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76
Chapter 76 – 잘린 흔적 (9)
한재중은 당혹을 참지 못했다.
‘이런 시발….’
한동안 은둔한단 발언한 것치고 재등장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아직 큰곰자리를 전부 완성시키지도 못했는데.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다름 아닌 옆에 윤설화가 있단 점.
‘지금 모순은 둔갑을 한 상태, 별빛을 가지지 않은 일반인의 눈으론 제대로 형태를 파악할 수 없어. 대가리에 선인장이 달려 있어도 인상이 흐릿한 남자로 보일 뿐이다.’
방금 전 한재중의 반응은 누가 봐도 수상했다. 보면 안 될 걸 보았단 듯 숨을 들이키는 모습. 자칫 그의 둔갑을 눈치챈 사람의 반응이라 의심당할 수도 있었다.
힐끔. 시선을 돌려 윤설화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의심이나 의아한 눈초리는 없었다. 다만….
“…뭐야 이건.”
상상 이상으로 살벌한 눈초리를 띄고 있었다. 그 대상은 저 가증스런 선인장 남자. 눈 앞의 남자가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듯이 살의가 넘쳐흐르는 눈빛을 보내는 중이었다. 저 반응으로 보아 한재중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살피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너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식당이죠.”
모순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리곤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가에 가져갔다. 이목구비가 없어 그곳이 입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의 입가에 해당할 위치긴 했다.
“그것도 손님이 많은 식당.”
느지막한 목소리였다. 그는 싱긋 웃곤 주위를 둘러 보았다. 확실히 손님은 여기만이 아니었다. 적당히 복작일 만큼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참 감회가 새롭군요. 제가 다닐 때만 해도 망해가던 작은 식당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커진 건지.”
“아 순이야 왔어? 오랜만이네! 뭐 하다 온 거야?”
“네 오랜만이군요. 잠시 여행을 좀 하다 왔습니다.”
“먹던 걸로 줘?”
“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게 사장과 살갑게 인사를 나눈 그는 자연스레 의자 하나를 끌어와 가운데에 앉았다. 시선을 느낀 모순은 머쓱하게 설명했다.
“언제나 잘 나가는 가게에만 손님이 있는 건 균형에 맞지 아니 하죠. 망해가는 가게에도 손님이 있어야 돈의 균형이 올바르게 맞춰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 자주 허름한 가게를 다닌답니다. 이 가게도 그 일환이었지만….”
모순은 다시 주변을 둘러 보다 작게 웃었다.
“이젠 슬슬 발길을 끊어야 겠군요. 이제 여긴 더 이상 허름하다고 부를 수 없을 테니까요.”
“뭐하자는 거냐니까?!”
쾅. 윤설화가 책상을 치며 언성을 높였다. 한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이 곳으로 모여 들었다가 다시 본인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시선의 응집에 한재중과 윤설화는 몸을 흠칫 떨었다. 둘 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데 거부감이 있었다.
특히 윤설화의 경우엔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한재중이 피해 받지 않기를 바랬다. 모자를 눌러쓴 덕일까 인상이 흐릿하게 보여질 모순의 탓일까. 다행히 이번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사진을 찍어댈 텐데.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짜증났다.
기껏 한재중과 함께 하는 시간에 방해하는 것이 이리도 많다는 사실에.
“이런, 데이트를 방해받은 것이 상당히 화가 났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런 짓은 자제해주세요. 공공장소 예의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모순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다른 손님이 있으니, 소란은 자제해야죠.”
그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단순한 주의라고 느낄 말. 하지만 그에게 괴인이란 정체가 부여되는 순간, 그 말은 한순간에 돌변한다.
협박.
다른 손님도 있는데 함부로 날뛸 수 있는가? 타인의 목숨을 거래 재료로 올린 심플한 협박이다.
윤설화는 이를 뿌득 갈았다. 지금 그와 가장 가까운 건 한재중. 그녀가 사랑하는 그이다.
‘재중이를 다시 위험에 빠지게 할 순 없어.’
지금 당장 변신하여 그의 목구멍 안에 얼음덩이를 쳐박고 싶었으나, 사랑으로 초래된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윤설화의 걱정과 달리 한재중은 다른 위험을 걱정하는 중이었다.
‘모순은 상당히 강력한 괴인… 설화는 민간인의 대피까지 생각해야하는 강력한 패널티까지 짊어지고 있다. 싸워서 무사할 거란 보장은 못해. 게다가….’
한재중은 책상 아래로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새끼가 뭔 개소리를 씨부릴지 알 수가 없다.’
정체가 밝혀질 수도 있다.
그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 한재중은 결심한 즉시 입꼬리를 올리고 입술을 열었다.
“그래 오랜만이네요. 여행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꽤 빨리 돌아오셨네요.”
‘왜 벌써 돌아오고 지랄이냐 개새끼야.’라는 의미를 적당히 에둘러 전했다.
“아, 여긴… 윤설화라고… 제…. 제….”
