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73
Chapter 73 – 잘린 흔적 (6)
“아…”
아윤이의 꼴을 보게 되었다. 이마나 머리카락에 물기가 잔뜩 있었으며 옷 곳곳엔 물에 젖은 흔적이 가득했다. 숨은 거칠어 흉부가 올라가고 내려가길 쉼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욕실에서 이 큰 몸을 끌고 나가야 하는 일은 필시 중노동이었을 터. 땀도 많이 나고 물도 많이 맞았겠지.
“미안하다… 네 몸 두 배는 될 사람을 끌고 나가게 했….”
“두 배는 아니거든?!”
괜히 작은 체구가 언급 당한 조아윤이 울컥하여 소리쳤다. 한재중은 쓰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으음.”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아팠다. 욕실에서 넘어졌단 말이 사실인지 혹 같은 울망울이 뒤통수에 잡혀 있었다.
“두 배는 아니야 진짜… 밖에 나가면 연인으로도 보일 지도 모르는 그런 키 차이라고… 맨날 나를 애새끼로 보니까 그런 과정법을….”
“그래 내가 미안해. 두 배는 아니야. 두 배는. 딱… 음 1.5배 정도…?”
“나 150에 오빠 180이면 1.5배도 안 나와!”
“야 너는 은근슬쩍 반올림 하면서 난 낮춘다? 그럴거면 나도 반올림 해서 190으로….”
“그래 커서 잘났다! 오빠 존나 크더라!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크더라! 됐냐?”
조아윤은 얼굴을 붉히며 빽 소리질렀다. 한재중은 몸이 스산해져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옷가지 하나 없이 커다한 담요 하나만 덮여진 모습. 사실상 알몸과 다름이 없었다. 새삼스레 그녀에게 알몸을 보여줬단 사실을 깨달았다.
“진짜 크기만 더럽게 커서….”
귀까지 석류처럼 붉어진 조아윤이 시선을 어디 둘지 몰라 하며 중얼거렸다. 그 의미심장한 반응에 한재중은 괜시리 담요를 끌어 안았다.
‘성희롱은 아니겠지? …에이, 그럴 리가.’
오히려 그녀의 눈을 더럽힌 일에 미안함을 느껴야 하겠지.
아무리 가족처럼 허물없이 지낸 사이라 한들 남자의 알몸을 보는 일은 필시 고되었을 것이다.
한재중은 수치심을 느낌과 동시에, 불평 하나 없이 자신을 돌봐준 조아윤에게 무한한 감사와 대견함을 느꼈다.
“그,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욕실에서 우당탕탕 거리는 지랄발광이 들려 왔더니 노크해도 대답이 없고… 문을 여니까 오빠는 알몸으로 쓰러져 있고… 괜히 몸만 커서 들지도 못하고 질질 끌고 가야 했고… 내가 얼마나 울… 우, 울진 않았어! 아무튼 얼마나 걱정했는데! 119 불러야 할지도 생각했어. 근데 그러면 또 일이 꼬일 거 같고… 아, 아직도 심장이 막 쿵쾅댄다고! 알아?”
“모르지…? 내가 미안하다….”
“그래 미안해야지! 미안해야 할 거야! 그럼!”
울먹이며 항의하는 조아윤에게 한재중은 힘 없이 대꾸했다.
그녀의 말이 다 맞았다. 미안해야한다.
안 그래도 비어버린 기억과 자신 때문에 혼란스러웠을 텐데, 쓸데없는 걱정거리까지 늘려 버렸으니.
“뭔 일이 있던 거야? 그, 변신이란 거 후유증이 대단해? 그렇게 갑자기 쓰러질 정도로? 어, 엄청 위험하잖아! 오빠 그거 하지 마! 앞으로는 그런 거 하지 마!”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이건….”
“그럼 뭔 일이 있던 건데?!”
무슨 일이 있었나. 한재중은 입술을 닫았다.
‘그러게, 나도 알고 싶다.’
방금 전 떠올린 기억. 그곳에서 자신은 거울을 들여다 보며 괴인이 되었단 걸 자각하곤 자살을 결심했다.
아마 지금의 조아윤이 그렇듯 변신을 자유자재로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겠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별과 계약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상했다. 기억 속의 한재중은 계약 당시의 기억은 없어도 그 전의 일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비르고… 레드 스피카와 있던 일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별의 계약으로 기억을 잃은 게 지금 이 상태가 아니었단 말인가?
시간대를 되짚어 보자.
