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97
Chapter 97 – 가족같은 (8)
새가 날아와 그녀의 어깨에 앉는다. 그녀는 옛날 만화동산이라도 재현 하려는듯 노래를 부르지만 그 노랫소리가 너무나 끔찍하여 새가 도망친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비르고는 내가 칠칠치 못하게 흘려버린 웃음을 주워 담듯 흙을 모아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우씨… 웃지 마!”
레드 스피카는 종종 이런 자그만 웃음조차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재빨리 입을 다문 난 무슨 노래를 부르려 한 거냐 묻는다.
“노래 제목으으은… 까먹었지만! 그래도 가사랑 멜로디는 기억 나! 잘 들어봐 너도 알걸? 그러니까… 개나리가 활짝 피면~”
더 못 들어줄 노랫소리에 난 머리를 휘저으며 그만하라고 이른다.
“…치, 나중에 밖에서 제대로 한 번 들어봐.”
그녀는 종종 밖을 말한다. 당연하게도 이 다크 매터 밖을 뜻한다.
하지만 그녀는 밖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하늘을 날 수도 있으면서, 별똥별처럼 저 하늘을 가로질러 수 만 걸음을 한 걸음에 갈 수 있으면서.
언제나 ‘내가 나가면 좀 그렇잖아….’ 따위의 말로 얼버무릴 뿐이다.
이젠 또 다른 핑계가 만들어졌다.
“물론~ 네가 괴인 잡는 건 보고 나가야겠지만~”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날 비웃는다. 자신은 비웃음 사기 싫어하지만 난 마음껏 비웃는 이 공정한 행태에 난 비웃었다.
첫 만남 이래로 계속 그녀는 날 도와주었다. 괴인 살해라는 터무니없는 목표를 조소하면서도 조력은 멈추지 않았다.
“말했지? 괴인 잡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라고. 해보니까 쉽지 않지? 사람들이 얕보더라구 되게. 나였다면 저런 짓은 안 했다~ 저 때는 마법으로 견제를 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했어야지~ 등. 말이야 쉽지. 바보멍청이들. ”
어느덧 그녀와 생활한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괴인의 노예가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서 이렇게 장기간동안 다크 매터에서 생존한 건 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도 쉬엄쉬엄 해. 알았지? 어차피 누가 잡으라고 닦달해도 쉽게 잡힐 애들 아니거든, 내가 마법 소녀였을 적만 해도… 아, 아무튼, 몸과 맘 다 상해. 아… 넌 둘 다 망친 후구나? 불쌍해라.”
레드 스피카는 장난스레 한숨을 내쉰다.
그녀는 마법 소녀 관련 화제만 나오면 노골적으로 말을 돌린다. 원래부터 말은 자주 돌리고, 방금 했던 말도 금방 까먹는 사람이었지만, 이건 유독 의도적이었다.
마법 소녀였을 시절 상당히 고생을 한 모양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법 소녀였을 시절에 받았던 욕을 곱씹기도 하고, 괴인과 싸우며 있던 여러 고난들을 토로하기도 한다.
강자가 약자를 지켜야 함은 아는데, 왜 약자들은 지킬 가치를 내놓지 않느냐고. 이 생각조차 이기적인 것이냐고.
애초에 강자가 강자였기를 원한 적이 있노냐고. 재능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사용해야만 하냐고.
나의 고통은 어느새 기만이 되어버렸다고.
난 그럴 때마다 가만히 입술을 다물고 그녀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속으로 가늠해보았다. 마법 소녀가 아니게 된 이유까지, 조용히.
언제나 밖을 말하면서도 우리는 결코 밖에서 겪은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추측만을 할 뿐이다.
매우 사실에 근접할 추측을.
앞을 향해 달리다 지쳐 결국 딴 길로 새어버린 한 소녀의 일생을, 고요하게.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난 이미 그녀가 마법 소녀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녀도 내가 알고 있단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굳이 캐묻지 않아도 서로 힘들었단 건 아니까. 굳이 언어로 만들어 구체화하기 싫으니까.
내가 언젠가 그녀가 미쳐 날 죽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품고 있단 사실 조차도. 우리 둘 다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다물고 있으면 모두가 행복했다.
도망길은 행복한 법이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당장은 기쁘니까. 그렇게 뒤로 하여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다시 달리다 보면.
어느덧, 무한히 달리기만을 반복하는 무간지옥의 길이 되었다.
그녀의 다리는 아직도 쉬지 못하고 있다.
시체를 쪼아 먹던 새가 떠나갔다. 비르고는 언제 어떤 연으로 이곳에 흘러와 명을 달리했을지 모를 해골을 발차기 한 번으로 박살 내고, 신경질적으로 흙먼지를 흩뿌렸다.
“웃지 마.”
왼쪽의 시야가 과거로 점절된 채, 오른 편 현실에 존재하는 그녀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보다 눈빛이 날카로워지긴 했다.
“여기 아무도 널 보며 비웃지 않았다.”
“아니, 웃었어!”
