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86
Chapter 86 – 한 배에 올라 타라 (3)
본격적으로 겨울이 도래했다. 창문에 성에가 끼고 숨만 쉬면 입김이 흩날린다. 차가운 공기가 귀를 사정없이 때려 피부 벌겋게 달아오르고 감각이 사라지며 손 끝은 아려오는 그런 시간이 찾아 왔다.
이런 때엔 그냥 집 안에 틀어박혀 전기장판 위에서 귤이나 까먹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오빠 여긴 어때?”
“음… 너무 좁다. 게다가 오는 길도 불편하고 차 없는 사람은 빡셀 거 같은데?”
“그런가…? 씁, 어렵네.”
조아윤과 함께 카페를 개업할 준비를 도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인테리어용 소품이나 가구, 주력 메뉴 등은 논의를 통해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 카페를 어디에 만들지는 결정하지 못한 채였다.
내 바리스타 자격증은 카페 개업하며 실력을 쌓고 따는 걸로 하였다.
조아윤 얘는 그렇게 바쁠 때에 언제 바리스타랑 제과제빵 자격증을 딴 건지 참 궁금했다. 예전에도 공부는 상당히 잘하는 편이었으니, 역시 성실함과 공부 머리가 큰 건가.
키는 작은데.
“방금 무슨 생각 했어?”
“그냥, 전에 봤던 거기가 싸던데….”
“오빠, 싼 걸로 결정하면 안 된다니까? 우리가 번화가에 가는 것도 아니고 다 돈은 거기서 거기로 나가. 제일 맘에 드는 곳에 신중하게 결정해야지.”
“…그래.”
나는 잘 모르겠다. 내 눈엔 별로인 몇 개 빼고는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던데.
물론 물주는 아윤이라 별 탓은 못했다. 그녀는 날 빤히 쳐다 보더니 피식 웃었다.
“추워?”
“어.”
“솔직하긴.”
그리곤 손을 까딱거렸다. 숙이란 신호다. 난 별 말 없이 몸을 숙여 주었다. 조아윤은 배시시 웃더니 장갑 낀 손으로 내 귀와 볼을 만졌다.
“귀랑 볼 빨간 거 봐. 누가 보면 술 취한 줄 알겠어. 아주 꽐라 같은 얼굴이야.”
“취한 건 맞지. 우리 아윤이 매력에 취했지.”
“아이고 시발. 개소리 하는 거 보니까 제대로 맛 갔네. 그래, 이거까지만 보고 다음엔 어디 카페 같은 곳이라도 가서 몸 좀 녹이자.”
욕을 뱉으면서도 싫진 않단 듯 웃었다. 아윤이의 손이 내 얼굴에서 떼어지자 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언제 봐도 참 존나게도 크네… 거기서 마시는 공기는 어떤 느낌이야?”
“아주 맑지.”
“하 씨 부럽네. 아 맞다 오빠 그거 알아? 나 이제 키 컸다?”
“오? 진짜?”
“응. 0.3cm.”
얼마나 컸냐 싶었는데 겨우 0.3? 저 처참한 수치에도 아윤이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아니 그거면 야. 그냥 잴 때마다 달라지는 정도….”
“아니거든?!”
내 말을 강하게 반박한 아윤이는 절박함 마저 느껴지도록 선언했다.
“이걸로 내가 150cm에 진입했단 말이야!”
“어, 어어….”
그래 그러면 좀 절박할 만도 하네. 하긴 나도 앞자리 수 바뀌면 신경 썼겠다.
“변신의 긍정적 효과인가?”
“부작용이지.”
“아니지 내 몸이 더욱 전투에 적합하게 성장해간단 뜻이잖아! 나 조아윤 20대에서도 성장판이 죽지 않았다!”
“내 조아하는 우리 아담한 조아윤 못 보게 되면 어쩌나~”
“나중에 오빠보다 더 커질 지도 몰라.”
“0.3. 가지고 별 망상을 하는구나. 일단 160은 찍고 오렴.”
“일 년만 기다려.”
가벼운 농지거리를 주고 받으면서 길을 걸었다. 새하얗게 새어 나온 숨이 응결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아윤이도 첫 번째 변신 이후 몇 번의 변신을 더 거쳤다. 벨트 변신에 익숙해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 변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깨닫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이는 건 벨트와 별.
