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99
Chapter 99 – 가족같은 (10)
벼락이 비르고를 뚫고 지나갔다. 그녀의 손 안에 있던 다이얼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멀리 날아갔다.
비르고가 힘없이 풀썩 쓰러진 자리의 뒤, 나무가 가지를 뻗듯 여러 선이 삐죽빼죽 뻗친 모양의 균열을 만들었다.
그 균열 안에 방금 전 날아간 다이얼이 들어갔고, 당연하게도 기계는 박살이 났다.
낭패였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었다.
“으으윽… 커헉…!”
땅을 두부처럼 가르는 번개의 참격을 받으면서도, 비르고는 살아 있었다. 붉은 입술 사이에서 걸쭉한 혈액을 내뿜었다. 상당히 힘들어보였으나 다행히 목숨에 지장도 없어 보였다.
온몸이 만신창이에 새하얗다 못해 창백했던 피부 곳곳이 검댕과 혈흔으로 더러워졌지만, 살아는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곤란했다.
나에겐 아직 비르고를 생존시키라는 퀘스트가 유효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왜?”
레드 스피카가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단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난 씁쓸하게 웃으며 점차 발걸음을 뒤로 한다.
아직도 과거는 흐르고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의 그녀들이 겹쳐 보였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뇌가 녹을 거라는 벨트의 경고는 허언이 아니었다. 눈을 인두로 지지고 뇌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마냥 아팠다.
거기에 별빛에 먹혀드는 것도 있어,
거친 숨을 토해내고, 비르고를 노려 보았다.
과거의 자신과 똑같이 날 보며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해.”
허망함 마저 느껴졌다.
“나 놀려? 모욕이라도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왜 끝을 내지 않는 거야…!”
부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 일어나려 했다. 당연하게도 일어날 수 없었다. 괴인이라 한들 신체 구조 자체는 인간의 그것이 근본을 이루고 있다.
벼락에 맞아 근육이 굳어진 상태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을 리가 없다.
“죽여! 죽이라고! 비웃지 말고 그냥 끝내!”
비르고는 부들부들 떠는 몸을 가누며 외쳤다.
“나한테서 도망친 주제에… 이제 와서 착한 척이야? 웃기지 마! 네가 먼저 시작한 거야. 알지? 얌전히 나한테 죽던가… 이딴 쓸데없는 자비 따위….”
비르고는 나에게 강한 집착을 보였다.
나를 잃어버린 가족의 대체품으로 삼은 건지, 옆에 둘 심신 안정용 반려 동물을 원한 건지, 친구를 원한 건지, 스승이라도 원한 건지, 아니면 반면교사라도 원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난 그녀를 알 수 없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시끄러우며, 동시에 가장 수많은 침묵을 지킨 사람.
언제나 추측으로만 그 마음을 엿볼 뿐, 본인이 직접 자신의 본심을 내비친 적은 없었다.
다물고 있으면 행복했다. 이를 행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부터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기에 난 그녀를 모른다. 비르고이며, 레드 스피카이며, 한 사람의 딸이며, 부모를 잃은 패륜아이며, 살인자인 그녀를 모른다.
다만, 하나는 안다.
“비르고.”
“뭐!”
그녀가 나에게 상냥했단 사실을.
“난 너에게 도망친 적 없어.”
가족같은 관계로 날 대해줬단 사실을. 그것은 추측이 아니라, 분명히 일어났던 사실이니까.
거대한 진동이 저 멀리서부터 다가온다. 고작 걷는 것만으로 땅을 뒤흔들고 하늘의 구름을 밀어낸다.
아직 민간인인 나에게도 가득 느껴지는 밀도 높은 별빛.
그것은 두 발로 걷는 재앙이었다.
전에도 느낀 적 있는, 지옥도를 만드는 사자.
“도망쳐!”
레드 스피카가 급히 날 밀쳐낸다.
그녀에게서 보이는 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었다.
공포. 유사 이래 가장 깊으며 강력한 감정.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경종. 비르고는 그 종소리를 한가득 들으며 온 몸을 떤다.
광증이나 여유는 없다. 레드 스피카는 한없이 초조하다. 불안한듯 눈을 굴린다.
“저게 왜 다시… 왜 또…!”
