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199)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199화(199/1120)
199화 신의 영역 (5)
강혁의 말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기도라고 하는 건 결국 입에서부터 폐의 입구에 이르는 길고 긴 통로였으니까.
“일단 제거부터 하지.”
“네…….”
강혁의 말에 재원이 힘없이 대답했다.
뭐라 탓할 만한 일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 수술만 해도 진이 빠지기에 충분했으니.
아니, 이미 다른 외과 의사였다면 포기를 몇 번 하고도 남을 지경의 수술이었다.
해서 강혁도 재원에게 뭐라 쏘아붙이지는 않았다.
사실 그러기엔 강혁도 온 신경이 수술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인턴, 너는 내가 절개 넣으면 그 절개 면을 위로 쭉 당겨 올리면 돼.”
“아, 네.”
인턴은 후두 미세수술을 하면서부터는 할 일 없이 팔짱 끼고 있던 참이었다.
강혁이 자신을 보며 입을 여는 것을 보고는 나갈 준비까지 했더랬다.
하지만 웬걸, 들려온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메스.”
강혁은 그렇게 실의에 빠진 두 보조의를 싹 무시한 채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까부터 기구 점검을 마쳐 놓고 있던 장미는 곧장 메스를 건네주었다.
강혁은 그 메스를 이용해 목에 U자 절개를 넣었다.
무려 우측 턱뼈에서 쇄골 가운데 부위, 그리고 다시 좌측 턱뼈까지 이르는 무지막지하게 긴 절개였다.
“오.”
강일구 교수는 강혁이 그런 절개를 밑그림도 그리지 않고 완벽하게 한 것에 대해 감탄을 터뜨렸다.
물론 강혁이나 재원 그리고 인턴은 별반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인턴은 이런 술기를 봐도 별 느낌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놈이 화려한 글씨를 본다고 해서 뭘 알겠는가.
또한 강혁과 재원에게 이런 절개는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이익.
해서 별 동요 없이 길고 긴 절개가 완료되었고, 강혁은 후크(Hook: 갈고리 모양의 기구) 두 개를 인턴의 양손에 하나씩 쥐여 주었다.
“내가 걸어 준 곳에서 빠지지 않게 주의하고 위로 당겨.”
“이렇게요?”
강혁은 환자의 얼굴 쪽으로 후크를 당긴 인턴을 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재원은 아주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딱히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뭐……. 네가 말을 한 번에 알아들으면 그게 인턴이겠니.”
다행히 강혁은 별반 화를 내지는 않았다.
대신 인턴의 손을 잡아 본래 그가 원했던 방향, 즉 천장을 향해 당겨 주었다.
“이렇게 하고 있으라고.”
“아, 네.”
재원은 강혁이 인턴 손을 조정해 두는 사이 한 손에는 석션, 다른 한 손에는 핀셋을 집어 들었다.
강혁은 그가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장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여깄습니다.”
장미는 강혁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날카로운 팁으로 교체한 전기칼을 건네주었다.
하도 험악한 수술에 연속으로 함께 투입되고 있다 보니 척하면 척이었다.
그야말로 환상의 팀워크였다.
‘우리도 저런 팀워크를 보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모습을 본 강일구 교수가 아주아주 부럽다는 눈길을 보내 왔다.
그리곤 어쩐지 서늘한 눈빛이 되어 옆에서 한창 체외 순환기를 조작 중인 레지던트를 돌아보았다.
“왜 춥지……?”
레지던트는 강일구 교수가 품게 된 생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 정도는 느끼는 중이었다.
치지직.
그의 운명과는 관계없이, 강혁의 전기칼이 타닥거리며 이미 그어진 절개를 더 깊숙하게 만들고 있었다.
목에 있는 지방층은 물론이고 얇게 퍼져 있는 근육, 즉 광경근까지 한 번에 긋는 중이었다.
“휴.”
강혁은 기왕에 그어져 있던 U자 절개를 보다 깊숙이 만들어 놓은 후 전기칼을 내려놓았다.
절개면 틈을 통해 갈라진 광경근이 보였다.
“인턴, 이제 알겠냐? 내가 너 보고 위로 들어 올리라고 했는지?”
