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107)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107화(1107/1120)
1107화 미친 레지던트? (1)
-스테이크랑 와인만 먹고 왔다던데?
강혁에게 밥 사 준 펠로우는 별명이 호구가 되었다.
가서 돈만 쓰고 별다른 대화조차 못 했기에 그랬다.
아니, 오히려 돈 쓰면서 기분이 나빠지는 참 드문 경험을 했더랬다.
“와인 아직 안 열렸는데.”
“응?”
“지금 마시면 맛 없어요.”
“아…….”
“그리고 고기를 그렇게 자르시면 안 되죠. 굽는 거부터 좀 틀려먹긴 했는데…… 그래도 자르면서 보정해야죠.”
“응, 그래…….”
어디 넌 얼마나 잘 먹나 보자.
뭐 이런 생각이 들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강혁이 먹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기분이 나쁜 와중이었음에도 사랑에 빠질 뻔했더랬다.
고귀하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펠로우는 그 날 알았다.
‘미친…….’
와인잔을 쥔 손 하며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과 그 와인의 냄새를 맡는 모습 그리고 마시는 광경까지.
이것이 절경이었다.
고기를 써는 것은 또 어떻고?
실로 완벽한 포크와 나이프질이었다.
평생 어떻게 하면 스테이크 멋있게 먹을까 고민한 결과물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외과 가기로 했다고?”
“네.”
“너 그럼 어제 내 법카 가져다가 뭐 한 거야?”
물론 그런 얘기를 교수님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가서 봤더니 절경이었어서 저는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말은 하나도 안 통했지만요!
이따위 얘기를 했다간 딴 데 갈 것도 없이 일단 펠로우 자리부터 위태했다.
“그…… 죄송합니다. 그렇게까지 확고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 그리고…… 그놈은 외과 갈 생각이었으면 내과에서 밥 사 준다는데 왜 따라온 거래?”
“그…….”
진심으로 와인이랑 스테이크 먹으로 온 것 같았다.
실제로 음식 나오고 나서는 말도 안 하지 않았나.
말을 걸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더랬다.
비록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외양의 소유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펠로우로서의 본분은 잊지 않아서 그랬다.
그랬더니 인상을 썼다.
그 모습도 잘생겼지만, 하여간 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먹는데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 너무도 확고하게 느껴져서 그랬다.
“모르겠습니다.”
“하……. 거참. 애가 우수하기는 하다며.”
“네. 엄청요.”
“왜 얼굴이 벌개져서 말해?”
“네? 제가 요새 좀 힘든가 봅니다.”
“펠로우가 힘들긴 하지. 하여간 어제는 고생했고…… 그 새끼는 대체 뭐야.”
내과에서만 이런 황당한 일을 겪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갈비 사 주고 왔다고?”
“네.”
안과도 마찬가지였다.
성적도 1등에 인턴 성적도 이대로 두면 1등이지 않겠나.
간혹 상급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다고 했지만,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능력이 있어서 그랬다.
‘진짜 절경이구나.’
사실 안과 펠로우는 딱히 과로 꼬실 생각이 있어서 만난 것도 아니었다.
한동안 넋 나간 얼굴로, 동시에 발그레한 얼굴로 돌아다니던 내과 펠로우에게 자초지종을 들어서 그랬다.
교수에게 법카 달라고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의 보람은 있었다.
어찌나 멋있게 밥을 먹는지, 그 자리에서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뻔했더랬다.
‘싸가지 없어서 더 좋아.’
남이 사 주는 밥을 먹으면서, 심지어 비싼 밥을 먹으면서 어찌 그리 당당할 수 있을까.
어차피 다른 쪽으로 꼬셔 볼 생각도 있었어서 고기를 구워 줬더니 바로 인상을 썼다.
그렇게 하면 비싼 고기 다 망가진다고 하면서.
어이가 없었지만 강혁이 구운 고기를 먹고 보니 과연 인상을 쓸 만했더랬다.
아니, 고깃상 안 뒤집은 게 다행이었다.
