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110)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110화(1110/1120)
1110화 미친 레지던트 (1)
3월.
바깥세상에서는 꽃피는 봄이네 뭐네 하면서 희망찬 하루가 흘러가겠지만.
적어도 대학 병원에서는 아비규환 내지는 지옥도가 펼쳐지는 기간이었다.
초짜 인턴과 초짜 레지던트가 한데 어우러지면 어떤 일까지 벌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교수들은 매년 벌어지는 이 끔찍한 기간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견뎌야만 했다.
“하아.”
“최 교수님 쪽도 만만치 않으신가 보네요.”
이때만큼은 과를 불문하고 동지애가 샘솟는다고 보면 되었다.
아니, 피부과나 영상의학과와 같이 1등, 2등이 지원하는 곳은 좀 다르긴 했다.
원래 저 정도 성적을 내려면 남다른 면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쪽은 사고가 좀 적기는 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어떤가.
“아니, 저는 어제 환자가 갑자기 소변이 안 나온다고 하는 거예요. 갔더니 환자가 진짜 죽으려고 하고……. 원래 폴리 아웃하고 보내려던 환자였는데 그러고 있으니까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보니까 인턴이 폴리를 갈아 끼고 잠가 놨더라고요.”
내과 교수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떨고 있었다.
두려움과 분노에 떨었다.
지난 1년간 잊고 있던 감정이었다.
3월이 되고 나서야, 월 안에서 살던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초짜 인턴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다.
“그거 푸니까 소변이 진짜…… 와……. 내가 다 속이 시원했어요. 환자도 죽다 살았고. 인턴 새끼……. 내가 그 새끼 죽여야 되는데…… 그랬다가 도망가면 안 되니까 타이르는데……. 아휴, 1년 차 애는 처방을 이상하게 내서 사고 치고.”
“음.”
최윤섭은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 교수를 돌아보았다.
꽤나 열심인 교수였다.
논문도 많이 쓰고.
환자도 잘 보고.
아마 내후년쯤이면, 논문에 커리어 잘 쌓아서 서울 아니면 수도권으로 가지 않을까?
‘지금도 주말부부지?’
이 사람뿐만이 아니라, 젊은 교수들은 태반이 그랬다.
애초에 무안에 뼈를 묻을 생각 따위는 없다는 각오를 하고 전임을 받지 않던가.
그러다 10년 넘게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그러다 이혼까지 하게 되고, 그래서 그냥 뼈를 묻는 경우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하여간 처음부터 지방에 계속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아니, 나는 그런 일은 없어.”
최윤섭은 잡생각을 뒤로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과 교수는 이 음울한 외과 교수가 또 우울증이 도졌구나 싶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서울에서도 내놓으라 하는 병원에서 한창 잘나가던 사람 아닌가.
괜히 중증외상센터에 빠지지만 않았어도, 그러니까 윗분들이랑 마찰만 벌이지 않았어도 여전히 거기서 잘나가고 있을 터였다.
‘그러다 여기 와 가지고……. 3월마다 푸닥거리하고 있으려니…… 얼마나 힘들겠냐. 난 이러지 말아야지.’
반면 내과 교수는 최윤섭을 반면교사 삼으며 후후 웃었다.
자조 섞인 웃음이었다.
“이해하세요, 교수님이. 여기 남는 애들이 오죽합니까……. 걔들도 힘들 겁니다.”
“아니, 나는 진짜 아니라니까. 그런 게.”
“그럼 왜 그렇게 우거지 죽상을 하고 계세요.”
반면교사로 삼기는 했지만.
내과 교수는 뭐가 되었건 최윤섭을 인간적으로는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자신은 절대 갈 수 없는, 또 가고 싶지도 않은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사람 아닌가.
여기 있는 동안엔 말동무라도 해 줄 생각이었다.
“애가 너무 잘해서. 내가 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네.”
내과 교수는 최윤섭의 말을 들으며, 이번에는 중증이구나 싶었다.
