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10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105화(1105/1120)
1105화 미친 인턴? (2)
인턴 놈이 돌았나.
1년 차 하준수는 자기만 믿으라고 하고는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강혁의 뒤통수를 보며 생각했다.
물론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두꺼운 목과 드넓은 어깨 그리고 수술복을 입음으로써 비로소 드러난 팔뚝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돈 새낀데 함부로 말하다가 진짜 미쳐서 주먹이라도 휘두르면 어찌 되겠나.
‘죽겠지? 저건 죽어.’
의사 몸이 왜 저럴까 이전에 사람 몸이 왜 저럴까 하는 생각부터 들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래서 1년 차 하준수는 불만을 품었지만, 절대 티를 내지는 않은 채 잠자코 수술방 안에 들어섰다.
“집도의 교수님 언제 와요?”
마취과 당직의가 퉁명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여기서 지금 배를 열지 않으면 환자가 위험해진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외과 의국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놈이 칼 대는 것도 만만치 않게 위험한 일이었다.
‘인턴이 한다고 하나?’
하준수는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1년 차가 집도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렇다고 인턴이 한다고 하는 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선생님이 하십니다.”
해서 눈알만 굴리고 있었는데 강혁이 대뜸 입을 열었다.
뒤에 있던, 그러니까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있던 응급의학과 김지윤과 인턴 강성지의 눈이 동그래졌다.
‘거기서 왜 네가 말을 해?’
‘수술방에서 왜 제집 안방처럼 구는 건데…….’
놀란 포인트는 서로 좀 달랐지만 하여간 놀라서 그랬다.
물론 하준수만큼 놀라진 않았다.
“어, 어. 그러니까.”
“1년 차가 집도한다고?”
“곧 최윤섭 교수님 오십니다. 근데 시간이…….”
“그러니까 처음에 칼을 너가 대?”
“그…….”
마취과 의사도 놀랐다.
설마설마 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일이 이렇게 되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서 그랬다.
‘우리 병원이 나락 가고 있는 건 알지. 아니, 이미 나락이었어. 그래도 이건.’
미친놈들인가 싶었다.
그래도 외과면 무안대학교 병원을 이끌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애들 아닌가.
근데도 이런다고?
이러면 다른 과는 대체…….
“괜찮습니다. 제가 보조합니다.”
그러고 있으려니 강혁이 대꾸했다.
한번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얼굴이지 않나.
게다가 한 학년에 사람이 많은 학교도 아니다 보니, 강혁은 위아래 6년 선후배가 모두 알았다.
“인턴 아니니.”
동시에 보기만 해도 화가 수그러드는 얼굴이기도 했다.
일단 너무 잘생겼고, 또 동시에 위압적인 인상이기도 해서 그랬다.
해서 마취과 의사는 대뜸 화를 내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맞습니다.”
“근데 네가 보조하는 게 중요해?”
“저는 백강혁이니까요.”
“으음.”
얘가 좀 이상한 애였나?
마취과 당직의는 머릿속 기억을 곰곰이 들추어 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강혁이 미친 애라는 정보는 없었다.
좀 특이하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하여간 이대로 두면 환자는 죽습니다. 빨리 마취 걸어 주세요.”
“아니, 근데 집도의가.”
“집도의는 중요치 않아요. 보조의가 중요합니다.”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죽어요, 진짜.”
강혁은 당직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무서웠다.
그렇다고 손이 움직여지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인턴 말을 들을쏘냐 싶었다.
“아, 최 교수님이 일단 이렇게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책임은 당신께서 지신다고 하셨고요.”
이대로 가다간 칼부림이라도 날 것 같은 기세이지 않나.
해서 하준수가 급히 끼어들었다.
다시 말하면 최윤섭 이름을 팔았다.
효과는 있었다.
“아……. 최 교수님이…… 그래, 그럼. 뭐.”
최윤섭의 위명은 대단한 것이었기에 그랬다.
비록 하고자 했던 일은 실패했지만.
그 결과 낙향했지만.
