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74
Chapter 74 – 잘린 흔적 (7)
조아윤은 꿈이 없다.
현대인 대부분이 다 그렇듯, 그녀도 그랬다.
당장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데 무슨 꿈이나 낭만 같은 소리냐. 그런 냉소를 머금은지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계기는 별 것 없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없단 걸 깨달았을 때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침에 눈을 떴는데 집 안 어디에도 선물상자가 보이지 않을 때, 그간 동심을 지켜주던 소중한 추억이 조각났다.
그 날 조아윤의 세상은 무너졌다….
이 따위 하찮은 것을 시작으로 사람은 천천히 변하기 시작한다. 그녀도 그랬다.
더 본격적으로 이런 생각이 강해진 건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어릴 적부터 눈물이 많고 체구가 작았으며 감정 기복이 심했던 그녀는 또래의 좋은 놀잇감이었다.
조금만 놀려도 금방 반응이 돌아와 시비를 건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힘도 약해 보복이 올 가능성은 적어 만만하다. 또한 언제나 떽떽 거려서 비호감.
처음에는 언제나 작은 괴롭힘, 다 들리게 하는 험담이나 수업 도중의 지우개 가루 던지기 따위의 것들.
“아 하지 말라고!”
“거기 뭔 일이야! 지금 수업 중이야!”
작은 괴롭힘이 축적되어 과민반응을 하는 순간 좋은 명분이 생긴다. 선생님은 그들을 혼내는 게 아니라 조아윤을 나무랐으며 장난을 치지 않은 다른 제 3자들은 방해받은 탓에 불쾌한 눈으로 그녀를 째려 본다. 당연히 괴롭힌 아이들도.
수많은 시선이 그녀를 중심으로 꽈리를 틀듯이 조여든다. 순식간에 관심에 목 졸리며 이상한 아이가 된 조아윤은 침묵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
물론 괴롭힘은 끝나지 않는다.
“아 시발 좀!”
“조아윤!”
참다가 또 터지면 다시 이상한 아이가 되고, 다시 참다가 또 반응하고.
악순환이었다.
그렇게 점차 고립되던 와중 조아윤은 생각했다.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
꿈은 없다. 거창한 목표 따윈 없다. 그냥 놀고 싶다. 편하게 걱정 없이 살고 싶다. 무언가를 쫓느라 전전긍긍하거나 불편함에 빠지기 보단 당장 살기 편해지고 싶다.
자다가 맞이하는 꿈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의 의미를 두긴 싫다.
어린 조아윤의 마음은 그런 것으로 가득찼다.
나날이 증대되는 불안과 괴롭힘 속 조아윤은 우연히 길가에 쓰러진 한 사람을 돕게 되었다.
내가 누굴 도와줄 처지인지, 갑자기 무슨 오지랖인지, 도와주고 욕이나 먹는 게 아닐까. 평소 이런 시각으로 살던 그녀였다.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금 왜 그 사람을 도와준 건지 이유는 까먹었다.
칭찬 받고 싶다는 인정 욕구가 발달했을 수도 있고, 도와준 대가로 사례금 같은 게 탐났을 수도 있다. 자신이 무시한 결과로 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 생각에 찝찝했다는 이유일 수도 있었고, 그 날 따라 햇살이 강해서 일 수도 있고. 어찌 되어도 좋았다.
조아윤은 그 날의 오지랖을 후회하지 않았다.
“고마… 워요….”
우연한 도움을 받은 그 사람의 이름은 윤설화.
이 작은 도움이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너구나. 고마워 설화를 도와줘서.”
이후 그 만남은 전교에서 잘생긴 또라이로 유명했던 한재중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조아윤은 그 날의 오지랖을 평생의 행운으로 삼았다.
“오빠.”
그 생각은 지금도 변치 않았다.
“움? 왜?”
“먹고 말해. 먹고. 그렇게 급한 거 아니야.”
어린 조아윤에게서 지금의 조아윤에게로, 지금까지 변치 않는 생각은 하나 더 있었다.
늦은 밤 치킨을 목구멍 너머로 허겁지겁 밀어 넣는 한재중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밤에 밥도 안 먹었다길래 급하게 시킨 치킨이었다. 배가 고팠는지 금방 치킨은 동이 나기 시작했다. 아직 애같은 부분이 남아 있어 어딘가 귀여웠다. 보기만 해도 배가 꽉 찼다. 이게 부모가 흔히 말하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감각인 걸까.
“오빠는 왜 별과 계약한 건지 궁금해져서.”
“아, 그거… 별 건 아닌데.”
