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070)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070화(1070/1120)
1070화 이런 것도 해요? (6)
하늘나라?
이게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범인은 당최 이해가 잘 안 간다는 얼굴로 강혁을 올려다보았다.
딱히 뭔가를 가르쳐 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던 강혁은 그저 그런 범인을 마주 보고만 있었다.
퍽.
그러다 예고 없이 심장을 쳤다.
정확히 말하면 왼쪽 가슴이었는데, 범인은 딱 심장을 맞은 기분이었다.
기분만 그랬다면 다행일 터였다.
“커헙.”
심장에 갑자기 커다란 충격을 주면 어떻게 될까?
심장이 뛰는 원리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게 추론이 가능한 일이었다.
전기 신호로 인해 심방에서 심실 순서로 뛰는 장기이지 않나.
너무 강한 충격은 그런 신호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법이었다.
그렇게 되면 일순간 이런 일이 발생했다.
“어…… 심장 안 뛰는데요?”
“주, 죽였어요?”
옆에서 대기 중이던 데니스와 김승규가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
둘 다 범인이 죽었을까 봐서였는데, 마음가짐은 천양지차였다.
‘아,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요원인 데니스는 그저 이런 생각뿐이었다.
범인의 안위 자체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냥 죽을 만한 놈이 죽었구나 정도일까?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미친.’
그에 반해 험상궂게 생겼긴 해도 일단 의사이긴 한 김승규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수, 숨도 안 쉬어. 맥도 없고! 백 교수님!”
그는 혼비백산한 얼굴이 되어 광대 옷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딱히 단련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람하기 그지없는 흉악한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혁도 비슷한 몸을 지니고 있었지만, 둘은 참 달랐다.
하나는 심장을 쳤고, 김승규는 그로 인해 잠시 멈춘 심장을 되살리기 위해 즉시 흉부 압박에 돌입했다.
“하나, 둘, 셋.”
본능적으로 숫자를 세어 가면서였다.
“야야, 비켜 봐.”
의사가 되어서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강혁은 그런 김승규를 제지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얘 심장 완전히 정상이었어. 충격으로 발생한 건 금방 돌아와.”
“네?”
“맥박 짚어 봐.”
“어……. 아, 그렇네. 오.”
“내가 이거 많이 해 봐서 알거든. 신뢰가 좀 생기냐?”
“신뢰…… 그…… 네? 많이 해 봐요?”
김승규는 실로 복잡한 표정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다시 뛰는 것 자체는 참 다행한 일이지만.
이걸 많이 해 봤다는 건 대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 돌아가면 다시는 엮이지 말아야겠다. 이 미친 인간 같으니.’
벌써 여러 번 했던 다짐이기는 했다.
첫날부터였는데, 무언가 강혁에게 배울 때마다 흔들렸던 다짐이기도 했다.
확실히 한국에 있는 그 어떤 의사도 강혁만큼 자신에게 영감을 주지는 못하지 않았나.
이 인간은 실로 괴물 같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배울 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배울 점이야 있지. 그런데 배우다 뒤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자꾸 헷갈리던 찰나에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역시 상종을 하면 안 되는 인간이었다.
그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뭐야, 이거?’
순간 정신을 잃었던 범인은 간신히 눈을 뜨며, 이 생각부터 했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심장 부근을 얻어맞은 것까지는 현생의 기억이었다.
그 후로 있었던 일은, 글쎄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할까.
정신이 아득해지는가 싶더니 눈앞이 돌연 밝아졌더랬다.
무언가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소리도 들렸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한 목소리인 것이 돌아가신 할아버지 같았다.
‘할아버지가 나 어렸을 때 이것저것 진짜 많이 알려 줬는데.’
그중에 사람 죽이는 방법과 같은 흉악한 것은 단연코 없었더랬다.
할아버지가 되어서 손자에게 그런 걸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주르륵.
범인의 눈에서 돌연 눈물이 흘러나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자각하지 못한 듯했다.
강혁은 차분히 기다리다가 이내 그의 어깨를 툭 하고 폈다.
말은 차분하다고 했지만, 절대적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저 5에서 6초 정도 되었을까?
“어.”
“잘 갔다 왔냐?”
“어…….”
“또 가고 싶어? 왜 말이 없어.”
“아니, 아닙니다.”
아마 단순히 고통을 주는 방식의 고문이었다면, 범인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을 터였다.
훈련을 빙자한 고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이게 말로만 듣던 임사 체험인가.’
그야말로 죽었다 살아난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느낌을 주었을 뿐이었지만, 당사자로서는 심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강혁은 그러한 사정을 매우 잘 알고 있던 터라, 아까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설마 여기서 말 안 하면…… 또 치지, 뭐.’
안 통하면 또 치면 될 일이었다.
경험상 한 세 번까지는 영원히 올라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후에는 진짜 흉부 압박도 해야 했다.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할 가능성도 있었고.
모든 환자가 평등하겠지만, 이런 놈에게까지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는 않았다.
해서 어지간하면 말을 하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표정을 험악하게 구기면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름.”
“네. 유리입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번 죽다 살아난 범인은 실로 고분고분해져 있었다.
“몇 살이지?”
“34살입니다.”
“어리네?”
“어…… 네.”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딱 반응을 해 주고 있을 지경이었다.
뒤에 있던 데니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고문법도 있구나.’
CIA에 알려야 할까?
그럼 다들 좋아할 텐데.
특히 중동에서 작전 중인 친구들은 자지러질 것이 뻔했다.
