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04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046화(1046/1120)
1046화 얘들 쓸 만한데? (1)
부우웅.
부웅.
아침 7시가 되자, 이상한 소음이 병원과 숙소동 근처를 가득 메워 나가기 시작했다.
누와라엘리야 의료진들이야 그냥 그런갑다 하고 부족한 수면을 더 부족할 수 있었지만, 태화에서 어제 온 사람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하나둘 쳐들기 시작했다.
“폭주족이 있나.”
“뭔 폭주족이 꼭두새벽에 달려?”
“아니……. 폭주 버스……?”
“버스야? 이 소리가? 아니, 무슨.”
오토바이라도 한 무리 달려온 줄 알았다.
어디서 보고 들은 게 있다 보니 더더욱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원래 개발 도상국에서는 오토바이가 자동차보다 훨씬 많이 돌아다니지 않던가.
하지만 그들 눈에 나타난 것은 버스였다.
완전 커다란 버스가 아니라 봉고보다 조금 큰 사이즈였다.
우르르.
그것만 해도 꽤 놀라운데, 그 안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자 놀라움이 배로 커졌다.
버스라 해도 아주 거대한 사이즈는 아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내리는 사람 숫자는 거의 40명에 달했다.
안에서 테트리스를 해서 왔나 싶을 지경이었다.
“저거…… 지금 20대도 넘는 거 같은데…….”
“그럼 800명이 왔다고?”
“아니, 더 오고 있어요.”
“미쳤나……? 이걸 어떻게 다…….”
어림잡아 천 명은 더 몰려오는 듯했다.
어쩌려고 이러나 하고 있으려니, 얇은 셔츠를 입은 일련의 무리가 현장 노동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팔뚝에 콜롬보 대학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었는데 저들이 아마 강혁이 어제 말해 준 학생 봉사단인 모양이었다.
원래 저렇게까지 많이 오지는 않는데 이번 봉사단을 위해 특별히 모아 왔다고도 들었다.
“벌써 환자 예진 들어가는 건가?”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죠? 8시 반부터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오면 빨리 봐야지. 오후까지 봐도 모자라겠는데. 수술 들어갈 사람 빼고 하면 인원이…….”
“그러니까요.”
김승규와 펠로우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며 숙소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괴짜로 유명한 이현종마저 머리가 젖은 채로 나와 있었다.
대규모 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라 힘들 거란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설마하니 저만한 규모의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기에 그랬다.
“와……. 여기 넓구나?”
“형……. 우리 뒤지는 거 아닐까?”
“뒤지긴. 부지런히 봐서 주말에는 놀자고.”
“골프채 괜히 가져온 거 같은데.”
“야, 여기 코스가 그렇게 좋대. 생각해 봐. 우리가 언제 해발 천 미터에서 골프를 쳐 보겠어.”
“그 전에 진료 보다 뒤질 거 같다고.”
물론 다른 이들보다는 꽤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명색이 같은 교수고, 심지어 감염 내과의 루키로서 빠르게 명성을 쌓아 가고 있는 신현태와 비교를 해 봐도 딱 차이가 두드러질 지경이었다.
“안 깨워도 다들 째깍째깍 일어나네.”
모여서 웅성대고 있으려니 강혁이 다가왔다.
어제 회의도 하고 하느라 늦게 잔 거로 아는데, 얼굴은 뺀질뺀질하기 그지없었다.
뭐라도 발랐을 리가 없는데 풀세팅 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어제 말한 대로 돌아갑니다. 그냥 딱 자기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돼요.”
“근데…… 예상보다 환자가 많이 온 거 아니에요? 저거…… 저걸 어떻게 하루에.”
똑 부러지기로 소문난, 소아과 이기자 교수가 앞으로 나섰다.
‘야……. 내가 안 무섭나.’
강혁은 최근 새로 뽑은 교수들이 좀 특별하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물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번 기수가 뛰어날 수밖에 없기는 했다.
태화에서 대학을 사들이면서 동시에 교수들을 모집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지 않았나.
계약금 조로 엄청난 금액을 풀었다고 했으니, 원래 같으면 밖으로 가거나 아니면 개원했을 친구들도 안에 묶였을 터였다.
“하루? 아닌데.”
“네?”
“오전에 봐야 해요, 저거. 똑같은 인원이 오후에도 올 텐데.”
“네에?”
당연히 아직 강혁에 댈 정도는 아니었다.
강혁은 한마디에 져 버린 이기자 교수를 지나쳐 가며 말을 이었다.
“걱정은 제가 할 일이지, 여러분이 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저 어제 제가 말씀드린 일이나 잘하면 돼요. 쓸데없이 남 걱정하지 말고. 그러다 자기 일 빵꾸 나면 안 되니까.”
“허어.”
직역하면 시키는 일이나 하라는 얘기였다.
원래 의사들이 누가 시킨 일 하는 걸 제일 잘하긴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건 교수들이었다.
황당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강혁은 그런 반응을 무시한 채 이현종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가면서였다.
“이현종이라고 했나? 아마 중재 시술은…… 6건밖에 없어서 오전 다 가기 전에 끝날 테니까 어제 말한 대로 자신 있으면 외래나 도와 봐요. 내 예상보다도 더 오긴 할 거거든. 한국에서 의사 온다고 하면 여기 사람들 진짜 환장해. 한류가 미쳤거든.”
“6건이면 1시간도 안 걸리겠네요. 돕죠, 뭐.”
약간은 기 싸움에서 이길 생각도 있었다.
민주적인 분위기도 좋지만, 원래 어떤 일을 단기간에 끝내기 위해서는 독재가 필수불가결하기도 한 법이니까.
