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40)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40화(140/1120)
140화 가야만 하는 길 (1)
<이런 건 어떻게든 구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님?>
<이게 리얼 살신성인이지……. 영웅이다, 영웅.>
줄지어 붙은 댓글처럼.
지금 이현종 대위는 대한민국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전부 각자도생의 길에 바쁜 지금, 목숨을 바쳐 부하들을 살려 낸 군인의 이야기는 모두를 감동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국민의 관심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쏠려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 사안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으로 연결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 백강혁 교수를 보내자, 이건가?”
대통령이 최필두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물었다.
말 많은 이들이 최필두의 장관 임명 건을 두고 보은 인사가 아니냐고 할 정도로 둘의 친분은 두터운 편이었다.
“네.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친굽니다.”
“뭐……. 나도 대강은 들어 알고 있지.”
대통령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증외상센터 활성화’라고 하는, 국정 전체로 보면 티끌도 안 되는 사안에 관해 보고받은 기억이 있었다.
그때 백강혁이 맡은 팀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말도 들었고.
하지만 대통령의 눈과 귀는 보건복지부에만 한정하여 열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이야기가 전해지는 통로는 수도 없이 많았다.
“무안대 출신이라고 하던데, 맞나?”
해서 부정적인 정보도 아주 많이 알고 있었다.
최 장관은 여기서 하필 학벌 얘기가 나오나 하는 기색으로 급히 대꾸했다.
“네네. 그건 그렇습니다.”
“이봐, 최 장관. 아니, 필두야.”
“네.”
“이번 일은 실패하면 안 되는 일이야. 그건 알고 있지?”
대통령은 무음으로 돌려놓은 TV를 가리켰다.
총 12개의 채널이 동시에 떠 있었는데, 모조리 이현종 대위에 관한 얘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불만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 실정이었다.
이렇게 관심이 쏠린 데다가 정부까지 엮인 사건은 극히 드물었다.
대통령에게는 역대급 위기이자 또 기회였다.
“네, 알고는…… 있습니다.”
“그래. 이런 종류의 일에서는 책잡힐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돼. 그래야 실패해도 면피가 된다고.”
“그건……. 네, 그렇죠.”
이건 그냥 배 위에서 수술하고, 교통사고 난 환자 살리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강혁이야 다 같이 사람 살리는 일인데 뭐가 다르냐고 하겠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겐 아니었다.
이번 사건이 백 배, 아니 천 배는 더 중요했다.
때문에 무안대학교와 같은 학벌 이슈는 조금 위험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변했다,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벌 사회긴 하지.’
일단 얘기를 꺼낸 최필두 장관부터가 한국대학교 학부 출신이었다.
대통령도 그랬고, 그 옆으로 쭉 둘러앉은 외교부 장관도 그랬다.
‘만약 살린다면 어떻게 될까.’
다들 좋아할 것 같이 보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무안대학교 출신 의사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경미한 상처였는데 호들갑을 떨었다고 조롱할지도 몰랐다.
‘실패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가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외교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최필두와는 소원한 관계였지만, 대통령과는 역시나 막역한 사람이었다.
“저희가 새로 리스트업 한 명단입니다. 보시죠.”
“아까 봤어. 한국대학교 중환자 전담팀이랑……. 어디라고 했더라?”
“칠성 병원 중환자 전담팀하고 외과팀입니다. 두 팀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최 장관님?”
두 병원의 중환자 전담팀이 최고라는 것은 최필두 장관도 아니라 할 수 없는, 아주 명백한 사실이었다.
두 팀이 여태껏 살려 낸 사람들의 수를 따지고 들자면 그 행위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
게다가 두 팀에서 쏟아 내는 논문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대외적으로 정부에서 최고의 팀을 추렸다고 어필하기엔 안성맞춤이라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최필두 장관은 대한민국에서 이현종 대위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백강혁뿐이라고 믿었다.
‘그 사람은…… 괴물이야.’
아직도 강혁의 수술 동영상을 보던 날이 잊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런 술기가 단독으로 가능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은 맞지만, 역시 저는 백강혁 교수가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해서 최필두 장관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대통령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이내 외교부 장관 쪽을 바라보았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선택은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인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미안하네. 실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때 국민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있어야 해.”
“그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외교부 장관은 자신의 뜻이 관철된 것을 기뻐하며 비서관에게 대통령의 말을 전달했다.
“환자 상태 파악해서 두 팀에 연락 넣어. 비행기 편은 우리가 알아서 오늘 안에 뜨도록 만들어 놓는다고 해.”
“아……. 네. 장관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서관은 부리나케 현재 이현종 대위의 신병을 확보하고, 그를 책임지고 있는 장 중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 중령은 시차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금세 전화를 받았다.
“네, 아크 부대 장강호 중령입니다.”
“아, 저 외교부 김기범 과장입니다.”
“아, 네……. 외교부에서는 어쩐 일로……?”
“이현종 대위 이송 건 때문입니다. 지금 치료 가능한 의료진을 파견할 예정인데, 환자 상태 어떻습니까?”
“상태…… 말입니까?”
장강호 중령은 즉시 답하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아직도 현장에서 헬기로 실려 온 이현종 대위의 몰골이 눈만 감으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왜 아직도 안 죽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일단……. 한빛 부대 군의관들이 수액 달고 해서……. 응급 처치는 해 둔 상황입니다. 하지만 현지 병원이 사정이 워낙 열악합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우리 측에서 협조 공문 보내 놔서 국경 이동에는 차질 없지 않습니까?”
