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09)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09화(109/1120)
109화 길바닥에서 (2)
“빠, 빨간불!”
“괜찮아, 괜찮아.”
“괜찮긴! 이 사람이 정말 돌았나!”
강혁은 장미의 욕설을 배경음 삼아 계속해서 달렸다.
그야말로 거칠기 짝이 없는 운전 솜씨로.
한 가지 다행한 일이라면, 주변 운전자들이 그래도 구급차에 대한 배려를 해 주었다는 점이었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강혁, 장미 그리고 재원은 지금쯤 한국대학교 병원으로 이송 중이었을 게 분명했다.
각자 다른 구급차에 실려서.
“저긴가?”
“미친 듯이 밟으면서 한가롭게 말하지 말라고요!”
“저긴가!”
“긴박하게도 말하지 말고! 더 불안해!”
“어쩌라는 거야.”
강혁은 피식 웃고는 그대로 등산로를 향해 차를 몰았다.
다행히 근처 지구대에서 경찰들이 나와 인원을 한쪽으로 통제 중이었다.
간간이 말 안 듣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왜애애애앵.
귓전을 때리는 사이렌 소리에 황급히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쿵.
딱히 차 다니라고 만든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어어.”
“교, 교수님! 이러다 차 망가지겠어요!”
여태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재원이 황급히 외쳤다.
뒷자리에 있던 고가의 물품들이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별로 걱정하는 투가 아니었다.
“아까 보니까 다 독일이랑 일본제던데.”
“아니……. 갑자기 뭔 사대주의예요! 외국 거라고 안 망가진답니까!”
이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란 말인가.
국산이 외제 넘어선 지가 언젠데.
당장 강혁이나 재원이 애용하는 핸드폰만 해도 세계 제일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재원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적어도 의료 기기에서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독일이랑 일본은 구급차에 싣는 물건 엄청 엄격하게 관리해. 절대 안 망가져. 내가 해 봐서 알아.”
강혁은 그대로 액셀을 밟아 산을 오르며 말했다.
그럴수록 차의 흔들림은 더해져만 갔다.
“어우……. 나 멀미할 거 같은데…….”
급기야 장미는 얼굴이 핼쑥해 진 채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덜컹거리던 뒷자리에 앉은 재원은 아예 말을 잃었다.
태연한 사람은 강혁뿐이었다.
‘중동 오프로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거긴 기본이 흙바닥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 바닥엔 아주 높은 확률로 건물 잔해 등이 놓여 있었다.
재수 없을 땐 총 맞아 죽은 시신이 누워 있을 때도 있었고.
“야,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한참을 더 올라갔을 때쯤, 강혁이 옆을 돌아보았다.
장미는 내내 윗배를 부여잡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안 그러면 토할 거 같은데요.”
“엄살 부리지 말고. 전화나 걸어 봐. 정확한 위치 잡아야지. 우리 이제 갈림길이라고 전해.”
그 말에 앞을 돌아보니 과연 산의 각기 다른 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아, 알겠어요. 근데 차는 계속 가는 거예요?”
“한시바삐 가야 하는데?”
“이런 젠장…….”
덕분에 장미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조그마한 핸드폰을 보며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네! 오셨습니까?”
요원은 벨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그가 얼마나 강혁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네. 저희 지금 갈림길입니다.”
“아, 거의 다 오셨구나. 저희가 내려가겠습니다!”
“어……. 환자 끌어 올리신 거예요?”
“네. 근처 소방서에서 출동해 주셔서요.”
그 말을 듣고 보니 한쪽 갈림길 입구에 서 있는 작은 소방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모양이었다.
“뭐래?”
강혁은 그 근처에 차를 멈춰 세운 후 물었다.
장미는 소방차 너머를 가리켰다.
“사고 지점이 저쪽인가 봐요. 환자는 다행히 끌어 올렸답니다.”
“그래? 흠.”
장미의 예상과는 달리 강혁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우려가 깊어 보였다.
‘제대로…… 올렸으려나?’
머리를 다친 환자는 대개 필연적으로 경추 부상을 동반하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그런 환자를 운반할 때는 반드시 해당 부위를 고정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2차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강혁은 지금까지 그런 사례를 수도 없이 봐 온 몸이었다.
“저기 옵니다!”
그가 잠시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장미가 다시 한번 소방차 너머를 가리켰다.
그녀의 말대로 한 무리의 요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준비해야지!”
그것을 본 강혁이 급히 운전석에서 뛰어내렸다.
2차 손상이 발생했든 그렇지 않든 이미 끝난 일 아닌가.
그가 할 일은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할 것.
그뿐이었다.
“네, 네!”
재원도 급히 뒷자리에서 뛰어내린 후, 뒷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곤 차 안에 놓여 있던 침대를 아래로 끌어 내렸다.
밖에서 환자를 싣고 다시 넣을 수 있도록 고안된 침대였다.
“확실히 장비는 좋단 말이야.”
강혁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이송용 침대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환자를 든 요원들이 구급차에 거의 도달했다.
그중 현장에 있던 요원 한 명이 강혁에게 부리나케 달려왔다.
강혁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강혁을 본 적이 있었다.
“백 교수님! 환자 상태 및 신원 적힌 자료입니다.”
“아, 고마워요.”
강혁은 그가 건네준 자료를 뒤적거리며 물었다.
“의식은 불명. 혈압은 70 아래로……. 이완기는 안 잡히나?”
“네. 잡히질 않습니다. 일단 실으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러지. 그럼. 흐음.”
강혁은 들것에 실린 환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행히 머리와 경추에 고정대가 아주 단단하게 걸려 있었다.
애초에 들것 자체가 강화 플라스틱으로 된 고정 들것이었다.
“잘하셨네.”