대외적으로야 당연히 국제법을 따르고, 또 미국법을 따르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게 말랑하게만 굴러가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별 이상한 짓을 다 하는 게 CIA고 또 미국 정부 기관이었다.
심지어 최악의 교도소라 불리는 관타나모는 아예 미국 말고 다른 곳에 지어 두지 않았나.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 법을 어기기 위해서였다.
‘아냐. 저렇게 칠 수 있는 놈이 있을 리가 없어.’
단순히 힘과 기술이 좋아서 가능한 거 같진 않았다.
저건 필시 백강혁이라서 가능한 일일 터였다.
가공할 만한 의학적인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의료진들 사이에서조차 불가사의로 통하고 있는 강혁의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괜히 알렸다가는 사달이 날 터였다.
안 되는 일을 될 때까지 하라는 다소 쓸데없는 군인 정신이 CIA에도 담겨 있기에 그러했다.
‘와……. 개무서워.’
한편 옆에 묵묵히 서 있던 김승규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 감상이 그러한 것을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김승규의 꼴을 생각하면 좀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저 새끼는 뭔데 웃통을 벗고…… 몸은 또 왜 저러고…… 여긴 어디고…… 아, 이런 망할.’
그 흉악한 몸을 있는 힘껏 드러내 놓고 있지 않나.
이름을 유리라 밝힌 범인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심각한 압박이었다.
백강혁도 체격이 좋은 편이지만 글쎄, 뒤에 있는 놈에 비하면 애들 장난으로만 보이지 않나.
이놈도 임사 체험을 시킬 수 있는 조직이라면 뒤에 있는 놈은 진짜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도 시킬 수 있는 놈일 터였다.
‘그래, 말하자! 저 사람까지 나서기 전에!’
덕분에 유리는 그 혹독한 고문과 훈련도 견딘 몸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툭 하고 꺾여 버렸다.
그 순간, 강혁도 이변을 눈치챘다.
‘역시 김승규. 얼굴로 사람 마음을 꺾네.’
아직 조금의 망설임이 있지 않았나.
이름이나 나이와 같은 정보는 말을 해 줄 수 있어도, 그 뒤에 있는 놈들까지 말해 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러한 의문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누가 시켰어?”
“아……. 저는 바로 윗선하고만 연락을 했습니다.”
“그게 누구냐고. 또 갔다 올래?”
“아니, 아닙니다. 토카레프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토카레프……?
보통 토카레프라 하면 구 소련의 권총을 말하는 법이었다.
20세기가 지나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구 체첸 반군의 잔당들이 모여 설립한 무장 단체가 얄궂게도 자신들을 무던히도 괴롭히던 권총, 토카레프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탓이었다.
그렇다 해도 어지간한 사람은 몰라야 정상인데, 강혁은 역시나 보통 사람이 아닌 만큼 바로 알아먹었다.
“말장난을 하네? 이 새꺄. 그럼 너도 토카레프란 소리잖아. 야, 얘 윗도리 벗겨 봐.”
“네.”
데니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딱히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를 저지른 적은 없는 조직이지만, 어찌 되었건 CIA로서는 눈여겨볼 수밖에 없던 조직이기도 해서 그랬다.
“이봐, 이거. 진짜 너네도 참 생각 없다. 등짝에 토카레프를 박았네.”
“음.”
“너무 직관적인 거 아니냐? 이래 가지고 어디 뭐 비밀 작전하겠어?”
“으음.”
유리도 토카레프 조직에서 토카레프 모양의 문신을 박아서 상호 확인을 위한 방편으로 쓴다는 걸 알았을 때, 이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도 돈도 많이 주고 나름 대우도 잘해 주고 있어서 별생각이 없었을 뿐인데, 제삼자의 입에서 여과 없는 비난의 말이 난무하기 시작하자 기분이 좀 착잡해졌다.
‘망할. 그러게 좀 바꾸자니까.’
이제 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는 몸이라 생각했는데 두려운 것이 생긴 순간부터 다 끝났다고 봐야 했다.
그나마 한줄기 남아 있던 양심으로 조금 꼬아서 대답을 해 보았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삼합회라고 들었는데…… 뭔 놈의 삼합회가 정보가 이렇게 좋아. 옆에 있는 놈 보니까 딱 봐도 CIA잖아. 대체 뭘 건드리자고 한 거야.’
게다가 데니스의 몸놀림 그리고 행동과 말투를 보아하니, 이건 폭력 조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동시에 어디서 본 조직의 특징이기도 했다.
어딘지 모르게 헐렁하게 생긴 얼굴, 하지만 빈틈없는 태도.
정부에 속한 정보기관들이 대개 이러했는데, 그중에서도 CIA가 제일 심했다.
“토카레프에 올리버가 의뢰를 넣었습니다.”
“아, 올리버. 얼마를 줬길래 와서 민간인을 죽이려고 했지?”
“제가 받기로 한 건…… 건당 50만입니다.”
“달러지?”
“네.”
“이 새끼, 이거.…… 죽일까.”
“네? 아니, 살려…….”
“농담이야. 나 의사야. 내가 널 왜 죽이니. 너는 이제 죽고 싶어도 못 죽어.”
“네?”
죽인다는 말도 참 무서운 말이지만,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는 말도 만만치 않게 무서운 말이었다.
특히 이런 살벌한 눈빛을 받으면서 듣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구나 싶었다.
강혁은 그렇게 유리의 어깨를 감아쥐면서 말을 이었다.
“올리버 잡는 데 네가 좀 활약을 해야 쓰겄는데. 할 수 있겠지?”
유리는 그냥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아니라 토카레프 할아버지 아니, KGB가 왔다 해도 이런 협박에는 굴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