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9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95화(195/1120)
195화 신의 영역 (1)
“네? 기도요?”
재원이 에이 설마 잘못 들었겠지 하는 눈빛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기도라니.
강혁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어가 아니겠는가.
무신론자가 아니라면 평소 그렇게 행동하기가 좀 어려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남들에게 막무가내로 나갈 순 없을 테니.
“그래, 기도 좀 해 봐.”
하지만 강혁은 기도를 언급하고 있었다.
실제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기도 했고.
웅얼거리는 게 주문인지 기도인지 분간이 잘 안 가긴 했지만.
“이걸 보고도 기도가 안 나오면 그게 사람 새끼야?”
게다가 이어지는 말이 욕설 비슷한 것이다 보니 더더욱 기도란 느낌이 들진 않았다.
물론 강혁이 가리키고 있는 모니터상에 떠오른 상황은 충분히 절망적이긴 했다.
“폐가…….”
재원의 입에서 탄식이 툭 하고 튀어 나왔다.
강혁은 대체 어떻게 조작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파이버 옵틱 끝이 이미 우측 폐 기관지를 지나 세부 기관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도보다는 굵기가 가는 부위였기 때문에 손상의 정도가 더 심각해 보였다.
그 손상된 부위 틈새를 통해 누렇게 익은 무언가가 보였다.
아마도 폐일 터였다.
“그래……. 상부 폐가 녹았어.”
“이거……. 살 수 있을까요?”
재원은 저도 모르게 경원 쪽을 바라보았다.
경원 또한 아주 심각한 얼굴로 활력징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산소 포화도가 어느새 50% 미만으로 내려와 있었다.
지지선 없는 주식 폭락이라도 벌어진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병원까지 살아서 왔잖아. 게다가 수술실까지도 들어왔고.”
강혁은 굳은 얼굴로 재원의 말에 대꾸했다.
종합하자면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제껏 여기까지 들어온 환자 중 죽어 나간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으니까.
강혁도 그렇고, 재원도 그렇고.
그런 불행한 경우가 켜켜이 쌓여 나가길 바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어쩌죠?”
“일단 기도나 하고 있어 봐.”
강혁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는 파이버 옵틱 팁을 약간 뒤로 빼내었다.
부드러운 팁에 의해서도 화상 입은 조직들이 상처를 입었는지 약간의 출혈이 있었다.
“쯧.”
강혁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찬 후, 좌측 폐로 파이버 옵틱을 전진시켰다.
“어?”
우측에 비하면 한결 나은 모습이었다.
일단 기관지 자체에도 손상이 많지 않았다.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꽤 괜찮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좌측이 좀 낫군.”
“이유가…… 있나요?”
강혁의 말을 듣고 보니 뭔가 이유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재원으로서는 아직 일반 외과 영역이 아닌 곳의 해부학적인 지식이 딸릴 수밖에 없지 않던가.
해서 즉각 질문을 던졌다.
아마 다른 펠로우였다면 혼자 삭이고 있다가 나중에 시간 낭비 비슷한 공부를 해야만 했을 텐데.
의외로 되바라진 놈인 것이 이럴 때는 꽤 도움이 되는 법이었다.
“멍청아.”
물론 질문에 뒤따르는 수모가 없진 않았지만.
한 번 욕 들어먹고 편히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 아니겠는가.
적어도 재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편이었다.
해서 멍청이라는 말을 듣고도 별반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너 기도 이물이 어디로 주로 들어가는지는 알고 있어?”
“네? 아……. 학생 때 배운 거 같기도 안데……. 너무 옛날 일이라.”
해서 재원은 별 부끄러움 없이 모른다는 말을 잘도 꺼냈다.
강혁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그렇다고 알려 주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잘 키워서 잡아먹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어휴. 너 다시는 발표 가지고 뭐라고 하지 마라, 뒈진다 진짜.”
당연하게도 어느 정도의 핀잔은 뒤따랐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성질 더러운 강혁으로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우측 폐로 가는 기관지는 각도가 거의 없잖아. 직진이라고. 내가 내시경 집어넣는 것만 봐도 알겠네.”
“아…….”
“근데 지금은 어떠냐?”
강혁은 내시경 팁을 조절할 수 있는 곳을 재원에게 보여 주었다.
거의 끝까지 다 구부러져 있었다.
어딘가에서 확 꺾여서 안으로 들어갔다는 얘기였다.
“구부러졌네요.”
“그래. 왼쪽은 팍 꺾여서 들어간다고. 아무래도 공기의 유입량도 약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그래서…….”
“그래. 그나마 다행이야. 흠.”
강혁은 잠시 환자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하도 급하게 들어오다 보니 환자의 나이도 물어보지 못한 참이었다.
자기 힘으론 눈도 감지 못해 경원이 붙여 준 테이프에 의존하여 눈을 감고 있었다.
‘많이 쳐 줘 봐야 20대 후반. 폐 한쪽이 거의 상실된 상태에……. 기도 화상 때문에 공기가 잘 안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산소 포화도는 어찌 되었든 유지 중……. 흠.’
아무래도 평소 담배는 피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20대라는 점에서만 따지자면 사소한 습관 차이였겠지만.
지금은 생사를 가른 셈이었다.
‘그럼 한쪽만으로도 폐 기능은 얼추……. 괜찮을 거야.’
물론 좌측 폐는 우측 폐에 비하면 용적이 조금 더 작기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 정도는 가능할 터였다.
이 한쪽만이라도 잘 지켜지기만 한다면.
기도 화상 상태에서는 다소 지키기 어려운 전제조건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드르륵.
강혁이 막 수술 계획을 수립하고 있을 때쯤, 강일구 교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귀하디귀한 흉부외과 레지던트까지 하나 달고서였다.