두꺼운 목젖이 한 번 울렁이고 한재중이 입술을 열었다. 굵은 목 선에 비해 고운 입술이었다. 선천적으로 붉어 누가 보면 화장했다 착각할 정도의 입술. 고작 이목구비 중 한 군데였지만 잘생겼단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저런 미모를 놔두고 전까지는 노숙자 꼴을 하고 다녔다니 참 예나 지금이나 얼굴 쓸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별 거 아니라면 숨길 이유는 더 없겠네. 동생 목표 추리할 때 참고 좀 할 겸 알려줘라.”
“뭐 굳이 말 못할 게 아니긴 한데….”
한재중은 살짝 곤란한듯 웃으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수호자가 만인을 지킨다면 그 수호자는 누가 지켜줘야 하나.”
꿈은 없다. 아직도 변하지 않은 조아윤의 사상이었다.
꿈 없이 살고 싶다. 그 따위 목표에 사로잡혀 힘든 길을 걷고 싶지 않다. 이미 충분히 힘들었다.
어릴 적부터 형성된 사고는 점차 선명해지고.
단순한 ‘꿈이 없다’라는 사고는 역설적으로 그런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이 되었다.
굳어진 이상은 점차 커지고 어느덧 사상이 되었다.
꿈이 없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조아윤의 사상이었다. 도가의 무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일체의 인위적인 관념 없이 흘러가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
목표 없는 삶을 목표로 하여 살아갔다.
그렇기에 조아윤에게 있어 꿈 있는 자란 연민할 자들이다. 불행한 이들이니. 언제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도 그 갈증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거창한 목표는 아니야. 수호자면 알지? 마법 소녀 애들. 걔네들 불쌍하잖아. 그 어린 나이에 목숨 걸고 싸우라 하다니 그게 학대지. 아무리 사람이 없다 해도 애들한테… 그래서, 나라도 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잡은 목표야. 수호자의 수호자. 별 거 없지? ”
“존나 거창한 데 무슨. 근데 잠깐, 오빠 변신한 모습은 빼박 괴인이잖아… 마법 소녀들을 괴인의 모습으로 돕는다고?”
“그렇게 됐다.”
“근데 그거 원망만 받을 걸? 잘못해서 정체라도 들키면 난리나고, 오히려 마법 소녀에게 해가 될 수도 있고. 욕만 먹는 일 아니야? 딱히 보답도 없을 텐데… 호구 같아.”
동시에 존경해 마땅할 자들이다.
“원망으로 포기할 일은 아니니까…? 원래 사람 심리가 그런 거 아니겠어? 남들은 이해 못하고 욕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게 하나쯤 있잖아. 뭐 애니를 좋아하면 오타쿠로 욕을 먹을 수도 있고, 축구를 좋아하면 그깟 공놀이 유치하게 뭐가 좋다고 욕 먹을 수도 있고. 비단 내 꿈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일에는 험담 할 거리가 있어. 그렇더라도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않잖아. 나도 똑같은 거야. 호구 같아도 하고 싶은 일이니까. 해야지.”
불행을 알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는 용기 있는 자들이니.
“그러니까 네가 생각한 거처럼 대단하고 거창한 건 아니야. 그냥 가난한 음악가가 앨범 100만장 팔고 싶단 목표 정도의 오기와 목표지.”
“그러니까 존나 거창하다고… 아 기사로 보니까 나 앨범 10만장 넘게 팔았던데?”
“오 쩐다. 아하, 그 수입으로 내가 지금 치킨을 뜯고 있는 거구나.”
“내가 번 기억은 없지만.”
조아윤은 쓰게 웃었다.
자신에게 꿈은 없다. 분명 그래야 할 터인데 왜 과거의 자신은 마법 소녀를 택한 것인가.
“아! 그래서 그런 건가? 전에 오빠가 나를 살리는 게 목표라고 오글거리게 말한… 아.”
무심코 자신에게 없는 기억을 중얼거리다 조아윤이 입술을 닫았다. 한재중이 놀란 눈으로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곧 그의 입가가 풀어졌다.
“야… 너.. 너! 그거!”
“와 시발 뭐지…?”
어지러웠다. 몸이 기억도 이전에 반응을 해버리다니. 언어 체계에도 머슬 메모리가 있는 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매도를 하듯 자신에게 없는 기억을 꺼내 현실에 내놓았다.
나는 모르는데 나는 알고 있다. 모순적인 사태에 조아윤은 입술을 떨었다. 오싹했다. 자아가 괴리되는듯한 충격도 함께 했다.
“내가 뭐라고…?”
한재중은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나도 그랬어.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 신기하지? 이상한 일 아니야. 너 이상한 거 아니야. 괜찮아. 일단 진정하고, 물 좀 마실래?”
