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9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96화(196/1120)
196화 신의 영역 (2)
주르륵.
강혁이 메스를 긋자마자 피가 죽 하고 흘러나왔다.
색이 약간 탁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재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다만 강혁만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산소 포화도가 떨어진 지 시간이 꽤 지났으니 어쩔 수 없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심장만은 여전히 잘 뛰고 있단 점이었다.
산소 포화도가 이만큼이나 떨어졌는데도 버텨 주고 있는 것이 대견할 지경이었다.
‘역시 나이가 깡패야.’
제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이 환자가 50대였다면 아마 지금쯤 죽었을 터였다.
하지만 20대이다 보니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이렇게 피가 줄줄 날 정도로 혈압도 유지되고 있었고.
“톱 줘. 강 교수님, 그쪽 방해 안 되겠습니까?”
“톱 할 때만 잠깐 멈출게요.”
“네. 그럼 최대한 빠르게 가르겠습니다.”
한쪽 폐 절제술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절개법은 정중 절개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폐뿐만 아니라 기도까지 다 들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슴뼈 절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할 수 있었다.
강일구 교수도 그렇게 해서 심장이 드러나면 일이 훨씬 수월해지긴 할 터였기 때문에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뇌파가 괜찮다고 하니 약간은 여유가 생긴 셈이기도 했다.
가가가가각!
강혁은 빠르게 절개 선을 따라 톱을 그었다.
늘 그렇듯 다소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뼛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재원이 능숙하게 물을 뿌리긴 했지만, 강혁의 톱질이 평소보다 더 빨라서 완전히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제일 놀란 것은 강일구 교수였다.
‘이걸……. 나보다 잘한다니. 진짜 뭐 하는 사람이야, 대체.’
슬쩍 옆을 돌아보니 이제 4년 차가 된 레지던트 또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놈 이거 내 수술에서는 졸기만 하더니.’
서운해할 만한 일은 아니긴 했다.
레지던트로서는 강혁에게 기대하는 바가 달랐을 테니까.
근데 예상과는 달리 너무 잘하고 있으니 당연히 이렇게 놀랄 만한 일일 터였다.
“자, 벌려. 인턴 들어와 있나?”
“어, 네. 네!”
그렇지 않아도 슬그머니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인턴이었다.
중증외상센터 파견이라고 해서 어마어마하게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중환자실 업무가 주였지 수술실에서는 딱히 할 게 없었더랬다.
수술할 때는 대개 강혁과 재원만으로 커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진짜 중환이 오지 않은 것이 그 한 가지 이유였다.
또 다른 하나는 강혁이 능숙하지 않은 사람의 보조를 싫어하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개밥이라도 밥 비슷하기라도 하면 갖다 써야 할 지경이었다.
“손 닦고 들어와서 이거 딱 벌려. 일단 지금은 아이언 인턴(Iron intern: 인턴 대신 절개 면을 벌려서 고정할 수 있는 기구)로 걸 테니까.”
“네! 교수님!”
해서 인턴은 휴식 시간을 잃게 된 아쉬움을 애써 억누른 채 최대한 밝게 외쳤다.
어차피 인턴이 수술실에서 남길 수 있는 인상이라고 해 봐야 잘 당기네, 못 당기네 수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태도라도 밝게 인식되는 것이 좋을 일이었다.
“뭐가 그렇게 신났냐? 환자 안 좋아서 신나?”
“아, 아뇨. 죄송합니다.”
물론 강혁처럼 삐뚤어진 인간 앞에서는 다 소용없는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인턴은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속마음이야 어떨지 몰라도.
보기엔 수술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만 보였다.
그그극.
그사이 강혁은 아이언 인턴을 이용해 절개된 가슴뼈를 한껏 벌려 놓았다.
안쪽으로는 벌렁거리는 심장과 더불어 양쪽 폐가 모습을 드러냈다.
딱 겉모습만 봐서는 양측의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관찰해 보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뭐가 다르냐?”
강혁은 이미 예상한지라, 단 한차례의 호흡만으로 사태를 파악했다.
