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87
Chapter 87 – 한 배에 올라 타라 (4)
“네…?”
주인장은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 이야기의 주제는 이런 땅을 사지 말라는 충고였다. 그런데 그 충고를 무시하고 카페를 사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겠지.
“아가씨 이 늙은 아줌마가 불쌍해서 그런 거라면 다시 생각하세요. 저는….”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조아윤은 즉시 반박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요. 사장님은 애물단지가 된 가게를 내놓고 저희는 마침 맘에 들게 된 이 장소를 사들이고. 윈윈 아니에요?”
“아니, 야 조아윤. 잠깐 와 봐.”
갑자기 또 흥분한 조아윤의 뒷덜미를 잡아 귓속말을 건냈다.
“우리 조아윤이. 갑자기 뭔 소리야. 왜 멀쩡한 가게를 팔라고 해.”
“멀쩡하지도 않고 팔게 될 가게야. 내가 미리미리 사는 게 낫지. 오빠도 여기 분위기 좋다며. 입지도 괜찮네.”
“인수라는 게 유명 맛집 웨이팅 같은 게 아니야. 선착순으로 파바박 오는 게 아니라고.”
“아니 괜찮을 걸? 여기 괴인 요주의 지역 되었다며 여길 나 말고 사들이는 사람이 있겠어?”
“너 같은 미친년 빼고는 없겠지.”
“그치?”
괴인 출몰 요주의 지역의 땅을 사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향해 백이면 구십은 미친년이라 욕할 것이다. 나머지 십은 저 땅으로 무슨 불법적인 일을 할지 수상하게 여기는 사람이겠고.
“아윤아. 생각을 해봐. 근데 그게 뭔 뜻이냐. 손님이 없단 뜻이잖아. 손님이 오지 않으면 뭔 소용이야. 아무리 자기만족적인 측면이 강한 개업이라고 해도 수익성은 봐가면서 해야지.”
“에헤이~ 이 오빠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조아윤은 씩 웃었다.
“여긴 괴인 출몰 주의 지역이 아니라 ‘요주의’ 지역이잖아. 아직 본격적으로 슬럼가가 되기 이전의 지역이라고.”
“그래 몇 달 후에 주의 지역으로 탈바꿈될 예정인데다 사는 사람에겐 피난 권고가 내려진 지역이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오빠, 요주의 지역은 후일 그 주의 표시가 철회될 가능성이 충분한 지역이야. 괴인 신고율이 주 세 건 이하로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철회된다고.”
“그게 가능하겠어? 괴인이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아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너 설마.”
“오빠, 힘이 있다면 써야지.”
다름 아닌 우리가 직접 괴인들을 토벌하고 다니면 된다. 고속 이동에 특화된 능력을 가진 우리라면 신고되지 않으며 남 모르게 이 지역을 배회하는 괴인을 섬멸하기 충분하다.
조아윤은 씩 웃더니 비열한 목소리로 귀에 속삭였다.
“그거 알아? 괴인 요주의 지역에서 다시 정상 판정을 받은 지역은 관리가 철저한 걸로 유명해져 오히려 땅 값이 몇 배는 치솟는단 통계가….”
“야 임마 사랑과 평화는 어디 갔어.”
전형적인 힘의 사적 운용이었다.
“…줄 건 줘야지.”
“아니 그게… 맞아?”
“지금은 맞아.”
조아윤은 단호하게 말했다.
“마법 소녀 핑크 데네브에서 냉철한 자본주의의 하늘을 나는 카시오페아로 살아갈 때다…!”
“수호는 어디 갔어.”
“어… 자본주의도 이념이고, 이념도 꿈이니까. 엄연히 꿈을 지키는 일에 들어가지 않을까?”
“이야….”
천재적인 확장성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본인이 생각해도 참신했는지 그녀는 윙크하며 나에게 끼를 부렸다.
“나 똑똑하지?”
머리를 노크해보고 싶은 생각은 든다. 어떤 소리가 날까.
변신에 혹시 모를 위험성이 있을지에 대해 설명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바로 그걸 써먹을 생각을 하다니 담이 큰 건지 아니면 그냥 안전 불감증인지.
우리 아윤이가 언제 이렇게 썩게 되었을까.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정녕 없는 건가.
문득 레드 베가가 떠올랐지만 금세 머리에서 지워냈다.