이미 전에 본 괴물인듯 그녀는 공포에 질리는 한편 지독한 분노를 품는다. 몸을 지배하는 불안 한켠에는 짙은 원한이 있다.
이때에도 난 추측을 했다. 지금 저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무언가가, 그녀가 마법 소녀 시절에 만난 적 중 하나라고.
단순한 적을 넘어, 원수에 가까운 상대.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 멀리서부터 이런 위압감를 풍기다니. S급 괴인이라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레드 스피카와의 차이도 확연하다. 저 정도면 S급이 아니라 SSS급 같은 예외 사항을 만들어야 할 거 아닌가.
멀리서 크게 한 번 번쩍임이 인다.
그 거대한 빛은 곧 이곳을 향해 다가온다. 다크 매터. 끝없는 어둠 속에 하나, 사랑스런 별이 떨어진다.
운석이 떨어지는 풍경이 저것일까.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빛덩어리가 두 발을 디딘 이 땅을 증발시키기 위해 다가온다.
나 역시 공포를 느꼈다.
레드 스피카는 웃으며 내 어깨를 밀친다.
“…내가 전에 말했지? 괴인을 죽이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라고. 애초부터 지금 너에겐 불가능했던 거야.”
순식간에 자줏빛 거품 안에 갇히게 된 난, 무중력 안에서 밀쳐진 것처럼 끝없이 뒤로 떠밀어진다.
“이대로 도망쳐.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마.”
레드 스피카에게 돌아가지도 못할 정도로 멀어졌을 무렵, 내 몸을 감싼 거품이 터졌다.
다시 돌아가는 건 개죽음.
난 할 수 없이 다크 매터에서 나가기를 결정한다.
죽으러 들어온 곳에서, 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생존 본능을 느꼈다.
또한, 각오를 다졌다.
다음에는 결코 도망가지 않으리라고.
아무래도 내가 간 길이 보티스의 영역이었던 모양이었는지, 이 도주로에서 보티스를 만나 추격전을 치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오, 자네도 길을 잃은 건가?”
제이슨을 만나, 이 길고 긴 다크 매터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다.
비르고가 날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무, 뭐?!”
“많이도 잊어버린 모양이군.”
자신이 벌인 짓도 기억하지 못하는 꼴이 불쌍하면서도 한심했다.
“얼마나 많이 잊어버린 거냐.”
“시끄러!”
비르고는 망각을 겪는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광기라, 미친 년인 자신은 항상 잊으며 다닌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억을 중시한다. 모친과 생활하던 때의 기억을 소중히 하였으며, 나와 지냈던 생활에 어떠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잊었으며, 언제나 다시 떠올린다.
비르고는 마법 소녀를 원망한다. 정확히는 그 역할 자체를 혐오한다. 원치도 않던 수호의 의무를 짊어져야 했던 과거를 억울해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법 소녀가 되려 한다. 그녀가 괴인이 되며 얻은 능력은 사계자일(四季紫一). 마법 소녀의 힘을 제 것으로 만드는 힘. 마법 소녀가 되어 고통받았으면서 지금까지 그 힘을 가지고 싶어 한다.
비르고는 자신이 광인이라 한다. 그러니 어떤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나쁜 짓인지 모르니, 그 행동에 망설임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한다. 합리화는 제정신을 방어하기 위한 방패다. 이미 허물어진 정신이라면 지킬 필요도 없을 텐데, 그녀는 필사적일 정도로 본인의 행동을 나쁘지 않다고 중얼거렸다.
아이러니다.
비르고는 앞뒤가 맞지 않는 괴인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며, 행동과 본심이 다르다. 이중적이다.
스피카란 별과도 같이, 그 쌍성과도 같이.
“비르고, 너의 목적은 무엇이지?”
“그딴 거야 당연히 세계 멸망….”
“아니군.”
그것은 괴인보다는 사람에 가까운 성질이었다.
“세계 멸망이 목적이라면 나를 지킬 이유 따위 없었어. 세계 멸망이 올 걸 알아서 자포자기했다고 가정해도 이상하군. 그렇다면 죽음에 두려워할 이유는 없으니.”
