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8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85화(185/1120)
185화 노예 획득은 내게 맡겨 둬 (3)
“아, 교수님!”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장미가 반갑다는 기색으로 강혁을 불렀다.
이게 딱히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필경 뭐가 있다는 뜻이었으니.
“왜?”
“아, 환자 오고 있다고 합니다.”
대체 장미가 외상 외과 교수를 반길 만한 일이 이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약간 슬픈 일이긴 했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언제 연락 온 거지?”
강혁은 준혁의 뒷덜미를 놓아 주고는 장미에게 다가갔다.
재원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시발.’
준혁은 그렇게 자신을 버려 두고 바빠진 둘을 보고 있으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방 안에 잘 쉬고 있던 걸 억지로 납치해 올 땐 언제고 이렇게 찬밥 신세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몰랐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찬밥일 때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야! 일로 와 봐!”
“어…….”
“귀가 먹었나. 일로 와 보라고!”
곧 강혁이 성난 얼굴로 그를 불렀다.
준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나는……. 도망친 놈인 데다가 원래도 이식 파트 돌고 있었는데.’
다실 말해 강혁의 말에 불려 갈 이유는 하등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앞에 서 있었다.
이곳에 와 보니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말 안 들으면 뒈지게 맞을 수도 있다는 것만 중요했다.
“지금 공사 현장 추락 사고로 인부 한 명 온다니까 너도 대기해. 옷이…… 외과 의사가 옷이 이게 뭐야! 집에서 쉬고 있을 때도 수술복을 입고 있어야지!”
강혁은 반쯤 얼어 있는 준혁을 향해 대기를 지시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덧붙이면서였다.
하지만 그제야 준혁은 아직도 자신이 의사 가운은커녕 집에서 입고 있던 운동복에 맨발로 운동화를 꺾어 신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병원에 어울리는 복장은 아니었다.
“야, 이거 입어.”
이미 환자 받을 준비를 마치고 나온 경원이 남는 수술복을 훅 하고 준혁에게 던져 주었다.
“아, 네.”
해서 준혁은 얼떨결에 외상 외과 의국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게 되었다.
달그락.
들어가자마자 발에 부딪힌 것은 아마도 재원이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컵라면이었다.
배가 고팠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국물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어휴.’
교수랑 펠로우가 쓰는 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해 보였다.
차라리 레지던트들이 단체로 사용하고 있는 당직 방이 훨씬 나아 보였다.
거긴 그래도 인권이다 뭐다 하면서 살뜰히 챙겨 주고 있었으니까.
‘이런 데서 자고 있다 이 말이지…….’
혹시나 해서 밀어 보니 준혁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 소재로 된 2층 침대가 비명을 질러 댔다.
‘이게 외과 전문의의 미래라 이건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볼 때 1년 차부터 4년 차까지, 외과 의국원들은 모조리 소처럼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틈틈이 공부하는 이들도 아예 없진 않았다.
결코 많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개고생을 하고 최고의 루트를 통해 교수가 되어 얻게 되는 숙소가 여기라니.
어찌 보면 준혁이 외과에서 도망친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가 도망가게 만든 것이 이런 현실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이 방을 나가 강혁과 합류하기가 망설여졌다.
‘괜찮을까……. 내가…….’
묘하게 따뜻한, 소독의 열기가 남은 듯한 수술복을 입고 나니 실감이 났다.
이제 곧 수술에 어떤 형태로든 투입될 거라는 현실이.
그 말은 즉 환자의 생명에 관여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옆에서 볼 때는 마냥 멋져 보이기만 했는데.
직접 해 보니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야! 옷을 종일 입냐? 나와!”
“억.”
“어? 부딪혔어? 미안. 괜찮냐?”
“아……. 괜찮습니다.”
문고리를 코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던 준혁은 재원이 훅 하고 열어젖힌 문에 부딪혀 뒤로 몇 걸음인가 물러선 상태였다.
재원은 빠르게 준혁의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따라 나오라는 뜻의 손짓을 해 대었다.
“나와, 그럼. 환자 곧 온대.”
“아……. 네.”
준혁은 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일단 재원을 따라나섰다.
재원은 그런 준혁과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너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해 보는 건 처음이지?”
“네? 아, 네.”
준혁은 이제 외과 레지던트가 된 지 한 달 남짓한 상황이었다.
중증외상센터가 아니라 그냥 거의 모든 분야가 처음이라고 보면 되었다.
재원은 준혁을 조금은 안됐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새끼…….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얘기나 하려고 데려왔는데 바로 실전 투입이라니.
재원도 딱히 이걸 원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증외상센터는 환자 외의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엔 너무 바쁘고 힘든 곳이었으니까.
“이게, 외과지만 다른 파트랑 좀 달라. 환자에 대한 파악이 일단 제대로 잘 안 되어 있어.”
“아…….”
준혁은 그게 뭘 의미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혁이었다면 아마 뒤통수를 후려갈겼을 테지만, 재원은 그게 비하면 거의 성자와 다름없는 인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니까 너무 당황하지 말고. 시키는 것만 하면 돼. 어차피 그렇게 많은 걸 시키지도 않을 거야.”
“아, 네…….”
“근데 너 원래 손 떠냐? 왜 이렇게 떨어?”
재원은 ‘자신 없는 표정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라고 가르쳐 주는 듯한 준혁을 보며 물었다.
거의 무슨 첫 학회 발표를 앞둔 사람처럼 손을 떨어 대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긴장해서 그렇습니다.”
“야, 그럴 거 없다니까. 어차피 백 교수님이……. 레지던트한테 뭐 큰일 맡길 리가 없어.”
강혁은 심지어 펠로우인 재원에게도 답답할 정도로 순차적으로 일을 맡기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매사에 막무가내인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환자를 대함에 있어서는 돌다리도 두 번 세 번 두드려 보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그, 그럴까요?”
