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83
Chapter 83 – 상실, 준비 (5)
벼락으로 된 비.
좀처럼 보기 힘든 재해에 많은 이들이 탄식과 비명을 내질렀다. 고작 한 괴인이 자아냈다고 믿기 힘든 재앙이었다.
건물 대부분의 전기 시설이 정지했지만 새로운 광원은 필요 없었다.
하늘 전부가 밝았다. 한 벼락이 끝나면 조금의 지체 없이 세 개의 벼락이 쳤다. 수 만의 벼락이 하늘을 뒤덮으니 빛 따위는 필요 없었다.
천둥 소리와 곡소리가 섞여들며 지옥도를 자아냈다. 그 한가운데에 마법 소녀들이 있었다.
-여기로 오세요! 이 쪽으로!
-다친 분은 이 곳으로 오세요!
-제가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누군가를 피난을 주도하고, 누군가는 다친 이를 치료했으며, 누군가는 몸과 마법을 써 벼락에게서 사람을 지켜냈다.
그리고 누군가는, 소용없을 걸 알면서도 괴인에게 저항했다.
“이런 제기랄….”
오렌지 알타이르가 그중 하나였다.
끝없이 화살을 쏘아냈지만 대부분은 괴인들에게 닿기도 전에 벼락에 맞아 재가 되었다. 기껏 닿은 화살도 별 타격은 주지 못했다. 몸에 두른 번개가 갑옷처럼 화살을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마력을 응축해 쏘아낸다면 타격을 줄 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높은 곳에서 쉬지 않고 쏘아낸 화살은 하늘에서 내리는 벼락을 막아내는 좋은 방패가 되어 주었으며, 이 덕에 피난이 보다 쉬워졌다.
만일 이 탄막의 수를 줄여 버린다면 민간인에게 피해가 미칠 게 눈에 보듯 뻔했다. 확실한 비호와 통할지 아닐지도 모를 불확실한 공격. 둘 중에 택할 건 전자였다.
미친듯이 점멸하는 벼락의 폭우 때문에 눈이 피로했다. 잠시 그녀는 눈을 떼고 다른 이가 어떻게 하는지도 관찰했다. 이 와중에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괴인에게 유효타를 먹이려 하는 대부분이 오렌지 알타이르와 다르지 않았다.
“아아악! 왜 그렇게 힘을 못 냅니까! 간바레(힘내라)~ 우리 쓰레기들!!! 공격도 못 하면 왜 살아 있습니까!!! 그냥 시네(죽어)!!! 아, 이미 죽었구나.”
화이트 다비흐 쪽을 바라보다 오렌지 알타이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 절대 저렇게 되지 말자며 다짐할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저 많은 해골 병사를 벼락 속으로 무의미하게 진격시킬 게 아니라 피난에 조금 돌렸으면 더 나은 상황이 되었을 텐데.
그러던 와중 벼락의 중심지에서 새로운 빛이 샘솟는 걸 보았다. 엄청난 광량이었다. 벼락의 번쩍임을 쉽게 지워내고 본인의 색으로 물들일 정도였다.
익숙한 분홍색.
문득 오렌지 알타이르는 멍해졌다. 쉬지 않고 시위를 당기던 손이 아주 잠시 멈췄다.
“…데네브?”
이젠 볼 수 없어야할 익숙한 별빛이었다.
**
[ASTRONOMICAL OBSERVATION!]벨트에서 흘러나온 건 힘찬 기계음. 마스코트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천체 관측.
조아윤은 별을 보았다.
눈이 멀 것만 같은 환한 별. 쨍한 분홍빛으로 가득 찬 별. 하지만 자그만 별.
이 별 역시, 그녀가 알고 있었다.
“…데네브.”
마법 소녀가 될 적에 보았던 별. 간절한 염원을 품던 그녀에게 별똥별처럼 내려왔던 별.
비록 자그만 빛이었으나 절대 초라하진 않았던 빛.
