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92
Chapter 92 – 가족같은 (3)
괴인 섬멸이 아니라 괴인의 보호를 목적으로 삼은 퀘스트인가. 수행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애초에 수행하지도 못한다.
폭주가 시작되는 즉시 내 도끼는 비르고의 목을 친다. 오직 괴인을 죽이기 위한 벼락불은 자비 없이 저 가녀린 몸에 꽂힐 거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우리 안 만난지 얼마나 됐더라… 3년 좀 넘었나?”
비르고는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하지만 아예 무시할 순 없었다. 나와 비르고가 모종의 연이 있단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여긴 왠 일이야? 나 보고 싶었어? 아니면 뭐 놓고 온 거라도 찾으러 왔어? 이야~ 좀 더 화려해졌네! 멋지다! 나 그렇게 반짝거리는 거 좋아해!”
퀘스트의 제시 원리는 간단하다. 오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것은 죽음에서 벗어나는 대가로 강력한 목적성을 얻은 나에게, 주어진 목줄이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혹한 채찍.
윤리나 규범 따위는 생각 않고 오직 목적만을 우직하게 이루기 위해 제시되는 명령이다.
방금 전 나온 의미 모를 퀘스트도 동일하게 추측할 수 있다.
“응? 근데 잠깐…. 너 재중이 맞지? 왜 그런 꼴로 서 있는 거야? 응? 난 너가 너라고 어떻게 안 거지? 서, 설마 사람을 착각해 버린 건가?! 꺄아아아! 부끄러워!”
지금 그녀를 살려야 내 목적인 수호자의 수호에 가까워질 수 있단 뜻이다.
“재중이가 아니면 당신 누구에요…? 왜, 왜 아무말도 안 해요…? 제가 착각했다면 착각했다고 말해주시면 감사할 거 같은데요….”
콰직! 비르고가 시체를 짓밟는 다리에 힘을 더 주었고, 그 아래에 있던 머리가 수박이 박살나듯 터졌다.
형체를 알 수 없게 뭉개진 얼굴은 그가 어떤 표정으로 죽어갔는지조차 모르게 한 생명의 삶을 완전히 끝장냈다.
“무, 무서운데요… 왜 아무말이 없죠…? 저 이제 슬슬….”
내 눈앞에 있는 건 더이상 마법 소녀가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아무런 망설임 없는 괴인이다.
퀘스트 역시 그녀를 내가 지켜야 할 마법 소녀라고 판단하진 않았을 터. 그렇지 않다면 전에 몇 번이고 그녀와 사생결단을 낼 때마다 날 자제시키는 퀘스트가 제시됐겠지.
그러니, 이건 도박이다.
비르고와 내가 무슨 연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녀를 살릴 이유는 아직까진 퀘스트란 강제성 하나 뿐, 심지어 상대는 광증을 겪고 있는 괴인.
“진짜 진짜 무서운데요… 왜 아무말이 없죠… 히, 힉! 그, 그 도끼는 뭐죠…? 그걸로 절 공격할 셈인가요… 그, 그렇다면 저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에요… 바, 반격할 겁니다! 아주 아프게요!”
난 한숨을 푹 내쉬며 벨트에 손을 올렸다.
지금 당장 그녀를 죽이지 않는 방법은 이거 하나 뿐이다.
“그만둬라.”
내 몸에서 물방울이 흩뿌려지듯 빛방울들이 흩어지고, 내 몸을 잠식하던 벼락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한순간 번쩍이고 사라졌다. 난 점차 인간의 외형을 되찾았다.
변신 해제.
괴인 앞에서 무장을 푸는 미친 짓이지만 달리 시도할 법한 마땅한 방안도 없었다.
비르고가 언제 눈이 돌아 날 죽이려들지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난 반항하지도 못하고 죽겠지.
적을 살리기 위해 내 목을 내놓는 꼴.
그렇기에 도박이다.
