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96
Chapter 96 – 가족같은 (7)
비르고가 쏘아낸 불빛이 상당히 강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곳의 소란으로 일어난 진동이 멀리 있는 대지까지 흔들어버린 탓일까. 무수한 괴인들이 이곳을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이 근방은 비르고가 관리하는 땅이란 말이 허세가 아니었는지, 다행히 새로운 S급 괴인이 나타나거나 하진 않았다.
“구경꾼들이 왔네?”
허망한 웃음을 머금으며 주위를 둘러본 비르고가 중얼거렸다.
“넌 이런 거 싫어한댔지? 남이 이렇게 주목하는 거. 아, 이건 또 괴인이라 괜찮으려나?”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탐독했길래 저런 세세한 사항까지 아는 건가. 나 이상으로 나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거 아닐까. 나도 그녀를 따라 헛웃음 지었다.
헬멧 속에 가려져 비르고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내가 전에 말했던가? 광기는 망각이라고. 난 다 잊고 미친년이 되고 싶다고….”
펄럭. 하며 아담한 날개가 펼쳐졌다. 두둥실 떠오른 비르고의 주위로 저녁색의 깃털들이 수놓였다.
“근데, 생각보다 다 잊는 것도 힘들더라.”
깃털들 하나하나가 곧 날카롭게 벼려진 창과도 같이 가늘게 변했다. 비르고가 손을 움직이자, 깃털이면서 창날인 그것들이 흩뿌려졌다.
여유롭고 고고하게 내려 온 깃털은, 창은. 낮의 광명 마저 지우며 새로운 빛을 일으켰다.
전투기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건물이 허물고 땅이 주저앉고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파편이 튀고 육편이 나뒹구는, 폭발의 흔적. 자줏빛 폭발 구름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바글거리던 괴인들의 무리 대부분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한 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다시 떠올리게 돼. 그냥 미친년처럼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은데, 그게 얼마나 힘든지… 재밌지? 미치고 싶으면, 먼저 미치지 않았어야 해. 그래야 그런 욕망을 품을 수 있으니까.”
비르고는 짜증을 내며 제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잊으려면 먼저 기억해야 하고, 기억하려면 먼저 겪어야 하지. 처음부터 겪지 않았다면 다 해결될 일인데. 그럼 미치고 싶지도 않을 텐데.”
악마가 올라오듯이, 천사가 강림하듯이 천천히 그녀가 내려왔다.
“너도 이해하지? 내 기분. 나처럼 되고 싶었잖아.”
나와 눈을 맞출 수 있게 땅에서 50cm 정도 부유한 채 코 앞에서 멈춰섰다. 체취는 없었다. 특유의 흙먼지를 닮은 냄새가 그녀에게서 나는 향기의 전부였다.
“나처럼,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그녀의 삶을 짐작하게 해주는 향. 폐허에서 맡을 수 있을 초라한 향기. 지금 그녀의 삶이 폐허라 증명하는 향기.
겉으로 보이는 나잇값은 아직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 키도 작고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하다. 화사해야 할 겉모습에, 그녀는 그렇지 못했다.
“왜, 넌 그쪽에 있는 거야.”
안타깝게도 난 이 소녀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을 모르고, 내가 그녀와 어떤 시절을 겪었는지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그녀지만,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일 수도 있다.
광기가 망각이라면, 미친 건 내 쪽이겠지.
“이러지 마. 내 아이덴티티가 흔들리려고 하잖아. 미친 게 내가 아니라 너처럼 보이잖아.”
아직도 퀘스트의 성공 음성은 울리지 않았다.
[오빠!]벨트에서 아윤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 폭발과 광선! 비르고 맞지? 거기 오빠도 있고! 멀리서도 보였어! 지금 그 쪽으로 갈게! 아니….]허공을 떠다니는 비르고의 깃털들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나비의 모습이 사라지고, 차원을 도약하여 한 인물이 등장했다.
“이미 왔어!”
하얗고 분홍색의 갑주. 어깨 부근을 장식하는 날개옷 같은 천. 가장 특징적인 장식은 가운데 렌즈가 달린 카시오페아 모양의 벨트였다.