강혁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절개가 썩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물론 그의 기분과는 아무 관계 없이 인턴은 개뿔도 깨달은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인턴이 수술 도중 무언가를 배우리라는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백지상태의 사람에게 심화 과정을 보여 주면 대체 뭘 알 수 있겠는가.
“표정이 왜 그러냐? 몰라?”
하지만 강혁은 그런 기본적인 상식이 다소 부족한 편이었다.
재원은 바로 지금이 자신이 나설 때라 생각했다.
“교수님, 인턴이잖아요……. 잘 당기기만 하면 되죠.”
“인턴은 의사 아냐? 얼마 전에 의사 면허 따지 않았냐? 시험 대리로 쳤어? 부정 면허 취득이야?”
“아뇨……. 그럴 리가…….”
“설마 네가 대신 쳤냐?”
“네? 아니……. 무슨 갑자기…….”
“근데 왜 편들어.”
“아뇨. 네, 죄송합니다.”
물론 재원은 단숨에 진압되었다.
그리고 인턴은 강혁의 시선에 의해 무참히 분쇄되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은 이 수술이 아주 어렵고 복잡하다는 점이었다.
그게 무슨 일인고 하면, 강혁에게 남들 괴롭힐 만한 시간이 아주 한정적이란 얘기였다.
“에이. 이게 광경근이잖아. 광경근이 뭐 해?”
“음.”
“그래, 네가 뭘 알겠니……. 이게 아래 구조물이랑 피부 쪽이랑 구분해 주는 거잖아. 그래서 네가 바짝 당기면 탁 하고 피부 쪽만 딸려 와서 전기칼로 그어도 아래는 안 다친다고. 자, 봐.”
강혁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검지를 이용해 광경근 밑을 슥 하고 훑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광경근과 그 밑 구조물을 연결해 주고 있던 성긴 결합조직이 투두두둑 소리를 내며 끊어져 나갔다.
당연하게도 피는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강혁은 이제 인턴 대신 재원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래서 모든 수술에서 각 레이어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 거야. 알겠냐?”
검지를 계속해서 놀려 대면서였다.
그 덕에 목에 들어간 U자 절개 면의 얼굴 쪽이 마치 앞치마라도 된 것처럼 홀랑 위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밑으로는 목의 안쪽 구조물들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
마치 마법이라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이비인후과나 갑상샘 수술을 하는 외과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는 있겠지만.
이토록 깔끔하게 구분이 되어 넘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너는 놀라면 안 되지. 직접 해야 할 사람이.”
“아, 네.”
“자, 이쪽 잡아.”
“네.”
광경근 아래쪽에 당장 기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숨 쉬는 기관이니만큼 엄청 중요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세로로 놓인 띠 근육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재원은 그 중 우측 띠 근육을 핀셋으로 잡아 우측으로 홱 잡아당겼다.
강혁은 좌측 띠 근육을 좌측으로 홱 하고 당겼고.
그러자 양 근육 사이의 성긴 연결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티디딕.
강혁은 그 연결체를 전기칼로 슥슥 그었다.
“에이.”
그렇게 순조롭게 수술을 이어 나가던 강혁의 입에서 욕설 비슷한 것이 튀어 나왔다.
원래 하얗게만 보여야 할 기도 연골이 누렇게 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고농도 산소에 너무 오래 노출됐어…….’
목숨 걸고 사람 구출해 온 요원 탓하는 것이 못 할 짓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그로 인해 손상이 가속화된 것은 사실이었다.
꺼져 가는 불씨에 100% 산소를 불어 넣어 본 사람은 알 터였다.
산소가 불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역시 못 쓰겠는데요…….”
재원은 그런 강혁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 정직한 답을 내놓았다.
다행히 강혁은 처음 칼을 댈 때부터 이럴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던 참이었다.
덕분에 그렇게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지. 그나마…….”
강혁은 전기칼을 좀 더 위쪽을 향해 그었다.
그러자 갑상연골이라고도 부르고, 방패연골이라고도 부르는 제법 큰 구조물이 튀어 나왔다.