그리곤 그가 본 것을 재원도 보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재원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겨우겨우 답을 꺼낼 수 있었다.
“그……. 우측은 호흡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우측 폐는 마취 기기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었다.
일부 하엽 쪽에는 팽창하는 부위가 있기는 했지만 유의미한 호흡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왜 그런 거 같냐?”
강혁은 단순히 정답을 말했다고 칭찬해 주는 대신, 질문부터 던졌다.
이제 그가 생각하기에 재원의 레벨이 그 수준은 한참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서 백강혁의 수제자라고 하려면 차근차근 올라와야만 했다.
“어…….”
“어?
“아뇨, 아뇨. 기관지가 손상되면서 공기가 아예 못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흐음.”
“아, 아닌가요?”
“아니, 대강 맞췄어. 나머지는 이따 폐 떼고 나면 단면 잘라 보고 알아 봐.”
욕심 같아서는 좀 더 설명을 이어 나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환자 상태가 영 꽝이었다.
게다가 이미 강일구 교수가 체외 순환기 연결에 한창 열을 쏟고 있었다.
표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최대한 이쪽 일을 빨리 끝내고 넘어가는 편이 이로울 듯했다.
“폐 절제술은……. 오히려 어려울 게 없어. 어디부터 묶어야 할 거 같냐?”
강혁은 장미에게 명주실을 받아 들고는 물었다.
사실 이미 손이 묶을 곳으로 향한 후였기 때문에 딱히 의미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눈이 보인다면 다 맞출 수 있는 문제였다.
“역시 폐동맥이죠.”
“어어, 말 잘했어요. 거기부터 빨리 묶어 줘요. 우심실에 부담이 가고 있어.”
재원의 말에 강혁 대신 강일구 교수가 다급히 외쳤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심장 쪽을 바라보니, 과연 우심실 쪽의 박동이 조금 이상해져 있었다.
폐가 구워지면서 압력이 올라가다 보니 그 부하가 그대로 우심실 쪽으로 향한 모양이었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심장은 비가역적인 손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서둘러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
“알겠습니다.”
강혁은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놀려 대었다.
곧 굵직한 명주실이 폐동맥 중 우측으로 향하는 분지를 바짝 조여 들어갔다.
“수처 타이(Suture tie: 바늘을 이용한 묶기, 더 단단함)도 해야겠네, 준비해 줘.”
“벌써 들고 있죠.”
“역시.”
강혁은 척 하면 척인 장미를 향해 미소를 지은 후 툭툭 매듭을 지었다.
타이라는 게 묘한 구석이 있어서 쉽고 기본적인 술기일 것 같지만 제대로 하기는 꽤 어려운 술기 중 하나였다.
특히 지어지는 매듭을 따라 손가락을 이용해 끝까지 밀어내는 것이 그러했다.
물론 강혁의 타이는 당연하게도 완벽했다.
“컷 합니다.”
재원은 그렇게 1차로 묶인 타이 매듭을 자르면서 속으로 감탄을 연발했다.
솔직히 그냥 이렇게 두어도 터지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뭐하고 서 있어? 수처 타이 한다니까.”
하지만 강혁은 꼭 지켜야만 하는 원칙은 반드시 지키는 편이었다.
“아, 네.”
해서 수처 타이까지 더해 기어코 2차 매듭까지 지어 보였다.
당연하게도 아까보다도 훨씬 더 단단해 보이는 매듭이 지어졌다.
그와 동시에 이쪽으로 향하는 혈류가 완전히 틀어막혀 버렸기 때문에 강일구 교수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좋아요. 박동 거의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활력징후를 나타내는 모니터상의 심전도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계속 이렇게만 수술이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야속한 법이었다.
“어……. 서맥 빈도가 유의하게 늡니다! 대뇌 기능 저하예요! 광범위 경색 소견입니다!”
강일구 교수가 미소를 띠자마자 김용호가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외쳤다.