한재중은 은둔 후 블랙매터에 들어갔다. 아마 그 과정에서 비르고와 연을 텄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어떻게든 그곳에서 살아남아 고시 공부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벨트와 접촉.
벨트를 주운지 얼마 안 되어 괴인들의 습격을 받고 사망과 괴인화의 중간 쯤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 때 별과 계약을 하며 기억 일부가 사라졌다.
이후 자살을 결심했다.
하지만 자살을 시도하고 깨어난 나는 모든 기억이 없는 상태였다.
‘자살 하기 전 어떤 사건이 있었다.’
아니면….
“오빠.”
“어? 어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돌히 해…?”
“아, 그게….”
조아윤은 싱긋 웃었다. 미소였으나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내 얘기 안 들었지.”
“에, 에이 무슨… 내가 아윤이 목소리를 왜 흘려 들어. 신의 목소리가 들려도 지금보다 집중할 순 없을걸? 경청하다가 너무 집중했나 보다. 그래서 아윤이가 내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단 착각을….”
“착각?”
가벼운 비웃음이 돌아왔다. 한재중은 시선을 슬쩍 피했다.
“내가 방금 전 한 말 그대로 다시 말해봐.”
“방금 전 한 말 그대로 다시 말해봐.”
“뭐?”
“뭐, 뭐. 했잖아.”
“뒤지고 싶어?”
“죄송합니다.”
조금의 지체 없이 고개를 숙이자 조아윤은 한숨을 푹 내는 걸로 대꾸했다.
“…오빠.”
“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말해줄 수 없는 거야? 나는 몰라야 할 이야기야? 오, 오빠가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점점 슬픔으로 물들어 갔다. 서운함과 자괴감이 뒤섞인 눈망울은 측은지심을 자극했다.
“아냐. 그게 아니라.”
한재중은 즉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스르륵, 담요가 조금 내려갔다.
“꺅!”
새된 목소리를 내지르며 조아윤이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선정적이네… 자극이 과해… 이, 일단 옷부터 입어… 나, 나도 지금 젖은 꼴이라… 갈아입을 테니까.”
얼굴에 있던 손 중 하나를 조심스레 떼어내더니 그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옆에 있는 종이 봉투를 가리켰다. 아마 옷이 들어 있는 봉투겠지.
다시 한 번 여자 앞에서 알몸을 드러냈다 자각한 한재중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
종이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건 앙증맞은 동물 잠옷이었다. 곰 귀같은 게 달려 있었다. 전형적인 조아윤의 취향.
‘아까까지 입던 게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벗어 놓은 건 다 빨아버린 건가. 잠옷인 걸 보니 자고가란 뜻이겠지.
딱히 옷을 가릴 처지가 아니니 한재중은 불평 없이 입었다.
약간 끼는 느낌이 있었으나 무리 없이 입을 수 있는 사이즈였다. 아마 고등학생 때였다면 딱 맞았을 텐데.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니 자신과 비슷한 잠옷을 입은 조아윤이 있었다.
“어 왔어? …잘 어울리네.”
오리인지 앵무새인지 어쨌듯 새부리가 후드에 달린 분홍색 털 잠옷. 그 후드를 푹 눌러쓴 조아윤은 한재중과 눈이 마주치자 마자 휙 고개를 돌렸다.
“용케도 내 사이즈에 맞는 남자 옷이 있네… 아, 설마 남친 껀가? 하하 이거 참 미안한 짓을….”
“나 모솔인데 지금 누구 놀려? 일이 바빠서….”
조아윤은 힐끔 한재중을 보고 다시 고개를 휙 돌렸다.
“아, 아무튼 일이 바빠서 남자랑은 연이 없었어. 게다가 나 좋아할 남자가 어딨다고 연애는 연애야….”
“내가 조아하는 조아윤아 그게 무슨 소리니. 여기 널 좋아하는 남자가 눈 앞에 있는데. 근데 그럼 이게 왜 있는데.”
“옛날에 오빠한테 선물하려고 사둔 잠옷. 왜. 뭐. 시, 싫으면 벗던가! 아, 아니다 벗진 말고….”
“오….”
감동받았다. 자신을 위한 선물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니.
그러고보니 번호도 자신을 위해 바꾸지 않았던가. 분명 악질 팬들이나 기자에게 털렸을 텐데.
감동과 함께 미안함이 밀려왔다. 이토록 자신을 기억해준 사람에게 그간 얼굴 한 번 안 내비친 것 아닌가.
문득 숙연해진 한재중은 그 감정을 장난스레 숨기며 내비쳤다.