‘그 친구는 순수한 게 아니라 그냥 맛이 간 거니까.’
정의감 제외 다른 방면에선 그렇게 순수하지도 않고.
도대체 병실 안에서 당당히 성인 방송을 보던 건 무슨 자신감인가 아직도 궁금하다. 아무리 스마트폰 안 작은 화면이라 한들 옆에 사람이 있는데 안 쪽팔렸던 건가.
“그래… 우리 아윤이 대견하네. 역시 돈도 번 놈이 잘 쓴다고 제대로 투자할 줄 아네….”
지금 저런 발상을 한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아윤이는 바보가 아니다. 본인 목숨을 제일로 챙길 줄 아는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변신의 힘을 운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돈을 챙기기 위해 변신할 생각을 하다니. 내 기준으로 손익을 따지면 못할 짓이지만 조아윤의 기준은 아니었나 보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조아윤의 변신은 나보다 훨씬 안전하다.
‘나에게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건… 날 배려한 건가?’
아마 그랬겠지.
같은 변신이라도 안전성이 다르다면 괜히 내가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 조아윤이 마법 소녀의 능력을 가지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 ‘쟤는 존나 쎈데 나만 서포터 능력이라고 나도 좀 시원하게 패고 싶다고.’라며. 이런 경험을 겪었으니,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동일한 질투와 열등감을 가질까봐 걱정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돈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챙길 줄 알게 되었다니. 그녀의 성장이 대견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오빠가 조아하는 조아윤이가 이렇게 돈을 잘 챙겨요.”
하긴, 너무 호구처럼 사는 것도 좋지 않은 자세다. 아윤이가 이 가게를 사들였다 해서 누가 손해를 보지도 않으니, 약간의 이득을 취해도 나쁠 건 없겠지.
내가 돈을 너무 뒷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옆에서 이렇게 돈을 챙길 줄 사람이 있다면 든든하다.
“그렇다면 다시 협상을 시작해 볼까요~?”
조아윤은 싱긋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무 걱정 말고 나에게 맡기란 뜻이었다.
그리곤 다시 협상의 장에 복귀하여 주인장과 진득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우리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곳의 분위기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 그간 봐 온 곳들이 얼마나 시원찮았는지, 손해를 감수할 자신이 있다든지 따위의 말로 최선을 다해 설득을 개시했다.
때로는 농담을 때로는 진솔함을 섞으며, 운명론이나 풍수지리학 등지의 지리멸렬한 미신까지 넘나들며 사장을 홀렸다.
돈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지역이 괴인 출몰 요주의로 지역으로 지정된 순간 어차피 인수될 가능성도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이 가게를 인수하겠단 사람이 나타난 건 사실 기적에 가까웠다.
당신에겐 이득이고 이쪽은 손해라는 점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아마 후에는 이 쪽이 몇 배나 이득을 취하겠지만….
“어때요?”
주인장도 썩 꺼려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솔깃해 보였다.
새해가 되어서도 가게를 찾아다니진 않아도 되겠구나.
든든하다 조아윤!
“죄송합니다. 역시 좀….”
아직은 좀 시원찮구나 조아윤!
“네, 네?! 왜요?”
“젊을 때 고생이야 사서 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돈 손해는 한 번 보면 메꾸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아가씨 나이 또래 아이가 있어 걱정이 되네요. 제 가게를 마음에 들었단 건 참 고맙지만, 시간을 들여 찾아보면 더 좋은 장소를 찾을지도 몰라요. 역시 이야기는 없던 걸로….”
“자, 잠깐만요!”
조아윤이 급하게 그녀를 말렸다. 별안간 사장님의 귓가에 다가가선 뭐라 속삭였다. 내 거리에선 들리지 않았다. 사장님의 표정이 썩 좋지 않던 건 알겠다.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
그리곤 모자를 벗었다. 살짝 머리카락을 정돈하니 사장님은 곰곰이 관찰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단 듯 동공이 확장되었다.
“아….”
사장님은 푸근하고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죠? 전 조용한 카페가 필요해요.”
“네… 알았어요. 나중에 다시 상의해보죠. 여기 제 번호에요.”
조아윤은 아마 연락처가 적혀 있을 메모지를 받아 들며 다시 모자를 썼다.
“다음에 또 봐요.”
“아니 아윤아, 계산 해야지.”