“너에게 한 대 맞으면 난 그냥 죽어 버려.”
어차피 한 번은 해봐야 했던 대화였다. 나와 어떻게 엮인 건지, 왜 타락해버린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죽여버리면 찝찝하니.
무지는 약이라고도 하지만 알 수 있으면서 모르려 하는 건 죄악이다.
“응? 뭐야! 재중이 맞네!”
“날 아주 잘 아는 모양이네.”
“그럼 넌 나 몰라? 왜 그래 나 서운해지잖아!”
비르고는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골절되는 줄 알았다. 힘 조절을 할 줄 모르나 보네.
“중졸이라더니 사람 얼굴도 잘 기억 못 하는 거야? 아, 이제 중졸은 아닌가? 너 검정고시 쳤지? 이야 재중아 그럼 너 고졸이겠네~ 부럽다. 난 초졸인데. 아, 미안미안. 너무 분위기 쳐지게 했나? 오랜만에 보는 건데.”
저 친밀한 태도가 나에겐 당혹스럽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사이였길래 이렇게 살갑게 날 대하는 걸까. 당장 마지막 재회까지만 해도 이런 태도보단 더 적대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선 종종 말투와 어조가 확 바뀔 때가 있었다.
광기에 잡아 먹혀 시종일관 웃고 비꼬기만 하던 말투와 자조적이고 쓸쓸해 보이던 말투. 지금 쓰는 말투는 둘 다 아니었긴 하지만….
원래 미친 사람을 이해하는 건 힘든 일이었으므로, 난 그려러니 했다.
“음~ 아! 그럼 이것도 기억 안 나? 내가 여기서 울고 있을 때 딱 너랑 마주쳤잖아. 저기 저 그늘진 곳에서! 넌 괴인한테서 도망 온다고 엄청 얼굴 하얘져선 저기서 숨 고르다 나랑 눈 마주쳤고. 우리 둘 다 놀라선 딱 굳고… 후후, 그 때 생각난다.”
비르고는 어딘가를 가리키다 다시 손가락을 접었다.
“응? 저기 아니었나? 아, 아니구나. 하, 하하하 부끄럽네~ 여기가 워낙 비슷한 지형이 많아서 말이야.”
“잠깐, 여기가 어딘데 그래.”
“너 진짜 왜 그래… 이제 그런 장난 치지마. 재미 없어.”
비르고는 불쾌한듯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는 다크 매터잖아. 내가 살고 있는 곳. 너 나 보러 온 거 아니야?”
비르고의 손가락 끝에 자주빛의 광채가 모였다. 말 잘못하면 그대로 심장에 빔을 쏘아버릴 기세였다.
난 그 빛덩어리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무엇을 말해야 정답인지 최대한 궁리해보았다.
미친 사람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으므로, 당연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하하, 뭘 또 그렇게 심각하게 굳어 있어. 웃어, 웃어. 모두의 웃음을 전하는 레드 스피카가 눈 앞에 있잖아?”
비르고는 하하 웃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촛불을 가지고 놀듯이 고온의 빔을 꺼버린 그녀는 이내 웃음을 뚝 그쳤다.
“…아무래도, 진짜 모르나 보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리곤 다시 웃었다.
“나도 바보라 자주 잊어버리거든~ 사실 여기 왜 있는지도 몰라. 헤헤, 우리 둘 다 쌤쌤이네?”
“그럼 여기 죽은 사람은….”
“몰라! 알아야 돼?”
보통은 알아야 하는 게 맞지. 살인이란 중대 사안인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상식과 내 상식 사이엔 상당한 괴리가 있어 보였다.
“…잠깐, 다크 매터라고? 여기가?”
그건 좀 곤란한데.
난 화이트 다비흐가 조종하는 괴물들을 타고 피난을 가다가 몰래 빠져나온 몸이다. 아침까지 돌아가지 못한다면 여러 의심을 받을 게 뻔하다.
