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2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24화(124/1120)
124화 보내는 마음 (1)
“아.”
뇌사 판정이라는 말에 강혁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미 상황이 끝났단 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만약 뇌사가 맞다면 틀림없이 그럴 터였다.
강혁은 혹시 하는 생각에 신규 간호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판정한 거지?”
“최준용 교수님이 ‘한국 장기조직 기증원’ 코디의 도움을 받아 검사 진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최준용. 흠.”
강혁은 그간 보아 온 준용의 모습을 떠올렸다.
상당히 열심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실력도 썩 좋았다.
일단 뇌파 판독 능력이 국내 제일 수준이라고 할 정도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사람이 그냥 코디를 불렀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잠깐. 코디가 와?’
한국 장기조직 기증원.
일명 ‘KODA’의 코디는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뇌사 판정 검사 한참 걸릴 거거든? 지금 어느 정도 했는지 알아봐.”
“네, 교수님.”
신규 간호사는 즉시 전화기를 들고 중환자실로 전화를 돌렸다.
그사이 강혁은 재원에게로 시선을 돌린 채 환자의 벌어진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노예, 넌 닫자. 최대한 빨리.”
그 말에 재원은 조금은 섭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새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드물다고는 하지만.
오늘 정말 힘들지 않았던가.
헬기로 구조해, 경동맥 터져, 대동맥 터져.
살다 살다 이런 날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날이었다.
잠깐 숨 좀 돌리려니까 ‘빨리빨리’를 입에 담고 있는 강혁이 야속했다.
“어차피……. 뇌사 판정 들어갔다는데, 조금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이 새끼가. 남의 환자냐? 뭐 옆 병동 환자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너무 힘들잖아요.’라는 말을 애써 삼켰다.
몰래 눈알을 굴려 강혁의 눈치를 살펴보니, 이미 눈깔이 약간 돌아 있었다.
어떻게든 빨리 나가서 환자 상태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신경과 최준용 교수님이면 최근 그쪽 학회에서 떠오르는 샛별인데…….’
그런 사람이 설마하니 뇌사를 구분하지 못하겠는가.
일반인들이야 식물인간과 뇌사를 잘 분간하지 못하겠지만.
그 교수는 아닐 거라는 얘기였다.
둘의 차이는 극명했으니까.
“아니면 빨리 봉합이나 해. 우리 환자야.”
“알겠습니다, 네.”
하지만 강혁이 계속 보채는데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특히 ‘노예’라 불리고, 진짜 ‘노예’가 되어 버린 재원은 그랬다.
“드릴.”
“네, 교수님.”
강혁은 일단 드릴로 가슴뼈 양측에 작은 구멍을 줄지어 뚫었다.
뼈를 그냥 실과 바늘로 봉합할 수는 없지 않은가.
드릴로 낸 구멍을 따라 철사로 묶어 버릴 심산이었다.
당연하게도 소요하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슬슬 나갈 준비 해야겠네.’
경원은 드릴 소리를 들어 가며 마취 가스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깨워서 나갈 건 아니긴 하지만, 수술할 정도로 깊이 잠재우는 것과 중환자실 케어를 위해 잠재우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니, 달라야만 했다.
이 조치를 어떻게 취하는가에 따라 환자가 중환자실에 가서 섬망(Delirium: 정신착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게 달라지니까.
“자, 나는 이제 여기 닫을 테니까, 넌 목 닫아.”
“네.”
“깝치지 말고 4번으로 해, 너는.”
강혁은 슬그머니 얇디얇은 5번 실을 집어 드는 재원을 말렸다.
재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레이어 잘 맞추고. 피부 울면 알지?”
“네네. 저도 이제 봉합 잘해요…….”
재원은 기껏해야 봉합 가지고 ‘잘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새삼 서럽게 느껴졌다.
봉합이야 원래 레지던트 2년 차면 다 떼는 거 아닌가.
하지만 강혁을 보면 그 생각이 매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수술은 절개로 시작해서 봉합으로 끝을 맺는다…….’