다시 보게 된 위광에 손을 뻗어 어루만져 보았다.
“그래, 내가 너도 잊고 있었구나.”
조아윤에게 꿈 따위는 없다. 그럼에도 별은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찾아왔다. 그녀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누군가의 꿈을 지킬 기회를 주기 위해서.
“미안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아윤은 점차 별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 갔다. 의지를 상황이 압도했고 선의는 피로가 잡아먹었고 나약함은 용기를 지웠다.
“이젠 잊지 않을게.”
데네브.
꼬리의 이름을 지닌 이 별은 그녀의 꼬리였다.
항상 떼놓고 싶은 불편한 존재임과 동시에, 사라진 순간 균형을 잃어버리는 애증의 존재였다.
“그리고, 창피해하지도 않을게.”
첫 번째 별의 이름이 불렸다.
“염치없을지 모르지만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어.”
조아윤에게 찾아왔던 별을 이번에는 그녀가 찾아 선택했다.
“너만으로는 부족해.”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수동적으로 선택 받지 않았다. 직접 본인이 빛을 고르고, 선을 그렸다.
[Denebola!]사자자리의 별 데네볼라.
[Deneb Kaitos!]고래자리의 별 데네브 카이토스.
[Deneb Algedi!]염소자리의 별 데네브 알게디.
[Deneb Dulfim!]돌고래자리의 별 데네브 둘핀.
꼬리의 이름을 지닌 네 개의 별들이 추가로 선택되었다.
언제나 지우고 싶던 꼬리의 이름들을 직접 골라 선택했다.
별자리는 원래 있던 게 아닌 별과 별을 사람이 이어 그려낸 하늘의 낙인.
그렇다면 서로 먼 별들을 이어 이름 붙이는 것 역시, 사람이라면 할 수 있다.
조아윤은 자신의 가능성을 꼬리로 이었다.
“나는 몸이 아니어도 돼. 꼬리면 충분해.”
주목 따위는 필요없다. 관심은 필요 없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정의감으로 빛날 필요는 없다. 그런 주인공들은 다른 사람들이면 충분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 이 주인공들이 빛날 수 있는 세상.
“이어줄 수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그렇기에 그녀는 꼬리다.
문장이 아니라 마침표.
문장과 문장을 잇는 쉼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설령 끝자락에 있을 지라도 쉴 새 없이 달리는 누군가의 안정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녀가 관측한 가능성이 여기 형태가 되어 실현되었다.
서로 다른 다섯 개의 별이 이어져, 기존에 있던 하나의 별자리를 완성 시켰다.
[CASSIOPEIA!]카시오페아.
북극성까지 잇는 다리가 되었다. 마치 새가 날개짓 하는 듯한 W모양의 별자리.
빛나는 누군가를 이어주기 위해 그려진 별자리는 모순적이게도, 여왕이었던 자가 하늘에 올라간 모양이었다.
다섯 가지 분홍색 빛이 조아윤의 몸을 일주해 둘렀다. 그녀는 M모양으로 펼쳐진 벨트에 손을 올렸다. 오른쪽 날개를 꾹 눌렀다. 손을 떼자 접힌 날개는 탄성 있게 천천히 원래의 모양을 되찾았고.
다시 기계음이 새어 나왔다.
[CONSTELLATION OBSERVATION!]별자리를 보았다.
보았으니, 이제 남은 건 다가갈 뿐.
그 반짝임을 이 몸에 두를 뿐.
[Are You Ready?]벨트가, 그녀의 마스코트가 다시 한번 물었다.
준비는 되었느냐고.
네 행복을 버릴 준비는 되었냐고, 너의 안녕과 평화를 버릴 준비는 되었냐고.
끝 없는 고난길에 도전할 준비는 되었냐고.
너가 가질 수도 있던 평온을 상실할 준비는 되었냐고.
“뭘 새삼스레.”
다시 한번 방금 전 대답을 읊을 뿐이었다.
조아윤에게 꿈을 꿀 용기는 없다.