아무리 다크 매터와 내 집이 가깝다고 한들 걸어서 돌아갈 거리는 아니다.
‘…하긴, 비르고와 대화하자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그건 끝난 거지.’
변명할 거리나 만들어 둬야겠네.
아무튼, 지금 제일의 문제는 눈 앞의 그녀다.
“뭐야? 무서워? 인간 혐오 걸렸다며 다크 매터에 쳐들어 온 애가 웃기네. 괜찮아, 괜찮아~!”
비르고는 점프하여 내 몸에 제 팔을 걸었다.
“사랑과 평화를 수호하는~ 전 레드 스피카, 현 딜레마 간부가 여기 있으니까!”
난 그녀의 말에 웃을 수 없었다.
레드 스피카. 마법 소녀 중에서도 흔치 않다는 초등학교 입학 이전부터 마법 소녀를 해왔던 사람.
한 때 괴인과 전투하여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몇 년 후에 괴인화된 상태로 도시를 습격해 100여명에 가까운 민간인과 2명의 마법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마법 소녀가 괴인에게 세뇌당해 괴인화 하는 건 상당히 희귀했으나 그렇다고 사례가 아예 전무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비르고의 사례는 또 드물었다.
대장으로 따르는 괴인 하나 없이 독단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즉, 본인의 의지로 괴인이 되었다.
문제는 왜 그렇게 된 건지 아무도 모른단 뜻이다.
그저 막연하게 마법 소녀 활동이 많이 힘들었기에 괴인으로 타락한 건가 하며 추측할 뿐이었다.
“여긴 내 구역이야. 나한테 깝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뭐… 다른 딜레마 애들이 땅을 훔치려고 올 수도 있긴 한데, 그거야 너랑은 상관없잖아?”
비르고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걱정스레 물었다.
“어머, 재중아 졸려?”
이제 곧 동이 틀 지도 모르는 늦은 새벽. 이 시간까지 잠을 못 잔 거니 피곤해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안 돼 재중아. 잠은 똑바로 자야지. 안 그러면 사람이 상해.”
“알았어.”
“알아줘서 고마워. 그럼 재중아. 자.”
“…뭐?”
괴인과 어깨 동무를 한 이 상태에서?
“왜 그래? 자라니까?”
“아니 사람을… 괴인이라도 앞에 두고 자는 건 좀 그렇지. 일단 이야기 좀 나누다 나중에 어련히….”
“재중아!”
비르고의 손이 움직여 내 목을 잡았다.
“자야지… 똑바로 자야지… 왜 그래, 너 정말 미치고 싶어서 그래? 좀비가 되고 싶어?! 건강 상한다니까? 왜 내 말을 안 들어? 나 무시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힘냈는데! 노력했는데!”
“아니 그게 무슨….”
괴롭다. 호흡이 천천히 막히고, 몸의 움직임 역시 천천히 굳어만 갔다.
이해가 안 되었다. 도대체 어디에 스위치가 눌렸길래 이런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건가. 잠 못 자다가 괴인이라도 되었나. 무슨 수면 장애라도 있는 거야? 피해의식 있나.
그럼 그냥 본인이나 쳐자고 있지 왜 나한테 지랄을.
난 손을 휘저으며 쇠공을 잡으려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았을 때의 대항 수단이다.
“미, 미안. 잘 테니까… 이제 그만 손을 놓….”
“정말? 고마워! 역시 참 착하다니까!”
고맙다고 말하는 거 치곤 손아귀 힘이 하나도 줄지 않았다
비르고의 눈은 떠오르는 아침 해보다 맑았으며 입가는 해맑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목을 짓누르는 힘을 늘렸다.
“이제 코! 자자!”
아니 이 년 설마.
“내가 재워줄게!”
역시 미친 사람과는 대화를 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통하질 않는다.
손에 쇠공이 잡혔다. 난 즉시 벨트를 차려했다.
