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8
Chapter 8 –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SET. 칠성보각(七星步脚).]조금의 여유도 부릴 수 없다. 이들은 전원 나보다 훨씬 선배인 별자리의 소유자들.
나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피지컬을 지닌 데다 그 숙련도 역시 나와는 급이 다른 이들이다.
‘벨트의 보조만으론 어려워.’
아무리 벨트가 내가 해야 할 행동, 적이 취할 행동을 전부 보여주어도 결국 그걸 행하는 건 나다.
지도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미아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지도가 보여주지 못한 세세한 디테일을 챙기는 것은 그 지도를 해석하는 본인의 실력.
나는 아직 미숙하다.
그걸 알지만.
‘시발 그렇다고 쟤넬 방치할 순 없잖아.’
이상하게도 마법 소녀와 대치했을 때와 같은 두려움은 없었다. 그들에게 향하는 연민도 없다. 대단한 사명감도 없다.
있는 건 오직 분노와 살의.
첫 번째 걸음에 분노가 담기고.
두 번째 걸음엔 살의가 담겼다.
그 다음의 걸음엔 이 것들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점차 분노와 살의가 강화됨과 함께 별빛이 오른 발에 휘감겼다.
노리는 건 일단 제일 만만해 보이는 타락한 마법 소녀, 비르고.
굳이 만만하다 이외의 이유를 찾자면.
이 몸 한재중 씨의 전 연인, 블루 시리우스를 죽인 장본인이니까. 물론 원작에서의 일이긴 하다.
이 곳에선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
“넌.”
꽈드드득! 마지막 발걸음. 내가 서 있던 곳의 지반이 흠푹 파였다.
북두칠성의 모양대로 땅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서슬퍼런 녹색의 별빛이 플레어처럼 샘솟았다.
오로라를 닮은 그 빛무리는 한 점도 사양 않고 내 다리에 사슬처럼 달라 붙었다.
다시 한 번 발을 내딛자, 다리는 하늘을 휘저었다. 그렇기에 걸음이 되질 못했다. 이 다리를 떨어뜨리려 하는 중력 마저 무기로 삼아.
“별을 본 적이 있나?”
그대로 비르고의 머리를 향해 떨어뜨렸다.
다리 하나만을 사용한 드롭킥.
콰과과광─!
압도적인 질량으로 비롯된 굉음과 진동, 바람이 샘솟았다.
[칠성보각(七星步脚) 발현 성공. 재현율 30%]이정도의 위력인데도 고작 삼 할인가. 기술 자체는 성공했다.
그러나.
“하하, 확실히 성미가 급하시군요.”
괴인 격파란 음성이 뒤 이어 들려오진 않았다.
“…모순(矛盾).”
“제 이름도 알고 있던 건가요? 영광이네요.”
그는 정확히 내 반대 지점에서 몸을 올리곤 정확히 동일한 위력의 킥을 선보여 칠성보각을 상쇄시켰다.
이래서 이 놈을 먼저 공격하지 않은 건데.
방패자리를 사용하는 괴인, 모순.
“심지어 제 별자리, 스큐텀으로 불러주지 않고 똑바로 제 이름을 말해주시다니. 감동 받았습니다.”
난 다시 땅에 착지하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젠장할, 다리가 후들거린다.
역시 이 정도의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 받는 건 나에게도 꽤 부담이 되나 보군.
“매너는 중요하죠.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는 건 상호 존중의 기본입니다.”
“뭐라는 거야 균형성애자 새끼가.”
“지금 이 분이 바로 예시를 보여주시네요. 다름 아닌 반면교사의 예시를 말이에요. 구해준 보람이 없군요.”
시선을 돌려 놈의 다리를 보았다.
“음? 아… 이건… 네. 이건… 하하, 부끄럽네요. 제대로 당했습니다. 성정 만큼 힘도 화끈하시군요.”
그는 말을 더듬으며 멋쩍게 웃었다.
나와 똑같았다.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
역시, 내 힘은 이 녀석들에게도 통한다.
문제는, 그저 통할 뿐.
“보기 불편하실 테니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그 말이 전해짐과 함께 녀석의 다리가 아물었다.
“음, 역시 내구성 까지 복사하는 건 효율이 좋지 않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건 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 후에 당신과 제대로 싸울 일이 있으면 본심을 보여 오직 당신의 별빛의 힘만 복사할 테니까요.”
모순.
최강의 방패와 최강의 창을 부딪히면 무엇이 이길까.
사실상 완전히 동일한 두 힘이 부딪히면 그 승자는 누가 될까.
그 물음의 해소가 놈의 목적이다.
목적이 곧 이름이며, 그 모든 것.
그 목적에 어울리게 놈의 능력은 지극히 단순하다.
“하하, 물론 싸우지 않을 일을 바래야겠죠.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니까요.”
자신이 적이라 규정한 상대의 힘을 복사해 두르는 것.
“저 저지능년이 오해를 사게 말한 거 같으니 다시 한 번 우리의 목적을 말하지.”
