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06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064화(1064/1120)
1064화 하다 하다 (3)
김승규는 갑자기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돋아났다.
이유가 뭘까.
‘저 인간 때문인가?’
저도 모르게 강혁을 돌아보게 되었다.
‘뭐야. 눈이 왜 저래.’
뭐라 설명해야 좋을까.
적어도 생애 처음 보는 눈이라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안에 담긴 감정은 뭐랄까.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모르고 싶었다.
“다 돼 가나?”
“네? 아니, 저 이제 막 시작해서.”
“아닌데. 꽤 되고 있는데.”
“아니……. 근데 주먹은 왜 돌리세요.”
“다발성 손상이라고 들어 보셨을까?”
“아…….”
아까까지만 해도 1호, 2호에게도 잘만 붙어 있더니만.
왜 자꾸 내 뒤에서만 얼쩡거리나 싶었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퍽.
곧 강혁의 주먹이 돼지의 우측 가슴을 후려쳤다.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
뼈 부러지는 소리.
“힉.”
바로 앞에 있던 김승규만 움찔하진 않았다.
주변에 있던 모두가 그랬다.
특히 이런 끔찍한 광경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내과 의사들은 더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형. 뭐라고 좀 해 봐. 나가자. 우리가 여기 왜. 형?’
‘개무서운데? 네가 말해 봐.’
‘형 원래 무서운 거 없는 사람이라며. 실제로 잘 개기잖아.’
‘위에 교수님들이 나를 때리진 않잖아.’
‘아……. 우리 형…….’
신현태는 너무 불편해진 나머지 이현종을 채근하고 있었다.
직접 말을 해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원래 부드럽기만 한 사람이니까.
그에 비해 이현종은 별명이 독립투사였다.
실제로 의국 내 부조리에 맞서 싸워서 얻어 낸 성과도 적지 않았다.
‘형 의외로 물리적인 폭력에는 약하구나.’
‘의외? 의외 같냐? 내 몸을 봐. 나도 내과 의사야. 공부만 했다고.’
‘하긴. 그럼 어쩔까?’
‘존나 가만히 있어야지.’
‘그래, 형.’
하지만 맞는 건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딱 봐도 사람보다 건장해 보이는 돼지가 눈앞에서 아작이 나는데 어찌 덤빌 수 있을까.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고릴라를 메쳤다느니, 멧돼지를 후려쳤다느니 하는 게 다 개소린 줄 알았는데 마냥 덮어 놓고 허언증 운운할 일은 아니란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저런 사람이 마음먹고 사람을 치면 어떻게 될까.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정상 해부만 알잖아. 머릿속으로야 외상이나 병이 있으면 어떻게 되었겠거니 하지만 그런 상태의 해부는 본 적이 없지.’
‘음……. 그건 그렇지.’
이현종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실천하고자 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편이 이 시간을 견디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해서 억지로 억지로 뭔가 배울 점이 있나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의외로 있기는 했다.
‘저 인간이 나름 티칭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야. 불친절해서 그렇지. 괜히 데리고 왔겠어? 이게 설마 벌칙이겠어?’
‘벌칙 아냐? 난 벌 받는 기분인데.’
‘아냐, 아냐. 잘 봐. 우리가 언제 저런 손상된 장기를 보겠어. 그리고 복구되는 기전을 봐. 이런 케이스의 환자를 언젠가 보게 되었을 때, 고려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고.’
‘음……. 그런가?’
신현태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 또한 우수한 편에 속하는 내과 의사였지만 아무래도 이현종처럼 실시간으로 수집한 정보를 재조합해서 바로 머릿속에 욱여넣을 만큼 두뇌 회전이 빠르진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이미 부상으로 인한 손상과 그걸 복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위적인 손상 등을 슥슥 정리하고 있었다.
이 또한 천재였다.
‘저 새끼도 진짜 탐나네.’
강혁은 시야가 넓은 사람이지 않나.
김승규, 1호, 2호의 수술을 지켜보면서도 동시에 다른 이들의 반응 또한 살피고 있었다.
주로는 간호장교들이 대상이 되었다.
수술을 읽어 내면서 기구를 주는지 아니면 대충대충 주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수술이란 건 결국, 집도의가 하는 거란 생각을 가진 이들도 많지만.
상황이 나쁘면 나쁠수록 주변 환경의 영향도 커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이현종을 봤더니만 수술 장면을 통해 무언가 배우는 게 있어 보였다.
‘내가 쟤 논문은 왜 읽었더라.’
김승규가 낸 논문이야 같은 외과니까 사실 읽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현종은 내과이지 않나.
아무리 의학에 미쳐 사는 자신이라고 하지만, 이건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지지도 않네.’
해서 다시 내려놓으려다가, 앞에 초록만 보고 다시 집어 들었다.
그만큼 인상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적어도 아직 주류 의학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개념들이었다.
병원에서도 그 때문에 이런저런 반대에 부딪히고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읽던 강혁도 설득되었을 지경이었다.
‘저놈도 언젠가 주류 의학의 판도 자체를 바꿔 버릴 만한 놈이야.’
둘 다 꼬실 수 없다는 얘기가 되었다.
아까웠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얼굴 표정이야 거울이 없으니 알아볼 수 없지만.
아마 엉망일 터였다.
‘왜 저래요. 나도 이제 진짜 무서운데.’
‘응? 몰라. 나처럼 그냥 수술이나 봐.’
‘집중이 안 되는데.’
‘네가 그래서 NEJM에 논문 못 내는 거야.’
‘와.’