“응? 자라니까?”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잡고 있던 벨트를 쳐냈다. 인간의 손은 괴인에게 대항하기엔 너무나 연약했고, 손가락 몇개가 골절됨과 동시에 벨트가 다시 저 멀리 날아갔다.
그래도 괜찮다. 벨트에는 알아서 허리에 부착되는 기능이…..
‘아 시발.’
그보다 먼저 내 의식이 흐려졌다.
물 속에서 눈을 뜬 것처럼 뿌옇게 변하는 시야 속 비르고는 활짝 웃으며 내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벨트에게서 음성이 들려왔다.
[기억을 재생하겠습니다.]**
“하하, 이거 진짜 죽겠는걸?”
괜히 들어왔다. 난 후회를 느끼며 열심히 발을 놀렸다. 조금도 쉴 수 없었다. 이제 조금이라도 느려진 순간 그대로 뒤에 있던 괴인에게 잡아 먹히겠지.
“죽으면 이제 시체도 못 찾겠지? 그건 잘 됐네!”
가출했던 일 년, 고작 일 년만으로 인간 혐오가 풀충전 되기엔 충분했다. 사람이 미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고.
난 가출의 가출을 결심했다. 정확히는 사회에서의 탈출. 굳이 말하자면 사출(社出)이었다.
지금은 이승에서 사출당할 판이었으나 이 또한 노림수 중 하나였다.
난 근처에 있으면서 인간 사회가 아닌 장소에 가기로 했다.
괴인 지배 지역. 출입 금지 지역. 통칭 다크매터.
그곳은 인간의 규율과 시선도 없고, 소문이나 추적 따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난 괴인도 인간 못지 않게 싫어한단 점. 다크 매터에 가도 행복하진 못하겠지.
어차피 어디에 있어도 죽도록 싫다면, 그냥 죽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아주 창의적인 생각이 났다.
다크 매터 속에서 설화 같은 마법 소녀가 고생하지 않게 괴인들을 죽이며 인간 생활을 쫑내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난 다크 매터에 갔다.
문제는 입성 30분만에 죽을 위기에 쳐했단 점.
적어도 한 마리는 죽이고 죽고 싶었으므로 난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어디 안전한 장소에서 재정비를 마친 다음 약한 괴인이라도 한 마리 패 죽여야지.
다행히 앞에 수상하고 음울하게 그늘진 장소가 보였다. 몸을 숨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에 몸을 맡긴 다음 뒤를 보며 날 쫓아오던 괴인의 동향을 살폈다.
“우으으으… 엄마… 엄마….”
다행히 그 놈은 내가 온 곳을 모르는지 두리번 거리다가 곧 몸을 뺐다.
“싫어… 나 무서워… 내가 왜 이런 꼴이….”
“휴, 갔나.”
“엄마… 엄마아….”
난 안심하며 바닥에 주저 앉았고. 곧 나보다 먼저 와 있던 누군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므… 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뭐야!”
몸을 웅크린 채 눈물콧물을 질질 짜며 울고 있던 작은 소녀.
비르고, 레드 스피카와의 첫 만남이었다.
**
사실이었군.
아까 비르고가 지껄인 소리는 사실이었어.
“어우 씨….”
난 깨어난 즉시 몸을 일으켰다.
떠오른 기억에 머리가 어질거리며 아팠고, 졸린 목도 아팠으며, 부러진 손가락도 아팠다. 사실상 전신이 아팠다.
“어머, 잘 잤어?”
“어, 덕분에 존나 잘 잤어.”
“그래! 고맙단 말은 됐어. 그렇게 자는 편이 건강에 좋지.”
“내가 고맙긴 왜…..”
해를 등진 비르고의 뒤에는 괴인들의 시체로 산이 쌓여 있었다.
“…네가?”
“응? 응!”
내가 그걸 가리키자 비르고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다시 기억을 떠올렸다.
비르고는 다크 매터에서 날 지켜주던 보디가드였다.
“뭘 새삼스럽게!”
바로,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