누와라엘리야 의료진 중 누구 하나 동의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강혁은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이미 누와라엘리야는 독재 체재하에 있었기에 강혁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오, 이것 봐라?’
하지만 이현종은 강혁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실로 패기 넘치는 반응이지 않나.
‘아…….’
‘아이고…….’
강혁이 놀라는 만큼 한유림과 재원은 이현종이라는 친구가 걱정되었다.
젊은 나이에 교수 달고 하면 원래 세상이 알로 보이는 법이었다.
특히 내과처럼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그 경쟁을 뚫고 교수가 되고 나면, 한동안 내가 세상의 왕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장 재원만 해도 빠르게 출세한 편이 아닌가.
강혁만 없었다면 얼마든지 여기서 더 거만해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따 술이나 줄까?’
‘먹을 정신이 있을까요?’
‘하긴.’
‘살아 있길 바라죠.’
둘이 두런두런 추모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쯤, 강혁이 식당으로 갈 것을 명했다.
계속 바쁜 하루가 이어질 테니 빨리 먹고 미리미리 진료실로 가라는 뜻이었다.
봉사하러 온 마당에 조금 강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몰려드는 환자를 본 후가 아닌가.
군말 없이 다들 자리로 향했다.
“그럼 점심때 봅시다.”
강혁은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친 이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누가 모범생으로 큰 의사, 간호사 아니랄까 봐 딱히 재촉하지도 않았음에도 자리로 향했다.
7시부터 모여들었던 환자들도 8시가 조금 지난 무렵에는 각기 자기 자리로 가 있었기 때문에 의료진이 수술실에, 진료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수술과 진료가 시작되었다.
“서둘러!”
다들 마음이 급해 보였지만, 아무래도 수술과 사람들이 제일 그랬다.
딱 봐도 무리스러운 숫자의 인파가 몰려 있는데 이게 오전에 봐야 할 사람들이라지 않나.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수술을 마치고 외래를 도우러 가야 했다.
일부러 의도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막 진료실 빈자리의 수가 정확히 집도의의 수와 같았다.
“좋아, 역시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성질 급한 것 좀 봐라.”
강혁은 수술실과 처치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교수님, 환자 들어가도 될까요?”
“어? 어어. 그래.”
생각 같아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웃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강혁이 언제 남들만 갈아 넣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누구보다 앞장서서 갈려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강혁의 진료실 앞에 가장 많은 환자가 할당되어 있었다.
“교수님이 좀 무섭거든요? 근데 아픈 건 잘 고쳐요.”
“네네.”
앞에 선 학생은 연신 경고를 해 대고 있었다.
우수한 두뇌와 결단력을 이용한 신속, 정확한 진료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친절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나.
학생들을 제외하면 타밀어도 제일 잘하면서 설명을 제대로 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드물었다.
아니, 설명이라고 해 봐야 아파요, 많이 아파요, 뒤지게 아파요 정도가 거의 다였다.
그게 아니라면 수술해야 한다고 하거나, 그냥 가라고 하거나.
아무튼 간에 참 극단적인 인간이었다.
“으, 으어어어!”
오늘도 그랬다.
“다 됐네. 이제 안 아프죠?”
“어? 어어. 어…….”
“그럼 나가요. 약 받아 가고.”
어깨가 빠진 환자도, 염증이 심한 환자도, 어디가 부러지거나 삔 환자도 다들 비슷한 몰골이 되어 외래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가다 보면 천막 한켠에 마련된 약국이 나왔다.
“종이 주세요. 곧 드릴게요.”
말이 약국이지, 전자 시스템도 없었다.
심지어 약사도 하나뿐이었다.
나머지는 한국대학교 의과 대학, 아니, 이제는 태화 의과 대학의 학생들이었다.
방학이고 하니 겸사겸사해서 온 친구들이었다.
푹.
그렇게 강혁을 위시한 외래가 엄청난 효율을 자랑하며 딱딱 돌아가고 있을 때쯤, 처치실에서는 이현종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꽤 대단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다.
다들 전문가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현종은 자타공인 병원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는 평을 듣고 있는 만큼 궤를 달리했다.
‘와…….’
얼마나 잘하나 보라고 해서 잠시 들어왔던 장미가 다 놀랄 정도였다.
어떻게 된 게 술기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푹 하고 바늘이 들어갔나 싶으면 어느새 카테터가 심혈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판단도 빨랐다.
“환자 당뇨 있다고 했죠? 거기에 이 정도면…… 스텐트 박아 두는 게 좋겠네. 줘 봐요.”
“네.”
같이 온 간호사도 베테랑이었다.
아니, 이현종에게 특화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엄청나게 빨랐다.
그 덕에 장미는 데자뷔까지 느꼈을 지경이었다.
‘나랑 백 교수님 같잖아? 아니, 그 말은…….’
저 둘이 이쪽과 비슷한 재능을 가졌단 얘기가 되었다.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둘 다 둘도 없는 천재일 거라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으니.
“좋아…… 이제 하나 남았나?”
그만큼 드문 재능이었다.
장미로서는 강혁과 자신을 제외하면 비슷하다 생각되는 수준의 의료진조차 오늘 처음 목도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넋을 놓고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마지막 케이스에 접어들고 있었다.
‘헉. 아니, 아니네.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어.’
마지막이라는 말에 정신이 퍼뜩 든 장미는 서둘러 시계를 확인했다.
큰일 났다고 생각하면서였는데 의외로 흘러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니, 아직 9시도 채 되지 않았을 지경이었다.
정규 외래 시작 시각도 아니라는 얘기였다.
“저기, 수간호사님. 백 교수님께 전화 주세요. 곧 도우러 간다고.”
놀라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시건방진 어투로 장미를 불렀다.
벌써 마지막 환자도 끝나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