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78)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78화(178/1120)
178화 귀환 (2)
<한국대학교 병원 백강혁 교수, 이현종 대위 보호자 찾아>
<군 당국 아는 바 없다고 일축>
<환자 상태에 대해 함구해 온 백강혁 교수 책임론 대두>
당연하게도, 당연하다는 것이 좀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기자들은 온갖 추측성 보도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후에 이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어쩔 것인가 하는 걱정을 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오보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람이 있다 해도 딱히 사과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아무도 보지 않을 만큼 작은 지면에 정정 보도 하나만 내면 되지 않았던가.
오랜 학습을 통해 이래도 된다는 걸 배워 온 이들이었기에 기사를 내보내는 데 있어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이놈들이 미쳤나? 아니, 멀쩡히 좋아졌는데 이게 뭔 기사들이래요?”
중증외상센터는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이었다.
아직 헬기 출동은 확정이 되었을 뿐, 업무 인계 중이라 당장 타고 나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근방에는 사고가 터지지 않았고.
데리고 있는 환자인 이현종 대위는 극히 안정.
덕분에 실로 오래간만에 인터넷을 켠 재원이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었다.
“왜 그래요?”
그와 마찬가지로 의자에 반쯤 기대어 쉬고 있던 장미가 질문을 던졌다.
저돌적인 성격답게 바짝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였다.
“어어.”
예기치 않게 그녀와 너무 가까이 붙게 된 재원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강혁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병신…….’
짝사랑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이 담겨 있는 한숨은 역시 아니었다.
“왜요?”
“아니, 아니. 갑자기 와서 놀랐잖아요.”
“뭘 놀래요? 박치기한 것도 아닌데.”
“아니……. 아니다.”
재원은 손사래를 치고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고 있던 인터넷 기사를 가리켰다.
밑으로 댓글이 무려 천 개도 넘게 달려 있었다.
기사 올라온 시각이 기껏해야 30분 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이라 할 수 있었다.
“헐. 교수님 욕하네?”
“그러니까요.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수님이 있어서 겨우 살려 온 거라고 떠들어 대더니……. 이런 기사 하나 나갔다고 바로 돌아서네?”
“원래 안티…… 라고 생각하기엔 양이 좀 많네요.”
“어이가 없다, 진짜.”
재원은 간간이 눈에 띄는, 자신을 향한 욕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자가 제목을 아주 기막히게 뽑기는 했다.
<그간 환자 상태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온 백강혁 교수, 무엇을 숨기려 했나.>
사실 환자 상태에 대해 말을 안 해 준 것도 아니었다.
2차 수술 후 회복되고 있음을 한 번 알려 준 적이 있기는 했으니까.
‘물론 기대에 미치진 못했겠지.’
기자들은,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은 매일같이 강혁이 이현종 대위의 상태에 대해 브리핑해 주기를 원했더랬다.
하지만 강혁이 어디 남들 뜻대로 움직여 주는 사람이던가.
이제 죽을 일은 없을 거라는 말을 끝으로, 기자들을 상대한 적이 없었다.
‘아, 아니지. 소방청장 엿먹일 때……. 한 번 나섰었구나.’
생각해 보니까 기자들이 빡돌 만도 했다.
몇 날 며칠을 저기 중환자실 복도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소득은 강혁이 다른 팀원들과 복도를 거닐며 흘린 부스러기 같은 정보들뿐이었을 테니.
‘그렇다고 이런 구라를……. 아니지. 잠깐만.’
재원은 그제야 비로소 저 멀리 벽에 기댄 채 낄낄거리고 있는 강혁을 돌아보았다.
이제 보니 저 양반이 아까 밖으로 나가서 뭔 짓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지나친 억측 아닌가 하는 의견은 곧장 묵살되었다.
“저, 교수님?”
해서 재원은 빠르게 강혁에게로 다가가 그를 불렀다.