외과학 교과서에 쓰여 있는 문장이었다.
대부분 그저 그러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문장이기도 했다.
나머지는 읽지도 않고 넘어갔고.
‘근데 그 문장이 맞는 말이었어.’
강혁의 절개는 완벽함을 넘어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밖에서 이미 레이어를 알고 째는 것처럼.
봉합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도 환자의 가슴은 마치 갈라져 본 적이 없다는 듯 깔끔하게 닫히는 중이었다.
저걸 보고 재원이 해 놓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본. 기본을 지켜. 수직으로 뚫고 들어가서 수직으로 뚫고 나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1년 차 들어가자마자 선배에게 죽으라고 듣는 소리였고.
재원 자신도 그보다 아래 연차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단 한 번도 스스로 해 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 병신같지는 않네.”
강혁은 재원이 한 땀 한 땀 최선을 다해 봉합해 둔 목의 상처를 보며 중얼거렸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욕인가 뭔가 헷갈리겠지만.
중증외상팀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서, 선생님…….”
우선 장미가 재원을 보며 감개무량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공했네요, 선배님.”
다음은 경원이 축하의 인사를 건네주었다.
“어…….”
신규는 차마 입을 뗄 정도로 용기를 내지 못해 입술만 달싹였다.
그리고 대망의 주인공 재원은 훌쩍거렸다.
“끕. 끄읍.”
수술실 분위기는 일순 숙연해졌다.
그동안 얼마나 조리돌림을 당했으면 ‘병신 같지는 않다’라는 말에 저런 반응을 보일까.
그 조리돌림을 직접 보고 겪기까지 한 팀원들의 마음은 대통합을 이루었다.
거기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은 역시나 강혁이었다.
“이놈이 돌았나. 환자 수술하면서 울어.”
“끕. 눈물, 끕. 나는 걸, 끕.”
“네 눈물이 얼마나 드러운지 아냐? 환자 상처에 똥 뿌리는 거라고!”
맞는 말이기는 했다.
집도의의 땀이 환자의 감염원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게 있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도 고려해 주긴 해야 했다.
“또, 똥이라뇨. 눈에서 나오는 물인데.”
“의대 안 나왔냐? 세균 없어?”
“있기야 하겠죠…….”
“에이. 일단 다 닫았으니까. 데리고 나가자. 아, 그리고 뇌사 판정은 어떻게 됐어?”
강혁은 재원을 저만치 밀어내고는 신규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화살이 이리로 튈 줄은 모르고 있던 신규가 잠시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그도 사방에서 ‘똥이다, 큰일 난다’라고 했던 중증외상센터에 지원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내 의연하게 답할 수 있었다.
“지금 평탄 뇌파 확인한 후, 뇌파 판정 위원회 열렸다고 합니다.”
“평탄 뇌파……. 얼마나?”
“아…….”
“30분?”
“아, 네.”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신규를 보며 작게나마 품었던 희망의 불씨를 껐다.
평탄 뇌파가 30분 이상 계속되었다는 것은 이미 뇌의 기능이 정지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대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환자는 심장과 폐의 움직임도 멈춘 채 죽을 것이었다.
‘혹 요독성 혼수나 저체온증, 쇼크 등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 환자는 내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사람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강혁이 제일 잘 알았다.
“알았어. 일단, 나가자.”
해서 아까보다는 조금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경원이 즉각 나갈 수 있도록 약물 조절을 해 둔 덕에 환자는 곧장 중환자실로 향할 수 있었다.
응급 중환자실은 다른 중환자실과 마찬가지로 수술실과 같은 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금방 도착했다.
슈욱, 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인공호흡기 소리가 선연히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예의 그 환자가 누워 있었다.
스스로 눈을 감지도 못해 거즈를 덧대어 종이테이프로 감겨 준 눈.
혹시 몰라 억제 장치를 감아 두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움직이지 못한 팔과 다리.