뒤에 있던 그림자에 가려진 괴인이 입을 열었다.
“나의 목적은 세계 멸망 따위가 아니네. 물론 저 저능아도.”
“어차피 다 멸망할 거야!!!”
“제발 닥쳤으면 좋겠군. 아무튼.”
그는 어둠 속에서 손을 뻗었다.
“우리가 자네에게 바라는 건 별게 아니네.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아니며. 세계에 혼란을 가져오란 것도 아니지. 우린 그저 자네가 모으고 있는 별의 조각을 소량. 아주 소량만 받고 싶을 뿐이네.”
“무슨 소리야?”
“허허, 모른 척 하는 건가? 자네가 쓰러뜨린 괴인에게서 별빛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졌단 건 이미 들켰다네.”
내가 별의 조각을 모으고 있다고? 그게 뭔…….
‘아.’
내가 괴인을 쓰러뜨릴 때마다 흩뿌려지던 별의 조각. 그것은 단순히 허공에 흩어진 건가?
퀘스트.
대가가 있다면 반대로 보상도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
그게 설마 내가 쓰러뜨린 괴인들에게서 발생한 별의 조각이라면.
‘힘의 증가인가? 심플해서 좋네.’
하지만 아직 내 원래 힘인 칠성도 못 다루면서 그걸 언제 다 써.
“우리의 제안은 지극히 단순하네. 거래 제안이지.”
어둠 속 뻗어온 손 안에서 천칭이 피어 올랐다.
“그 별의 조각을 넘겨 주게. 그 대가로 돈을 주지.”
“그딴 거에 굴복할 거 같아?”
“70억 주겠네.”
“…오.”
순간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금 나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가치였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구미가 당길 법한 액수였으니까.
“너무 작군요. 그동안 번 돈은 다 당신 배때지에 쑤셔 넣었습니까?”
“맞아! 겨우 그게 뭐냐!”
“이정도면 충분히 많은….”
“70억으로 누가 신념을 굽힙니까.”
뭐지 나 저격하는 건가. 찜찜함에 모순을 보았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양 손을 내저었다.
“안심하시지요. 겨우 저런 푼돈에 당신의 노력을 살 생각은 없으니까요.”
“이 새끼들이 돈 번 적이 없으니까 개념이 날라가가지고….”
“입 다무시고 0 하나나 더 붙이시죠.”
“…알았다.”
그의 손에 있던 황금색 천칭에 수많은 금덩이가 올라갔다.
“700억.”
내 인생 살면서 제의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 액수가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오해하지 말도록. 나 역시 이 정도의 금액은 합당한 손해라고 생각한다. 더욱 많은 이득을 위해 필요한 희생이지.”
몸이 떨렸다. 저런 돈만 있으면 평생을 걱정 없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손해란 없다. 있는 지도 몰랐고 제대로 쓰지도 못할, 별 하나도 되지 못한 별의 조각.
그걸 주면 된다.
“…다시 묻지.”
이 정도의 힘으론 저들의 전력을 강화 시키지도 못한다. 고작 C급 B급 괴인 정도의 힘.
인지하고 있다.
인지하는 건 그 뿐만이 아니다. 이들의 성향 역시 인지하고 있다.
이들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초래한 결말을 알고 있다.
그들이 나에게 내민 건 거절하기엔 너무나 많은 돈.
“너희의 목적이 멸망이 아니라 한들, 그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멸망이 초래된다면 어쩔 거지? 멈출 건가?”
하지만 거절해 내는 데 성공했다! 저자들의 악행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최면한 끝에 달성한 성과였다.
어둠에서 뻗어 온 손은 내 답을 알겠는지, 천칭을 거뒀다.
“그럴 리가 없지.”
천칭을 거둔 다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3m를 훌쩍 넘는 황금색의 갑주를 입은 괴인.
천칭자리, 리브라.
절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정당화 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을 찾는 것이 목적인 괴인.
알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고작 세계 멸망 따위가 아니다.
이들의 목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의 해소이며.
그걸 알기 위해 세계 멸망 쯤이야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멸망이 필요한 희생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가 부딪히기 위해 필요하다면, 멸망 쯤이야 달게 받아들여야죠. 안타깝지만.”
“어차피 올 멸망인데 뭐 어때?”
그렇기에, 내가 넘긴 이 작은 별의 조각이 어떤 나비 효과를 붙러 일으킬 지 모르기에.
난 이들의 손을 잡을 수 없다.
“너희가 말한 전부가, 내가 너희에게 조금의 협력도 할 수 없는 이유며. 답이다.”
모순이 물었다.
“왜죠? 당신은 지금 가난합니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없을 만큼 돈에 허덕이고 있죠. 저희는 마법 소녀들이나 다른 하찮은 괴인들과 달리 당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지 않습니다. 말마따나 당신의 말대로 인간 사회가 멸망할 지라도 당신에겐 별 다른 위협도 안 될 텐데요?”
비꼬는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아 실현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S급 괴인 답게.
