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088)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088화(1088/1120)
1088화 스미스 (1)
복막을 가르고 배 속을 헤집으면서 강혁은 잠시 스미스에 대해 떠올렸다.
그와의 깊은 인연이 생긴 것은 분명 한구에서부터였지만.
그전에도 이름은 들어 본 적은 있었다.
CIA가 중동에서 수행한 굵직한 작전에서 스미스가 빠져 있던 적이 거의 없어서 그랬다.
직접적으로는 이름이 빠져 있는 작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그 주변부에서라도 일이 되게끔 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 인간이 이렇게.’
딱히 스미스를 노렸을 것 같진 않았다.
이 인간 성격상 그곳엔 그냥 가 본 것일 테니까.
탈레반을 축출하기 전부터 공작에 힘써 왔던 사람이니만큼, 마지막도 보고 싶었을 터였다.
‘유종의 미? 그런 건가?’
유종의 미.
즉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맺은 좋은 결과를 낫는다는 말은 사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참 다르게 들리는 법이었다.
제대로 일을 해 본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그럴듯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스미스는 그야말로 유종의 미 그 자체였다.
비록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작전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지금껏 그 근방에서 해 온 일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대단한 사람인데. 이렇게 당하다니.’
소위 말하는 눈먼 폭탄에 당한 셈이었다.
“흠.”
강혁은 이제 밖에서부터 두꺼운 뱃살을 뚫고 들어가 있던 파편을 배 안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에 탑승하려다 당한 모양이었다.
얇은 철판이 배 안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철판은 스미스의 간을 푹 찌르고 있었다.
‘지방간에…… 살짝 간 경화도 오려고 하네.’
간의 부상도 어마어마하지만, 그냥 간 자체의 모습도 꽤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CIA의 스미스면 그 신분이 부국장에 준하는데 이렇게 몸 관리가 안 되었다니.
뱃살도 그렇고, 간도 그렇고.
세월을 온몸으로 맞은 느낌이었다.
아니, 간은 단순히 세월만 흘러서는 이렇게까지는 잘 안 될 터였다.
술을 혼자서건 친구들끼리서건 하여간 홀짝홀짝 잘도 까 잡수신 모양이었다.
‘이거 안 좋은데.’
강혁은 이제 다른 파편이 틀어박힌 쪽으로 시선과 손 모두를 옮긴 참이었다.
다행히 이것들은 스미스의 뱃살을 뚫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 봐야 사람 살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만큼 두껍게 쌓인 지방은 일종의 갑옷이었다.
실제로 칼로 인한 손상에 있어서, 즉 자상에서 뱃살은 생존에 유의미한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을 정도.
이렇게만 보면 살이 쪄서 다행인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혹시 간 이식 대기 명단 올릴 수 있나?”
정도 이상의 비만은 몸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었다.
스미스처럼 나이도 있고 술까지 많이 먹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특히 간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은 흔히 간염이나 알코올이 아니면 간은 괜찮을 거라 믿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NASH(non-alcoholic steatohepatitis), 즉 비알코올성지방간염이 시간이 갈수록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 네. 올라가 있습니다.”
강혁의 말에 지금껏 강혁을 안내했던 간호 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퍽 의외의 말이었다.
이제 올리라는 말이었는데, 올라가 있다니?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환자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만성 간부전의 징후가 보이진 않았다.
이번에 생긴 부상으로 인해 얼굴이나 팔다리가 급작스럽게 더 부어오르긴 했으나, 강혁의 ‘눈’은 부종도 구분이 가능했다.
“원래도 간부전이 있었다는 얘긴가? 그렇지는 않아 보이는데.”
“아……. CT 찍고 혹시 몰라서 명단 올렸습니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 수배 중입니다.”
“금방 찾을 수 있을까? 얼마 못 버텨.”
“아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마?”
“네.”
아마라는 말을 하면서 저렇게 확신에 찬 얼굴을 할 수 있는 건가.
무언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미국이 대단한 나라라지만 간이 어디서 뚝 떨어지는 나라는 아니지 않나.
그럴 수 있는 나라는 아마 지구상에 단 하나, 중국뿐일 터였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중국의 장기 매매는 전 세계적으로 이슈였다.
교도소 전체가 실은 장기 매매의 산실이라든지 하는 스산한 소문도 있지 않나.
그 실체를 신뢰성 있는 공공 단체가 입증한 적은 아직 없었다.
왜 그럴까.
중국이 너무 넓고 사람이 많다는 것은 핑계가 되지 못했다.
그 대가로 누군가는 또 다른 생명을 얻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쨍그랑.
강혁은 애써 억측이라 생각하며 스미스의 배에 박혀 있던 파편들을 뽑아 트레이에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눈에 보이는, 그러니까 큼지막한 파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강혁의 핀셋이 남들이 보기엔 영 엉뚱한 지점을 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저기에 대체 뭐가 있다고 저럴까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톡.
하지만 그렇게 짚은 핀셋이 트레이로 향할 때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작은 소음이 일었다.
무언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봉고에 탑승하려다 당한 모양이야. 범인은 아마 같이 탈출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아직 조사 중에 있습니다만…… 봉고가 터진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유리도 꽤 있어.”
“아.”
“하지만 이건 지금 꼭 제거하지 않아도 되는 거긴 하지.”
강혁은 여전히 제거하고 있으면서 이상한 말을 했다.