“이미 한참 전부터 되어 있었지.”
하지만 꿈을 지켜낼 용기는 있다.
이미 한참 전부터, 그녀는 마법 소녀였으니까.
수호자였으니까.
콰아아앙! 세찬 빛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선녀가 강림하는 듯한 성스러운 한 줄기 빛이 흐르고, 그 안에서 분홍의 갑옷을 백색 깃털과 백색 날개옷으로 장식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곧 빛줄기가 잦아들고 그녀의 가슴께에 모여 들었다. 카시오페아자리의 모양대로 장식이 생겨나 그녀를 꾸몄다.
“줄 건 줘야지.”
아퀼라도 그 빛은 무시하지 못했다. 제 목을 자른 건방진 놈을 향해 꽂혀 있던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호오.”
분노하고 있는 와중에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외형은 분명 괴인의 그것인데, 느껴지는 건 마법소녀의 힘이며, 동시에 그 마법소녀의 힘이 복수로 존재하고 있었다.
마법소녀 다섯을 모아놓은 듯한 존재감. 아퀼라가 피식 웃었다.
“개미도 밟으며 움찔한다고, 이런 상황에서 제 몸 지킬 재주는 있나 보구나.”
아퀼라는 오만하게 웃곤 다시 손을 움직였다. 수 만의 벼락이 그의 손길대로 움직였다. 번개로 이뤄진 유기물 군체가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잠시만 기다려라. 내 이 놈에게 벌을 내린 다음 널 가질 테니.”
수만의 번개가 한 줄기로 합쳐지더니 굵은 벼락이 되었다.
“조금만 자고 있어라.”
콰광! 산채만한 번개가 땅에 내려왔다. 목표는 그녀를 향해.
“네가? 나를? 지랄하네.”
하지만 벼락은 땅에 닿지 못했다. 벼락은 우아하게 반으로 찢어졌다. 갈라지는 벼락 속 경박한 비웃음이 들려 왔다.
“너 따위가 날 가지기엔 난 너무 비싸다.”
퉁, 그녀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손 끝에서 흘러나온 건 나비를 닮은 표창이었다. 아퀼라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는 것만으로 표창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비와 그녀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순식간에 하늘을 날게 된 그녀는 아퀼라를 내려다보며 크게 소리쳤다.
“잘 들어라!”
쭉 뻗은 발이 아퀼라를 향해 내려왔다.
“네 새끼가 가질 건 죽음밖에 없어 시발아!!!”
아퀼라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발차기가 아퀼라의 머리를 밀쳤다. 뻐억!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벼락의 몸과 머리가 분리 되었다. 그의 머리가 다시 한 번 하늘을 날았다.
“감히 날…!”
아퀼라가 다시 벼락의 몸을 만들려 하였다. 그러나 벼락이 움직이기 직전, 그의 머리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온 몸이 흰색 벼락으로 이뤄진 검은 눈의 괴인. 와쳐였다. 그가 우악스러운 커다란 도끼를 높게 치켜올렸다.
그리곤 그대로 내리 찍었다.
콰광! 천둥이 일고 아퀼라의 머리는 조금의 지체 없이 땅에 내려 앉았다.
“가, 감히 나를…!”
“너 뭐.”
언제부터인지 먼저 땅에 와 있던 그녀는 땅에 내려 온 아퀼라의 머리를 축구공 마냥 차올렸다.
위에서 중력가속도를 받으며 추락하던 와쳐가 그 머리를 조준하며 도끼를 휘둘렀다.
일도양단을 위한 참격. 하지만 아퀼라의 머리는 끝내 갈라지지 않았다. 결국 와쳐는 도끼가 머리를 찍는 모습 그대로 땅에 꽂아버리기로 결정했다.
콰과광! 거대한 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일고 아퀼라의 머리가 땅 속 깊이 파묻혔다.