어쩌면 처음부터 환자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강혁을 비롯한 의료진과 보호자의 고집으로 붙잡고 있었을 뿐.
“자리 어디지?”
강혁은 애써 그 환자를 지나쳐 오늘 수술한 환자의 자리를 물었다.
장미는 잠시 그런 강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뻔히 빈 자리가 보이는 상황이었기 때문.
‘멘탈이 약간 깨진 거 같은데…….’
장미의 시선에는 걱정스러움이 담뿍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그녀의 우려보다 훨씬 강한 인간이었다.
그냥 타고난 것도 있었지만, 시리아에서의 경험이 주요했다.
“일단 상처 자체는 깔끔하게 잘 봉합됐어.”
강혁은 어느새 환자에 대한 브리핑을 늘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감염이 문제가 될 수 있어. 아까 경험적으로 항생제 들어간 게 언제지?”
“아, 3시간 전입니다.”
장미는 이 큰 수술이 불과 3시간밖에 안 걸렸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며 답했다.
“3시간……. 그럼 일단 컬쳐(Blood culture: 혈액 배양 검사) 나가고. 감염내과 컨설트 넣어 놔.”
“네, 교수님.”
경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재원의 일일 테지만.
어차피 중증외상센터에서는 네 일, 내 일이 없었다.
그냥 할 수 있는 놈이 해야 했다.
“뇌사 판정 위원회는 어디서 열리고 있지?”
강혁의 말에 수술하는 동안 지원 나와 있던 다른 파트 간호사가 중환자실 한쪽을 가리켰다.
작은 탕비실 겸 회의실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 최준용, 처음 보는 의사 그리고 코디까지 셋이 들어가 있었다.
“오케이. 노예, 넌 나랑 가자.”
“아……. 네.”
재원은 거절해 봐야 소용없음을 알고 있는 데다가,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선선히 강혁을 따라나섰다.
벌컥.
강혁은 노크도 없이 바로 방 안에 들어섰다.
처음 보는 의사는 대단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준용과 코디는 덤덤했다.
이미 강혁의 환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강혁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난 후로는 문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환자, 정말 뇌삽니까?”
강혁은 일단 준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준용은 씁쓸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네. 뇌파 확인했습니다. 제가 직접 신체검사도 했고요.”
신체검사란 동공반사, 뇌간 반사 등의 소실과 호흡의 회복성이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의미했다.
강혁 또한 상기 검사는 매일 직접 시행했고, 결과를 확인했던 참이었다.
“여지는 없겠지…….”
“네. 판정 회의도 그렇게 결론을 내기로 합의했습니다.”
준용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의사 명찰에도 ‘신경과’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한국대학교 병원 신경과라고 하면 실력은 검증된 셈 아니겠는가.
제아무리 강혁이라 해도 판정을 뒤집을 생각은 없었다.
“근데 코디가 왔다는 건……. 뭐, 고인께서 생명 나눔 신청자셨나?”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그러자 내내 앉아 있던 코디가 몸을 일으켰다.
일전에 강혁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데 동참했던 사람이었다.
“네. 생전에 신청했었습니다.”
“공교롭네.”
강혁은 참으로 그렇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여기에 와서 뇌사자를 두 번 겪었는데 둘 다 신청자라니.
확률로 따지면 100%였다.
“뭐가……. 공교로우세요?”
뒤따라 와 있던 재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교롭지. 미국은 장기기증 신청자가 전체 인구 54% 정도 되는데, 우리나라는 3%가 채 안 되거든. 근데 우리가 겪은 환자들은 둘이나……. 신청자셨지.”
“아, 적긴 적구나…….”
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재원도 아직 기증 신청을 하진 않았으니까.
“근데 그런 건 어디에서 배운 거예요? 교과서에서도 안 나오는데.”
“그런 건 기본이지. 꼭 배워야 아냐?”
강혁이 여느 때처럼 재원을 구박하는데 코디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
“보호자분 동의가……. 아직 안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