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04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044화(1044/1120)
1044화 태화 봉사단 (2)
응급은 다행히 별거 아니었다.
태화에서 보내온 짐들도 아예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던 것도 아니었고.
아니, 의료진들만 있었다면 필시 엄청난 고난의 행군이 되었을 텐데 다행히 학생들도 돕고, 현지인들 중 일부도 나서 주었다.
병원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병원의 도움을 받은 현지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덕이었다.
하여간 일행은 너무 늦지 않게 정리를 끝마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우우웅.
그 시각, 그러니까 아직 해가 떠오지도 않은 새벽녘에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 하나가 콜롬보 국제공항에 내려앉았다.
원래 인천공항에서 이곳까지는 직항이 있다 없다 하는 노선이었는데 최근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까닭에 이제는 직항이 있는 수준이 아니라 매일 한두 번씩 오가는 꽤나 주요 노선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새벽같이 도착하는 비행기가 정기적으로 있지는 않았다.
“오셨군요. 여기서 환승하시면 됩니다.”
태화 측에서 따로 전세기를 마련해 주었다.
의료진들이라는 게 시간이 없는 인간들이지 않나.
동시에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잠 안 자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이기도 했다.
모두 이왕 가는 봉사라면 최대한 오래 있기를 원했고, 이동 시간은 최대한 밤으로 빼는 데 동의한 바 있었다.
‘흐아암…….’
덕분에 한석준은 졸지에 새벽에 마중 나오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연신 하품이 밀려 나왔지만, 상대는 태화 의료원의 의료진들이었다.
대부분 젊은 주니어 스탭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잘 보여서 나쁠 거 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었다.
해서 한석준은 친절을 가장한 채 졸려움을 숨기는 데 최선을 다했다.
“와, 덥네. 개더워.”
“형……. 개덥다가 뭐예요. 그래도 명색이 의산데. 욕을 하고 그래.”
“너 뭘 모르는구나. 요새 애들은 다 개 쓰거든? 이게 강조하는 단어래.”
“뭔 소리야.”
그렇게 환승을 위해 일행을 안내하고 있으려니, 뒤에서 대화가 들려왔다.
처음 들었을 땐 레지던트들인가 싶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이들이었다.
적어도 30대 중반은 되어 보였다.
“아, 맞다. 거기 골프장도 있다던데. 주말에 한판?”
“내기? 내기는 좋지. 김승규 선배도 끼어 달라던데.”
“아……. 난 그 선배 얼굴 보면 샷이 안 나가던데.”
“나도 그렇긴 한데. 앞에 가서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요?”
“아니, 못 하지.”
실없는 대화치고는 꽤 흥미진진했다.
‘김승규란 사람 얼굴이 어떻…… 힉.’
한석준은 졸리움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귀를 기울이다가 김승규가 대체 누구길래 하는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어떤 얼굴과 마주했다.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왜 갑자기 사과해요? 기분 상하네? 어?”
“아니…… 살려 주십쇼.”
한석준도 강혁 앞에서나 빌빌대지, 어디 가서 꿀리는 편은 아니었다.
체격도 좋고 무엇보다 성격도 꽤나 강단 있는 편이었다.
요새 키 큰 사람 많다, 많다 해도 184 정도 되면 본인보다 큰 사람을 마주하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 않겠나.
하지만 이건 좀 성격이 다른 문제였다.
‘의사가 아니라 조폭 아냐? 아니…… 조폭도 저 정도면…….’
한석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리깔고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처음엔 무서워서 벌벌 떨려 오기만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두근거림 속에 어떤 기대감이 섞여 들어왔다.
‘저 사람이면 어쩌면 백 교수님도…….’
백강혁도 무서운 인간이기는 했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이고 또 그걸 성공시키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뒤에서 바짝 붙어서 따라오고 있는 김승규인지 뭔지 하는 인간은 인간이 아닌 거 같았다.
둘이 붙으면 진짜 볼만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와……. 여기에 이렇게 좋은 에어 앰뷸런스가 있네.”
“대단하긴 대단하시다.”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나가는 동안 일행은 환승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비행기 앞에 도달했다.
여행 가방을 비롯한 짐 대부분은 따로 먼저 어제 보낸 덕에 에어 앰뷸런스에는 몸만 타면 되었다.
최대한 빨리 일을 시작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쉬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일이었다.
대체 왜 일들을 못 해서 안달이란 말인가.
하지만 대학 병원에서, 그중에서도 소위 빅3 안에 들어가는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빨리, 빨리.”
“네.”
“야야, 안쪽으로 들어가. 빨랑 가자.”
“네.”
죄다 일 중독자라고 보면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진짜로 그랬다.
오진승이 보게 되면 치료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만한 케이스도 여럿 있었다.
방금까지 수다 떨고 있던 순환기내과 이현종, 감염내과 신현태가 그랬고 또 일반외과 김승규도 그랬다.
그중에서 이현종과 김승규는 의학과 결혼했단 말이 기정사실화되어 있을 지경이었다.
물론 이현종은 성질이 너무 괴짜라 결혼을 못 한 것이고, 김승규는 얼굴이 흉기라 결혼을 못 한 것이라는 게 정론이기는 했지만, 그렇게만 말하면 태화 의료원의 두 미래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라 저렇게 말하고 있는 거긴 했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한석준이 태화 의료원 사람들 모두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해 주자, 기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체를 출발시켰다.