다른 점이 또 있다면, 언제나 괴인을 향하던 그녀의 손가락이 날 향했단 점.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
섬섬옥수의 가녀린 손가락이 토해낸 건 무쇠도 간단히 녹일 광선이었다.
어떤 건 곧게, 어떤 건 곡선을 그리며, 어떤 선은 길게 돌아가 등 뒤를 향햐여.
서로 다른 가녀리고도 흉포한 빛줄기가 수십, 수백 이어져 하늘을 채우니 그야말로 은하수가 흐르는 광경에 비할 바였다.
시야 반절이 가려진 채 사방에서 날아드는 광선을 피하는 건 당연하게도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큰곰자리에겐 벼락의 힘만이 있는 게 아니다. 벨트의 능력을 극한까지 활용하여 볼 수 있는 미래 예지.
최대 3초가 한계지만, 찰나에도 수만의 움직임이 흐르는 전장에서는 유효하게 활용 가능하다
현실이 흐르는 절반의 시야 속, 미래가 겹쳐져 미리 상영된다.
수많은 광선들이 날 찢으려 다가오는 가운데, 그 중 무엇에 먼저 대처해야 하는지 보인다.
미리 짜맞춘 공격을 막아내듯이 난 비르고의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흐흥, 잘했어! 칭찬? 좀 해줄게.”
왼쪽의 시야 속, 묘하게 거만한 말투의 레드 스피카가 내 어깨를 토닥인다. 그녀가 잡아 나약하게 만든 괴인을 쓰러뜨린 칭찬인 셈이다. 다 죽어 가는 괴인이라 한들 장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물론 현실은 삭막하다.
“뭐하는 거야!”
비르고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걸 막아 버리면 내가 뭐가 돼! 좀 맞고 쓰러져!”
“무리한 부탁을 하는군.”
3초 뒤의 미래에도 그녀의 표정은 똑같았다.
하긴, 3초로 뭘 하겠냐만은.
내 한 몸 지키긴 가능해도 남까지 바꾸기엔 모자란 시간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틀리며 섞인 시야 속. 화사하기도 하고 화를 내고 있기도 하고 언짢기도 한 그녀의 표정이 점차 하나로 통일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죽어!”
이 말은 왼 편과 오른 편, 둘 중 어디에서 들려온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난 발을 뒤로 뺀다. 바로 앞에는 시체가 있다. 머리가 녹아내리며 죽은 참혹한 시체가. 그 앞에는 레드 스피카가 있다. 그녀가 이 시체를 만든 범인임은 명확했다.
헛다리는 아니다. 비록 머리는 없어도 옷가지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추측 가능하다.
이 시체가 방금 전까지 이야기 나누던 사람이라 아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크 메터라 한들 무인지는 아니다. 괴인의 별빛을 키우기 위해 잡혀 있는 노예만 해도 인구가 꽤 될 것이며, 날마다 자살 지원자가 발을 들이밀기 때문이다. 물론 대체로는 온 지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죽는다. 내가 그럴 뻔했던 것처럼.
그것도 아니라면 밀수업자 따위의 건달이다.
인류의 미래 따위 아무래도 좋고 당장 제 잇속만 채우면 좋은 사람들. 그들은 대체로 괴인과 결탁하여 사람을 팔거나 마약을 사들이거나 다크 매터를 통해 해외 먼 곳까지 위험한 무언가를 운반 하거나 한다.
노예, 자살 희망자, 건달. 이 시체가 그 셋 중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사람이란 사실은 변치 않는다. 어떤 뒷배경이 있든,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다.
“내, 내가 나쁜 게 아니야!”
차라리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했으면 의심 없이 믿어주었겠는데.
여긴 다크 매터, 어두운 물질 속. 무엇이 벌어지며 무엇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곳. 동시에 무엇이든 벌어지며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
왜 자신이 범인이라 바로 긍정하는걸까. 처음부터 글러먹은 변명에 난 쓴웃음을 머금는다.
“이, 이 녀석이 먼저 나를 욕했어! 나보고 씨발년이라며… 내, 내 잘못 아니야! 이 녀석이 먼저….”
레드 스피카는 그 뒤로 한참토록 변명을 이어갔고, 난 침묵한다.
어차피 죽을 게 뻔한 사람이나, 죽으러 온 사람이나, 죽어 마땅한 사람이나, 이 셋 중 하나였을 게 뻔했다.
죽을 사람을 죽게 해준 게 뭐가 잘못이겠나.
나는 그렇게 입을 다문다.
입을 다물면 모두가 행복했다. 당연히,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우리의 행복에 기쁘게 일조해주었다.
문제는 다음날도 나타났다.
“내, 내가 나쁜 게….”
그간 운이 좋은 건지 이 며칠 동안 운이 나빴던 건지. 우리는 매일 같이 사람을 마주쳤다.
적게는 떠돌이 한 명부터 많게는 십 수 명의 조직까지.
레드 스피카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살육을 저질렀다.
그리고 언제나 내 앞에선 무구한 표정으로 본인을 변호한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이 쪽에서 먼저….”
난 말하지 않는다.
“널 공격하려고 했잖아… 어, 어쩔 수 없었어….”
