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10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106화(1106/1120)
1106화 미친 인턴? (3)
“잘했네.”
최윤섭은 수술을 보고 짤막하게 말했다.
바로 손 씻으러 돌아가면서였다.
그런 최윤섭을 바라보던 4년 차가 뒤이어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놀랍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크게 놀란 상황이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음에도 놀라움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어……. 그게.”
반면 하준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집도의가 자신인 것은 맞았다.
칼을 댄 것도 맞았고.
하지만 이 수술을 과연 자신이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닌데……. 내가 한 게 아냐.’
하준수는 대답 대신 강혁을 바라보았다.
강혁은 그저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말투도 그랬다.
4년 차는 그래서 더 황당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거 어떻게 한 거냐고.”
“교과서, 논문에 다 나와 있는 대로 한 겁니다. 아, 저는 보조를 했다는 얘기입니다.”
“아니…….”
교과서대로 수술해야 한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4년 차가 되어 가지고서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되나.
아니, 실제로 이 수술은 많이 해 보기도 해 봤더랬다.
4년 차쯤 되면 원래 해야 하는 수술이기도 하거니와 여긴 환자가 워낙 많은 병원이기도 하고 또 최윤섭이 수술시키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어서 더 했다.
‘어떻게 이렇게 잘했냐고, 이 새꺄.’
절개선이 조금 길긴 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완벽했다.
적어도 4년 차가 보기엔 그랬다.
‘나만큼 잘한 거 같은데, 이거?’
본인이 손이 좋다고 자부하던 편이거늘.
이제 겨우 1년 차 된 놈이 인턴의 보조를 받고 이렇게 해?
혹시 하준수가 천재였나?
‘평범하지 않았나……?’
외과가 죽은 지는 오래된 일이었다.
일은 힘들고 또 안 좋은 환자들을 보다 보니 소송의 위험에도 처하기 일쑤인 데 반해 처우는 개판이지 않나.
괜히 외과 의사들이 자조적인 말로 이제는 제발 필수 과 살리겠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정치인들의 말뿐인 선언에 질릴 대로 질려 버려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운의 꿈을 안고 외과에 들어가는 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동기들보다 더 힘들고 더 가난하겠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은 재능 있는 이들이 왜 없겠나.
‘문제는 우리 의국이…….’
그러나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오기에 무안대학교 병원 외과는 너무 오지였다.
하준수 또한 그렇다고 보기엔 학교 성적도 그렇고 인턴 성적도 그렇고 평범 그 자체였다.
“뭐 하고 있어? 손 닦아.”
“아, 네!”
고민을 이어 나갈 수는 없었다.
수술이 잘되어 가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안 끝난 것 또한 사실이어서 그랬다.
아니,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새어 나간 고름을 찾아서 없애야 할 테니.
그 과정에서 혹시 새로 생겼을 수 있는 손상도 찾아내야만 했고.
“음.”
4년 차, 그러니까 보조의가 손을 닦으러 나간 사이 최윤섭은 다시 한번 환자 상태를 살폈다.
장갑 낀 손으로 수술 부위를 뒤적거렸다, 이 말이었다.
그 안에도 묘리는 숨어 있었다.
‘확실히…… 저렇게 하면 손상이 안 가겠군.’
하준수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만, 강혁은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은 원치 않는 정보까지도 다 가져다주었으니까.
‘천재…… 진짜 천재구나.’
반면 최윤섭은 그저 감탄하고 있었다.
아마 강혁이 직접 칼을 쥐었다면 이것보다도 더 잘해 냈을 터였다.
지금도 딱히 흠을 잡기 어려울 만한 수술이지만 아마도 더 잘했을 터였다.
여기저기 예후에는 크게 영향 없을 만한 실수들이 눈에 띄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탁탁 치고 들어온 솜씨였다.
째야 할 곳을 쨌고, 박리해야 할 곳을 박리했으며, 묶어야 할 곳을 묶었다.