조아윤은 부끄럽단듯 가게를 나섰다. 아직 계산이 되지도 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 난처했다. 난 재빨리 지갑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얼마에요?”
“괜찮아요. 오늘은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사장님은 쿡쿡 웃으시며 손사레쳤다. 지갑을 넣어두란 뜻이었다.
“아니, 그래도 계산은….”
“동업자 분께 말씀드려 주세요. 그간 고생해주셔서 고맙다고.”
조아윤이 무엇을 비밀스레 밝힌건지 난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사장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난 기분좋게 발걸음을 돌리며 가게를 나섰다. 먼저 나선 조아윤을 따라 잡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골목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으니.
그녀의 시린 한숨이 별이 지듯 하얗게 흩어져 사라지고, 난 그녀의 앞에 다가갔다.
“추워?”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볼과 귀가 빨개.”
“…시끄러.”
새빨개진 얼굴을 가리며 그녀는 유난히 빠른 얼굴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나보다 보폭이 훨씬 좁아 그녀를 따라잡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했길래 그렇게 착한 주인이 젊은 년놈들이 돈을 허투루 버린단 걸 받아준대?”
“뭐긴 뭐야… 하 씨, 죽는다? 그렇게 웃지 마. 웃는 거 보니 이미 다 알고 있네.”
“아는 건 아니고 예측을 한 거지.”
기가 차단 듯 혀를 찬 다음 그녀는 빠르게 중얼거렸다.
“마법 소녀였던 걸 밝혔어. 내가 전직 마법 소녀라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고 조용히 있을 장소가 필요하다고.”
“그거 참 장하네.”
“개쪽팔려… 그게 뭐 자랑할 일이라고 당당히 떠든 건지.”
조아윤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하 진짜….”
마법 소녀였던 사실을 무기처럼 이용한 것에 자괴감이 온 건가? 변신은 사적으로 운용해도 괜찮고 마법 소녀는 조금의 언급도 하기 싫어하다니. 그녀의 기준은 감이 오는듯 하면서도 도통 잡히지 않았다.
흐느끼듯 떨던 그녀는 점차 환희로 몸을 떨었다. 가렸던 얼굴을 걷자 그녀에게선 뿌듯한 웃음이 만개해 있었다.
“그래도 얻을 건 얻었으니 됐나?”
“그래… 네가 좋다니 됐다.”
얼마나 그 가게가 맘에 들었던 걸까. 조아윤은 잠시 뒤돌아서 골목을 살폈다. 뒷골목의 그림자 속 은은하게 빛을 내는 가게의 조명을 살폈다.
“캬, 역시 저기다. 내 맘엔 저기밖에 없어.”
“그렇게 좋아?”
“응!”
조아윤은 즉시 대답하며 헤헤 웃었다.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
어차피 구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는 건 조아윤이고, 난 거기에 조금 조력을 가할 뿐이니까.
“우리 가게 이름은 뭘로 할까? 아, 개업식엔 누구누구 초대하지? 개업일자는 언제로 잡는 게 좋을까? 여기에 나댄다는 그 괴인놈은 뭐지?”
아윤이는 배시시 웃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지 희망차게 검토를 시작했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
“아윤아.”
“응?”
“아까 마법 소녀였던 게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했잖아.”
나도 다시 살짝 고개를 돌려 골목을 바라보았다. 이젠 보이지도 않지만, 아직도 코끝엔 은은한 커피향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들려오던 음악 소리도, 마지막 계산대의 금속음도.
“내 생각엔 역시 자랑할 일이 맞는 거 같다.”
마법 소녀에겐 많은 관심이 모인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열광하며, 누군가는 그들에게 질투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많은 사람은 가장 먼저 한 감정을 느낀다.
“그간 고생 많았으니까.”
감사를.
지갑에 남은 지폐에는 지갑 안에 담기지 못할 감사가 들어 있었다.
**
“뭐지.”
한재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 하하하….”
“재중아 이거 먹어 봐.”
“야 쪽빠리 뭐 하냐.”
“치킨 다리가 없습니다!”
분명 이제 남은 일은 집에서 편히 쉴 일 밖에 없었을 터.
조용하고 편하게 새해를 맞이할 생각이었는데.
뭐하다가 이렇게 된 거지.
내 주위를 둘러싼 마법 소녀를 보며 새해까지의 카운트다운을 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