컵에 물을 따라 그녀에게 건냈다. 조아윤은 받은 물을 벌컥벌컥 입 안으로 넘겼다.
‘진짜 안 변했네.’
언제나 이상한 아이 취급을 당했던 조아윤을, 그들은 언제나 배려해주었다. 넌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이상하지 않고, 틀리지 않고, 그냥 평범한 소녀라고.
푸하.
컵을 탁자에 올려 놓은 조아윤은 다시 그를 빤히 보았다. 마법 소녀였던 적도 없으면서 왜 늙지를 않는지. 쓸데 없이 예쁘기만 한 눈이 괜시리 짜증났다.
“…오빠.”
“응? 왜?”
오늘은 피곤한 일이 너무 많았다.
“나 오늘 피곤하니까 먼저 잘래.”
“응? 어어 그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를 보며 장난기가 발동한 한재중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야 키 크지.”
움찔.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극 당한 조아윤이 발을 뚝 멈췄다. 이제 마땅히 돌아올 보복을 기다릴 차례다. 뭘 해도 다 귀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한재중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 그렇네.”
하지만 보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 맞다. 오빠, 아직 혹 난 거 내일 병원 가 봐. 혹시 모르잖아.”
오히려 걱정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보복을 걱정한 한재중의 마음엔 죄책감이 생겼다.
‘오빠를 생각해주는 저 착한 애한테 내가 무슨 평가를… 미안하다 아윤아. 내가 개새끼였구나.’
자신의 속 좁음과 불신에 후회하며 내심 조아윤에게 사과를 전했다.
끼익.
조아윤의 방 문이 열리고 그녀가 안으로 몸을 옮겼다. 식탁에서 간단히 볼 수 있는 자리라 그는 자연스레 그곳을 향해 시선을 이동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딱 눈만 보일 정도로 틈이 만들어지고 움직임이 멈췄다.
문 뒤에서 조아윤이 빤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번뜩이는 분홍색의 눈이 야행성 짐승의 그것처럼 형형하게 빛났다.
“오빠 말이 맞아. 빨리 자서 키 커야지. 딱 오빠랑 22cm 정도 차이 나게.”
“…? 뭔 소리야.”
“그거 알아 오빠?”
끼이익. 다시 방 문이 조금씩 닫히기 시작했다.
“남녀 간 궁합에 제일 좋은 키 차이가 22cm래. 그냥 궁합도 아니고… 그, 알잖아?”
“으흨!”
조금씩 홀짝이던 맥주가 기도로 들어갔다. 몇 번 괴로운 기침을 하며 조아윤의 비웃음과 놀림을 들었다.
“맞다. 오빠, 참고로 나 오늘 방 문 안 잠글건데.”
“애가 이상한 거만 찾아 봐서. 야동 너 얼마나 봤어?”
“에이 그걸 어떻게 세.”
“그럴 줄 알았다. 들어가 단디 자라!”
“알겠습니당~”
귀엽게 대꾸한 조아윤이 문을 끝까지 닫았다.
“진짜 별…..”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맥주를 들이켰다.
**
다음날 오전.
조아윤의 조언대로 한재중은 병원에 왔다.
하지만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병원비 얼마 한다고 그냥 치료 받으라고 잔소리하는 미래가 훤했지만, 이미 밤 사이에 머리에 난 혹은 완치되었다. 별빛을 가진 자 특유의 재생 능력은 병원에 갈 필요성을 현저히 낮춰준다.
그런데 병원에 왜 온 것이냐.
다름 아닌 만남을 위해서였다. 치료가 아닌 만남의 장소로 병원을 사용했다.
눈에 익은 인테리어가 그를 맞이해 주었다. 최근도 그렇고 옛날도 그렇고 병원이란 참 익숙한 장소였다. 병원이 멀 수록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아니었다. 병원은 일상의 장소였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되었다.
원망 받아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어젯밤 조아윤에게 말한 그건 한 가지 조건이 결여 되어 있다.
그 원망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존재해야 한다.
다른 존재가 나로 인해 고통받게 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목표라 부를 수 없다.
일방적인 민폐나 떼 쓰기에 불과하다.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며 제 좋은 것만 하려 하다니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끔찍한 일이겠나.
한재중은 눈길로 옆에 앉은 사람을 살폈다. 수상할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 쓴 장발 장신의 미녀.
“오랜만이네.”
“…그러게.”
입에 담는 것만으로 전신이 녹아내릴듯 행복하며, 전신이 무너져내리듯 고통스러운 이름을 불러 보았다.
“설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