강혁은 새카만 커피가 든 소변 컵을 입에 문 채 재원을 돌아보았다.
“왜.”
어떻게 컵을 문 채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재원은 애써 그 의문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혹시 아까 나가서 뭐라고 한 거예요?”
“어딜 나가? 나 계속 병원에 있었는데.”
“아니……. 중환자실 나가서요.”
“아. 저 양반들?”
강혁은 중환자실 문밖에서 각기 노트북을 필사적으로 두드려 대고 있는 기자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모조리 강혁에 대해 좋지 않은 보도를 내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강혁은 전혀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네. 이 기사……. 이렇게 내라고 하신 거예요?”
재원은 그의 눈앞에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거기엔 실시간으로 뜨고 있는 강혁에 관한 기사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오, 열심이네.”
“네?”
“내가 이렇게 내라고 했겠니.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지금 이현종 대위 멀쩡하잖아요. 근데 이걸 그냥 이렇게 둬요?”
재원은 중환자실 침대에 드러누운 채 TV를 보고 있는 이현종 대위를 돌아보았다.
평소 그가 좋아했다는 예능이 나오고 있었는데, 당연히 우연은 아니었다.
그를 계속 보살피던 이동주 대위가 미리 파일을 내려받아 놓은 덕이었다.
“하하, 아야……. 아으……. 아프네.”
이현종 대위는 그 프로를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이따금 배가 당기는 모양이긴 했지만.
아무튼,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아마 무리하면 목발을 짚고 걸어 다닐 수도 있을 터였다.
드르륵.
그리고 때마침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목발을 들고 들어섰다.
인턴인가 하고 봤더니 의외로 한유림이었다.
“이걸 왜 나보고…… 그리고 지금 기사……. 어? 깼…… 네?”
그는 투덜대며 들어오더니 이현종 대위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혁은 놀란 표정의 한유림에게 껄껄 웃으며 다가갔다.
이미 문은 닫힌 후였던지라 기자들은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인턴들은 입이 싸잖아요.”
“아니……. 이런 일은 입이 싸도 되지 않나?”
한유림은 현재 원내 여론이 어떠한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강혁이 주도권을 가지고 온 듯했지만, 그가 실수라도 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방금 뜬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달아 대고 있는 이들 중 몇은 아마 이 병원 사람일 터였다.
“아뇨, 아뇨. 지금은 안 돼요.”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한유림이 목발을 내려놓은 채 답답하다는 듯 강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재원도 그를 거들었다.
아무래도 같이 항문에 전념하던 때가 길어서 그런지 꽤 잘 어울렸다.
“그니까요. 괜히 욕만 먹고……. 이게 뭡니까?”
“언론 플레이를 해 봤어야 알지.”
강혁은 그런 둘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개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였다.
“교, 교수님은 해 봤어요?”
그 말에 재원이 욱했다.
착한 거 같은데, 가만 보면 은근히 다혈질이었다.
“아니, 안 해 봤지. 근데 뭐 꼭 해 봐야 아나.”
“뭐예요 그게.”
“간극이라고 혹시 알아? 무슨 말인지?”
“뭔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재원과 한유림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해 대고 있는 강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느 때처럼 즉각 답을 해 주겠거니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고개를 저어 대고는 이현종 대위가 멀쩡히 잘 보고 있던 TV 설정을 바꾸었다.
USB에서 그냥 TV 채널로.
“어.”
이현종 대위가 짤막한 신음으로 아쉬움을 표했지만, 강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환자를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환자의 생명만을 위하는 사람이 강혁 아니었던가.
둘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이거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강혁은 종편 채널에서 리모컨을 멈춘 채 한유림을 돌아보았다.
과연 공중파보다는 발이 빨라서, 이미 강혁을 두고 조리돌림을 해 대고 있었다.
“억울하다는 생각?”
한유림은 그 모습을 보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비단 강혁이 억울하겠다 싶은 심경만 담긴 말은 아니었다.