“…안녕하세요. 재중이 여친… 아, 아니 친구 윤설화라고 합니다. 그쪽은 저 알고 있죠?”
윤설화도 재빨리 한재중의 말을 이어 인사했다.
‘지금 여기서 싸울 순 없어. 저 괴인 새끼. 재중이한테는 어떻게 접근한 거지? 어떤 사이인 거야. 재중아 눈치채 줘. 저 괴인이 널 전에 납치한 그 방패자리의 괴인이란 말이야!’
속이 답답하다 못해 터져나갈 것 같았다.
“이렇게 살갑게 인사 나눌 사이는 아닌데… 죄송하지만 이만 일어나주시지 않겠어요?”
‘시발 뭐하자는 거니 아가리 여물고 꺼지렴.’을 부드럽게 말했다.
“하하, 아무래도 상당히 미움을 받는 모양이군요. 네, 당연한 거죠. 이해합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시죠. 반가움에 무심코 인사해 봤을 뿐. 용건만 가볍게 전하고 떠나겠습니다.”
모순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걱정하시고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죠. 저도 오늘 잠깐 들릴 일이 있어서 한국으로 돌아온 것뿐. 이후 바로 해외로 나갈 것입니다.”
“여기 와인 나왔어요. 아, 두 분이 시키신 파스타도 곧 나와요.”
그 때 사장이 직접 서빙을 하러 왔다. 한재중과 윤설화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사교적인 미소를 지어냈다. 모순이 둘을 살피며 와인병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아. 여기 파스타는 맛있다는 평가가 자자하니 기대하셔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넌 먹은 적도 없으면서.”
“하하, 제가 면이 안 받아서 말이에요.”
“파스타집엔 왜 오는 거야 그럼.”
“와인 마시러요.”
자연스럽게 와인병을 딴 다음 세 잔에 균등히 따라 부었다.
“자 한 잔씩 하시죠.”
“저 금주하고 있어서 말이에요. 그 대가리… 아니 당신이 다 마시면 될 거 같습니다.”
“저도 점심부터 술은 좀 그렇네요.”
모순은 아쉽단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보니 저놈 입이 없는데 저걸 어떻게 마실 생각이지?’
한재중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모순이 자신의 머리 부분에 있는 선인장 화분에 물을 붓듯 조르르 와인을 부었다.
“….”
그 광경을 지켜본 한재중은 입을 멍하니 벌릴 뿐이었다. 기괴하다 해야 할지 우스꽝스럽다고 해야 할지. 얼핏 현대 예술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였다.
“음 역시 여전히 싸구려 와인을 쓰신다니까요. 가격은 높으면서 말이죠. 여기에 오는 건 진심으로 끝내야겠군요.”
내용물을 머리 위로 다 털어 놓고, 빈 잔을 내려놓은 모순이 한재중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에 경계심을 느낀 윤설화가 재빨리 한재중의 곁으로 의자를 옮긴 다음 팔짱을 꼈다.
“…뭐가 목적이야.”
이번엔 머리를 돌려 윤설화를 바라 보았다. 눈 없이 느껴지는 시선은 오싹하고도 무기질적이라, 본능적인 거부감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가만히 그들을 관찰하던 모순은 한재중이 거부했던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다시 한 번 그 내용물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화분에 부어 넣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모순은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다들, 훌륭히 강해지신 것 같군요. 참 다행입니다.”
한재중은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쓸데없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설화에게 쓸데없는 의심 심지마.’
‘그 더러운 머리로 재중이를 쳐다보지 마.’
다행히도 윤설화는 그의 말을 경청하며 사랑하는 그이를 의심하거나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사고는 살의와 보호 욕구.
언제라도 그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게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다행이죠. 제가 해외에 있었다고 방금 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을 가봤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뉴욕이라고 해야할까요. 참 끔찍하더군요. 괴인이 이 한국보다 더 심하게 날뛰고 있던 데다 심지어 마법 소녀는 인력 부족이라 매일 같이 과로고… 균형이 맞지 않았죠.”
모순은 마지막으로 남은 잔, 윤설화에게 건냈던 잔을 머리 위로 따라 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좀 도와주었습니다. 잔챙이들은 적당히 처리하고, 몇몇 분에겐 딜레마에 가입하지 않겠냐 권유했죠. 동방의 한 나라에 당신들의 바람을 이뤄줄 지도 모를 존재가 있다 하니 흥미가 생긴 것 같더군요.”
자신의 정체를 조금도 숨길 생각이 없는 듯한 대화 주제였다. 모순은 빈 잔을 내려놓았다.
“…재중아.”
한재중의 손을 꽉 잡고 있던 윤설화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신호를 주면 바로 도망가야 돼. 알았지?”
목소리엔 긴장이 역력했다. 목덜미를 타고 아름다운 땀방울 하나가 빗줄기처럼 내려갔다. 긴장의 증거 중 하나로 손엔 땀이 가득했다.
