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98
Chapter 98 – 가족같은 (9)
레드 스피카.
본명 안수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모친을 마중하며 바라보는 저녁의 색을 좋아했던, 사랑스런 소녀.
한부모 가정이란 특성상 외로움에 반항적으로 변할만도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천진난만한 태도로 주위에서 사랑을 끌어 모았다.
용모가 뛰어나며 마음씨가 상냥한 소녀.
그런 소녀가 모친의 위기에 특별한 힘을 각성하는 건 이 시대에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 시기가 너무 빠르단 점.
그녀가 마법 소녀가 된 건 만 6세.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언론에선 이 일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한국 한정으로 최연소 마법 소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으니.
“고마워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소녀는 그 관심을 기쁘게 받았다. 마법 소녀는 동경해오던 일이었고, 남에게 관심받는 것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를 고생시키지 않을 수 있단 생각이 컸다.
아직 어려서 금전 관련해서는 잘 모르지만, 엄마가 돈 때문에 여러 고생을 하고 있음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는 한동안 행복했다. 일이 너무 바빠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긴 했지만, 가끔 괴인이 밤에 출몰하면 잠도 못 자고 일한 적도 있었지만.
그녀가 고생한 만큼 다른 이들이 웃었다. 그러니 소녀도 행복했다.
선배 마법 소녀들도 그녀를 많이 배려해줬다.
분수 이상으로 힘든 일은 최대한 빠지도록 해줬다. 기자들이 던지는 악의 섞인 자극적인 질문도 커버해주고, 이상한 기사나 여론은 못 보도록 보호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도 몸이 크며 알게 된다.
자신의 모자람을 깨닫고, 기자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 동급생들의 시선 중 소수에 질투와 열등감이 있는 걸 느끼며, 레드 스피카는 한 가지 깨닫게 된다.
세상은 언제나 자신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단 사실을.
물론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은 마법 소녀에게 호의적이다. 하지만 악의란 송곳과도 같아, 평탄한 사랑 위에 구멍을 뚫는다.
100명 중의 1명은 소수지만, 그 1명이 단체로 모인다면 다수로 변모한다. 제 신상을 노출 시킬 필요 없는 인터넷은 그 소수들이 뭉친 지역이었으며. 안타깝게도 그들은 남을 헐뜯는 일에 소비할 시간과 열정이 넘쳐났다.
열등감에 미쳐 평범한 소녀 하나를 돈을 탐내는 영악한 애새끼로 변모시키는 건 순식간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실에서 낙오된 이들이 지껄이는 질 나쁜 놀이에 불과했다.
표현의 자유도, 비판하는 습관도, 의심도,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나쁠 수 있단 점.
자신들의 자유를 최중요로 여기는 이들에게 있어 자신이 헐뜯는 대상이 아직 2차 성징도 제대로 오지 않은 어린이란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곧 인터넷 세상에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레드 스피카를 지켜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졌다. 윤리 의식을 지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초등학생 소녀를 가지고 여러 루머를 퍼뜨리는 일은 추하게만 보였다. 이에 반발하듯이 레드 스피카의 미담이나 명장면 따위로 그녀를 지지했다.
그러나 수호엔 그에 따른 반발도 생기는 법. 그녀의 팬들이 유난을 떨어 싫다는 핑계 삼아 레드 스피카의 안티도 그만큼 늘어났다.
의외로 소녀는 이 사건으로 크게 상처받진 않았다. 유명인이라면 응당 미친년놈들이 꼬이기 마련이란 사실을 살면서 알게 되었고, 자신 역시 그중 한 명이 될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레드 스피카로 하여금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되는 사건이 되었다.
‘내가 되고 싶어서 된 일이 아닌데.’
언제나 목숨 걸고 싸워야 하며 기껏 번 돈도 시간이 없어 못 쓰는 실정에 하나밖에 없는 가족과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
그런데 왜 자신이 저따위 말을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저들은 나에게 지켜지는 처지면서 왜 조금의 무서움도 없이 저 따위 글을 써내리는가.
확신이 있었겠지.
본인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확신이.
마법 소녀는 그런 사람만 되는 직업이니까. 초자연적인 존재가 간택하여 힘을 넘겨준다. 그 대상은 용모가 뛰어나며 상냥한 여성에 한정된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데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소녀만 마법 소녀가 될 테니, 욕해도 안심이 되겠지. 게다가 만일 실행한다 해도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책임이 만들어질 테니 더더욱 일어나지 않을 테고.
레드 스피카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저 선을 넘은 말들은 사춘기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과 만나 거대한 반발작용을 일으켰다.
“내가 무슨… 노예도 아니고.”
다음부턴 고소라도 해야지. 레드 스피카는 다짐했다. 그리고 이후 실제로 악플 몇몇을 마법 소녀 협회의 이름을 빌려 고소했다.
민간인을 지켜야 할 사람이 민간인을 공격한다며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꼬우면 싸우러 오던가. 아니면 얌전히 불매 운동이나 하지. 다행히 그 소수의 불매 따위 레드 스피카의 영향력에 조금도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합의금으론 엄마와 비싼 레스토랑에 갔다.
소녀는 아직 행복했다.
어느덧 소녀는 여인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녀의 뒤엔 자신보다 연하인 후배가 두 손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생겨났다.
소녀는 더이상 모두의 사랑을 받는 막내가 아니었고, 그만한 책임감 역시 뒤따랐다.
그리고, 문제가 일어났다.
S급 괴인. 지능을 가진 초자연적 현상.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괴물. 10년을 넘게 마법 소녀를 해 온 그녀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존재가. 하필, 그녀가 리더를 맡은 구조 작전에서 일어났다.