외과가 미달이 난다, 도망간다 어쩐다 해도 흉부외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외과 한 연차에 있는 레지던트 수보다 흉부외과 전체 레지던트 수가 더 적었으니까.
“허.”
강일구 교수는 들어오자마자 짤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강혁이 슬금슬금 파이버 옵틱을 빼고 있었기 때문에, 고스란히 기도 상황을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오셨군요.”
강혁은 파이버 옵틱을 완전히 뺀 후 뒤를 돌아보았다.
“백 교수. 지금 기도 전체가 다 부어 있는 거 같은데……. 화면상으로만 봐도 2도 화상은 족히 넘고. 어떻게 할 생각이지?”
강일구 교수는 가타부타 인사도 없이 수술 계획부터 물었다.
일평생을 바쳐 사람 살리는 일을 하다 보면, 그리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다 보면 어딘가 하나가 망가져야만 하는 법이었다.
주로는 사회성이었다.
“우측 폐는 아무래도 전체 절제해야 할 거 같습니다.”
물론 강혁도 마찬가지여서 대화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환자 얘기를 하다 보니 눈이 초롱초롱해질뿐더러 생기까지 돌았다.
“큰 수술이 되겠는데……. 이대로는 못 버티겠어.”
강일구 교수는 저 멀리 활력징후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산소 포화도가 점점 떨어지고만 있었다.
드르륵.
때맞춰 김용호 신경과 레지던트도 안으로 들어왔다.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뇌파 검사 기기를 검사실에서부터 끌고 왔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이쯤 되면 한 번쯤 칭찬 비슷한 것을 해 주어도 좋겠지만.
강혁은 딱히 그럴 마음이 없었다.
“공장 가서 사 왔냐? 빨리 연결해!”
“네, 네! 죄송합니다.”
김용호는 한 번 호되게 당한 데다가, 수술실 분위기가 이보다 나쁠 수 없을 정도로 침울했기 때문에 일단 납작 엎드렸다.
이럴 때 깝죽대다간 다른 교수가 있는 방이라도 뼈도 못 추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학생 실습 시절 방 밖으로 내쫓긴 채 더 혼날까 봐 벌벌 떨었던 기억이 괴로웠다.
“아, 뇌파……. 수술 중 뇌파가 예후에 도움이 되죠.”
강일구 교수는 김용호가 환자 머리에 부리나케 붙여 대고 있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혁은 막무가내인 것 같으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지킬 필요가 없는 원칙은 과감히 건너뛰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강혁만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리라.
‘신들린 듯한 실력이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란 뜻인데…….’
대체 저 젊은 나이에 어디서 어떤 수련을 받았길래 저만한 판단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그건 수술에 대한 재능하고는 다른 영역이지 않은가.
강일구로서는 강혁의 지난 행적을 차마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강혁은 잠시 감탄하고 있느라 약간 정신을 놓고 있던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교수님. 어차피 우측 폐 수술할 땐 좌측은 노니까……. 그쪽에서 바로 체외 순환기 연결 가능할까요?”
“아. 지금 바로?”
“네.”
“흠……. 하긴 그게 좋겠어. 근데 이러고 못 살리면 적자 날 텐데, 괜찮나?”
강일구 교수가 볼 때 이 환자에게 다는 체외 순환기는 필연적으로 에크모로 이어져야만 했다.
단지 수술실에서만 달고 뚝 뗄 수는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기도부터 우측 폐까지 쫙 떼어 내야 했으니까.
숨을 쉴 수 없다는 얘기였다.
‘죽을 가능성이…… 반, 아니지, 아냐. 말이 안 돼. 후하게 쳐 줘도 80% 이상이야.’
강 교수 또한 실력 있는 외과의로서 자기 나름대로 견적을 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환자가 살 가능성은 20%도 안 되어 보였다.
그것도 단기간으로 한정했을 때의 얘기였다.
에크모는 환자가 죽으면 수가를 인정해 주지 않으니, 적자 볼 공산이 어마어마하다는 얘기였다.
같이 적자 과로 몰려 수모를 당하는 강일구 교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혁은 그게 뭐 문제냐는 식이었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요, 뭐.”
“흠……. 그래, 내가 연결하지.”
강 교수는 뭐라 말을 하려다 말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관여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있겠지.’
어쩌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눈앞에 있는 환자에게 집중할 때였다.
“좋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노예, 바로 따라붙어. 우측 폐 및 기도 전 절제술이다.”
“어후.”
“그게 대답이냐?”
“아뇨, 네. 네. 해야죠.”
사실 듣기만 해도 한숨이 푹푹 나오는 수술명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수술명이 있을까 싶었다.
아마 심평원 데이터베이스에는 등록조차 안 되어 있을 터였다.
‘하긴, 우리가 언제 등록된 수술만 했나.’
돌이켜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수술이 훨씬 많았다.
예약 수술에 비해 중증외상 환자에 대한 수술은 그때그때 임기응변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뇌파는 어때?”
강혁은 칼을 집어 든 채 김용호에게 물었다.
이제 막 설치를 마친 김용호는 잠시 움찔하다가 이내 답을 해 주었다.
“서파가 좀 너무 많이 잡히긴 하는데……. 마취된 거 감안하면 아직 뇌 손상을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의외로 또박또박한 답이었다.
사실 한 과의 3년 차 정도면 알 만큼 안다고 말할 정도는 되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좋아. 변하면 바로 말해. 산소 넣어야 하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절개 들어간다.”
“네, 교수님.”
강혁의 말에 재원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메스를 쥐고 있는 강혁의 얼굴 또한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팍팍 느껴질 지경이었다.
기도 언급했을 때부터 그러긴 했지만.
아무튼, 더럽게 어려운 수술임에 틀림없었다.
지이익.
그리고 그 수술이 마침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