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080)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080화(1080/1120)
1080화 참교육 (2)
스미스가 헷갈려하건 말건 강혁은 말을 이었다.
“내가 알기로 그 자식 콜롬보에도 부동산이 꽤 있는 거로 아는데, 맞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바로 유의미한 대화가 이어지기는 좀 어려웠을 터였다.
하지만 스미스도 보통 인간은 아니다 보니 바로 답을 해 왔다.
사실 험악하기로만 따지면 이보다 몇 배는 더한 일도 해 온 몸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중동에서 미국이 슬금슬금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심심하단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소소한 자극이 되겠지만 지금은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랄까?
“네, 맞습니다. 하필 이번에 신도시 개발 건하고도 엮여서…… 그쪽으로도 돈을 꽤 벌었어요.”
“근데 마약까지 해? 괘씸한 새끼네, 이거.”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입니다. 제가 아주 잘 알죠.”
“어쩌나. 내 욕심도 끝이 없는데.”
“어떻게…… 다 뺏으려고요?”
“CIA 자금도 이참에 좀 만들지그래?”
“좋죠. 근데 그러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이 자식은 일단 잠시 실종으로 처리하고요.”
“어차피 마약상인데 몇 달 사라진다고 해서 수상하게 여길 것도 없지. 지금 뭐로 위장하고 있지?”
“콜롬보에서는 백 교수님이 삼합회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우리는 그런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잘했네.”
강혁은 삼합회라는 단어를 몇 번인가 되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여, 시벌.’
‘일단 떨어질까요.’
‘응, 그게 좋겠는데.’
‘고고.’
여태 옆에서 강혁의 통화를 엿듣고 있던 재원과 한유림이 후다닥 멀어졌다.
삼합회라니.
일반적으로 입에 담을 만한 단어는 아니지 않나.
최근에 관련 영화나 드라마라도 나왔으면 또 모르겠는데.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봐도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저건 그냥 현재 진행형인 어떤 사안에서 튀어나온 단어라는 얘기가 되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탈 안 나는 선에서.”
“비율은요?”
“적당히 챙겨 줘. 우리는 돈은 항상 부족해서.”
“알겠습니다. 품 드는 거 보고 잘 계산해 보죠.”
“좋아. 하여간 내 생각보다도 더 나쁜 새끼라 잘됐네.”
“네, 잘됐죠.”
강혁은 껄껄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까보다 더 얼굴이 좋아진 채로였다.
리처드는 양재원과 한유림을 보며 신호를 보냈다.
더 놀려도 되지 않겠냐는 뜻이었는데, 둘 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방금 전에 삼합회니 뭐니 운운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긴 하지만 확실히 아까와는 결이 달라서 그랬다.
‘저건 누구 조질 때 나오는 웃음이야.’
‘응, 단순히 뭐가 잘돼서 웃을 때는 저렇게까지 진심이 아냐…….’
‘아, 그렇군요. 제가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 리처드 멀었네.’
‘멀었어.’
‘죄송합니다, 한 교수님. 양 형님.’
옛날 같았으면 리처드는 지금쯤 천지 분간 못 하고 까불었을 터였다.
그 결과 처맞았을 텐데 요새는 한유림과 양재원 덕에 그런 일이 많이 줄어있었다.
강혁으로서는 좀 아쉬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두들겨 패는 것으로 얻는 즐거움이 적지가 않아서 그랬다.
‘내가 진짜 많이 유해졌지.’
예전 같았으면 그냥 잘못한 게 없어도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두들겼을 텐데.
요새는 맞는 사람 입장도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맞으면서 많이 억울하지는 않을지.
도망가고 싶어지지는 않을지 등등.
하여간 덕분에 일행은 무사히 관광을 마칠 수 있었다.
몇몇은 누와라엘리야 병원으로 복귀했고 강혁을 비롯한 태화 봉사단 일행은 바로 콜롬보로 향했다.
“교수님,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봉사 일정 중에는 부르지 않으면 절대 가까이 가지 않던 놈들이 죄 강혁 주변에서 얼쩡거렸다.
그 선봉에는 역시나 용기 대장인 김승규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도 김승규가 나서지 않았나.
그 덕에 뒤지게 혼났지만, 또 그만큼 강혁에게 제일 많이 배운 것도 김승규였다.
“뭐가 감사한데?”
강혁은 그런 김승규를 그저 바라보았다.
편안히 좌석에 앉아서 다리까지 꼰 채였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져서 더 릴렉스 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확 풀리니까 당황스럽네. 내가 얘들 신경을 얼마나 쓰고 있었다는 거야, 대체.’
일이 그만큼 잘 끝났으니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일 텐데.
강혁은 봉사 정신이 투철한 것과는 별개로 좀 꼬인 인간이어서 기분이 살짝 상했다.
그 말은 곧 마주하고 선 김승규를 향해 인상을 구기고 있단 얘기가 되었다.
‘이 사람은 또 왜 이래……. 다 끝난 마당에.’
그래서 김승규도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이제 곧, 정말 곧 떠날 사람들이었다.
방금 지나친 표지판에 공항까지 20km도 채 안 남았다고 써 있었다.
와서 말썽만 부리고 가는 사람들이라 해도 이쯤 되면 한번 웃어 줄 만도 하지 않나.
심지어 태화 봉사단은 정말이지 죽도록 고생했고 또 그만큼의 성과를 낸 참이었다.
그저 외래 진료를 본 숫자만 보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예약되어 있던 수술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적어도 수백에서 천 단위의 사람이 백내장 수술을 통해 광명을 되찾았고, 기형으로 태어나 고생하던 아이들도 수십 명이 웃음을 되찾았다.