그게 부끄러운지 손을 빼려 하였다. 한재중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빼지 못하게 붙들었다.
“알았어.”
살짝 눈을 맞추곤 싱긋 웃었다. 윤설화의 볼과 귀에 붉은 기운이 확 올라오고, 시선을 휙 돌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설렘을 느끼는 자신에 환멸하면서도 그이의 아름다움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모순은 여전히 제 할 말을 하는 중이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독수리 자리와 고물 자리가 이 땅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아, 맞다. 용골 자리와 돛 자리도 있군요. 하하, 잊을 뻔 했습니다. 대화 상대의 이름을 잊는 건 예의가 아닌데 말이에요.”
그의 말뜻은 간단했다.
S급 괴인이 추가로 입국할 예정이다.
‘지금 있는 놈들도 상대하기 힘든데 여기서 더?’
마음이 착잡했다. 빚의 이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문제가 끝없이 불었다.
모순은 태연하게 빈 잔에 와인을 따랐다.
“제가 오늘 도착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여유로운 그와 달리 한재중과 윤설화는 점진적으로 초조해져 갔다. 저 가벼운 말에 들어있는 내용은 너무나 무거웠다.
“제가 안내했죠. 이미 그들은 도착했습니다.”
미국에서 다수의 S급 괴인이 건너와 있다. 이미, 지금.
“아마 근시일 내에 모습을 드러내겠죠. 오늘 당장일 수도 있고, 혹은… 하하, 모르겠군요. 워낙 막 나가는 인물들이라.”
“그런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지?”
“음 이젠 존댓말도 접었나요. 괜찮습니다. 사실 그게 더 익숙하기도 하고요.”
모순은 하하 웃으며 와인을 따라 부웠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밖에 없죠. 제 뜻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강해지길 바란다. 최강의 창을 막을 방패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의 바람은 이것 하나 뿐. 이번의 일 역시 동일하다.
모순은 미국에서 온 괴인들이 목적을 이루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되길 바라고 있다. 누군가의 성장을 위한 제물로 소비되길 바라고 있다.
사교적인 말투 뒤에 숨겨진 흉흉한 속내.
한재중은 윤설화를 살폈다.
‘설화는 내가 와쳐란 걸 모르는데… 저딴 말은 왜 하는 거야!’
말을 애매모호하게 전했지만 의심하기엔 충분한 단서들이었다. 애초에 괴인과 어떤 커넥션이 있는 사람이란 사실부터가 수상하기 그지없다. 그녀가 추궁한다면 어찌 답해야 할까.
그런 불안을 마음에 품으며 시선을 돌리자, 딱 그녀와 눈이 맞았다.
‘젠장할.’
숨이 턱 멎는 듯했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그 습기를 만드는 데엔 한재중의 긴장도 함께했다. 조금의 틈 없이 맞닿은 손바닥 안에선 더 이상 누구의 땀인지 분간이 불가능했다. 서로의 체액이 뒤섞이며 끈적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마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떨리는 동공을 주체할 수 없었다.
윤설화는 싱긋 웃었다. 그리곤 중얼거렸다.
“괜찮아.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
그 순간 긴장이 턱 풀렸다. 윤설화의 눈에서 의심이나 의혹의 그림자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순수하게 한재중을 지키겠단 마음, 올곧은 믿음과 사랑만이 존재했다.
“자 주문하신 크림 파스타와 봉골레 파스타입니다.”
알바생이 주문한 메뉴를 들고 찾아왔다. 모순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나 보죠.”
천만다행이게도, 이 식당 안에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앞으로의 분쟁이 남아있긴 하다만, 그것은 준비하면 된다.
‘…재중이와의 데이트가.’
모순이 순순히 물러나 주는데도 윤설화는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이 점심 이후 마법 소녀 본부로 가 그에게 들었던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게 뻔했다. 저녁은 물론이요 밤까지 함께 할 계획을 마쳤는데, 모든 게 망쳐졌다.
‘반드시 저 놈 만큼은….’
속으로 복수를 꾀하고 있던 그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자리 있나요?”
“문 쾅쾅 열지마요!”
“진짜 너랑 다니는 거 쪽팔려지려고 해.”
문을 쾅 열고 소녀들이 들어왔다. 눈에 익은 사람 하나와 낯 설고도 낯 익은 사람들 둘.
화이트 다비흐, 레드 베가, 오렌지 알타이르였다.
“하하, 이런.”
“오?”
화이트 다비흐는 입장 즉시 일어나 있던 모순을 발견했다.
“…저 씹새끼가 뭐라고 사람들 밥 처먹는데 있는 겁니까? 밥이 아니라 눈칫밥은 존나게 처먹은 거 같네요! 여러분 즉시 준비~”
“예? 자, 잠깐.”
“그거 좋지!”
“드레스 업!”
“잠깐이라니까! 일단 대피부터….”
“드레스 업.”
[Dress up your star!]“실현.”
[Reveal the truth.]존재할 뻔하던 평화가 박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