“당연하지. 너 1년 차잖아. 4년 차면 또 몰라……. 아무튼, 따라와. 다 대기 중이야.”
“아, 네.”
재원의 말이 도움이 되었는지 준혁은 조금이나마 나아진 손을 연신 주무르며 재원을 따라나섰다.
방금 들었던 대로 응급의학과 로비에는 강혁과 장미, 지민 그리고 경원이 대기 중이었다.
왜애애앵.
곧 구급차가 사나운 소리를 내며 로비 앞에 달려와 멈춰 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고는 병원 근처 공사 현장에서 벌어진 참이었다.
중앙 구조단에서 헬기가 와서 데려오는 것보다도 그냥 근처 소방서에서 출동한 구급차가 훨씬 빨랐다.
“환자 의식은?”
구급차가 멈추어 서기가 무섭게 강혁을 위시한 팀 전체가 우르르 달려갔다.
“전혀 없습니다.”
이제 막 침대를 끌어 내린 구급 요원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다른 구급 요원이 환자 위에 올라탄 채 흉부 압박을 해 대고 있었다.
“이런 망할.”
그제야 강혁은 의식 같은 걸 묻고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환자의 가슴팍에 연결된 심전도가 평평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구급 요원이 누를 때만 리듬이 튈 뿐이었다.
“언제부터지?”
강혁은 빠르게 환자의 동공 반사를 확인하며 질문을 이었다.
구급 요원 또한 지체하지 않고 답했다.
“이제 2분 됐습니다.”
“2분이라. 그나마 다행이네. 손상 의심 부위는?”
“머리, 경추……. 그리고 흉부입니다.”
“아예 전신이라고 하지…….”
강혁은 구급 요원이 말해 준 부위가 모두 주요 부위임을 떠올린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이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주고받는 와중에도 다른 팀원들은 귀신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기도 삽관됐습니다, 산소 풀로 틀어 주세요.”
우선 경원이 목을 뒤로 전혀 젖히지 않으면서 동시에 기관 삽관을 해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급 요원 한 명이 혀를 내둘렀다.
“이게 되네요?”
“연습하니까 되더라고요.”
경원은 자신도 괴물 중 하나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꾸했다.
“따끔해요.”
환자의 발 쪽에서는 장미가 어차피 의식 없는 환자를 향해 통증에 대한 경고를 날렸다.
그리곤 혈압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혈관이 쑥 숨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방에 주삿바늘을 제대로 꽂아 넣었다.
“검사 나가고, 수액 연결하겠습니다.”
지민은 그런 장미 맞은편에서 혈관을 비롯한 기타 활력징후 모니터링 장비를 쉴새 없이 연결하고 있었다.
“이제 제가 하죠.”
재원은 불과 2분 만에 땀에 흠뻑 젖은 구급 요원을 아래로 내리고 자신이 대신 올라탔다.
그리곤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준혁아, 너도 대기해. 1분마다 교대하자.”
“아……. 네.”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아, 저는…….’ 하고 빠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터였다.
준혁은 상대적으로 보통 사람에 속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교대!”
재원은 바삐 흉부 압박을 한 후 훌렁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준혁 또한 의사는 의사인지라 지체하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곤 최선을 다해 가슴을 눌렀다.
그드드득.
흉부 압박 때문인지, 아니면 기왕에 있던 손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갈비뼈 일부가 부러져 있었다.
자연히 준혁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갈비뼈 따위 얼마든지 부러져도 심장 압박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걸 실제로도 할 수 있으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한 법이었다.
준혁에게는 아직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야!”
강혁이 그런 준혁의 손바닥을 찰싹 후려쳤다.
“제대로 눌러! 시늉하지 말고! 쑈피알하냐? 씨피알이야!”
“아, 아, 네!”
“대답하지 말고! 계속 눌러!”
강혁은 그렇게 준혁을 닦달하면서도 환자의 가슴팍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아마 재원이나 준혁 또 다른 이들은 강혁이 그저 준혁이 잘 누르나 못 누르나를 감시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을 터였다.
물론 그것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심장이 뛰지 않으려면……. 몇 가지 선행 조건이 필요해.’
덜컥 멈추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이를테면 심근경색처럼.
하지만 이건 외상이었다.
반드시 그것 외의 원인을 찾아내야만 했다.
‘탐폰……. 아냐. 그건 아니야.’
그랬다면 누를 때 튀어 오르는 리듬이 저것과는 달라야만 했다.
심장 피막에 피가 찼다면 그로 인해 눌려서 뛰지 못하는 양상을 보여야만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 환자는 그런 게 아니었다.
“잠깐.”
그리고 강혁은 곧 진짜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준혁이 심장을 눌러 댄 지 불과 40초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네?”
“멈춰 봐.”
“어……. 네.”
흉부 압박에서 원칙은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의 의견은 원칙보다 위에 있기도 했다.
강혁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아예 안 뛰는 게 아냐……. 심장은 정상이야.”
강혁은 리듬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어 낸 후 이렇게 중얼거렸다.
“네?”
그리곤 누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환자의 우측 가슴 중간 부분에 주삿바늘을 박아 넣었다.
푸슈슉.
그냥 흉강에 차 있던 공기가 빠져나오는 것이라기엔 너무 거센 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떨어지면서 갈비뼈가 부러진 거야. 무기폐가 심하면……. 심장을 견인해서 못 뛰게 만들기도 하지.”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곧 심장은 쿵쿵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허.”
이에 준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떨어지듯 내려왔다.
하지만 그 말고는 누구도 그런 종류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없었다.
치료는 이제 시작이니까.
“최대한 빨리 수술실로. 다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