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20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202화(202/1120)
202화 정리 (3)
“아니……. 교수님. 청와대랑은 척지면 안 되죠…….”
재원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일단 강혁을 말렸다.
하지만 강혁은 여느 때처럼 별로 물러서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척을 져? 의사가 환자의 상태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척을 져?”
“그…….”
재원은 뭐라 할 말을 찾고 싶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심정적으로는 강혁이 백번 틀린 거 같은데, 막상 말을 하려니 옳은 말은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어버버 거리고 있으려니, 강혁이 갑자기 그의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 나도 다 생각이 있어. 확 들이받지는 않아.”
“저, 정말이시죠?”
재원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믿기 어려운 말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강혁은 쓰다듬던 손을 꽉 쥐고는 재원의 정수리 부근을 콩 하고 찍었다.
멀리서 보면 그냥 애정 표현의 하나로도 보일 수 있겠지만.
재원에게는 어마어마한 통증이었다.
“컵.”
“그딴 눈빛으로 보진 말고.”
“으……. 네…….”
“버튼이나 눌러.”
“네.”
재원은 어차피 이렇게 누르게 될 버튼을 왜 항상 맞고서야 누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날 후회하는 짓을 그야말로 맨날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었다.
띵.
곧 엘리베이터는 이현종 대위가 입원해 있는 병동에 다다랐다.
병동 분위기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재활 병동이었기에 그러했다.
“아, 백 교수님. 이 대위님 방금 오전 재활 끝내고 들어와서 쉬고 있습니다.”
강혁이 스테이션으로 향하자 담당 간호사가 아주 능숙하게 환자에 대해 브리핑을 해 주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강혁은 언제나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지나쳐 가면서였다.
“따라올 필요는 없어요.”
“네, 교수님.”
할 일을 줄여 주고 있는 셈이니 병동에서는 강혁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지만.
‘그때 생각만 하면…….’
담당 간호사는 저도 모르게 스테이션 뒤편에 있는 수간호사실을 돌아보았다.
벌써 병동 간호사가 된 지도 5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때처럼 수간호사가 쩔쩔매는 것은 처음 봤더랬다.
‘하마터면 여기서 중증외상 환자들 초장부터 볼 뻔했지…….’
당시만 해도 외과 과장 한유림과 강혁의 사이는 사이라고 부를 것도 없을 만큼이나 나쁜 상태였다.
해서 한유림은 외과 병동에 자리를 내어 주는 대신 재활 병동에 자리를 줘 버렸다.
재활의학과 과장이 호구라서가 아니라 그때 한유림은 차기 기조실장으로 어마어마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재활 병동에서는 일대 소란이 있었다.
그렇게 중한 환자들은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주 당연하게도 강혁이 직접 찾아왔고, 그 이유를 해결해 주겠노라고 했더랬다.
‘그 해결 방법이…….’
강혁은 재활 병동 간호사 중 각 한 명씩을 중증외상센터 중환자실에서 로테이션 근무를 하게 해서 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었다.
병동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수간호사는 당연히 반발했고, 그날로 강혁에 의해 납치되어 중환자실에서 일을 배워야만 했다.
이젠 한유림이 외과 병동에 자리를 내주어서 옛날 일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아직도 수간호사는 그때 일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지 강혁 올 시간에는 늘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다른 교수들이 오면 일부러라도 나와서 인사하는 양반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강혁을 꺼리는지 알 수 있었다.
병동 간호사들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못한 추억에 잠겨 있는 사이, 강혁은 이현종 대위가 있는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 오셨어요.”
이현종 대위는 환자라기보다는 그냥 건장한 청년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애초부터 꽤 훤칠했던 사람이었는데, 죽도록 고생한 바람에 살까지 쭉 빠져서 모델 같은 느낌까지 주고 있었다.
“재활 운동은 할 만해?”
강혁은 이례적으로 환자인 그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하도 오래 보다 보니 질환 외의 얘기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말도 놓게 되었다.
“뭐……. 사실 지겹죠.”
이현종 대위는 쓴웃음을 지은 채 답해 주었다.
다행히 청와대 차원에서 초법적인 지원을 약속하여 이현종 대위는 모든 병원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제받을 때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퇴원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겹긴 하겠지. 따로 운동하는 게 훨씬 빡세잖아.”