고개는 간호 장교를 향하고서였다.
아까부터 종종 그랬으니 사실 별일은 아니었다.
다만 ‘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간호 장교가 아니네.’
물론 강혁의 눈은 언제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군인의 전형이라고 보였던 모습이 지금은 영 어색하게만 보였다.
일단 간호사 면허도 없을 터였다.
여기까지 들락거리는 간호 장교라면 지금 강혁이 하는 술기를 저토록 침착하게만 두고 보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
‘CIA…….’
감히 미군 앞에서 위장 신분을 사용할 수 있는 단체가 달리 또 어디 있을까.
CIA라는 단체의 고문직을 맡고 있지만, 이놈들은 진짜 좀 이상한 놈들이었다.
별의별 공작을 다 했다.
“간. 준비되면 바로 말해요. 이 환자 간 없으면 죽어요.”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간 정도야 쉽게 구해 오지 않을까.
군인이라면 몰라도 CIA면 어지간한 건 할 수 있다고 봐야 했다.
미국 법을 따르겠다고 주구장창 떠드는 놈들이니만큼, 미국 밖에서는 무법천지로 떠도는 놈들이기에 그랬다.
아마 강혁도 알게 모르게 어긴 법이 굉장히 많을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 평화로이 누와라엘리야에서 봉사나 하고 있을 수 있을까.
그건 다 저놈들 덕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강혁에게 끝 모를 호감을 가지고 있는 스미스 덕이라고 해도 좋았다.
“좋아.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간다. 2호. 너도 중요해.”
“네.”
“일단…… 파편 지금 제거 안 할 거야.”
“네. 네?”
간에 틀어박힌 파편은 작지 않았다.
몸에 틀어박혔다는 걸 감안했을 땐 가히 거대하다는 말조차 어울릴 지경이었다.
그걸 제거하지 않겠다고?
2호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록 지금 강혁의 머리통 때문에 수술 부위가 잘 보이진 않지만, CT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노이즈…… 이거.’
CT라고 해서 완벽하게 잘 보이는 건 아니었다.
영상 검사가 만능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사실 CT와 MRI 모두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서 그랬다.
쉽게 말하면 그림자를 보는 검사이기에 이물이 낑겨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는 인위적인 노이즈가 발생했다.
그 때문에 이런 식으로 파편이 푹 들이박힌 상황에서는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이 불가했다.
그럼에도 간 절반은 나갔을 거란 생각은 들었다.
“이거 지금 빼면 이 환자 바로 죽어.”
강혁은 그런 2호의 생각을 싹 읽어 내고는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럴 것 같았다.
파편을 뽑으면 속은 시원하겠는데, 그럼 환자도 시원하게 잃을 거란 느낌이 일었다.
그럼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까 강혁의 재촉을 받고 잠시 밖으로 나간 간호 장교를 제외한 모두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빼도 되게끔 하고 뽑아야 해.”
“어…… 어떻게.”
강혁도 분위기를 못 읽는 사람은 아니라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불충분했다.
천재들의 사고란 대개 이러하지 않던가.
남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중간 다리가 유실되어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간…… 부분 절제술을 이대로 할 거야.”
“네? 아니, 그게. 시야가…….”
“그래서 네가 중요해. 자, 지금은 이렇게 당겨라.”
“어어…… 저 팔이.”
“참아. 안 그러면 환자가 죽어.”
“아.”
죽는다는 말은 언제 어느 때고 참 효과적인 협박이었다.
특히 그 대상이 의료진일 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늘 죽음과 밀접하게 연하고 사는 사람들이니만큼 죽음의 무게를 오히려 더 잘 느낄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죽음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고나 할까?
비단 환자를 둘러싼, 그러니까 환자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변화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환자의 죽음을 경험한 의료진의 마음에도 반드시 변화가 일었다.
성격에 따라 변화의 정도나 방향이 조금씩 다르긴 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걸 달가워할 수는 없었다.
‘좋아.’
당연히 2호에게도 효과는 있었다.
강혁은 한결 좋아진 시야를 이용해 파편이 박힌 부분을 포함한 간 부분 절제술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역시 범위 결정부터였다.
그리고 그 범위 결정은 간의 구획을 알아보는 것부터 제대로 해야만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멀쩡한 간이 아니라 다친 간이었으니까.
“흐.”
‘눈’을 최대한으로 발동한 강혁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너무 힘들어서였는데, 남들에게는 당연히 이상해 보일 따름이었다.
다행이라면 그 누구도 지금의 강혁을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모두 강혁이 행하는 수술만을 지켜 보고 있었다.
꿀꺽.
마른침만 삼켜도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집중한 채였다.
의료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임혜란이나 한석준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지금 여기에 어떤 경유로 왔는지에 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타다다닥.
강혁은 보비, 즉 전기 칼로 방금 확인한 구획을 표기했다.
평소라면 그냥 그 자리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잘랐겠지만.
이렇게 망가진 상황에서는 계속 집중을 해야 하기에 그랬다.
그러다가는 이 수술이 끝나기도 전제 쓰러질 수도 있었다.
‘오진승 원장이 폴리 꽂는 날이 오면…….’
상대가 재원이면 패기라도 하지.
오진승은 그럴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강혁이라 해도 선은 있었다.
‘안 되지, 안 돼.’
해서 강혁은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면서 동시에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한 땀 한 땀 수술을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