이때까지 먹어 본 고기 중에 어제가 제일 맛있었다.
“외과로 간대?”
“네.”
“얼굴이 왜 벌게.”
“네? 요새 좀 힘들어서요.”
“펠로우가 다 그렇지, 뭐. 하여간 고생했고. 그 새끼는 대체 뭐야. 외과 간다는 놈이 왜 밥은 얻어 먹어.”
내과와 안과 펠로우가 넋이 나갔단 소문은 곧 병원 전체를 휘감았다.
대놓고 퍼지진 않았다.
그러기에는 좀 부끄러우니까.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도 있지 않나.
병원은 더더욱 그런 면이 있어서 강혁은 무안대학교 병원에 있는 거의 모든 과에서 비싼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초밥이요.”
“한정식.”
“코스 요리요.”
종류도 다양하게 먹었다.
개중에는 진짜 비싼 음식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지갑을 연 사람은 딱히 불만을 갖지 않았다.
음식에 따라 강혁의 퍼포먼스도 달라졌기에 그랬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음식도 사 주고 싶어졌을 지경이었다.
“야, 이래도 되는 거냐?”
오늘도 후련하게 얻어먹고 온 강혁을 향해 강성지가 물었다.
부럽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모든 과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인턴에게는 부럽기만 한 일 아니겠나.
심지어 강혁에게 쏟아지는 러브콜은 그 주체가 정말 그 과인지 아니면 펠로우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뭐가?”
그에 반해 강혁은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뭐가라니. 너 외과 갈 거라고 외과에 말해 놓고 지금 다른 과에서 사 주는 거 다 먹는 거잖아.”
“내가 사 달랬나. 자기들이 사 주는 건데.”
“그래도…… 비싼 것만 먹는다고 그러던데?”
“나만 먹었나. 자기들도 먹었지, 뭐.”
“그…… 그렇긴 해.”
“그리고 정말 비싸게 느껴졌으면 딴 거 사 줬겠지.”
“그럼 안 갈 거잖아.”
“당연하지. 공부할 시간에 맛없는 걸 왜 먹어.”
“그…….”
강혁과의 대화는 늘 그랬다.
분명 대의는 이쪽에 있는 거 같은데, 얘기를 하다 보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것도 늘 이쪽이었다.
‘시발.’
강성지는 속으로 욕을 주워 넘기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강혁을 기다리고 있던 이유는 따로 있어서 그랬다.
인턴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혁이야 발로 봐도 만점을 받겠지만.
강성지는 아니었다.
강혁이 아니었으면 학교 졸업도 어려웠다.
“하여간 공부 할 거지?”
“해야지. 넌 시험 공부?”
“어……. 넌 아니야?”
“난 그냥 공부. 시험이야 평소 실력대로 보는 거지.”
“그…….”
왜 강혁에게 친구가 별로 없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쁜 놈은 아니었다.
지금도 별 뜻 없이 한 얘기일 터였다.
강혁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일 테니까.
하지만 그 시험에 떨어질까 걱정을 해야만 하는 보통 사람에게는 진짜 재수 없게만 들릴 뿐이었다.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지는 않지?”
“딱히 뭐.”
“그래……. 잘했다.”
“너도 좀 잘해.”
“응?”
“모의고사 떨어지게 생겼던데.”
“아.”
강성지는 몸서리를 치고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진짜 모르는 게 있어도 이 새끼한테 묻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다지면서였다.
“강혁아.”
“응?”
“이거 뭐야?”
물론 다짐은 어기라고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강성지에게는 그랬다.
‘내 잘못이 아냐.’
일단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게다가 인턴은 바빴다.
공부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거 이거지.”
“아…….”
강혁은 그렇지 않았는지 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왜?”
“당연한 건데.”
“그…… 그러니까 나는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음.”
강혁은 강성지를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얼굴을 보았다.
여기저기 찬찬히 뜯어서.
강성지야 그냥 친구에게 이상한 습관이 있다고만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 강혁은 지극히 예민한 시각을 이용해 상대의 생각을 얼마간 읽어 낼 수 있었다.