‘뭐…… 이런 소리 해 봐야 아무 소용 없겠지.’
강혁이란 인간을 처음 겪는 것이라면 여기서 들이받았을 터였다.
애초에 김승규가 그런 생을 살아온 참이기도 하지 않나.
실력이 미친 듯이 뛰어났고 또 동시에 사명감이 투철한 데다가, 병원 주인이 기업으로 바뀌는 순간이라 임용이 된 것이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을 거라는 것이 주변의 평이었다.
“덕분에…… 이미 알고 있는 수술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좀 답답하게 수술을 해 온 거 같아요.”
하여간 그런 김승규임에도 불구, 지금은 고개를 숙였다.
강혁이 너무 무섭기도 했고 또 강혁에게 진짜로 배운 것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오. 알면 됐어. 좋아. 그렇게 해 보라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강혁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듣고 싶던 말이었다.
강혁이 나름 자신이 잘 가르치는 편이라고 여기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만한 실력자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 가르쳤는데 성과가 있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더랬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아졌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뭐든지 의심해. 너는 이제 기본기만 다질 때가 아냐. 이 술기가 최선인가? 더 나은 술기는 없는가를 의심해야 할 단계야. 뭐, 보여 줬으니 알겠지? 교과서에 나온 것들…… 그리고 오래된 술기들이 다 진리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네, 명심하겠습니다.”
덕분에 강혁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조언을 덧붙이고 있었다.
꼴값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적어도 강혁과 같이 수술에 들어간 이들에게는 오히려 좀 덜 말하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강혁의 실력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김승규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내심 이 인간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다시 태화로 돌아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아니, 아니지. 배우다 사람 죽는다.’
물론 그 생각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실력이 좋아지는 거야 생명을 다루는 과의 의사로서 무조건 원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이 계속 고통이기를 바랄 수는 없어서 그랬다.
‘다른 사람 살린답시고 내가 죽을 수는 없지…….’
애초에 외과 지원한다고 했을 때, 교수들이 강조했던 말이기도 했다.
성향상 병원 밖의 화려함을 좇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어지간하면 다른 과를 하라고 했더랬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외과를 택한다는 건, 일종의 업을 짊어지는 것이라 그랬다.
사실 지금도 헷갈리기는 했다.
특히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비급여 과를 선택한 친구들이 카톡 프로필이나 인스타에 외제 차나 해외여행 사진을 올릴 때면 더더욱 그랬다.
이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저런 것들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아서 그랬다.
“김 교수.”
“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아닌 다른 것을 택하는 삶이 어디 쉽겠나.
심지어 돈을 안 택한다고 해서 다른 게 따라오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김승규는 이미 교수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벌써 성공한 삶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늘 위를 바라보는 법이었다.
김승규는 타고난 재능이 커다란 만큼 꿈도 컸다.
꿈이 크다는 건 결국,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도 의미했다.
갑자기 회한이 밀려오려는 찰나 강혁이 입을 열었다.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부드러운 얼굴로, 심지어 부드러운 강도로 김승규의 어깨를 두드리면서였다.
“지금처럼 그렇게 계속 가다 보면 세계 최고의 간 이식 의사가 되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하던 대로만 하지 말라고. 언제나 의심하고 의심하다 보면 닿을 거야.”
“아…….”
“내가 아무한테나 이런 소리 안 해. 왜냐면 하던 대로 안 하면 발전하는 게 아니라 사고 치는 놈들이 더 많거든.”
“그, 그렇군요.”
“근데 넌 아냐. 일단 신중하기도 하고…… 재능이 있어. 심지어 노력도 했지. 그러니까 흔들리지 말고 그대로 가. 너는 이 길이 어울려.”
“아……. 감사합니다.”
김승규를 마주하고 있던 강혁은 당연히 그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파동을 정확히 읽어 낼 수 있었다.
또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편안한 길 대신 고된 길로 걷게 하는 데 있어 전문가이지 않나.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누와라엘리야에 있는 애들 전부가 그렇게 코 꿰어서 온 애들이었다.
“저, 교수님 저도 감사했습니다.”
김승규는 무언가 얽힌 속이 풀렸단 얼굴로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찾아온 놈은 이현종이었다.
아무래도 김승규보다는 좀 아쉬움이 남는 쪽이었다.
강혁 본인이 내과가 아니다 보니, 가르침에 한계가 있어서 그랬다.
타고난 재능으로만 따지면 이쪽도 만만치 않은데, 그래서 더 아쉬웠다.
‘어쩌면 김승규보다도 위지.’
강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물었다.
“넌 뭐가 감사한데?”
“환자를 진료하는 데 있어서…… 더 지독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저희는 안 보이는 걸 추론해야 하는 입장이니…… 단서 하나를 추가하기 위해 더 애써야겠죠. 치료를 시작할 때는 그 모든 단서를 종합해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한 상황이어야 할 것이고요.”
다들 똑똑한 새끼들이라서 그런지 허투루 배운 놈이 없었다.
흡족해진 강혁은 이번에도 한마디 보태기로 결심했다.
“그래, 너는…… 벌써 이런저런 새로운 술기 시도하고 있지?”
“네.”
“실력이 모자란다는 말은 아냐. 너 잘해. 하지만 내과는 보이는 상태에서 치료하는 게 아닌 경우가 많지. 영상 검사를 했다고 해도, 또 씨암으로 보고 있다고 해도 그건 그림자야. 그러니까…… 좀 더 지독해질 필요가 있지.”
“네, 정말 감사합니다. 지독하게 해 보겠습니다.”
“그래, 너도 잘해 보라고. 다들 재능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