쇠공 상태일 때는 나와 동일한 디자인일 것이라 추측되지만, 막상 벨트의 모습이 되었을 때엔 나와 전혀 다르다.
중앙에 렌즈가 달린 새가 날개를 펼친 것과 비슷한, W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에 가까운 형태의 흰색 벨트.
내가 가진 기본적인 벨트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중앙 렌즈를 제외하곤 전부 바뀌었다,
거기에 내가 가진 별은 괴인의 그것에 가까운 데에 비해, 조아윤이 가진 다섯 개의 별은 마법 소녀의 그것과 닮아있다.
조아윤의 별은 보다 깨끗하고 순수한 빛을 띄었다. 마법 소녀들이 가진 별의 색깔과 한 없이 닮아 있는 빛. 한계가 없이 성장하는 무한한 광명.
즉 조아윤은 이미 별자리를 완성했지만 성장 가능성은 끝이 없단 뜻이다.
‘내 변신이 특이한 건지 얘 변신이 특이한 건지….’
표본을 만들 수도 없어 곤란하다. 나중에 보티스에게 쳐들어가서 한 번 물어보기라고 해볼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응? 어, 이제 내일로 새해인데 뭐 하나 싶어서.”
“새해가 가기 전에 카페는 찾아 놔야지!”
“이제 몇 시간 남았다고….”
아윤이는 명랑했다. 그 씩씩함을 보니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확실히 마법 소녀의 별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인가.
‘문제는 이제 나지.’
아윤이의 기억 문제도 해결했고 비전도 뚜렷하다. 하지만 아직 내 별은 다 찾지 못했고, 기억도 동일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많은 기억을 잃어버린 건지.’
기억을 잃는 것조차 시련이라면 나는 아직도 시련 속에 있단 뜻이다. 내 목적은 마법 소녀의 수호. 이것은 변함없다.
분명 보티스의 말에 따르면 기억 상실은 목적을 모름에도 제대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라는데. 이미 목적을 알고 있는 나에게 이 상실은 무슨 의미를 띄고 있는 건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꼬인 거야.’
복잡하다.
“에휴….”
“뭐야 그렇게 추웠어? 빨리 갈까? 왜, 변신 해 줘?”
“남발하지 마라… 얼마나 위험한 기술인지도 모르잖아. 부작용이 있어. 괴인처럼 사고가 바뀔 수 있다고.”
“…키가 클 수도 있잖아.”
“그게 부작용이란 거야.”
아직도 애 티를 못 벗었다. 조아윤의 별이 마법 소녀의 별에 가깝단 점을 생각하면 나 같은 부작용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긴 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고 보니 아윤이의 변신은 나에 비해 훨씬 안전한 편이네.’
폭주도 없고, 괴인적 사고에 잠식당할 걱정도 적고, 기억 상실은 금방 회복되고, 듣기로는 퀘스트 같은 강제적 장치도 없다고 한다.
‘하 시발 인생 불공평 하네.’
사회적 약자끼리도 이렇게 격차가 있다니, 이게 잔혹한 현실인가. 하긴, 나보다 못한 사람이 수두룩한 걸 생각하면 이런 생각조차 기만이겠지.
난 시선을 돌려 쇠공을 보았다. 아윤이의 말로는 자신의 벨트는 예전 마스코트가 이식되어 대단히 살갑다고 하는데, 이 차가운 놈은 제대로 걱정을 하지도 않고 맨날 굴릴 생각으로 가득하다.
[현재 수호자가 가진 별의 개수는 14개입니다.]‘안 물어봤어.’
궁금하긴 했지만.
“어? 오빠 여기 어때?”
길을 걷고 있던 와중 아윤이가 한 군데를 가리켰다. 골목길에 위치한 자그만 카페였다. 초롱불 같은 옅은 조명이 그림자를 지우고 간판을 밝히고 있었다.
“괜찮네.”
“그치? 바로 가자.”
조아윤은 망설임 없이 쭉쭉 길을 나아갔다. 나도 그녀의 뒤를 따라 발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겨울의 공기에 닿아 죽어가고 있던 피부가 살겠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따스했다는 의미였다.