최근 자신이 처한 사정도 깊이 담겨 있었다.
강혁을 감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한부 과장이 된 몸 아니던가.
이걸 억울하다는 말 외에 달리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억울이라……. 뭐, 그렇게도 생각이 들 순 있죠.”
“그렇게도 생각이 들어? 그럼 아니란 말이야?”
한유림은 이 시각 제일 억울하고 분했어야 마땅할 거 같은 강혁을 향해 물었다.
심지어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이현종 대위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어……. 저기 지금 죽었다고 하는 게 저 말 하는 건가요?”
그는 방금 방송에서 떠들어 대는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강혁은 그의 말에는 딱히 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저 자기 생각만 떠들어 댈 뿐이었다.
“어차피 역관광할 수단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죠?”
“역…… 관광? 그게 뭔 소린가?”
“아, 나이가 너무 많으시구나. 그래……. 음……. 전화위복? 아닌데, 이건.”
“아니, 나도 알아! 역관광이 뭔지는!”
“알아요? 그런 거 공부할 시간에 수술이나 연습하시지.”
“어쩌라는 거야!”
“열 내지 마시고. 그러다 머리 터져요.”
“와……. 내가 말을 말아야지…….”
재원은 진절머리를 내는 한유림을 보며 역시 강혁과 말 섞는 행위는 웬만하면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현종 대위가 뻔히 살아 있잖아요.”
“근데 왜 욕을 먹고 있냐고.”
“원래 욕을 먹다가 드러내는 반전이 묘미죠.”
“뭔 소리야.”
“간극이라는 말이 있대요, 작가들이 흔히 쓰는.”
“간극? 그게 뭔데.”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겁니다.”
강혁은 그렇게 말해 놓고는 TV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녁 시간이 되어 갈수록 비슷한 논조의 방송을 하고 있는 채널이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그와 동시에 강혁의 핸드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보통 사람 같으면 평생 한 번도 통화해 볼 일 없는 사람들에게 걸려온 통화가 계속 울려 댔다.
“그거 안 받으셔요?”
재원은 ‘보건복지부 장관 최필두’ 이름이 대략 열 번쯤 찍힐 때쯤 강혁을 향해 물었다.
중간중간 문자도 와 있었는데, 아무래도 여기로 오는 길인 듯했다.
“뭐하러 받아? 환자 생긴 것도 아닌데.”
강혁은 대수로울 거 있냐는 듯한 얼굴로 대꾸했다.
“아니……. 그래도 사람이 전화하는데 받아야죠.”
“받기는 뭘 받아. 어차피 이번 일 끝나면 쌩깔 사람인데.”
“그건……. 모르는 일 아니에요?”
“모르긴. 넌 배우는 게 없냐? 정치인들은 반짝 이슈에만 관심이 있어. 굵직한 사건 사고들 읊어 줘?”
“아뇨, 아닙니다.”
굳이 들을 필요가 없기는 했다.
사고가 터지면 그때 잠깐 주의를 끌었다가 이내 없던 일처럼 흐지부지되는 꼴을 너무도 많이 봐 왔으니까.
“이번 일은 절대 못 잊게 만들어 줄 거야.”
강혁은 그런 재원을 보며 말했다.
딱히 재원을 향해 말한다기보다는 뭔가 다짐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못…… 잊게요?”
“그래. 못 잊게.”
“어, 이건 받아야겠는데요?”
재원은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강혁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아까 윤재호 과장이 얻어다 준 이현종 대위의 보호자 번호가 떠 있었다.
도착한 모양이었다.
“좋아. 네가 가서 데리고 와.”
“제가…… 요?”
“그래.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데리고만 와.”
“기자들이 가만 안 있을 거 같은데…….”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그럼 더 욕먹을 거 같은데…….”
“그래야 좋은 거니까, 잔말 말고 가서 데려와. 맞고 갈래?”
“아, 아뇨. 지금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