그럼에도 그 뜻을 꺾지 않고 그야말로 환자를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나.
교수라고 하면 이유 없이 반감을 가지던 이들조차 최윤섭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삶이 그의 말을 증명하기에 그랬다.
“그럼…… 겁니다.”
당직의는 최윤섭 이름이 나오자마자 곧장 마취를 걸었다.
워낙에 험한 병원이다 보니 일선에 있는 의사들의 기본기는 죄 좋았다.
당직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어서, 금세 마취를 걸고 기관 삽관도 해냈다.
“자, 그럼 시작하죠.”
강혁은 배를 걷어 내고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술기였다.
이대로 찍어서 올리면 교본으로 써도 좋겠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실제로 외과 1년 차면 지난 한 달은, 그러니까 들어오기 전 마지막 인턴 달은 외과에서 거의 이것만 해서 달인이 되기 마련인데 하준수가 보기에 그보다 훨씬 잘했다.
아니, 비교하는 게 좀 죄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이건 잘하는데…….’
물론 그렇다고 안심이 빡 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불안감은 여전히 뱃속을 간질거리고 있었다.
아니, 점점 더 심해진다고 봐야 했다.
칼잡이가 되기 위해 외과에 온 건 맞지만, 이렇게 빨리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그랬다.
“손 씻고 오시죠.”
그에 반해 강혁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인턴이 수술에 참여하게 되면 긴장을 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들뜨기 마련일 텐데.
그저 일상적인 말투와 행동을 고수하고 있었다.
“어, 어어.”
신기한 건 그런 강혁을 보고 있다 보니 점차 심장박동 수가 잦아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원래 그렇지 않나.
무서운 상황에서도 곁에 있는 사람이 의연하면 괜찮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대학 병원의 의사들이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 포커페이스인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쉬웠다.
환자들은 자칫 잘못 보면 무감해 보이는 의사 얼굴을 보며 더러 안심하곤 했다.
“자, 그럼…… 여기.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도 씻었고, 가우닝도 했고, 드랩도 한 후였다.
아니, 숫제 메스를 쥐고 있었다.
다시금 심장이 쿵쾅거리려는 찰나 강혁이 긴 손가락을 곧게 뻗어 환자의 배를 슬쩍 그었다.
“어?”
순간 하준수는 환자의 배가 갈라지는 환상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김지윤과 강성지도 그랬다.
사실 둘은 얼떨결에 따라왔던 만큼, 수술이 시작되자마자 나가려고 했지만 그걸 본 이상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뭐야…….’
‘나 잠이 부족한가.’
엉뚱한 생각이라 여겼지만 그럼에도 눈을 떼지 못했다.
“말이 어렵나. 다시 말해 줄게요. 여기 이렇게.”
“아, 어어. 그래.”
“당겨 줄게요. 손톱자국 따라서 그어요.”
“어.”
강혁만은 여전히 일상적이었다.
하준수는 그의 말대로 손톱자국을 따라 칼을 그었다.
강혁이 정확하게 수직 되는 방향으로 당겨 주고 있었기 때문에, 절개는 수월했다.
‘내가 이렇게 잘했나? 타고났나?’
뭐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마취과 의사가 보기에도 그랬다.
‘제법인데? 처음 맞나?’
절개선부터 방향 그리고 속도도 적당했다.
‘에휴…….’
모두가 안심하는 가운데 강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만큼 보조를 해 줬으면 이보단 나아야 할 텐데.
솔직히 말해 개판이었다.
발로 해도 이보단 잘할 것 같았다.
아니, 잘할 게 뻔했다.
‘어쩔 수 없지. 1년 차니까.’
강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보조를 지속했다.
깊이가 엉망이다 보니 피가 많이 났다.
‘이게 안 보이나‥….’
밖에서 봐도 다 보이는 핏줄인데.
그걸 이렇게까지 다 잘라?
일부러 하라고 해도 어려울 것 같았다.
슥.
하지만 일단 보조를 해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강혁은 거즈를 들어 피를 닦아 내면서 동시에 다음에 그어야 하는 부분을 노출시켜 주었다.