신현태 정도는 공포의 구렁텅이에 딱 밀어 넣을 만했다.
하지만 의외로 다른 사람들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미 각자에게 주어진 가르침에 딱 집중을 하고 있어서였다.
‘폐가 망가지자마자 흉압이 변했어. 수술이 더 어려워진다…… 피가…… 특히 정맥에서 더 나. 그래도 여기부터 정리하는 게 우선이다.’
그중에서도 김승규의 집중력은 발군이었다.
상황이 주어지면 그 상황에 대응할 뿐 아니라, 그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전체적인 변화에도 딱딱 반응을 해 주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만큼 신나는 일도 드물 터였다.
특히 강혁은 소위 천재라 하는 족속에 목이 말라 있는 사람이었다.
평생을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머리와 눈으로 살아왔기에 그랬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보면 기뻐 날뛰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쁘다’가 아니라 ‘날뛰다’였다.
퍽.
강혁은 신이 난 나머지 상황을 점차로 추가해 나가기 시작했다.
1호와 2호도 조금 놀랄 정도로 추가되는 속도가 빨랐다.
“주인님?”
“시끄러워. 니네도 할 수 있어. 이게 마지막이잖아. 해내.”
“어…….”
문제는 김승규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이를 강요한다는 점이었다.
사람마다 실력 차이가 있는 법인데 무작정 몰아붙이니 일이 잘될 리가 없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믿었다.
“야, 여기 이렇게 딱 묶어.”
“너는 여기부터 하고. 하던 거 마저 하는 거…… 그런 건 일상에서나 하라고. 수술할 때는 항상 뭐가 우선시돼야 해? 환자야. 환자 상태를 보고 움직이라고.”
“넌 기본기는 좋아. 좋은데 사고가 너무 경직되어 있어. 왜 정석대로만 해? 상황이 항상 똑같이 나오냐?”
하지만 강혁의 조언 또는 한 번의 술기가 더해지자 상황이 귀신같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마법이라도 목도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그걸 직접 겪은 이들은 어떠할까.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어. 음.’
실력이 느는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그저 느낌에 그치진 않을 거 같았다.
반드시 도움이 될 터였다.
퍽.
그리고 마침내 강혁은 모든 돼지의 심장을 가격했다.
동시에 이때까지는 하지 않았던 브리핑을 시작했다.
“임박한 심장 파열. 부위는 좌심실. 사실상 절망적이야. 하지만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지. 왜? 니들은 의사니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봐.”
심장 파열이기에 그랬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그냥 주먹으로 심장을 터뜨리는 것도 모자라 모두 같은 부위를 터뜨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 안에 들어와 있던 모두는 정신이 수술에만 팔려 있어서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저 재빨리 움직일 뿐이었다.
‘심장. 심장.’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 김승규였다.
지이익.
칼로 절개를 넣고.
위이이잉.
전기톱으로 뼈를 가르고.
피지컬도 워낙 좋다 보니 그야말로 순식간에 심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다소 거칠긴 하지만 일단은 합격점을 줄 만한 상황이었다.
‘저 새끼는 이식 같은 거 할 게 아니라 진짜 외상 했어야 되는데.’
강혁이 또다시 아까워서 몸부림을 쳤을 지경이었다.
1호, 2호도 실력이 썩 괜찮은 편이고, 심지어 여기 와서 실력이 더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과연 대한민국의 의료를 선도할 인재라 할 수 있었다.
‘오, 심장.’
이현종도 눈을 빛내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물론 흥미진진했지만 사실 심장이야말로 그가 필드에서 접하는 장기가 아닌가.
맨날 중재 시술을 하긴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팔딱이는 심장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돼지 심장이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보니 여러 참고할 만한 점이 많을 거 같았다.
부우웅.
강혁이 말한 대로 심장은 딱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위치는 역시나 좌심실.
온몸으로 피를 보내는 곳이니만큼 수축하는 힘도 어마어마했다.
이게 사람이 아니라 돼지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이대로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쭉 갈라질 터였다.
“일단 봉합.”
“네?”
“실의 장력으로 끊어져 가는 근육의 장력을 보조하라고.”
“아!”
딱 보자마자 맥이 풀리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체외 순환기를 돌릴 수도 없는데.
해서 좌절하고 있으려니 귓가에 천금 같은 조언이 들려왔다.
‘시간은 벌 수 있겠어.’
살릴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심장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확실히 봉합을 더 해 주면 몇 분이 되었건 간에 더 버티게 해 줄 수 있을 터였다.
푹.
푹.
마음이 급하다 보니 봉합도 거칠기 짝이 없었다.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 않나.
해서 실도 그냥 큰 거를 썼다.
바늘이 심장을 뚫고 들어갈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이는 듯했다.
고도로 집중한 나머지 지금 김승규는 이게 돼지인지 사람인지 분간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저 눈앞에서 꺼져 가는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후.”
“그다음, 눈 똑바로 뜨고 심장 어떻게 뛰는지 봐.”
“네?”
“어디가 비정상이야. 어디가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오려고 해.”
“아, 여기. 여기요.”
“어떻게 해야 해?”
“어…….”
“일단 심장막을 거기에 이어 붙여. 최대한 막아 보라고.”
“아!”
김승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강혁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결국 이 돼지는 죽을 것이라는 걸.
사인은 심장마비일 터였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든 지연시키려 애써 본 외과 의사와 그렇지 않은 외과 의사는 머리 구조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알이 깨지는 느낌인데.’
강혁이 보기에 김승규는 이제 곧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