그 말에 모든 의료진의 고개가 뇌파 검사 기기 쪽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저게 뭘 말하는 건지 딱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기는 했다.
아까와는 모양이 달라졌다는 것.
“이런 망할! 경원아! 산소 틀어라!”
“어……. 그렇게 되면……. 기도 화상이…….”
“어쩔 수 없어! 뇌가 망가지면 말짱 헛짓이야!”
그렇지 않아도 강혁은 얼마 전 뇌사로 환자를 잃은 적이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또 그렇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말에 경원은 아랫입술을 꽉 다문 채 산소를 틀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산소 포화도가 널뛰듯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수치를 보며 좋아하지는 않았다.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아, 뇌파 파형 돌아옵니다! 이대로 한동안 유지하셔야 합니다!”
딱 한 명 김용호만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뇌지 다른 곳은 아니었으니까.
“강 교수님 체외 순환기 연결은 얼마나 걸리죠?”
마음이 급해진 강혁이 강일구를 향해 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본인이 직접 체외 순환기를 연결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곧입니다. 세팅도 동시에 하고 있으니까……. 10분 내외일 거예요.”
하지만 강일구 또한 대가는 대가였다.
강혁이 직접 했을 때와 비교해 그리 시간 차이가 나진 않았다.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직접 세팅을 도맡아 할 수 있기에 그랬다.
“다행이군요.”
해서 강혁은 침음을 삼킨 채 폐 절제에 재차 전념하기 시작했다.
굳이 ‘서둘러 주세요’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주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는 강일구 교수의 눈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서두르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아마 지금 눈을 깜빡이지 못한 지 꽤 오래되었을 터였다.
‘이런 망할…… 10분이라 이거지…….’
보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다량의 산소가 팍팍 기도를 통해 유입되었고, 그로 인해 호흡도 좀 더 원활해지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조직 손상도 가속화되고 있었다.
‘이젠 정말 기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 손상이 제발 왼쪽 폐에까지는 도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때란 얘기였다.
아무튼, 강혁은 그의 속내와는 별개로 착실하게 우측 폐 절제를 죽 이어 나가고 있었다.
동맥에 이어 정맥을 잡더니, 이제는 기관지를 묶어 내고 있었다.
“됐고……. 자를 거 줘 볼까?”
“네.”
원래도 공기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던 폐는 이제 창백하게 식은 채 간신히 몸에 매달려 있을 따름이었다.
타닥.
강혁은 방금 자신이 묶어 버린 혈관과 기관을 잘라 내었다.
그러자 꽤 묵직한 우측 폐가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이거 단면 잘라 봐. 그리고 검체 실로 보내 놔.”
“네, 교수님.”
재원은 그 폐를 받아 기구대 한쪽에 내려놓고는 메스로 슥 하고 그었다.
그러자 그나마 멀쩡해 보이던 겉과는 달리 안쪽은 노랗게 익어 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냄새는 역했다.
수술 실습에 들어온 학생 중 꼭 학번당 한 명 정도는 헛구역질하기 마련이었는데.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피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냄새 때문에 그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읍.”
그리고 이 냄새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재원조차 고개가 저어질 정도로 역했다.
“토하지 마라. 토하면 너 나가야 해.”
강혁은 그런 재원을 향해 딱 정떨어질 만한 말을 하고는 재차 파이버 옵틱을 요구했다.
어차피 지금은 기도를 잘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체외 순환기가 연결될 때까지 강혁은 딱히 할 일이 없어진 셈이었다.
그렇다면 보다 정확한 진단을 하는 것이 옳았다.
“어디…….”
강혁은 아까와는 달리 파이버 옵틱을 위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기도가 아니라 성대 하부가 눈에 들어왔다.
“에이.”
성대는 이미 죄 녹아서 앞쪽은 눌어붙어 있었다.
이걸 이대로 두면 목소리를 낼 수 있기는커녕, 숨도 못 쉴 것이 분명해 보였다.
‘완전히 새로 다 만들어 줘야 한다는 거지…….’
이쯤 되면 재건이 아니라 창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