‘어쩌냐…….’
무안대학교 병원.
그나마 예전에는 괜찮은 병원이었더랬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일단 교수들부터가 수급이 잘되지 않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젊은 애들은 어떻겠나.
마이너 과, 그러니까 인기 과 하려고 남는 소수의 애들 아니면 대개 갈 곳이 없어 남는다고 보면 되었다.
아닌 애들은 죄 위로, 도시로 튀었다.
‘그중에서도 외과……. 와, 말이 안 나오네.’
외과에 남는 애들?
걔들이 뛰어나?
저공비행으로 겨우 졸업한 애들이 많을 터였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내과 교수는 절대 여기 출신 사람에게는 수술받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던 바 있었다.
물론 수련받다 보면 사람이 좀 바뀌기도 한다지만, 그중에서도 최윤섭이 있는 외과가 제일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교수님……. 유급생이랑 꼴찌 집합소가 거기 아닙니까…….’
내과 교수는 저도 모르게 치솟는 동정심에 최윤섭의 어깨를 두드렸다.
처음 봤을 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얼굴이 그냥 깡패였으니까.
하나 얼굴에 비해 성질은 그나마 얌전한 편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점차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교수님…….”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진짜…… 아, 전화다.”
최윤섭은 전화를 받았다.
“1년 차 백강혁입니다.”
강혁이었다.
요사이 최윤섭을 잠 못 들게 하는 바로 그놈.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교수한테 노티 하면서 이렇게 뻔뻔한 말투를 유지할 수 있을까.
1년 차 3월인데.
자신은 외과에서 제일 높은 교수고.
“어, 뭐지?”
최윤섭은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용건을 물었다.
침착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심장박동 수는 점차로 빨라져 오고 있었다.
지금껏 강혁이 해 온 노티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자 52세. 밧줄에 의한 복부 손상입니다. 공장에서 물건 매어 두는 밧줄이 갑자기 끊어지면서 복부를 가격했다고 합니다. 토혈이 있어, 내장 출혈이 의심됩니다.”
“어……. 일단 갈게. 거기 너밖에 없어?”
“아뇨. 2년 차 하준수 선생님 있습니다.”
“아. 빨리 갈게.”
“네.”
최윤섭은 어차피 입맛도 없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니었다.
중증외상센터의 중요성을 외치다 팽 당한 이후론 뭘 먹어도 그저 그랬다.
해서 먹던 것을 그대로 쏟아 버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교수님, 아까 그 친구예요?”
내과 교수도 그랬다.
차이가 있다면 서울로 올라가면 바로 회복될 입맛이라는 것 정도일까?
하여간 심심하던 차에 잘됐단 얼굴로, 또 외상 센터 실력이 어떤지 보자는 심정으로 최윤섭을 따랐다.
최윤섭은 그런 내과 교수가 성가셨지만 내치지는 않았다.
‘복부 손상…… 밧줄…… 내과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어.’
지극히 계산적인 행동이었다.
물론 티를 내지는 않았다.
“어, 그 친구.”
“솜씨 좀 볼까요?”
“놀랄걸.”
“네네.”
내과 교수는 빙그레 웃으며 최윤섭을 따랐다.
‘여차하면…… 바이털은 잡아 줄까.’
당연한 말이지만 무안대학교 병원에는 외상센터가 없었다.
그냥 응급실만 있을 뿐이었다.
설비도 인력도 형편없는 응급실이었다.
그럼에도 최윤섭의 고집 때문에 근처 외상 환자는 죄다 받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불만을 표할 만도 할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노티를 하면 최윤섭이 정말 단 하루도 빠짐없이 와서 그랬다.
이 때문에 학회라고 해 봐야 이 근방에서 열리는 학회밖에 못 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온 병원 사람들이 다 알았다.
그러니 휴가계는 늘 단 한 번도 제출하지 않았더랬다.
그야말로, 최윤섭은 인생을 갈아 넣고 있었다.