그래서 강혁은 다소 뜬금없는 칭찬을 던졌다.
그사이 환자는 무사히 구급차에 설치된 침대에 옮겨 졌다.
강혁은 침대를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입을 열었다.
“시간 없으니까 가면서 얘기하죠.”
“아, 네.”
현장 요원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올라탔다.
뒤이어 강혁과 재원도 다시 뒷자리에 올라탔다.
구급차는 상당히 큰 편이었지만 성인 네 명이 올라타니 비좁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럼, 출발할까요?”
아까부터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던 장미가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며 물었다.
그 말에 강혁은 말없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장미는 기다렸다는 듯 차를 돌아 뺐다.
공간이 거의 없었는데, 그야말로 귀신같은 솜씨였다.
근처 소방서에서 출동했다던 소방차는 아직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었다.
“왜 이렇게 잘해?”
강혁의 말에 장미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예전에 아빠 때문에 강남에서 발렛파킹 알바 한 적 있어요.”
“강남 발렛…….”
재원이 아연한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곳에서 대리주차했다는 건 그야말로 험악한 운전과 기묘한 스킬의 달인이라는 얘기 아닌가.
어쩌면 오는 길보다 가는 길이 더 험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구급차는 그의 예상을 확인이라도 해 주겠다는 듯 빠른 속도로 비탈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쿵, 쿠쿵.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뒈졌구나…….’
그가 잠시 막막한 미래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동안 강혁은 환자에 관한 이것저것을 더 물었다.
“좌측에 동공 반사가 없었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확인한 건 언제죠?”
“발견 당시에만 하고 그 이후로는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음.”
강혁은 반사적으로 옆에 있던 시계를 돌아보았다.
처음 신고가 왔을 때에서 무려 40분이 넘게 지나 있었다.
헬기로 왔다면 이미 병원에 거의 도달해 있고도 남았을 텐데.
차로는 제아무리 험하게 운전을 해도 이게 고작이었다.
“노예, 네가 다시 확인해.”
“아, 네.”
“소변이나 대변 본 것은 없는 거죠?”
“네. 방뇨나 방분은 없었습니다.”
강혁은 재차 환자의 바지 근처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좋은 사인이었다.
방뇨나 방분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척수 손상이나 대뇌 손상을 의심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게 없을 땐 척수의 심각한 손상을 아예 배제할 수 있었으니까.
“다행이군. 보호자랑 연락은?”
“아직…… 아직입니다.”
“혼자 온 건가? 같이 온 사람이 없었어요?”
“네. 평일엔 이런 등산객이 더 많습니다.”
“그럼 부탁 좀 드려요. 우린 일단 이 환자 처치부터 할 테니까.”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장 요원은 강혁이 말하는 처치가 무엇인지 감히 짐작조차 못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 바리깡 있지?”
“아, 네.”
“줘 봐. 머리 밀어야지.”
“네.”
재원은 가운 주머니에서 이발기를 꺼내 강혁에게 건네주었다.
충전도 완벽했고, 길이 설정도 2mm로 맞춰진 상태였다.
의사가 왜 이런 걸 가지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테지만.
생각보다 쓸 일이 아주 많은 물건이었다.
특히 중증외상센터에서는 더욱 그랬다.
위잉.
강혁은 무척이나 능숙하게 환자의 머리카락을 밀기 시작했다.
“어?”
요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병원 가면 밀 텐데……. 여기서 미리 미나 보지.’
시간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역시 안중헌 선배에게 들었던 대로 강혁은 훌륭한 의사인 것이 틀림없었다.
“아, 동공 반사 어때?”
강혁은 머리카락을 엄청난 속도로 밀어 가며 재원을 바라보았다.
“네. 왼쪽은 없고……. 이미 확장되어 있습니다. 유두부종도 일부 관찰되었습니다.”
“역시 그런가.”
“오른쪽은 아직 확인됩니다만. 이쪽도 유두부종이 있고, 정상 소견보다 조금 느립니다.”
“뭐가. 반사가?”
“네.”
“서둘러야겠네.”
“네, 교수님.”
일단 유두부종이 있다는 건 매우 좋지 못한 소견 중 하나였다.
뇌압이 상승해서 눈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동공 반사 억제라니.
이건 더 큰 문제였다.
‘뇌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
뇌에 직접 손상이 있었다면 손쓸 도리가 없었다.
강혁이 아니라 강혁 할아버지가 와도 그건 무리였다.
다만 뇌출혈로 인해 눌려서 발생한 거라면 어느 정도 돌아올 여지가 있을 터였다.
물론 그게 가능해지려면 최대한 빨리 수술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미 상당히 늦었어.’
헬기가 있었더라면 얘기가 달라졌을 텐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또 화가 났다.
‘개새끼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늦었고, 환자는 눈앞에 있는데.
강혁은 서둘러 머리카락을 미는 것을 완료할 수밖에 없었다.
“닦겠습니다.”
재원은 기다렸다는 듯 베타딘으로 반들반들해진 머리를 닦기 시작했다.
‘어?’
요원은 아까보다 조금 더 놀란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미는 것까지야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베타딘이라니.
이건 좀 이상한 일 아닌가.
하지만 끼어들긴 좀 어려워 보였다.
둘은 너무 심각했다.
“빨리, 빨리!”
“네.”
강혁은 국소 마취제를 주사기에 재면서 재원을 채근했다.
그러다 문득 일련의 작업이 너무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달리는 차 안이라고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야, 조폭! 지금 달리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차가 고요해?”
“엄청 밟고 있어요! 그냥 제가 교수님보다 운전을 훨씬 잘해서 그런 거니까 그냥 닥치고 수술이나 해요!”
“다, 닥쳐?”
“원래 운전대 잡으면 좀 거칠어지니까 이해하시고!”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