돌아갔다.
뒤엔 간호사에게 환자의 안정을 방해한 것에 복도에서 뛴 것까지 합쳐 혼났다.
**
“…훌쩍. 머리 존나 아프당.”
너무 운 바람에 코 맹맹이 소리가 되었다. 아윤은 안 좋은 컨디션에 흘린 눈물의 결과로 두통을 얻었다. 머리를 부여 잡으며 침대에 빠졌다.
[적당히 울지 그랬어. 몸도 아픈 애가 소리까지 질러가면서 우니까 그러지.]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쇠 공. 그곳으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그래도… 선배가 우니까… 나도… 슬퍼지잖아요… 오빠는 안 슬퍼요…? 설화 선배가 저렇게 우는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개새끼가 되는 거 같잖니.]한재중의 목소리였다. 아윤은 그의 목소리가 아닌 내용에 기겁하며 잽싸게 머리를 숙였다.
“히, 히익… 그게 그렇게 되나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오빠의 기분을 고려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에헤이 혼내는 거 아니야. 그러지 마. 내가 더 개새끼 같잖아… 맞는 말이긴 하네.]본인의 의사 없이 사건을 조작하고 잠수 이별에, 장기간 실종까지 한 쓰레기 중의 쓰레기. 쇠 공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울분이 섞였다.
[아무튼, 설화도 만났으니까 이제 알겠지?]“응… 진짜인가 보네요… 훌쩍.”
둥둥 떠다니는 쇠 공을 흥미롭단듯 툭툭 건드렸다. 약간 밀쳐져도 다시 원 위치를 찾았다.
“내가 마법 소녀였다는 거.”
어젯밤, 처음 눈을 뜬 순간 보인 것도 이 쇠 공이었다. 기묘한 디자인의 쇠 공. 뒤엔 한재중이 있었다. 몇 년 만에 나타나선 속만 썩인 아주 나쁜 놈. 행복하길 바랬더니 온갖 고생을 한 건지 흉터나 자살 소식이나 들려준 놈. 그래도 사랑하는 놈.
그와 어떤 사건으로 엮인 건지는 다 기억했다.
다만, 지금 자신이 여기에 왜 있는 건지는 기억할 수 없었다. 조아윤은 한참 동안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 봐야 했다. 무슨 연유가 있어야 이 오빠와 자신 둘만 밤의 산에 있는 건가.
설마 어디 야간 도주라도 하던 건가…?
이 따위 의문을 품고 있을 무렵, 한재중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달 받았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별빛을 태우고 죽어가던 마법 소녀였단 사실.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단 말이지….”
마법 소녀로 활동했던 기억, 그 기억만 사라졌다.
괴인화도 아니다. 그간 상식으로 얻은 지식에 따르면 괴인화는 인간으로 살았던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거다. 이렇게 인간 관계도 남고
일정 기억만 사라지는 편리한 기억 상실이 어디 있나 싶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가능하다고 하다.
자신도 같은 꼴이라고.
원인으로 눈 앞에 떠 있는 쇠 공을 짚었다. 정확히는 허공 아무데나 손가락질 했다. 약간 아깝게 쇠 공을 빗나갔다. 이게 안 보이냐 물었더니 자신의 눈엔 안 보인다고 했다.
본인도 같은 걸 가지고 있다며 허공에 손가락질을 했다. 물론 조아윤에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한재중이 미친 줄 알았다. 어디서 고생을 많이 하더니 정신병이라도 얻어 온 줄.
오빠가 미친 새끼가 되었다니 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소식인가. 조아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때 쯤.
공과 공끼리 맞붙어서 마찰이 일어났다. 그 순간 조아윤은 확실히 두 눈에 목격했다. 자신의 앞에 있던 쇠 공을 제외한, 다른 하나를.
“어우 씨 이거 왜… 어흠, 이제 좀 믿겠어?”
“오빠도 놀란 거 같던 데요?”
“아니 난 다 알고 있었지… 그럼. 이 둘이 왜 부딪혔냐면 있잖아. 그 아는 사람끼리 만나면 신나서 하이파이브도 하고 막….”
“하 시벌 모르는 거 맞네.”
저 장난스런 말투는 오히려 조아윤에게 있던 긴장을 풀어주게 하였다.
“…아무튼, 거짓말은 아닌 거 같네. 뭔데요 오빠. 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오빠에겐 무슨 일이 있던 건데요.”
뒤로 한재중은 침착하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간략히 고했다. 또한, 조아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너도 나처럼 별과 계약을 진행한 거 같아. 아마….”
실감이 나질 않았다.
자신이 마법 소녀였으며, 방금 전까진 죽다가 살아났다니.
그리고 그 삶을 이 쇠 공과 닿으며 이뤄냈다니.
무슨 소린지 실감도, 이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모든 게 다 거짓말 같았다.
“아, 아니 그 별의 계약이란 게 뭔데요. 그 변신이란 게 뭔….”
“말 보다는 보여주는 게 빠르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허공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그 손 안에 웬 기계 장치가 생겨났다. 어딘가 망원경을 닮은 기묘한 기계 장치. 그걸 허리에 부착하자 촤라락, 하며 쇠 줄이 펼쳐져 허리를 둘렀다. 벨트가 되었다.
“변신.”
한재중이 그리 중얼거리자, 벨트로부터 녹색의 둥근 별빛이 튀어 나왔다. 별빛은 몸을 감싸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몸으로 그를 변형했다. 변신이라는 말 그대로, 다른 몸으로 변했다.
이후에 구조하러 마법 소녀가 도착해 그가 도망가느라 이야기가 끝나긴 했다.
다행히 방금 전 쇠 공끼리 부딪힌 행위가 서로의 연락망을 갖추기 위함이었는지, 이 쇠 공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마법 소녀에게 구조되며 질 안 좋은 농담 같던 이야기는 점차 실체를 갖추어 갔다.
진짜로 변신을 한 오빠.
아는 체를 하며 엄청 걱정을 하던 마법 소녀들, 방금 전 병문안을 온 설화가 보여준 반응까지.
조아윤은 마법 소녀였다. 기억이 없음에도 그녀는 그리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마법 소녀….”
[진짜라니까.]“오빠가 나 놀리려고 개소리 한 거인 줄….”
[내가 인터넷 검색하라고 했잖아. 그럼 바로 알 텐데.]“으에… 그거 좀 싫은데… 맨날 오빠나 선배 욕하는 것만 나와서 끊은 지 좀 됐단 말이에요… 저 요새 유행하는 노래 뭔지도 모르는….”
[아윤아.]“으엣?! 미안해요 제가 또 너무 나불거렸….”
[아니 그런 게 아니라.]차가운 기계 너머로 놀란만치 다정하고도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미안해.]아윤은 잠시 침묵하다 피식 웃었다.
“뭐가요. 지금 제가 제일 의지할 사람인데,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해. 미안할 필요 없어요. 그렇게 미안하면 앞으로 더 잘해주세요.”
창문 너머 도시의 광경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마법 소녀였다니….”
언제 곱씹어도 실감이 안 났다.
“…마법 소녀는 착한 애만 하는 거 아니었나…? 설화 선배처럼… 엄청 착하고 예쁘고… 근데 내가 왜…?”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별은 자신에게 무엇을 봤길래 간택을 한 것인가. 자신은 무슨 생각으로 그딴 일을 한 건가.
“난 왜 마법 소녀였던 거지…? 무슨 계기로…?”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답을 알아야 할 상대가 모르기 때문이었다.
조아윤은 침묵했다. 과거의 자신에게 되물었다.
넌 왜 마법 소녀가 된 거야.
과거의 자신 역시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