남자의 경우엔 변성기 때문에 앞뒤로 길어져 ‘Adam’s apple’이라고도 불리는 녀석이었다.
“얘는 괜찮아. 제거하지 않아도 되겠어.”
“크기가 커서 그런가, 싹 타진 않았네요.”
“아주 좋은 소견이지.”
“근데……. 이거 다 떼면 뭐로 재건하실……. 거예요?”
강혁은 어느새 메스로 갑상연골 밑을 슥 하고 그은 참이었다.
덕분에 관 형태의 기도가 툭 하고 떨어져 나왔고, 곧 강혁이 기관지 근처에 한 번 메스질을 하자 20cm가 넘는 길이의 기도가 몸에서 분리되어 튀어 나왔다.
뗄 계획이었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떼고 보니 정말이지 황망해지는 순간이었다.
“흐음.”
평생을 흉부외과 의사로 잔뼈가 굵은 아니, 잔뼈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강일구 교수조차 침음을 흘려 댔다.
답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 바로 이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강혁만은 조금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노예. 너라면 이거 뭐로 재건할래?”
그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로 재원을 향해 물었다.
그 순간 재원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놈은 아니, 이 교수놈 아니, 교수님은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어……. 잠시만요.”
당연하게도 재원은 당장 답을 낼 수는 없었다.
해서 얼마간 고민이 필요했다.
다행히 강혁 밑에서 하도 굴러서 그런가, 머리 굴리는 과정 자체는 꽤 우수한 편이 되어 있었다.
‘기도는……. 일종의 대롱이야.’
우리 몸에서 그런 형태의 구조물은 어떤 게 있을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장이었다.
하지만 최우선시될 것 같지는 않았다.
‘기도는 폐가 부풀어 오르던, 쪼그라들던 모양이 유지되어야만 해.’
장은 어느 정도 모양이 변하는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장이 정답이라면 너무 뻔한 것 같았다.
악마 같은 양반이라 할 수 있는 강혁이 냈다고 하기엔 너무 쉬운 문제란 얘기였다.
‘시발 뭐지?’
하지만 재원은 딱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그 이상은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그러기엔 경험도 지식도 아직 미천하기 짝이 없었다.
“새끼.”
강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소장, 이런 거 얘기했으면 그래도 좀 인정해 주려고 했는데……. 아직 멀었구만.”
“에? 그거 생각했는데!”
“그런 말은 누가 못 하나.”
“아, 아니! 저 진짜 억울한데요?”
재원은 정말로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전혀 믿어 줄 생각이 없었다.
대신 장미가 쥐여다 준 소독약을 이용해 환자의 왼쪽 팔뚝을 슥슥 닦았다.
“어차피 소장은 답도 아냐. 이걸로 재건할 거야.”
“아.”
그제야 재원은 팔뚝의 살을 잘만 조정하면 일종의 관처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아주 단단한 편이라……. 호흡에 의해 쪼그라들거나 늘어나지도 않겠지……. 이런 방법도 있구나.’
재원이 편견을 깨부수는 사이 강혁은 소독을 마치고 메스를 집어 들었다.
“뭐 해? 보조 안 하냐?”
“아, 네.”
“인턴, 너는 거기 물이나 잘 끼얹고 있어라. 마르면 죽어.”
“네, 교수님!”
인턴은 죽는다는 게 여기 있는 조직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뚝 살을 떼어 내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팔뚝 살을 먹여 살리던 혈관을 찾아 내어 잘라 내는 것 또한 그러했다.
“요거 이어 주고 나가야지. 아, 근데…….”
강혁은 팔뚝 살에 연결된 혈관을 각각 안면 동맥과 경정맥에 이어 주다가 뜬금없이 표정을 굳혔다.
이제 고비는 다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던 재원의 안색 또한 덩달아 어두워졌다.
뭔가 문제가 생겼나 해서였다.
“이 환자 우리 학회 갈 때까지 완전히 안 좋아질 거 같은데……. 당직을 남겨 둬야 하나.”
강혁은 이 말을 하면서 왜인지는 몰라도 재원을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기묘한 미소까지 떠올라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재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환자가 안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안 돼! 안 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