말이 에어 앰뷸런스지, 사실상 미군 작전도 수행 가능한 기체였기에 이만한 인원을 태웠음에도 불구하고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비행기는 그저 늘 그러했듯이 미끄러지듯 활주로를 달렸고, 이내 하늘로 떠올랐다.
“미리 자 두자고. 거기 엄청 빡세대.”
“그러니까…… 백 교수님이 한국대…… 아니, 태화 의료원 있을 때부터 좀 빡셌잖아.”
“그치. 한유림 교수님도 오랜만에 뵙겠네.”
“잘 지내시나?”
교수라 해 봤자 다들 30대라 그런가 조잘조잘 말들이 많았다.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보기에 썩 나쁘진 않았다.
‘뭔가…… 파릇파릇한데?’
한석준은 아무리 젊다고 해 봐야 교수치고 젊은 거라 자기보단 나이가 많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무리는 아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누와라엘리야 병원에 와 있는 인간들은 좀 찌든 느낌이 들지 않나.
순수하지 못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너무 뛰어나서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의사로서 실력이 극에 다다른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그 안에서는 또 우열이 나뉘고,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실력도 더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건 의학에 있어 문외한이 한석준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슈우웅.
그렇게 순진무구한 이들을 태운 비행기는 그리 오래지 않아 누와라엘리야에 위치한 미군 공항에 닿았다.
말이 공항이지, 규모는 거의 시골 버스 터미널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오가는 비행기라고는 지금 타고 있는 이 비행기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왔네.”
어느새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나온 강혁이 내려앉는 비행기를 보며 싱긋 웃었다.
따라 나온 이들도 어째 비슷한 얼굴들이었다.
강혁처럼 징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는 얘기였다.
특히 한국대학교 출신들이 더더욱 그랬다.
“저기서 제일 위가…… 승규일 텐데.”
“걘 너 동기 아냐? 근데 왜 벌벌 떨면서 말해?”
“얼굴 보시면 알걸요.”
“내가 못 봤어? 외과 아닌가?”
“이식 외과 펠로우라…… 우리랑은 아예 접점이 없었어요.”
“아, 그런가.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그래.”
재원만 잠깐 부르르 떨었는데, 그것도 정말이지 잠시뿐이었다.
“후배들 내리네.”
“와……. 이거 어떻게 부려야 잘 부렸다고 소문이 나지.”
“허허허허. 김승규 교수는 나한테 맡겨. 내가 그래도 몇 년이 위인데, 하하.”
경원도, 장미도 껄껄 웃었다.
심지어 인격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한유림조차 그랬다.
그동안 여기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 왔던가.
물론 쿠트라팔리나, 최윤섭 등등이 충원되기는 했지만.
그보다 훨씬 빠른 기세로 환자 수가 늘어 가고 있어서 체감할 수 없었다.
이 와중에 거의 중소 병원급의 인원이 왔으니 반갑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심지어 한국대학교 후배들이다 보니 부리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와……. 여긴 춥네.”
“풍경 봐라. 여기 진짜 좋네.”
“나 유튜브에서 봤어. 엄청 좋더라……. 근데 화면이 다 못 담았네.”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는 이들이 비행기에서 우르르 내렸다.
밝은 얼굴을 해 가지고서였는데, 이 때문에 뒤에 서 있던 데니스나 최윤섭, 강성지 등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불편해졌다.
‘저 얼굴이 얼마나 오래갈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단연코 오진승만큼 절실하지는 않았다.
‘도, 도망쳐.’
정신을 차려 보니 오진승 자신은 이곳을 마음속에 품게 된 지 오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러 현장을 오가던 그였지만, 이만큼이나 소외된 지역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곳도 처음 보았다.
사명감과 보람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현장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바로 이곳에서 배웠다.
하지만 그 방식이 온당했냐고 한다면 언제고 고개를 가로저어야만 할 터였다.
“잘 왔습니다. 김승규…… 교수님이 여기 인솔자라고 들었는데.”
오진승의 이러한 생각을 뒤로하고 강혁은 더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태화 봉사단을 향해 다가갔다.
그 바람에 봉사단에 있던 몇몇은 백강혁에게 순식간에 반하고 말았다.
강혁의 외적인 매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 존나 잘생겼네. 개싫어.’
물론 몇몇에게는 반항심도 키워 주었다.
특히 김승규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는 이 얼굴 때문에 평생을 배척당하며 살아왔는데, 누구는 얼굴 하나로 순식간에 호감을 사?
벌써부터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김승규는 앞으로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험상궂은 얼굴을 더더욱 구기면서였다.
“네, 제가 김승규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곤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뜻이었는데, 하도 힘이 세다 보니, 그리고 기분이 상했다 보니 과하게 힘이 들어갔다.
김승규는 얼굴만이 아니라 힘도 전국구였기에 보통 이쯤 되면 상대는 울상이 되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웃고 있었다.
여유를 가장하기 위해 억지로 웃는 종류의 미소가 아니라, 정말 즐거워 죽겠다는 미소였다.
‘이 새끼는 막 굴려도 되겠는데?’
노예, 노예 하고 있다지만 막말로 노예처럼 부릴 만한 녀석이 여기 누가 있단 말인가.
한유림은 노인이고, 최윤섭은 스승이었고, 강성지는 나이에 비해 몸이 많이 곯았다.
재원이야 원래부터 약골이었고 리처드가 그나마 좀 나은데, 그 자식은 또 좀 이상한 면이 있었다.
하나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사람, 김승규는 누가 봐도 강인해 보였다.
게다가 눈빛도 단단했다.
‘보통 실력 가지고서는 이렇게 당당할 수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