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5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55화(155/1120)
155화 비켜 (2)
“역시 미친놈들한테는 미친놈이 약이야…….”
아직 ‘신규’라는 호칭이 훨씬 익숙한 지민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혁은 아직 뻐큐를 날리고 있는 와중인 데다가, 아예 고개까지 기자들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미, 미쳤어?”
일단 원조 조폭 장미가 그녀를 나무랐다.
그러자 지민도 비로소 정신을 차렸는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요.”
“아니라요는 무슨. 고향 한국 아니냐? 말이 왜 그래?”
“다, 당황해서…….”
“당황할 거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
“선배도……. 한 번 당해 보셨으면 절로 나올 겁니다…….”
지민은 그리 말하면서 물끄러미 병원 쪽을 바라보았다.
‘진짜 한 100번은 볶인 거 같은데…….’
강혁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병원을 빠져나간 후의 일이었다.
기조실장 홍재훈과 최조은 원장이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고 찾아왔더랬다.
‘저한테 이러셔 봐야 아무 소용 없다니까요? 저는 연락을 받기는 하는데, 여기서 하지는 못해요!’
그 말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어찌나 야단법석을 피워 대던지.
굳이 직접 전화를 걸고선 ‘이 전화는 수신 거부된 전화’라는 말을 듣고서야 납득했더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볶는 빈도나 강도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그 방식이 약간 변했을 뿐.
“어휴.”
그때 생각을 하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하지만 맹세하건대 뒤이어 일어진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극비라며, 외교부 이 시발 새끼들아!’
정말이지 매일같이 샤워할 때마다 욕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틈만 나면 찾아오는 기자들 등쌀에 죽을 맛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강혁이 하루 이틀만 더 늦게 왔더라면 죽게 된 사람은 이현종 대위뿐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집요하게 찾아오던 기자들 몇몇과 지민은 같이 죽었을 테니까.
“땅 꺼지겠네. 우리 없는 동안 한숨 연습했냐?”
이미 마지막으로 따라붙은 기자들에게까지 살뜰히 욕을 퍼부어 준 강혁이 그제야 뒤로 돌아섰다.
그리곤 어김없이 신규를 깠다.
신규 지민은 별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강혁은 그냥 눈에 보이는 사람은 다 까는, 소위 ‘모두 까기 인형’이었으니까.
“아뇨…….”
그냥 묻는 말에나 답할 뿐이었다.
“근데 왜 그래?”
“가 보시면…… 알아요. 여긴 장난입니다, 장난.”
“장난?”
강혁은 대체 뭐가 장난이라는 건지 모르겠단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민이 말한 바를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다름 아닌 운전대를 잡고 있던 구조사였다.
“허이구.”
내내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던 그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운전하는 사람이 내기엔 다소 불안하기까지 한 소리였기 때문에 모두 그가 바라보고 있던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들 그 비슷한 소리를 내뱉었다.
“헐.”
“미쳤…….”
“역시 저놈들은 미친놈들이야.”
그중 본격적인 욕설을 내뱉은 사람은 신규 지민이었다.
‘얌전한 줄 알았는데 욕쟁이였네…….’
강혁은 왜 조금씩은 이상한 애들만 지원해서 들어오는 걸까 생각하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자신이 가장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결코 떠올리지 못했다.
아무튼, 그는 그렇게 앞 좌석에 몸을 기댄 채 입을 열었다.
상당히 위압적인 자세라 할 수 있었다.
“밟아.”
“네? 여기서 밟으면 치일 텐데요?”
구조사는 저도 모르게 속도를 줄이는 중이었다.
응급실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시피 한 취재진 때문이었다.
병원이 평소에도 이렇게 취재진이 몰리는 곳이라면 포토 라인 같은 걸 정해서 질서 유지에 나서긴 했을 텐데.
다들 알다시피 병원은 핫한 플레이스는 절대 아니지 않은가.
그나마 몇 있는 경호원들조차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병원 앞인데 뭐. 알아서 치료받겠지.”
“네? 아니…….”
워낙 태도가 당당해서 하마터면 액셀을 쭉 밟을 뻔했다.
하지만 구조사는 양심과 의식이 있는 일반 시민이었다.
덕분에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에이, 그럼 이거라도 눌러.”
강혁은 암만 봐도 스스로 의지로는 밟지 않을 거 같은 구조사를 흘겨보며 클랙슨을 사정없이 눌러 댔다.
그 바람에 앞에서 반갑다는 듯한 얼굴로 달려오던 기자 중 하나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구급차처럼 큰 차가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클랙슨을 울리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꼴 좋네.”
강혁은 그게 마치 삶의 낙이라도 된다는 듯 껄껄 웃으며 그 기자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구급차가 슬슬 환자를 내려야 하는 지점에 이르자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더없이 심각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경원이 너는 계속 쥐어짜.”
“네, 교수님.”
“노예, 넌 최선을 다해 끌고. 이동주 선생, 자네도 돕고. 윤 과장님도 부탁합니다.”
“아, 알았네.”
강혁은 마치 아메리칸 풋볼에서 스크럼 작전이라도 짜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에 의문이 떠오른 장미가 손을 들었다.
“말해 봐.”
“저는 빠졌는데요?”
어딘지 모르게 섭섭한 얼굴이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저 멀리 중동까지 이현종 대위를 살리기 위해 날아갔다 온 동료였으니까.
강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괜한 걱정 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네가 제일 중요해.”
“그래…… 요?”
의료진이 환자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묻는 장미를 강혁은 더없이 비장해 보이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너, 나랑 같이 길을 뚫는다.”