본래 다른 별자리에 속해있던 다섯 개의 별이 일제히 빛나고, 카시오페아라는 전혀 다른 별자리를 그려냈다.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걸까. 비르고의 눈이 크게 찌푸려졌다. 또한, 그 얼굴까지.
조아윤은 일말의 지체도 없이 비르고의 얼굴을 걷어찼다. 별빛이 실린 각력은 괴인이라 할지라도 아프게 느낄 터. 비르고가 비자발적인 비행을 시작했다.
“괜찮… 뭐야?! 얘 왜 그래!”
내 품 안에 안긴 레드 베가를 보며 놀란 그녀가 크게 소리 질렀다.
“뭘, 네가 상상한 대로다.”
쾅! 비르고가 날아 간 장소로부터 둔탁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난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아윤은 모든 걸 짐작하여 크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멍청이가… 비르고한테 덤비는 건 무슨 생각으로 한 거야? 이 위험한 데에서 마력 다 뺏기고 비명횡사 하고 싶은 거였나? 보면 도망가아지!”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시끄러, 난 결과적으로 난 살았잖아.”
“자랑이군.”
“그럼 자랑이지.”
조아윤은 피식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럼 바로 탈출하자. 굳이 어울려 줄 필요는 없잖아.”
“잠깐.”
난 그 손을 놓고, 방금 전까지 안고 있던 레드 베가. 백아희를 그녀의 품 안에 안겨주었다. 변신시의 체격은 나와 비슷한 정도라, 안고 있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
조아윤이 날 빤히 쳐다보았다. 표정을 알 수 없음에도 의아해 하고 있음이 명확히 느껴졌다.
“난 가지 않아.”
“왜. 또 뭔데. 힘을 주체할 수 없어? 곰처럼 쭈쀼쭈쀼 날뛰고 싶어?”
“그런 게 아니라….”
난 조아윤의 어깨를 슬쩍 밀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기 무섭게 정면을 향해 자줏빛 선이 그려졌다. 지금껏 손에서 놓지 않았던 도끼를 휘둘러 맞받아쳤다.
퉁! 광선은 내 도끼를 통해 지각으로 휘어지고,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해결해야 할 게 있어서.”
멀리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방해하지 마!!!”
비르고가 분노한듯 소리쳤다.
“젖비린내 나는 꼬마들이 방해하지 마!”
“뭐? 누가 꼬마라고?”
조아윤이 급발진을 하려 하자, 난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여긴 내가 해결한다. 넌 베가를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키도록.”
“에휴 진짜….”
한숨을 푹 내쉰 그녀의 손가락에 다시 나비가 잡혔다.
“이따 보자.”
“그래.”
그녀는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난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나중에 보도록 하지.”
나비가 하늘을 빠르게 질주하고, 그녀들의 모습도 눈 앞에서 사라졌다. 구경꾼들 대부분은 광선의 먹이가 되어 증발했고, 남은 구경꾼은 흙먼지와 불꽃들 뿐.
“이제 정말 둘만 남았군.”
“그러게~ 나 배려해준 거야? 고마워라. 꺄하하, 역시 너도 나랑 있고 싶었구나? 기쁘네~”
여전히 감정 기복이 빠르다. 방금 전까지 있던 짜증은 어디 갔는지, 연기 속에서 나온 비르고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마지막 경고야! 당장 찌릿찌릿한 거 풀고 내 쪽으로 와. 아까 도망쳤던 애들을 쫓을 거니까.”
“쫓아서, 어쩔 거지?”
“어쩌긴 뭘 어째.”
비르고는 손 안에서 스파크를 일으킨 다음 주먹 쥐었다.
“죽여야지. 그리고 나간 김에 겸사겸사 학살도 일으킬 거고! 멸망을 위해 난 하루하루 바쁘게 일해야 한다고!”
“그건 곤란한데.”
난 도끼를 강하게 쥐어 그녀를 겨눴다. 벼락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 무쇠의 날카로운 도끼. 비르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있잖아. 오늘 하루는 내 말 잘 듣기로 한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반항을 하지? 짜증나게?”
“미안하군.”
다른 한 손으론 벨트를 움직였다.