“왜죠? 당신은 왜 저희를 적대합니까?”
순수하게, 내 의도를 궁금해 하고 있다.
“난 괴인이 아니라 인간이니까.”
그렇기에 나 역시 순수하게 대답해 주었다.
“너희가 인간들에게 얼마나 큰 해악인지 알고 있으니까. 너희들의 목적은 순수한 의문이자 너희들의 자아 그 자체. 그걸 이루기 위해 인간을 사용해 끊임 없이 실험을 시도할 것이고. 그러면 마법 소녀는 너희를 막을 테니까 방해가 되면 너흰 그녀들을 죽이겠지. 유용하다 싶으면 실험을 하다 죽이고.”
‘미쳤냐? 니들이 마법 소녀도 다 죽이고 세상 깽판 낼 걸 다 알고 있는데. 잘도 도와주겠다.’를 상당히 돌려서 말해주었다.
“너희는 별을 본 적이 있나? 너희는 마법 소녀들이 내뿜는 빛을 본 적이 있나? 그 아름다움이 사라질 게 뻔한데 내가 너희를 퍽이나 돕겠군.”
‘마법 소녀 그 예쁜 애들을 다 죽일 새끼들을 내가 왜 예뻐해?’를 상당히 돌려 말해 주었다.
모순은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알겠습니다. 당신은 인간도 괴인도, 하물며 마법 소녀도 아닌 존재. 당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건 다름 아닌 본인이어야 하겠죠. 당신은 인간의 길을 골랐군요. 좋습니다. 당신의 의지를 존중하겠습니다.”
모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타락한 마법 소녀, 비르고의 눈빛이 어둑한 별빛에 휩싸였다.
“그럼 어째? 죽일까? 저 애 나한테 발차기도 날렸는 걸. 협상 결렬이잖아. 죽여야겠지?”
“흠, 그러는 게 올바르겠군.”
“하지만 당신의 의지가 존중 받는 만큼 저희의 의지도 존중해 주었으면 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적극적으로 방해할 의지를 표명한 이상 방치할 순 없으니까요.”
별빛이 일었다. 두텁고 무서운 별빛. 마법 소녀의 그것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마주해온 괴인들의 것과도 다르다.
심해같이 압도적인 질량의 별빛.
위압감. 그걸 넘은 공포.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공포.
죽음을 마주하는 두려움.
분노와 살의로 샘솟았던 엔돌핀이 식자 그 빈 자리에 공포가 채워졌다. 새삼스레 내가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난 잠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본능이 그리 시켰다.
‘시발….’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자세를 다잡았다. 주먹을 쥐고 언제라도 뻗을 수 있게끔 비스듬히 팔을 세웠다.
“으음…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균형이 맞지 않겠군요.”
그 때 양 쪽을 둘러본 모순이 내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내 오른 편에 서더니 들고 있던 방패를 창으로 변형 시켰다.
“좋습니다. 이제야 대등한 싸움이 되겠군요. 저희부터 가도 될까요?”
“…뭐 하자는 거지?”
“아, 오해 하지 마시지요. 배려가 아닙니다.”
오싹. 팔에 소름이 돋는 듯 했다.
아까와 다른 공포가 느껴졌다. 이것은 미지에 대한 공포였다.
“제 만족을 위해서 입니다. 아무래도 균형이 맞지 않는 싸움은 영 불편해서 말이에요. 재미도 없고요. 대등한 두 힘이 부딪히고 나서 누가 승자일까! 생각만 해도 흥미로운 화두 아닌가요?”
미친 새끼.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에겐 근원적인 공포를 느낀다던데 딱 그 말에 부합했다.
눈동자 하나 없는 푸른색의 렌즈가 뭐 저리 빛나고 있는지.
“자! 그럼 힘차게 싸워 봅시다!”
“저 미친 새끼가 흥을 다 깨는군.”
“이번 만큼은 동의하지. 이 놈 좀 데려가.”
“예? 왜죠? 대등한 전투야 말로 진정한 전투. 저의 자아이자 의지의 표출….”
“됐다.”
리브라가 거대한 손을 휘저으며 어두운 공간을 지워냈다. 이 쪽으로 초대될 때와는 반대되는 어둠의 움직임. 어둑한 공간이 내 뒤로 점점 밀려났다. 그 곳에 있던 이 미친 괴인들 역시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다.
“이런, 아무래도 오늘은 싸울 적기가 아닌가 봅니다.”
그렇게 시야에서 멀어지는 와중, 가장 내 가까이 있던 모순은 끝까지 입을 쉬지 않았다. 그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인간의 길을 고른 건 존중하죠. 하지만 인간이라고 해서 목적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당신의 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하고 싶습니까. 단순한 생존을 위한 방어? 음… 그건 너무 공허하군요. 사치스럽기도 하고.”
놈은 끝까지 그 푸른색의 렌즈를 나에게 고정 시켰다.
“당신의 목적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어둠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내 눈에 들어온 건 밤과 길과 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