“네?”
“따라와!”
“아니, 뭔 미친…….”
장미는 뭐라 할 새도 없었다.
곧 강혁의 손에 꽉 붙잡힌 채 구급차 뒷문을 통해 뛰어내려야만 했다.
“백 교수님! 환자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같이 오셨습니까?”
“저기 제 질문도!”
그와 동시에 아마존강에 떨어진 고깃덩이를 향해 달려드는 피라냐가 떠오를 정도의 기세로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이, 이런 뜻이었나!’
조폭 장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자들을 보며 잠시 강혁과 눈을 맞추었다.
강혁은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주먹을 쥐었다.
“응?”
‘거기서 주먹을 왜 쥐어,’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강혁의 난동이 벌어졌다.
“으아!”
맨 앞에 있던 기자 하나가 어디를 어떻게 부딪친 건지도 모른 채 저만치 날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 기자 뒤에 있던 세 명의 기자도 붕붕 날았다.
“조폭! 뒤처지지 마!”
“아, 네!”
장미도 강혁의 밀치기에 동참했다.
그녀는 괜히 별명이 조폭이 아니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한 기세였다.
덕분에 꽉 메워져 있던 기자들이 저만치 물러나고야 말았다.
“야! 달려!”
강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비장한 얼굴로 그것만 기다리고 있던 재원은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원체 운동량이 부족한 그였지만 하고자 할 때는 또 해 내는 사람 아니었던가.
게다가 이번엔 맡은 바 임무가 막중했다.
“비켜! 비키라고!”
강혁은 뒤에 바짝 따라붙은 침대를 느끼며 앞에 있던 기자들을 밀쳐 냈다.
그들 중에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 대는 사람도 있었고.
대단히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양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겁니다!”
“꺼져! 정식으로 기자회견 할 때나 와서 물어봐!”
“그때가 언제가 될 줄 알고…….”
“지금 당장 환자 잘못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꺼져!”
강혁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 기자든 간에 관계없이 죄다 밀쳐 버렸다.
그야말로 무쌍을 찍는 듯한 광경이었다.
“문 닫아!”
강혁은 겨우겨우 병원 안으로 들어온 후, 멀뚱히 서 있던 경호원에게 외쳤다.
그와 동시에 경호원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어 문을 걸어 잠갔다.
그제야 일행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한시름을 놓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었지만.
우선 그토록 어렵게 병원에 도착했건만.
반겨 주는 이가 거의 없었다.
“기어코 왔구만…….”
도리어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만 가득할 따름이었다.
그중 대표 주자는 역시나 기조실장 홍재훈이었다.
“기어코는 또 뭡니까, 왔으면 온 거지. 고생했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유림 과장만큼은 강혁을 반겨 주었다.
강혁이 없는 동안 지민과 같이 시달렸는지 상당히 수척해 보였다.
“오랜만이네요. 그럼, 저흰 수술실로 가 봐야 해서.”
강혁은 한유림에게 잠시 미소 띤 얼굴을 보여 주다가 이내 이현종 대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마 에어 앰뷸런스를 통해 오는 동안 처치를 제대로 받은 덕에 아직 활력징후가 흔들리지는 않고 있었다.
느낌상 장거리 이송이 아니라 병동만 옮긴 느낌이랄까?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게 정말 끝까지 다행으로 이어지려면 지금 당장 수술에 들어가야만 했다.
이 사실은 너무나 저명한 것이어서 비단 강혁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해서 침대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수술실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드르르.
그렇게 굴러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강혁을 불러 세웠다.
“잠깐!”
뒤를 돌아볼 것도 없이 홍재훈이었다.
“왜요.”
강혁은 그대로 침대를 밀면서 대꾸했다.
홍재훈은 그런 강혁의 뒷모습을 사납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도 어차피 강혁이 제대로 된 대꾸를 해 올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더 화가 나진 않았다.
이미 화가 너무 많이 난 상태라 더 나기도 어려운 상황인 것도 있었다.
‘내가 저 새끼 때문에 이사회에서 문책당한 거 생각하면…….’
이사회에서는 왜 당연히 보건복지부나 외교부에서 백강혁에게 따로 연락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었냐는 질타가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외교부는 몰라도 보건복지부는 예상했어야 맞는 일이긴 했다.
저 저주스러운 백강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최필두 장관이 꽂은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그걸 대번에 수락해? 위에 물어보지도 않고?’
한국대학교 병원 기조실장쯤 되면 보건복지부에 장, 차관급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끈은 가지고 있는 법이었다.
그에 따르면 강혁은 별 고민도 없이 즉시 답을 했다고 했다.
전화 건 사람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실패하면 병원에 얼마나 큰 누가 되는지 생각이 없나?’
가뜩이나 칠성 병원이니 뭐니 하면서 돈으로 무장한 기업 병원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실정이었다.
간신히 오랜 전통과 동문의 힘으로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처지이거늘.
여기서 만약 이현종 대위가 죽기라도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한국대학교 병원 입장에서는 살아도 본전, 죽으면 큰일 나는 일인 셈이었다.
“실패만 해 봐. 병원에서는 절대 보호 안 쳐 줄 거야. 여론에서건 어디에서건. 어디 알아서 해 봐.”
해서 홍재훈 실장은 거의 악담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운 말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큰 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방패막이가 해제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불이익이었으니까.
하지만 강혁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알아서 하죠, 뭐.”
언제는 누가 도와줘서 했던가.
어디를 가도 환자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강혁뿐이었다.
‘그나마 여긴 팀이 있어.’
강혁은 잠시 자신의 팀을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늘 그래 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