‘진짜로 이해가 안 되는구나. 왜…… 대체 왜 그러지.’
결과 강성지가 진짜로 모른다는 걸 알았다.
멍청해서 그럴까?
아닌데.
그래도 의대까지 올 정도면 멍청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 공부를 안 해서 그럴까?
필시 그럴 터였다.
노력을 안 하니까 모르는 것일 게 뻔했다.
“아?”
강성지는 강혁에게 꿀밤을 맞았다.
아프게 때리진 않았다.
혹 세게 때렸다가 머리가 더 나빠지면 안 되니까.
“왜……?”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아니……. 나…….”
“나보다 많이 했어?”
“아니, 그건.”
“내가 1등인데 나보다 열심히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건.”
맞는 말이긴 했다.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아픈데 할 말이 없게 만들다니.
이렇게 잔인할 수가.
“하여간 이건…….”
물론 나쁜 뜻에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서 그렇지.
다행인 것은 적어도 강성지만은 강혁의 진심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에게 강혁은 은인이요, 스승이요, 둘도 없는 친구였으니까.
“오. 이제 알겠어.”
“그래. 이제야 알겠구나.”
말을 이렇게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알려 주지 않았나.
그것도 꽤 친절하게.
덕분에 강성지는 시험을 썩 괜찮게 볼 수 있었다.
어차피 외과 지원이라 떨어질 일이야 거의 없겠지만, 하여간 망신 당하지 않을 정도로 보았다.
“만점이라…….”
“만점이 외과라니.”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강혁은 만점이었다.
결과를 본 출제 의원들, 그러니까 외과 교수들이 한데 모여 회의를 열었을 정도로 충격적인 점수였다.
이번 인턴 시험은 꽤 어려웠어서 그랬다.
피부과에 지원한 인턴들조차 열 개 이상씩은 틀렸을 지경이었다.
한데 외과 지원자가 만점이라니.
꼴등이 와도 온 것만으로 감지덕지하게 된 지 오래인 외과 교수들로서는 이 일이 꿈인가 생신가 싶었다.
“무안대 외과는 말려야지. 역시 우리 한국대로.”
“칠성도 있습니다.”
“아선도요.”
이런 망언까지 일삼게 될 지경이었다.
강혁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상황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랬다.
“먼저 얘기 꺼내는 놈이 임자지.”
“와.”
“진짜 치사하네?”
행동력 빠른 이는 이미 사람을 보낸 참이었다.
무안대가 멀어도 어쩔 수 없었다.
인재 자체에 목마른 외과이지 않나.
근데 1등이라고?
바다를 건너서라도 가야 했다.
그 과정에 편법이 더해질 수도 있지만 괜찮았다.
“스테이크에 와인이요.”
그렇게 갔더니만 애 반응이 괜찮았다.
일단 밥을 사 달라지 않나.
지나치게 당당한 게 좀 이상했지만.
하여간 비싼 밥이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염치가 있으면 이렇게까지 비싼 거 먹고 거절할 수는 없지 않겠나.
“네? 아뇨. 전 무안대 외과에 갈 겁니다.”
“어…….”
그런데 거절당했다.
제일 처음 온 한국대만 그런 게 아니라 칠성도 아선도 그랬다.
원래도 어이가 없었을 텐데 여기 오면서 무안대 병원을 본 참이라 더 어이가 없었다.
“백 선생…… 서울 안 가 봤어?”
“원래 서울 사람인데요.”
“그럼 알잖아. 병원 차이가…… 아니, 그 똥구멍만 한 병원이 뭐가 좋다고.”
“환자는 많습니다. 이 근처에서는 유일하게 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고요.”
“그래, 그러니까 더 하는 말이야. 서울로 와야 덜 고생하면서 더 배우지! 게다가 인구수 차이가 나잖아. 환자도 훨씬 많다고.”
“괜찮습니다. 전 여기서 사람을 살리기로 결심했어요. 이쪽이 제가 더 필요할 거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