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11)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11화(111/1120)
111화 비록 늦었지만 (1)
“하, 하지만…….”
재원은 방금 강혁이 뚫어 놓은 두개골의 구멍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강혁의 말대로 안쪽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출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
뇌압 상승에 있어 가장 손쉽게 해결 가능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출혈이었다.
물론 출혈이 원인이라 해도 시간이 늦으면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긴 했지만.
그냥 뇌의 전반적인 부종으로 인한 뇌압 상승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하지만, 뭐.”
강혁은 마치 의학 지식이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당당하게 되물었다.
덕분에 재원은 혹시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니잖아.’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이건 상식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딱히 신경외과나 신경과가 아니더라도 의사라면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라는 얘기였다.
“의미가…… 있을까요? 이거…… 이만한 부종이 해결될까요?”
재원은 인위적으로 뚫어 놓은 구멍을 통해 마구잡이로 빠져나오려 하고 있는 뇌 조직을 가리켰다.
그나마 대뇌피질의 평평한 부분에 뚫어 놓은 구멍이 이러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는 건 원래 있는 구멍을 통한 탈출은 더더욱 심각할 거란 얘기였다.
삐삐.
재원의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려는 듯 모니터에서 알람이 울렸다.
혈압이 더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심장박동 수는 요지부동이었다.
아예 조절 능력이 상실해 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뇌압 상승이 동반된 상황에서 이러한 소견이 시사하는 바는 단 하나라고 보면 되었다.
“뇌간 탈출이…… 진행 중이잖아요…….”
재원은 모니터와 강혁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뇌간 탈출이라는 말에 강혁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강혁이라고 몰랐겠는가.
재원보다 훨씬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은 의산데.
그저 포기하는 법을 아직 모를 뿐이었다.
“그래도 해 볼 수 있는 건 해 봐야지.”
‘의사로서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본다.’
강혁이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말 중 하나였다.
그리고 마치 격언처럼 지키는 말이기도 했고.
그 제자를 자처하고 있는 재원으로서도 열심히 따르려 하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백 날 천 날 우리만 해 볼 수 있는 걸 해 보면 뭐 합니까?”
그래서 늘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내뱉고야 말았다.
“뭔 소리야?”
강혁은 그의 속내를 대강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굳이 물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이미 바삐 움직여 환자의 허리를 약간 틀어 놓고 있었다.
재원과의 논쟁이야 어찌 흘러가든, 자신은 척수에 구멍을 뚫어 놓겠단 심산이었다.
이미 뇌간 탈출이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긴 했지만.
환자를 눈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재원 또한 강혁이 하고 있는 것을 굳이 방해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자세 잡는 것을 살짝 도우며 답했다.
“병원에서는 맨날 적자 과다, 뭐다 하면서 구박이나 하고…… 이번 인력 충원도 솔직히 교수님이 반 사기로 이루어 낸 거 아닙니까.”
“반 사기라니, 새꺄. 여기 요원님도 계신데.”
“제가 틀린 말 했나요, 뭐. 정상적인 방법으로 갔으면 충원은 개뿔…… 감원했을걸요?”
“충원되잖아. 그런 말은 해서 뭐해.”
강혁은 본래 같으면 새우등 자세를 취하게 해 찾아내야 하는 척추뼈 사이의 공간을 그냥 찾아내었다.
강혁의 시력만큼 기형적으로 예민한 것은 아니었지만 손끝의 감각도 만만치 않게 예민한 덕이었다.
재원은 강혁이 그곳을 검지 손톱을 이용해 꾹 눌러 놓는 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보세요. 나라에서도 별생각이 없잖아요.”
“헬기?”
“네. 공문이라니…….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 환자 상태 나빠진 것도 다 헬기 없어서예요. 헬기만 제때 떴어도…… 기회가 있었을 거라고요.”
모든 질환에는 골든 아워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질환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긴 했지만.
보통 뇌의 경우 길어야 한 시간, 짧게는 20분이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강혁은 자신이 자국 낸 부위 근처를 베타딘 소독액으로 닦으며 물었다.
재원은 강혁을 도우며 답했다.
표정은 잔뜩 화가 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진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는 의사였다.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다들 내팽개치는…… 중증외상센터에서 저희끼리만 최선을 다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하는 거죠. 오늘이야 그나마 다행히 근처 소방서에서 도움을 줬지만……. 이게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그냥 저희끼리만 갔으면 이 환자 그나마 거기서 꺼내지도 못했을걸요?”
“음.”
강혁은 재원의 말에 잠시 신음을 흘렸다.
다른 때 같으면 지랄하지 말라며 한 대 쳤을 테지만.
오늘만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불만을 가질 만도 하지.’
기껏해야 몇 달가량 외상 외과 의사로 살아 본 주제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조금 우습긴 했지만.
사실 딱 하루만 중증외상센터에 있어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딱히 관찰력이 뛰어나거나, 주의력이 뛰어날 필요도 없었다.
그만큼 중증외상 환자들에 대한 푸대접은 만연했으니까.
“재원아.”
해서 강혁은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재원을 불렀다.
재원은 강혁이 그의 제대로 된 이름을 부른 것이 거의 처음이라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그 얘기는 이따 하자. 내가 술 살게.”
“술…… 이요?”
강혁이 술 얘기를 하다니.
회식은커녕 식사조차 함께하는 일이 드문 사람 아닌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고 그러나?’
뭔가 불길한 예감이 재원의 머릿속을 헝클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젓기에는 너무 희귀한 제안이었다.
“조폭, 너도 같이 가.”
“네? 아, 네.”
강혁은 재원이 미처 가부를 결정하기도 전에 장미의 참석까지 정해 버렸다.