“내, 내가 죽음 따위 두려울 거 같아?! 지금 당장 날 죽이라고 아까부터….”
“그것 역시 아니다.”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넌 내가 널 죽이지 못하리라 알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마치 어린애 같군. 부모가 자신을 내쫓지 못할 걸 알며 억지와 오기를 부리는 어린애 같아. 그냥 악을 지르며 제 억울함을 토로하는 거에 지나지 않는다.”
벼락이 눈까지 감쌀 무렵, 난 변신을 해제했다.
아직도 왼쪽의 눈은 내 과거를 재생했고, 몸을 좀먹는 고통은 여전했다.
“내가 네 곁을 떠난 게 그렇게 억울했어?”
“…닥쳐.”
“알고 있잖아. 난 너를 떠난 게 아니야. 네가 날 떠나게 한 거지.”
“…닥치라고!”
피융. 아직도 힘이 남았던 건지 비르고에게서 광선이 날아왔다. 그것은 내 볼을 스치고 떠났다.
주륵, 볼에서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날 속박하려 했으면서 죽이진 못했고, 날 떠나가게 만들었으면서 외로워 다시 날 찾아 너의 동료로 만들려 했어. 언제나 망각을 겪으면서 넌 끝까지 날 못 잊었구나. 세계 멸망을 부르짖으면서 세계가 멸망하면 안 될 이유를 만들고 있구나.”
그게 마지막 힘이었는지 비르고는 땅에 철푸덕 쓰러졌다. 누워 있는 그녀를 향해 몸을 숙였다. 별빛을 다 탕진한 건지 그녀에게선 하급 괴인만도 못한 힘이 느껴졌다.
“비르고, 너의 목적은 뭐일까.”
“닥… 쳐…!”
난 비르고를 모른다. 언제나 헛소리만 할 뿐 제대로 진심을 전할 줄 모르니까.
그러니, 이 역시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비르고, 넌 공감을 원했구나.”
사계자일(四季紫一).
소녀의 모든 시간은 자줏빛이었다.
모든 시간이 저녁과도 같았으니.
며칠이고, 몇년이고 시간을 보내도 단 하루에 머물러진 채였으니.
몇 번이고 자신에게 있던 일을 잊으면서까지 그 하루에 머무르려 했으니.
일하고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소녀였을 때처럼, 평생토록 기대와 희망만을 좇아 헤맸으니.
“너의 광기마저 받아들여줄 가족같은 사람을, 네가 나쁜 게 아니라고. 넌 미칠만 했다고. 그리 말해줄 사람을 원했구나.”
제 의무를 쫒다 지쳐 도망갔으면서도, 그 도망마저 끝내지 못해. 끝내 지쳐 쓰러진 마법 소녀의 말로였다.
“…그, 그런 거….”
비르고는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진흙과 흙먼지에 더러워진 얼굴이 초라했다.
“그런 거… 아니….”
말을 더듬던 비르고의 입에서 핏물이 뿜어졌다. 그것은 내 얼굴을 적시고 땅에 시든 꽃마냥 떨어졌다.
현실에 집중하던 시야가 갑작스레 과거로 옮겨갔다. 난 그 광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왼쪽의 시야 안에서.
도로가 불탄다. 불타는 자동차와 도로 속, 귀를 시끄럽게 울려대는 이명과 비명과 소음, 혈향 위에 불꽃의 냄새가 덮어씌워진다. 그 지옥도 안에 있는 내 몸은 어리다.
괴인의 습격이다. 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위화감을 느낀다. 내 몸을 꼭 껴안은 부모의 향기였다. 향수냄새보다 강한 혈향. 따스함보다 강한 차가움.
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깨닫는다. 부모가 한 몸 바쳐 날 지켰다.
이에 충격을 받기도 잠시, 누군가의 흉포한 위압감이 몸을 누르고 숨을 막는다.
괴인이었다.
난 그 감각을 알고 있다. 다크 매터에서 머물렀던 마지막 날에 느꼈으며.
지금도, 느끼고 있으니.
지옥도를 그리는 사자가 왔다.
부모의 원수가 다가오고 있다. 구역질이 목 끝까지 밀려왔을 무렵.
“커헉…!”
멀리서 날아온 거대한 빛이 비르고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폭발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