듣지 않고.
“아, 아하하하….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없었어. 응? 그런 표정 하지 말고… 우리, 저쪽으로 가자. 저기엔 분명 네가 죽일 수 있을 만한 괴인이 있을 거야.”
보지 않는다.
내 감각엔 새까만 천이 둘러져 있었다.
공포와 연민과 정으로 짜올린 천이다.
이걸로 내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귀를 닫는다.
하지만 한 순간에 모든 걸 잊어버릴 수도 없는 일.
무구(無垢)의 얼굴로 무수의 시체를 쌓아 올려 무구지옥(無救地獄)과도 같은 광경을 자아내니.
레드 스피카란 소녀에게서 멀어지는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일지도 몰랐다.
삼십하고도 스무날이 지났을 무렵, 찔듯이 더웠던 무더운 여름날, 난 결국 참을 수 없어 그녀에게 입을 연다.
왜 너는 밖에 나가지 않느냐고,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냐고, 뭘 하다 여기까지 왔냐고.
매우 격정적이며 대단히 은유적으로, 완만하게 전달한다.
그녀는 답한다.
“세계 멸망이 다가오는 데 그런 거 다 의미 없잖아!”
사람을 죽인 뒤의 변명보다, 그녀가 어느 때에나 지껄이는 영혼 없는 말보다, 지금 이 말이 가장. 개소리 같았다.
쾅!
커다란 소리가 귀를 흔들었다.
“꺄하하하! 도망치는 게 다야? 할 게 없어? 하암~ 이제 슬슬 지루한데~”
비르고가 쏘아내는 광선들이 지축을 뒤흔든 여파였다. 비르고의 순간 화력은 괴인 중에서도 상위권.
그녀가 전력을 다하는 3분 남짓의 시간은 소수의 괴인을 제외하곤 살아남기 힘들다.
하늘의 색을 바꿔버릴 정도로 장황한 광선의 향연. 소나기처럼 빽빽하고도 거칠게 아래로 내렸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오늘 전까지 봐왔던 광선들은 지금에 비하면 초라할 지경이었다.
기분파라 그런지 별빛의 힘도 기분에 따라 천차만별인가.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녀의 전력이라 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괴인을 잡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라고!”
다시 한 번 시체가 앞에 떨어진다. 민간인의 것이 아니다. 하늘거리는 드레스는 피에 젖었고, 화사한 리본은 타버렸으며, 아름답던 보석은 산산히 부숴졌다. 소녀가 땅에 떨어지고, 그녀로부터 부스러기 같은 별빛들이 흩어져 하늘에 흐른다.
마법 소녀였다.
내가 이름을 잘 모르는 걸 보니 아마 신인. 뭐 때문에 이 다크 매터에 왔는지 몰라도, 그녀는 오늘 여기서 생을 마감한다. 아직 창창했던 삶이 여기 거두어져 짓밟힌다.
마법 소녀의 옷을 가볍게 짓밟은 레드 스피카가 말한다.
“이제 가자.”
난 침묵할 수 없었다.
난 따진다.
너와 같은 처지인 사람까지 이렇게 하는 게 맞노라고.
레드 스피카는 싱긋 웃는다.
“그래서, 어쩌게?”
난 침묵한다. 너무 할 말이 많아서가 아닌, 할 말을 막혀서.
“네가 혼자 여기서 나가게? 에이 그러지 마~ 너 그러다 죽어. 알잖아?”
레드 스피카는 아름다운 손으로, 피에 젖은 붉은 손으로 내 볼을 훑는다.
“왜 그래?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봐? 아… 내가 무서워? 하아… 실망이야. 넌 엄마와 다르길 빌었는데.”
그 손은 천천히 내 눈에 닿아, 시야를 가린다.
“있잖아 그거 알아? 우리 엄마도 처음엔 너처럼 고분고분 따랐다? 근데 어느날 태도가 확 바뀌어선 도망간다는 거야. 날 신고한대. 그래서… 그 다음은 아마… 잘, 모르겠어. 잊어버렸는데. 바다에 뼛가루를 흩뿌리던 기억은 나. 내가 녹인걸까, 아니면 화장터에서 녹인걸까. 넌 둘 중 뭐라고 생각해?”
무구한 목소리가 귀를 뒤흔들고.
“재밌는 수수께끼지?”
곧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막는다.
“네 입으로 말했잖아. 괴인을 죽이러 이 곳에 왔다고. 그럼, 죽이기 전까진 나갈 수 없지.”
타의로 눈이, 귀가, 입술이 막히고.
“말했잖아, 괴인을 죽이는 건 하늘의 별따기 처럼 힘들다고. 평~생! 여기서 별만 따다 가줘. 알았지?”
난 이제 스스로 입을 연다.
“고맙다 비르고. 네 덕분에….”
한계까지 압축된 벼락이 도끼 끝에서 포효를 내지르고.
비르고의 광선세례는 한 풀 꺾인 시간.
“하늘에서 별, 이젠 딸 수 있게 되었거든.”
자줏빛 하늘에 백색의 선이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