‘그래……. 너 들어오면 외과도 발전할 거야. 그만한 토양을 내가 만들어 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만.’
최윤섭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내밀었다.
간호사는 그런 최윤섭에게 배 당길 기구를 줬다.
하도 오래된 사이다 보니 척 하면 척이었다.
지익.
그렇게 수술 부위가 다시 완전히 당겨지고, 마침내 배 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염증이 새어 나갔어. 이렇게 되면 복막염의 원인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큰일이지.”
“네.”
“세척 하면서 장 상태를 보는 게 중요해. 혹 장이 이미 괴사 된 부분이 있다면 큰일이야. 터지면 완전 난리 나는 거니까.”
“네.”
“자……. 봐 봐.”
최윤섭은 두꺼운 손으로 배 속을 뒤적거렸다.
세척액을 쭉쭉 밀어 넣었다 석션 했다를 반복하면서였다.
솔직히 말해서 깡패 했으면 더 잘나갔을 것 같은 인상의 사내라 손도 너무 컸다.
보통 이러면 수술이 잘 안 돼야 정상일 텐데, 최윤섭은 솜씨가 좋았다.
“좋아. 다행히 미리 들어와서…… 새어 나간 게 거의 없어. 묶는 것도 잘한 모양이야.”
최윤섭은 일부러 하준수를 보면서 칭찬을 했다.
하준수로서는 정말로 민망한 상황이었다.
4년 차도 자신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보니 더했다.
그렇다고 ‘인턴이 했어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쩐지 외과의 근간을 흔드는 말 같아서 그랬다.
“좋아. 뭐. 이대로 닫지.”
하여간 수술은 곧 끝났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하준수, 백강혁 콤비만으로도 가능했던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끝을 내도 좋은지 어떤지에 대한 컨펌이 어디 쉽겠나.
그런 건 진짜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법이었다.
“네. 그럼 깨우겠습니다.”
“좋아. 일반 병실 올리고. 이제 쉬자고.”
최윤섭은 그렇게 수술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백 선생 어디 갔지?”
강혁을 찾기 위함이었다.
한데 없었다.
인턴 주제에 수술까지 했으면 감동이라도 남아 있을 텐데.
그럼 수술방 근처를 배회해야 정상일 텐데.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없어져 있었다.
“아, 그게.”
대신 김지윤이 있었다.
나는 왜 여깄지? 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 자네는 누구지?”
“그.”
3년 차쯤 되면 교수 대하는 법도 좀 배워서 익숙해지지 않던가.
게다가 최윤섭은 외과 교수였다.
남의 과 교수란 얘기였다.
그렇다 해서 군대처럼 완전히 쌩 까고 아저씨 취급하는 건 안 되겠지만.
하여간 원래는 이렇게까지 불편하면 안 된다, 이 말이었다.
‘존나 무섭게 생겼네…….’
인상으로만 치면 김지윤도 한 인상 하는 편이었다.
애초에 그렇지 않고서 응급의학과에 남을 생각을 할 수 있었겠나.
온갖 험한 환자들을 방파제 없이 봐야 하는 과 아닌가.
당장 오늘도 주취자들에게 잠시 시달리다 온 참이었다.
술 마신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사회가 관대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병원에서는 더했다.
술 먹고 의사 치는 걸 스포츠처럼 생각하는 이들조차 있었다.
경찰에서도 딱히 제지하지 않았고.
‘와…….’
그런 곳에서 생존할 수 있을 만한 얼굴을, 김지윤은 가지고 있었다.
최윤섭은 그보다 한 열 배는 험악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말이 쉽게 안 나왔다.
“뭐.”
“아니, 그. 백 선생은.”
게다가 시방부터 해야 할 소리가 좀 이상한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떨렸다.
“백 선생 뭐.”
“집에 갔습니다.”
“집에?”
“네.”
“수술하고?”
“네. 내일 출근해야 된다고…….”