벽면에 있는 난로와 긴 테이블로 이뤄진 바, 세 개 정도의 테이블. 전체적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는 카페였다.
“여기 좋다….”
조아윤이 그 특유의 분위기에 반한 건지 감탄을 섞어 중얼거렸다.
“어서오세요. 주문 하시겠어요?”
“아, 네.”
쪼르르 주인장을 향해 달려가는 조아윤. 나는 주변 풍경을 훑으며 느지막히 걸어나갔다.
오래된 핀테이블과 옛날 락 lp판, 포인트로 장식하는 네온사인까지. 전체적으로 조아윤이 좋아하는 소품이 잔뜩 설치된 카페였다.
역시나. 조아윤은 주문을 하려는 와중에도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손님…?”
“아, 죄송합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네.”
“따뜻한 걸로.”
“하하, 알겠어요. 밖이 많이 춥죠?”
주인장은 나이를 지긋이 드신 아주머니였다. 푸근해 보이는 인상이 이 곳을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데 일조했다.
“따뜻하게 해서 드릴게요. 앉아계세요.”
“네.”
배려에 웃음으로 대답한 다음, 나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조아윤도 나를 따라와 자리에 앉았다. 흥분으로 가득찬 미소를 보자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감이 바로 왔다.
“오빠 여기….”
“너도 카페 이렇게 만들고 싶다고?”
조아윤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봐봐, 얼마나 예뻐. 입지도 좋잖아. 느지막한 골목길… 비 내리는 와중 누군가가 비를 피하러 들어온 카페… 그 곳에서 들려오는 오래된 재즈와 락, 시티팝… 좋은 원두 냄새까지. 크으, 이거지.”
“구체적이라 좋네.”
“그리고 원두향도 정말 끝내주지 않아? 와… 나도 이런 카페 열었으면 좋겠다.”
그 뒤로도 조아윤은 한참 동안 이 카페에 대한 동경을 드러냈다.
“나도 이런 카페 차리고 싶다….”
“카페를 차리시게요?”
“앗.”
그걸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나오신 아주머니가 딱 들어 버렸다.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시끄럽게…. 실례를….”
“무슨, 실례라니. 젊은 사장님인 것 같네요?”
“하하하… 그 정도는….”
“아니면 젊은 신혼 부부가 새롭게 가게라도 차리려 하는 건가~?”
“부, 부부 아니에요!”
매정하기도 해라.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네.
“어머, 죄송해요. 분위기가 딱 그래서.”
“부, 분위기가… 헤, 헤헤 그런가요…?”
아윤이는 머쓱하게 볼을 긁적였다. 목이 타는지 자신의 앞에 온 컵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곧 그녀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 이거!”
“맛있죠?”
“네, 네!”
“알아주셔서 고맙네요… 아, 이렇게 이야기 해도 괜찮으려나요?”
“물론이죠!”
“요새 통 손님이 없어서 이런 이야기 하는 것도 오랜만이거든요.”
자연스레 두 여성 분 간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가벼운 원두 이야기, 소품이나 가구 이야기에서 시작하다 끝내 카페 전체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갔다.
그런 와중, 조아윤이 절대 흘려 들을 수 없는 한 마디가 나왔다.
“…아가씨는 장사 함부로 시작하지 마세요. 특히 땅을 잘 고르세요.”
“땅 중요하죠.”
“단순히 중요한 수준이 아니에요. 그거 아세요 아가씨? 여기 이제 괴인 출몰 요주의 지역으로 선정 되었어요. 최근 이 주변에서 실종자가 엄청 발생했나 봐요….”
이 곳까지? 도심과 그렇게 떨어진 장소는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가요?!”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이제 슬슬 가게를 옮기려고요. 아마 손님이 마지막 손님이 아닐까 하네. 아가씨는 나처럼 함부로 계약하지 마요. 내 여기가 그런 지역이 될 줄 알았냐고….”
당연히 몰랐겠지. 이 정도 거리면 안전하다 판단하기엔 충분하다. 아무리 최근 괴인 활동이 많아졌다 한들 괴인 요주의 지역이라니 너무 이상하다.
하지만 조아윤은 그게 아니라 다른 곳에 흥미를 둔 모양이다.
“가게를… 옮긴다고요?”
그녀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사장님, 이 가게 저에게 파시죠.”
“…네?”
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