“오~ 정성~ 이 오빠한테 커플 잠옷을 선물하려했다니 그것 참 기특하구나.”
“커, 커플 아니야! 봐봐! 회사랑 시리즈만 같은 거지… 도, 동물 다르잖아! 오빤 곰! 내 껀 붉은관 앵무새!”
“에이 그게 커플이지. 아윤이는 오빠랑 같은 옷 입는 게 그렇게 싫었니?”
“그 소리가 아니… 아, 아무튼 본론이나 말해! 뭐 병 있어? 뭘 하면 욕실에서 쓰러지는 건데! 고혈압? 그, 그런 거 있어?”
괜히 부끄러워 소리친 조아윤의 목소리에 점차 물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오빠 자살 시도도 했잖아. 무슨 죽을 병이라도 걸린 거야…? 아니면 역시 그 변신의 부작용으로….”
순식간에 그를 걱정하는 얼굴로 뒤바뀌었다. 감정의 변화가 격하다.
아마 여러 혼란스런 일을 겪으며 정서가 불안정해진 탓이겠지.
기억의 상실과 달라진 옛사람, 누구나 불안감을 주체 못할 일들이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이 벨트에 엮여 있긴 한데….”
“역시! 오빠도 나처럼 변신 하지 마! 그냥 무시해버려!”
“끝까지 들어. 내가 전에 말하지 못한 게 있어.”
한재중은 조아윤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전에 그랬듯 그녀의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 안았다. 조아윤은 거친 숨을 집어 삼키며 그와 눈을 맞추었다.
후드 아래 그림자로 가려져 있던 얼굴, 물기로 촉촉해진 눈망울과 살짝 붉은 볼이 그를 맞이해 주었다.
그 모습에 살짝 미소지은 한재중이 입을 떼었다.
“일단 침착해. 아윤아. 이젠 난 아무데도 가지 않아. 너와 함께 있을 거야. 응?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돌아올 거야. 이미 너에게 볼 꼴 못 볼 꼴 다 보여 줬는데 어딜 가겠어.”
부여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고, 강하게 발언했다.
“난 어디에도 안 가 아윤아. 물론 그간 내가 널 불안하게 했단 사실은 변치 않겠지만… 그래도 믿어줬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나에게 기회를 줘.”
조아윤의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손이었다. 그간 수 없이 험한 일을 해 온 손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 손에 다시 피를 묻히게 하긴 싫었다.
“아윤아. 천천히 말해도 돼. 급할 건 없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건 다 대답할게.”
“훌쩍. 진짜지…?”
“그럼 진짜지.”
한재중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조아윤은 퉁명스레 입을 삐쭉 내밀었다.
“죽을 병 없어?”
“물론.”
퀘스트의 존재가 조금 걸림돌이긴 하지만 병이 걸린 건 아니니 무시했다.
“그럼 오빠 왜 쓰러진 건데.”
“그래 그거 말인데… 아윤아, 내가 기억상실증이란 건 전에 말했지?”
“응. 나처럼 그 벨트에 잘못 걸려서….”
“잘못 걸렸다… 라고 말하기에 내 경우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따지자면 그렇지.”
한재중은 적어도 스스로 별과 계약하길 원했다. 죽음 직전 떠올린 꿈을 이루기 위해.
조아윤의 경우는 아직 모른다. 그녀가 자신처럼 스스로 원해 별과 계약했다고 속단하지 않았다.
“이 계약에는 기억을 잃는 것만이 아니라 되찾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어. 별을 밝히는 것. 쓰러뜨린 괴인에게서 별빛을 모아 별을 만들면 기억이 재생 돼.”
기억.
망각은 축복이라 하나 백지화는 저주다. 한재중의 경우엔 후자였다.
안 좋은 기억도 좋은 기억도,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이뤄졌는지 조차 전부 사라졌다.
사람을 이루는 게 육체와 영혼이라 하면, 그는 영혼의 죽음을 맞이한 것과 다름 없다.
‘나’라는 존재는 여러 배움이 쌓이며 만들어진다. 배움은 곧 경험이며 경험은 곧 기억이다. 한재중을 빚어내던 여러 점토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
‘내’가 없으니, 곧 죽음이나 다름 없다.
지금까진 그 원인이 벨트라고 생각했으나 조금 시각을 고쳐야 했다.
계약 시에 사라지는 기억은 관련된 기억 뿐.
조아윤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지금 그녀는 마법 소녀와 관련된 기억만을 잃었을 뿐 다른 기억은 온전히 가지고 있다.