아직도 아퀼라는 죽지 않았다. 와쳐는 또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그보다 아퀼라가 빨랐다. 그는 사방으로 번개를 뿜어냈다. 금색 왕관과도 같은 모양으로 뿜어진 번개는 주위를 초콜릿 녹이듯이 가볍게 녹이고 태웠다.
“그건 안 되지.”
번개가 와쳐의 몸에 닿기 직전, 그녀가 나비 모양 표창을 날렸다. 두 방향으로 동시에. 하나는 와쳐를 향해, 하나는 번개가 닿지 않은 허공으로.
와쳐에게 나비가 닿자, 그는 즉시 허공으로 이동되었다.
끝과 끝을 다리처럼 이어주는, 순간이동의 능력. 한때 있던 능력이 다시 그녀의 손에 담겼다.
“감히 내게 네까짓 것들이…!”
“거 존나게도 튼튼하네.”
아퀼라가 갈갈이 분노하며 날뛰었다. 여기 있는 누구도 그 분노에 겁먹지 않았다.
하나는 나비의 표창을 잡고, 하나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녀의 등 뒤로 우아한 날개옷이 흔들렸으며 와쳐의 등 뒤엔 망토와도 같은 모습을 취한 번개가 쉼 없이 흔들렸다.
둘 사이엔 아무 말도 없었다. 와쳐는 목표에만 집중하여 그녀를 미처 살필 새도 없었다. 또한 적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주는 그녀를 없앨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렇기에 와쳐는 그녀를 방치했다. 와쳐는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걱정도 고마움도, 슬픔도. 지금 그는 모든 걸 상실했다.
그녀는 와쳐를 살폈다. 벼락의 양을 보니 앞으로 30초정도가 힘을 유지하는 한계일 것 같았다.
“충분하네.”
표정 하나 보이지 않는 헬멧 뒤, 그녀의 표정은 틀림없는 웃음이었다. 그녀가 와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빠는 일단, 쟤부터 끝내고 보자.”
나비가 날았다. 아퀼라의 머리 뒤를 지나간 나비는 어느새 조아윤과 위치가 뒤바뀌었다. 오만한 머리에게 그녀가 마지막 말을 건냈다.
“별과 함께 춤출 준비는 되었어?”
“갑자기 무슨 소리를….”
동시에 나비를 던졌다. 나비 한 마리는 하늘로 치솟았고, 다른 한 마리는 아퀼라의 머리에 닿았다.
그렇게 아퀼라의 머리는 하늘로 이동되었다. 나비는 고작 한 마리로 끝이 아니었다. 수 만의 나비들이 그의 주위를 수 놓았다.
“아, 안 돼….”
이미 그녀의 능력을 추측한 아퀼라는 불안함에 중얼거렸다. 번개를 내뿜으며 나비를 흩어지게 하려고 했으나, 빛은 그저 지나갈 뿐. 나비를 밀어내진 못했다.
나비가 한 마리 사라지고, 그녀가 나타나 아퀼라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리고 다시 한 마리가 사라지고, 와쳐가 나타나 그의 머리를 베었다.
아직 나비는 수만 개가 남았다.
아퀼라의 머리가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7.11초. 그 7.11초간 수 만개의 나비가 사라지고 수 만 번의 발차기와 참격이 반복되었다.
호접지각(胡蝶之脚).
무엇이 나비이고 공격인지 모를 정도로, 무상하고 덧없게, 수만 개의 궤적이 하늘을 장식했다. 분홍과 백색의 선들이 그어지길 수 초.
고작 수 초 동안 아퀼라는 무간지옥의 고통을 체험했다. 제 아무리 튼튼한 머리라 한들 이 끝없는 고통 속에 멀쩡할 순 없었다.
땅에 머리가 닿기 직전, 그의 머리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나 보네.”
오만했던 괴인의 하찮은 최후를 보며 조아윤은 중얼거렸다.
어느새 하늘은 맑게 개어져 있었다.
그 마른 하늘에 던져진 마지막 날벼락.
“…오빠도 그래?”
와쳐, 한재중을 보며 그녀는 슬프게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