“음.”
한데 하준수는 칼을 긋는 대신 멈칫거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암 덩이라도 눈앞에 둔 줄 알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실제로는 살갗 조금 째 놓은 주제에.
“뭐 하세요?”
“어? 아니. 아까 본 거 생각하고 있어.”
아까 본 거라.
‘아, 교과서 말하나.’
교과서라니.
그건 본 1, 2 때 다 떼야 하는 거 아닌가.
실제로 강혁은 본 3 때부터는 교과서를 본 적이 없었다.
공부를 안 했다는 말이 아니라 논문이나 케이스 리포트로 공부했더랬다.
교과서는 이미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진짜 공부 어지간히 안 하는구나.’
가르쳐 줄까도 싶었지만.
그 순간 최윤섭의 말이 떠올랐다.
아래 연차가 자꾸 윗사람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되는 법이라고.
왜 안 되는 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최윤섭의 표정만은 확실했다.
그는 진정으로 강혁을 위해 말했다.
“기억 안 나면 그냥 제가 당겨 주는 곳 째요. 아니 외과 의사가 압베 수술 순서도 모르면 어째.”
그럼 가르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해서 혼냈다.
“어?”
순식간에 인턴에게 혼나는 레지던트가 된 하준수는 당황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뒤에 있던 김지윤과 강성지도 그랬다.
‘와……. 나한테는 안 저래서 다행이다.’
‘미친놈아.’
생각은 달랐지만 하여간 누가 더라고 하기도 어려울 만큼 놀랐다.
“여기 째라고.”
하준수도 놀랐다.
너무 놀라서 화는 나지 않았다.
그저 강혁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이렇게?”
“아니…… 수직으로 째야죠.”
“아, 그래. 이렇게.”
“그래.”
어느샌가 강혁이 말을 중간중간 놓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강혁이 가이딩해 주는 대로 째고 있을 뿐이었다.
신기한 일은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복막이 갈라지고, 또 문제의 시발점이 된 충수 돌기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덥석.
강혁은 그 충수 돌기를 핀셋으로 슬쩍 잡아냈다.
벌써 끝이 살짝 터져서 고름이 나오고 있었다.
“여기 일단 묶고.”
“묶어?”
“타이.”
“나…….”
“아.”
강혁은 한숨을 쉬더니, 간호사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준수와는 달리 베테랑인 간호사는 잠시 당황했지만 수술 흐름은 이내 읽어 냈다.
‘어……. 그러니까 타이 한다 이거지. 그래 이게 맞기는 해.’
황당했지만 뭐 어쩌겠나.
상대는 인턴이지만 일단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해서 켈리를 건네 주었고, 강혁은 켈리로 충수 돌기 끝을 물었다.
“이거 잡아요.”
그러곤 하준수에게 켈리를 건넸다.
“어, 어어.”
다음은 타이였다.
하준수는 카메라가 없음에 아쉬움을 느꼈다.
‘아…….’
그만큼 완벽한 타이였다.
아니, 아름다울 정도였다.
‘확실히 타이는 어렵네.’
하지만 강혁은 알았다.
최윤섭에 비하면 모자람이 있다는 것을.
그였다면 더 단단했을 터였다.
더 빨랐을 터였고.
그에게는 그저 하준수가 이상한 사람일 뿐이었다.
‘근데 이놈은 왜 이걸 할 줄 모르지. 안 배웠나.’
배웠으면 할 줄은 알아야 하지 않나.
근데 왜 모른단 말인가.
강혁은 다시금 고개를 가로젓고는, 가위로 툭 하고 잘랐다.
그렇게 충수 돌기가 밖으로 나왔다.
“어…….”
“어.”
“어어.”
다시 말하면 일반적인 충수돌기염 수술은 끝났다는 얘기였다.
시계를 돌아보니 이제 겨우 30분 남짓 지났을 뿐이었다.
능숙한 외과 의사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저리 수준은 되었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렸다.
최윤섭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