“난 원래 자기주도적이거든. 네 말에 예쁘게 따라줄 순 없게 되었다.”
“아항~ 그래?”
쿡쿡 웃은 비르고가 모든 깃털을 나에게 겨누고,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그럼 죽어야지.”
빛의 비가 내렸다. 해가 질 무렵의 아스라한 자줏빛 하늘을 닮은 색의 빗방울들이 사정 없이 이 곳을 향해 내렸다. 마치 내가 중력의 중심인 것처럼.
그 빛의 세례를 한가득 눈에 담으며 난 벨트를 향해 한 가지 부탁을 전했다.
‘이봐 벨트.’
[무엇인가요?]‘별을 활성화 해라.’
[…지금 말인가요?]그간 모은 별을 활성화할 때마다 기억도 재생되어 고생을 이만저만 겪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쓰러지는 경험까지 겪었다.
이에서 교훈을 얻은 난 한 가지 결심을 내렸다.
별을 얻을 때마다 전부 활성화 시키지 말고, 내가 원할 때 한꺼번에 활성화 시키자고.
이 결심이 무색하게 벨트에서 자체적으로 기억을 재생시키기도 했지만, 적어도 별에 내장되어 있던 기억만큼은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결심을 허물고자 했다.
[전투 중 기억 재생은 위험합니다. 의식을 잃었을 때의 책임은 온전히 수호자 자신에게….]‘내가 의식까지 잃으면서 보여달래?’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일단 질러봤다.
“왼쪽 눈. 이쪽에만 기억을 보여줘. 가능해?”
아주 잠시의 딜레이 끝, 벨트가 대답했다.
[가능은 합니다. 다만 수호자의 신체가 버티지 못합니다. 뇌가 전부 타버리는 가능성도.]“가능하다면 해.”
비르고를 생존시키라는 퀘스트의 의미도, 지금 그녀의 회한도, 이 기억 안에 답이 있을 터.
하지만 지금 느긋하게 기억을 읽어낼 여유는 없다. 다시 한 번 비르고가 살육을 저지르기 전, 이 모든 걸 끝내야 했다.
“세계 멸망 시킨다는데, ”
만화경처럼 화려하고도 쉼 없이 펼쳐지는 빛들의 향연. 비르고가 보낸 편지 글귀 같은 광선들은 지금도 나에게 수신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지금 그 모든 풍경이 느리게만 보였다.
나 역시도 그 빛들 중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창백하고도 차가운 번갯불. 내 몸을 좀먹는 기계적인 야성이 벼락의 형태로 뿜어져 날뛰었다.
[알겠습니다.]눈이 멀 정도로 환한 광채 안에서 벨트에게서 대답이 들려오고.
[별을 활성화하겠습니다. 단, 기억 재생은 좌측 시야로 한정합니다.]내 왼쪽 눈이 빛으로 멀었다. 그 너머에서 그리운 풍경이 다가왔다.
그곳에도 비르고가 서 있었다. 과거에서 그녀는 날 지키기 위해 괴인에게 광선을 쏘아낸다.
다른 한 편에도, 현실에도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날 죽이기 위해 광선을 쏘아냈다.
머리가 미칠듯이 아팠다. 눈은 인두로 지져지는 것마냥 녹아내리는 고통이 느껴졌고, 호흡 역시 괴로웠다.
하지만, 움직일 순 있었다.
난 도끼를 휘저어 광선들을 베어냈다.
그리곤 앞을 향해 걷는다.
앞을 향해 걸었다.
난 비르고에게 묻는다.
난 비르고에게 물었다.
“넌 밖으로 나가면 뭘 하고 싶어?”
“넌 왜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거지?”
비르고는 대답한다.
“일단 엄마랑 영화 보고 싶어! 요새는 뭔 영화가 유행하고 있을까? 재중이 너는 궁금하지 않아?”
비르고는 대답했다.
“하핫, 당연한 걸 묻고 있네?”
쏜살같이 달려온 그녀는 검처럼 광선을 뽑아낸 뒤 나에게 휘둘렀다.
“다 잊은지 오래야!”
잊었던 나는 떠올리는 중이었고, 기억하고 있던 비르고는 잊는 중이었다.
망각이야말로 광기라던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