장미가 워낙 흔쾌히 응해 버렸기 때문에 재원으로서는 도저히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저도 가겠습니다.”
“뭔 소리야. 넌 오라면 오는 거지.”
“아.”
“일단 잡아. 바늘 들어간다.”
“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혁은 이미 길이가 무척 길고 두꺼운 바늘을 들고 있었다.
스파이날 니들이라고 불리는 바늘이었다.
대개 좁고 깊은 구조물에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바늘이었다.
척수야 척추뼈 사이에 숨어 있으니 이 바늘 말고는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보면 되었다.
푹.
강혁은 별 망설임도 없이 바늘을 찔러 넣었다.
그리곤 쑥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
재원은 깊이 들어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강혁은 바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조금 뭐.”
그때 마침 바늘 끝에 맑고 투명한 액체가 맺혔다.
뇌척수액이었고, 바늘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아니, 아닙니다.”
“오늘 왜 이래? 봄 타냐? 아직 겨울인데.”
“아뇨……. 아닙니다.”
“암튼, 라인 안 빠지게 잘 잡고 있어. 고정해야지.”
“네.”
제아무리 손쉽게 넣은 라인이라지만 빠지는 것은 늘 아쉬운 일이었다.
투입된 노력도 노력이었지만 조직에 난 상처가 더 큰일이었다.
그냥 일반적인 혈관도 아니지 않은가.
무려 뇌로 바로 연결되는 척수강이었다.
이곳에 상처가 늘어난다는 것은 감염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러모로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끙.”
재원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환자가 흐트러지지 않게 잡았다.
부우웅.
제아무리 장미가 운전을 잘한다 해도 과속 중이지 않은가.
흔들리는 와중에 꽉 붙잡는다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잘했어.”
강혁은 그렇게 버텨 준 재원에게 칭찬을 건넨 후, 실크 테이프로 라인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곤 라인을 작은 드레인(Drain: 배액) 주머니에 연결해 주었다.
주르륵.
드레인 주머니는 보통 음압이 걸려 있었다.
덕분에 안쪽에 고여 있던 뇌척수액이 꽤 빠른 속도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엄청 빠른데요?”
“그만큼 압력이 높다는 뜻이겠지.”
“좋아할 일은 아니네요…….”
“뭐, 그렇지.”
강혁은 ‘콸콸’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뇌척수액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잘 나온다는 건 위안이 되는데.’
문제는 뇌척수액이 전체 뇌압 상승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그리 크진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전반적인 뇌부종이 핵심이었으니까.
이걸 해결하려면 일단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두고 봐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뇌 손상이 얼마나 진행될지는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어쩌면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할 확률도 아주 높았다.
“얼마나 남았지?”
강혁은 환자의 들것 중간을 살짝 접어 머리가 허리보다 높이 있도록 만들며 물었다.
대상은 당연하게도 장미였다.
그녀는 아주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답했다.
“이제 다 왔어요.”
“오. 벌써?”
“말했잖아요. 제가 교수님보다 운전 훨씬 잘한다고.”
장미의 말대로 구급차는 응급실 앞에 기가 막히게 멈추어 섰다.
아예 뒷문 열리는 곳이 정문으로 향하게끔 방향까지 맞춘 채였다.
강혁은 새삼 장미의 실력에 감탄하며 뛰쳐 내렸다.
재원과 현장 요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급히 환자가 실린 침대를 밖으로 끌어 내렸다.
“여기, 여기로!”
장미는 어느새 안쪽에 있던 이송용 침대 하나를 끌고 오고 있었다.
강혁과 재원은 환자의 들것을 들어 그 침대로 옮겨 놓았다.
요원은 그사이 원무과로 달려가 환자 접수를 의뢰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것저것을 따져 물었을 원무과.
하지만 지금은 강혁 때문에 이런 종류의 접수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수술실로 갈까요?”
재원과 장미는 거의 동시에 강혁을 바라보며 외쳤다.
딱히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진 않았다.
늘 환자를 데려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술실로 갔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대개 좋았으니까.
하지만 강혁은 고개를 저었다.
더없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가면서였다.
“기본이 안 됐구나.”
“네?”
“치료의 기본은 진단이야, 진단. 이 멍청이들아.”
“그럼…… 무슨…….”
늘 진단은 현장에서 내리고 병원에서는 치료만 하던 양반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강혁은 어버버 거리고 있는 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침대를 수술실 쪽이 아니라 정반대 쪽으로 밀면서였다.
“CT랑 MRI부터 찍어 봐야지. 뇌부종 상태가 어떤지 봐야 할 거 아냐.”
“CT…….”
분명 아주 익숙해야 할 단어였다.
레지던트 시절부터 하루가 멀다고 찍어 댔던 검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외상 외과에서 일하면서부터는 거의 찍어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술 전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드르륵.
강혁은 재원이 멍해진 사이에 침대를 밀어 CT실로 향했다.
“어, 어? 교수님?”
기사도 아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적어도 CT실에서 강혁을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익숙하게 구는 사람은 강혁뿐이었다.
“머리 CT! 조영제 없이!”
“아……. 네, 네. 알겠습니다.”
“노예! 너는 MRI실 가서 다음 환자 못 들어오게 막아. CT 찍고 바로 간다.”
“네!”
“조폭, 너는 신경과 전화해서 뇌파 검사 가능한지 좀 알아봐. 협진 요청도 넣고.”
“아……. 네!”
검사도 모자라서 해당 과에 도움 요청까지.
너무 낯선 모습이었다.
‘뭐라도 해 보겠다는 건가.’
재원은 그야말로 발버둥 치는 듯한 모습의 강혁을 보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중증외상 환자가 모두에게 푸대접을 받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적어도 한 명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