‘사람 살리는 맛이라도 있어야 살지.’
그걸 모르지 않는 내과 교수로서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뭐가 되었건 이 외로운 외과 교수에게 잠시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서울로 올라갈 때, 미안한 마음이 없을 것 같았다.
삶의 부채감을 덜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자는?”
“처치실입니다!”
최윤섭은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었다.
그가 늘 그런다는 걸 아는 응급실 레지던트는 여상한 말투로 처치실을 가리켰다.
“호흡, 호흡부터!”
그와는 달리, 처치실에서는 숫제 비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주로 하준수였다.
새된 비명이 응급실을 달구고 있었다.
그 덕분에 방금 전까지 왜 안 봐 주냐고 불만을 토로하던 다른 환자들까지 입을 다물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진짜 비극을 마주하게 되면, 대개 이렇게 되는 법이었다.
“어떻게 됐지?”
최윤섭은 그렇게 고요해진 나머지 환자들을 헤치고 처치실 안으로 들어섰다.
지익.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는 하준수가 아니었다.
명백히 죽어 가고 있는 환자도 아니었다.
침착한 얼굴로, 환자의 목을 가르고 있는 강혁이었다.
“너…….”
“토혈이 심해서요. 이대로 두면 피가 넘어와 기도를 막을 겁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 이거 언제 배웠지?”
“학생 때 배웠습니다.”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는 술기였다.
하지만 나무랄 데도 없는 술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강혁은 숨길을 마련해 두었다.
2년 차 하준수가 허둥대는 사이에.
“이건.”
“제가 잡았습니다.”
피가 들어갈 수 있는 길, 중심 정맥관도 잡았다.
말문이 턱 막히는 순간이었다.
‘이건…….’
고개를 돌려 보니, 혈압은 60에 40.
낮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혈관이 거의 비어 있었을 터였다.
근데 어떻게 중심 정맥관을 잡았을까.
이건 상당히 숙련된 내과 의사도 어려웠을 상황인데.
‘뭐……?’
그나마 최윤섭은 사정이 나았다.
그는 강혁이 어떤 놈인지 대강 알고 있었으니까.
충격을 받은 건 내과 교수였다.
‘이걸 넣어? 1년 차가?’
실수부터 찾을 수밖에 없었다.
동맥을 쑤셔 놨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흔하다고 하기엔 뭣하지만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사고 아니던가.
특히 혈압이 이렇게 낮으면, 정맥이 거의 붙어서 아무것도 못 할 때가 많았다.
‘아니, 아니잖아.’
내과 교수가 당황한 얼굴로 환자를 살피고 있을 때, 강혁만은 계속 움직였다.
“빨리 수술방으로 가야 합니다! 수혈하고 있는데도 혈압이 안 잡혀요. 배도 아까보다 더 빵빵해졌습니다!”
어찌 보면 하준수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소리를 질렀으니까.
하지만 왜일까.
이쪽에서 느껴지는 건 공포나 두려움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의지만 느껴졌다.
“그래, 가자.”
“네!”
최윤섭은 그의 의지에 응답했다.
환자를 끌고 수술방으로 향했다.
“아, 수술 전 검사…….”
마취과가 잠시 막아섰지만, 소용없었다.
“밧줄 손상! 지금 안 들어가면 환자 죽어!”
최윤섭이 으르렁거렸으니까.
게다가 그 뒤로는 더 사나운 기색의 사내가 하나 서 있었다.
‘죽는다…….’
백강혁이었다.
분명 최윤섭은 환자가 죽는다고 했지만.
어쩐지 자신이 죽을 것 같았다.
안 비키면 안 될 거 같았다.
아니, 따라 들어가야 살 것 같았다.
“어?”
실제로 강혁은 마취과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연차고 나발이고 별 상관없는 듯했다.
“마취해 주세요.”
“아니, 말은 존대로?”
“그럼 반말로 할까요?”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해 줘요.”
“이미 수술방이야.”
“알아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