마법 소녀 일을 잊었으면서 바빴단 사실을 기억하는 점이나, 과거 선물을 산 일이나, 그녀가 흑색왜성을 사용하기 전 나에게 들은 말 등.
특정 기억을 제외한 다른 기억은 비교적 멀쩡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난 모든 기억을 잃었었지… 왜?’
한재중은 방금 전 욕실에서 떠올린 기억으로 더욱 혼란해졌다. 하지만 이 혼란은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며 필사적으로 아윤을 다독였다.
“그 기억이 재생되는 과정이 의식을 억지로 플래시백 시키는 거라… 가끔 의식이 희미해질 때가 있거든. 그거 때문에 쓰러진 거야. 너무 놀라게 해버렸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참 많이 돌고도 돌아 결국 변명을 마쳤다. 조아윤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진짜지?”
“그럼 진짜지.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봤어?”
“응. 존나 많이.”
“잘 배웠네. 세상에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어. 언제나 그렇게 경계하는 태도를 가지자.”
“뻔뻔한 건 진짜 변하질 않네.”
그녀의 얼굴에 그제야 호선이 걸렸다.
“응? 변하질 않아….”
히죽히죽 웃으며 한재중에게 잡힌 손을 바라보는 그녀의 목소리는 전보다 더 달콤했다.
“그러면 나도 오빠처럼 괴인들 찢어죽이면서 기억을 찾아야 돼? 막… 변신? 그런 거 해서?”
“그건 나도 아직 잘 모르는데… 만일 그렇게 되면 내가 괴인을 반시체로 만들어 놓고 네가 숨통만 끊는 방식으로 하자. 아니면… 굳이 기억을 찾지 않아도 되고.”
“아….”
그것도 그렇다. 어차피 마법 소녀 일에선 은퇴했다. 마법 소녀 지식이 없어도 그렇게 많이 곤란하진 않겠지.
심지어 그 때 당시 돈을 꽤 벌어 두었는지 통장은 풍족하다.
어디 한적한 곳에서 오빠와 가게를 차리면 될 일이다.
굳이 기억을 찾기 위해 피를 묻힐 필요가 있을까? 그가 대신 고생을 한단 것도 별로다.
“근데… 그래도 기억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왠지 모르게 조아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논리적인 이유보단 감정적 이유에 가까웠다. 딱히 기억이 간절한 건 아니었지만, 그럴 필요성은 느꼈다.
“…역시 그렇지?”
한재중은 괜한 소리를 했단 듯 쓰게 웃었다.
“저기 오빠.”
“응, 왜?”
“오늘 정보… 뭘 얻어온 거야?”
“….”
“오빠?”
잠시 침묵이 일었다.
초침이 한 번 째깍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네 번 정도 울릴 때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별의 계약을 네 의지로 했을 수도 있단 의혹을… 들었어.”
“…뭐?”
조아윤은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의지로 별을 찾았단 뜻은 즉, 무언가 대단한 소원이 있단 것 아닌가.
별똥별을 찾아서라도, 누군가의 힘을 찾아서라도 이루고 싶은 소원이.
“내가 내 의지로 소원을 빌었다고…? 왜? 난 꿈도 없고 그냥 놀고 싶을 뿐인데?”
“그러니까 의혹이지. 그냥 잊어버려.”
한재중은 그녀에게 동의했다. 그것이 연기인지 진심인지 몰라도, 지금 자신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 있음을 상시시켜 주었단 사실은 변치 않았다.
“…아윤아, 내가 오늘 말했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줄 거라고.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게.”
부드럽게 미소 지은 그의 표정은.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그게 네가 바란 것이라면 난 아무말 없이 널 따를 거야.”
설령 지옥에 스스로 발을 들이밀지라도 곁에 그가 있을 거란 확신을 쥐어주었다.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하지마. 난 언제나 너의 아군일 테니까.”
크고 단단한 손이 그녀의 손을 감싸 안고 있다. 그 두터운 손으로부턴 겨울을 가볍게 지워내는 온기가 전해졌다.
어떤 차가움도 녹여줄 것만 같은 따스함.
이에 녹아내리듯 조아윤도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폼 잡지마. 욕실 난동범.”
“원래 사람이 이럴 땐 폼도 잡아주고 해야지.”
“오빤 너무 자주 잡으니까 그렇지.”
둘의 체온이 뒤섞이듯 천천히, 어둠과 달빛이 하늘에서 뒤섞이며 밤이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