“어느 과 도는데.”
“응급실입니다.”
“아.”
최윤섭은 황당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집에 갔다고?’
수술하고 집에 가?
집도 시켜 준 교수한테 인사도 안 하고?
핑계는 내일 일해야 된다고?
이러면 다시 부르기도 좀 그렇지 않나.
‘거참……. 더 이상해졌나. 아니지, 원래도 좀 그랬지.’
나쁜 놈은 아니었다.
거듭 말하지만 천성이 나쁜 놈은 아니었다.
오히려 착한 놈이었다.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열망에 불타는 놈이니까.
문제는 너무 불타서 그런가 다른 일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특히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뭐. 그래.”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일이 있나.”
“아니, 그게.”
“하여간 응급실 레지던트가 왜 여기 왔어?”
“그…… 백 선생 때문에.”
“음.”
그러면서도 카리스마가 있었다.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그를 따르고 있달까?
최윤섭이야 연배가 워낙에 차이 나는 데다가 접점이 아직까지 많지는 않아서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동기 중에서는 강혁의 추종자들이 있을 지경이었다.
‘너도냐?’
최윤섭은 쯔쯔 혀를 차고는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가서 쉬어.”
“아, 네.”
“아.”
“네?”
“백 선생 다음에 어디 도는지…… 모르지? 그런 건.”
“아.”
김지윤은 충격받았다.
‘내가 왜 알고 있지…….’
인턴 스케줄을 왜 꿰고 있냔 말이다.
그것도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인데.
하여간 아는데 저렇게 무서운 사람에게 털어놓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는 게 이상하다 어쩐다 하는 생각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외과…… 돈다고 들었습니다.”
“응? 강혁이랑 그런 얘기도 해?”
“네? 아뇨. 그건 아닌데…… 저도 어디서 들었는지 잘.”
“뭐, 잘됐네. 알았어.”
최윤섭은 추종자 정도가 아니라 거의 노예처럼 변해 버린 김지윤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를 피했다.
어쩐지 사람들이 자기보다 자리 뜨는 걸 어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다.
한창 서울에서 중증외상센터 살려 보려고 국회의원 만날 때도 그랬다.
특히 민원을 들어주지 못한 상황에서 찾아갔더니 살려 달라고 했던 사람도 있었다.
사람 살리는 사람이 설마 사람 죽이겠냐고, 농담을 날렸더니 무릎을 꿇었다.
‘거참……. 세상엔 이해 못 할 일이 많아.’
최윤섭은 그 비슷한 범주에 강혁이 있다고 생각했다.
‘천재…… 진짜 천재라 이거지.’
이미 포기한 꿈마저 강혁을 떠올리고 있으면, 어쩌면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 얘기를 하진 않았다.
본인도 감당치 못했던 목표를 남에게 전가시킬 수는 없는 법이니.
“아, 잘 잤다.”
하여간 강혁은 그렇게 수술을 마치고 아침에 일어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완벽한 컨디션으로.
“아, 힘들어.”
그러곤 역시나 언제나처럼 힘들어하는 강성지와 함께 응급실에 들어갔다.
“어, 왔니?”
어쩐지 둘을 어려워하는 김지윤과 함께 환자들을 봤다.
아무래도 인턴이다 보니 최종 치료까지는 관여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초기 처치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과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인턴 백강혁이 괴물이라고.
진짜 잘한다고.
최윤섭의 라이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백 선생이라고? 밥이나 먹을까?”
“고기요?”
“어……?”
“스테이크에 와인이라면 좋습니다.”
물론 직접 찾아가서 얘기했던 이들은, 뭔가 쌔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스테이크와 와인이 좋은 음식이라는 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그걸 대놓고 요구해?
인턴이?
‘아니, 뭐……. 천재라니까.’
하지만 내과 펠로우는 일단 온 거, 먹기로 했다.
강혁이 그저 외과 처돌이라는 건, 아직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