현 마법 소녀 중 구조율은 최강. 이 따위 말이 우스워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많은 비웃음을 들었고, 많은 원망을 들었다. 분향소에 갔을 때 피해자의 친지에게 들은 욕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여느 때처럼 낙오자들이 인터넷에 지껄이는 여러 헛소리도, 더 이상 헛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레드 스피카는 회의감을 느꼈다.
‘…진짜 내가 나쁜 건가?’
그런 거 같은데.
마법 소녀가 사람을 못 지키면, 그냥 얼굴 팔아먹으며 돈벌이 하는 년에 그치지 않나.
동시에 억울하기도 했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적이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뭘 해도 사망자는 나왔을 테고, 그 가족은 자신을 원망할 것이다.
최선은 다해봤자 결과는 누군가에게 있어 최악이었다.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순직이란 말로 포장되어 칭찬이라도 들었을 텐데. 마법 소녀의 최선이란 보통 질 걸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미친 짓이니까.
나태하다나 태업 같은 말은 안 들었겠지.
소녀는 모든 걸 잊고 싶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사람과 자괴감과 이 이기적인 억울함까지 전부.
머지 않아 소녀는 이 모든 걸 잊을 기회를 얻게 된다.
누가 주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어떤 기계 하나와 접촉하면서.
그 렌즈가 빛에 반사되며 비르고의 눈을 괴롭혔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와쳐의 허리에 달린 벨트. 그것의 모양은 자신이 인간이었던 시절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기계와 흡사했다.
“왜 하필 지금…!”
그간 열심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비르고는 이를 악물었다.
“떠올리게 하지 마!”
자신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벼락에게 소리쳤다. 강해보이는 척을 했지만 목소리 끝이 살짝 떨린 건 미처 감출 수 없었다. 비르고는 두려워했다.
아무리 광선을 쏟아 부어도 그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비르고는 그간 쓰고 싶지 않았던 한 수까지 꺼냈다.
“내가 만만해? 말하잖아! 오지 말라고!”
쌍성의 힘.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만드는 힘. 쓸 때마다 비르고는 강한 불쾌감에 휩싸인다. 마치 자신을 거울처럼 보게 되는 기분이라. 객관적으로 보는 자신은 정말 창피하고, 추하다.
정신줄을 놓았을 땐 좀 괜찮지만, 이렇게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땐 힘들다.
하지만 이제 남은 수는 없었다. 남은 거리는 아주 조금이며, 조금의 지체는 곧 참수로 이어진다.
도끼의 외형을 파악하지도 못하게 모인 벼락들은 그의 참격이 조금도 망설임 없을 것이라 이르는듯 했다.
“너도 똑같아! 날 무시해! 모독할 거야!”
죽음이 공포스러웠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반항하는 거야?!”
비르고는 손을 허공에 살짝 멈췄다 떼어냈다. 방금 전까지 손으로 가리고 있던 허공. 와쳐의 뒤편에서 흐릿한 윤곽을 가진 누군가가 드러났다.
자신이었다. 공감성 수치까지 느낄 만큼 인위적인 광소를 띈 소녀.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하늘하늘한 고스로리 스타일의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소녀. 언제라도 살인이 가능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어차피 다 죽을 텐데!”
실제로 그 힘을 망설임 없이 행사하여 수많은 시체를 쌓아 올린, 악마. 그녀의 검은색 날개가 활짝 피어나고. 보라색 동공을 감싸는 검은자위가 일그러졌다.
그녀에게서 압축된 빛의 크기는 본인마저 눈을 멀게 할 정도였다.
추잡한데도, 아름다웠다.
간단히 사람의 머리를 녹일 광선이 쏘아졌다.
“어차피 세계는 멸망할 텐데! 다 죽고 쓸모 없어질 텐데!”
인간일 적 마지막으로 본 풍경, 어떤 기계와 접촉하며 본 풍경이 바로 그것이었다. 멸망의 풍경. 인류는 저물고 괴인이 모든 도시를 유린하는 끔찍한 광경.
사계절의 아름다움도, 아침의 화창함도, 밤의 쓸쓸함도, 각각의 사람마다 품고 있는 매력도 전부 사라지고, 그저 우중충한 자색으로 칠해진 세계.
비르고는 그걸 보며 미쳐버렸다.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그간 노력해온 모든 게 무의미하며, 사랑한 모든 것이 사라진단 의미가 되었으니.
그렇기에 비르고는 모든 걸 잊었다. 일종의 방어 기제였다. 자신의 사랑이 저물며 받을 상처를, 사랑을 기억에서 지우며 해결했다.
와쳐의 심장을 노리며 광선이 직진했다. 지금이라도 와쳐가 포기한다면, 그녀에겐 저 광선을 멈출 의사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방에서 날아오던 광선을 갈라 없앴다.
남은 건 이제 단 한 걸음.
“넌.”
와쳐가, 저 벼락 안에 숨겨진 한재중이 그녀에게 물었다.
“별을 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도 말했잖아.”
비르고는 와쳐에게 준다고 약속했던 기계 장치를 손에 쥐었다.
“이미 잊어버렸다고! 멈춰! 그렇지 않다면 이 기계를 박살내 버릴….”
“그런가.”
그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그녀의 앞에 다가왔다.
“그렇다면, 내가 다시 떠올리게 해주지.”
콰직!
벼락을 머금은 도끼가 선을 그렸다.
단 한 번의 움직임.
소녀를 지배하던 자색이 흰색으로 덧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