남수단의 상황은 누구보다 외교부가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여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놓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있어야 할 것은 하나도 없고, 없어야 할 것은 빼놓지 않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네, 급한 대로……. 제가 있던 UAE 쪽 「왕립 쉐이크 칼리파 병원」으로 이동 중입니다만.”
장 중령은 거기까지 말하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링스 헬기가 기체에 무리가 가는 것을 감수하고 하늘을 내달려 간 흔적이 보이는 듯했다.
군의관이 무려 네 명이나 딸려서 갔지만.
그들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장 중령 생각에, 이현종 대위에게는 의사가 아니라 천사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제…… 서너 시간 내로 도착할 겁니다. 병원 연락은 저희가 해 두었습니다.”
“UAE…… 그쪽이 아무래도 낫겠죠. 그럼 상태는 전혀 모릅니까?”
“아뇨. 군의관이 작성해 준 기록이 있습니다.”
“그거라도 말해 주시죠. 받아 적겠습니다.”
“네.”
장강호 중령은 한빛 부대에 파병을 와 있던 단기 군의관이자 정형외과 전문의가 적어 주고 간 소견서를 읊었다.
그에 따르면 이현종 대위의 상황은 대강 이러했다.
우측 팔에 총상 두 개, 그중 하나는 골절을 동반하고 있으며 탄환은 박힌 상황.
좌측 팔에 총상 하나, 이 역시 골절을 동반하고 있으며 탄환은 박힌 상황.
복부에 총상 세 개, 이 중 두 개는 관통했으며 하나는 박혀 있는 상황.
좌측 허벅지에 총상 두 개, 이 중 하나는 골절을 동반하고 있으며 탄환은 박힌 상황.
“그렇군요.”
의료에 관해서는 문외한인 외교부 비서관이 듣기에도 상처는 엄중해 보였다.
일단 총상이 총 8개나 된다는 말이었으니까.
이 정도로 총을 맞고 살아나는 건,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 것 같았다.
따르릉.
한편 강혁은 보건복지부 박기태 과장 말만 듣고 부리나케 준비 중이었다.
사실 어지간한 짐은 죄다 병원에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일도 없었다.
따르릉.
그렇게 준비를 다 마쳐 가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혁의 핸드폰으로, 그다음에는 강혁이 있는 당직 방으로.
‘환자……. 문제인가?’
안타깝지만 먼저 연락 온 환자가 우선이었다.
해서 강혁은 한껏 미안한 마음을 안은 채 전화를 받았다.
“백강혁입니다.”
“아…… 백 교수. 나 최필두 장관입니다.”
“최필두?”
강혁의 반응에 최 장관은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설마하니 장관이 직접 전화를 했는데 그게 누구냐는 식으로 전화를 받을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내 침착을 되찾기는 했다.
장관이라는 게 아무나 막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보통 사람은 아니란 얘기였다.
“모, 모르실 수 있지. 보건복지부 장관 최필두입니다.”
“아……. 아, 아. 근데 왜요?”
장관임을 충분히 인지한 듯했지만.
여전히 말투는 싹수가 없었다.
최필두 장관은 어쩌면 이 인간이 경질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어쩐지 아까보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그……. 아까 이현종 대위 건 말입니다.”
“아, 네. 안 그래도 지금 준비 중입니다.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면 됩니까?”
“아, 그게 아니고.”
“그럼 서울 공항으로 가나? 군용기로 갑니까?”
“아니…….”
막상 너 안 간다고 말하려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강혁의 목소리가 조금은 들뜬 것처럼 느껴져서 더욱 그랬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그, 다른 팀이…… 가기로 했습니다.”
“응? 다른 팀? 우리나라에 다른 중증외상팀도 있나?”
“중환자 전담팀은 있는데, 그들이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 이현종 대위가 그냥 중환자가 아닌 건 장관도 알지 않습니까?”
최 장관은 장관이기 전에 의사였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각료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입니다.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총상 환자 한 번도 보지 못한 돌팔이 새끼들 보내면 환자가 살 거 같나? 대체 이유가 뭐야?”
강혁의 말투는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여기다 대고 ‘네가 나온 대학이 후져서’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각료 회의에서…….”
그래서 하나 마나 한 얘기만을 늘어놓았다.
“나한테 이러는 진짜 이유가 뭔데? 그 이유나 말해 봐.”
“아니…….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최필두 장관은 영화에서 들어 본 듯한 대사를 읊는 강혁을 달래느라 쩔쩔맸다.
괜히 직접 전화하겠다고 나섰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때, 그가 있는 방으로 외교부 김기범이 들어섰다.
그 흔한 노크도 없이.
“뭐야, 갑자기.”
안 그래도 기분이 언짢던 최필두는 수화기를 가린 채 물었다.
그러자 김기범이 아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 벌써 백 교수님한테 얘기 전달하셨습니까?”
상당히 엉뚱한 말이었다.
“당연하지. 안 가기로 됐는데, 그럼 얘기 안 해? 근데 뭐야, 왜 그래.”
“그게…….”
김기범은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대통령이 직접 지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두 팀 모두 아주 좋아했더랬다.
하지만 환자 상태를 전하자 돌연 난색을 보였다.
그런 환자는 살릴 수 없다면서.
“안 가겠다고 그랬다고?”
“네.”
“그럼…….”
“백 교수님한테 다시 가실 수 있냐고 여쭤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김기범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최필두 장관이 말없이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이 시발 새끼들! 돌팔이 새끼들!”
최 장관이 들고 있던 전화기 너머로 강혁의 찰진 욕설이 마치 배경음처럼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