“그럼요. 제가 사실 재활 운동할 수준은 한참 지나지 않았습니까.”
이현종 대위는 팔굽혀 펴기나 윗몸 일으키기도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과시했다.
수술이 워낙 깔끔하게 들어간 데다가, 타고난 강골이었던 덕이었다.
“그럼 인제 그만 퇴원할까?”
“네? 어제도……. 청와대 비서실에서 왔었는데. 한 달만 더 있으라고 하던데요?”
이현종은 아마 병원 전체에서 가장 다양한 인원이 찾아오는 환자에 해당할 터였다.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 규정이 바뀌는 바람에 지정 보호자 외에는 병동 면회가 되지 않는 게 정상이었지만.
강혁을 비롯한 여러 의료진은 이번 기회에 알 수 있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법이나 원칙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
“이것들이 미쳤나. 나한테는 2주라고 하더니?”
“제가 지지율 셔틀이잖아요. 별명 생겼던데. 하하.”
이현종 대위는 국민 영웅에서 약간 이상한 포지션으로 변경된 자신의 처지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딱히 지금 정권에 불만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군인이었고, 상관에게 충성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속이 뻔히 보이는 짓거리를 계속해서 해 대는 통에 약간은 지겨워진 참이었다.
“안 되겠어. 퇴원을 시켜야지. 내일 당장 가.”
“어……. 그래도 되나요?”
“내가 담당의인데 안 될 게 뭐가 있어?”
“그래도 윗선에 찍히면 좋은 일 없으실 텐데요. 뭐 우리나라 중증외상센터를 정착시키는 첨병이 되시겠다면서요. 그럼 그냥 참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현종 대위의 말에 강혁은 자기가 그런 말까지 했었나 하는 얼굴로 재원과 이 대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의문에 대해 재원이 속 시원히 답해 주었다.
“그때 헬기 이착륙장 건 확정되고 기분 좋아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한테 저 말 하셨어요. 저희 센터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도 알고 계시던데요.”
“내가……. 내가 그랬냐?”
“네. 저는 회의실 가서 소주라도 한 사발 드셨나 했다니까요.”
“새끼가.”
재원은 또 선을 넘은 깝죽거림으로 인해 한 대 얻어맞았다.
이현종 대위는 매일같이 자기 앞에서 만담을 찍어 대고 있는 둘을 보며 쿡쿡 웃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만 들이받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의학적으로…….”
“교수님.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 이번에 뼈저리게 느끼시지 않았나요?”
“음.”
강혁은 이현종 대위의 말에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하긴…….’
감염 위험과 환자의 안정을 위해 새로이 생긴 병동 면회 제한 규정은 지나치게 까다로울 정도로 지켜지고 있었다.
메르스 사태를 처음 진단부터 해서 마지막 정리까지 도맡아 진행했던 칠성 병원이 도리어 감염 관리에 소홀했다는 등의 공격을 받아 거의 개박살이 나는 걸 모든 메이저 병원들이 두 눈 똑똑히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되느니 아예 조금 욕먹고 여지를 주지 않는 게 나을 것이라는 게 병원의 판단이었다.
강혁도 그러한 판단에 적극 동의해서 반드시 지키도록 하고 있었고.
‘어떻게 된 게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당당하게 걸어온단 말이지.’
대통령은 대통령이라서.
국무총리는 총리라서, 비서실장은 실장이라서.
당 대표는 대표라서, 원내대표도 대표라서.
다들 지위를 내세워서 들어오는데 단 한 번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강혁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세상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교수님. 그런 표정 짓지 마시고요. 제가 돕겠습니다.”
“응?”
“이것 좀 보실래요?”
이현종 대위는 참담한 얼굴이 된 강혁을 향해 어떤 뭉치를 보여 주었다.
멀리서 봐서는 이게 대체 무엇인가 싶은 뭉치였다.
특히 회사 생활을 해 보지 않은 강혁이나 재원에게는 오리무중의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뭔데?”
강혁은 씁쓸한 마음을 저 멀리 훌훌 털어 내고는 이 대위에게로 다가갔다.
“명함입니다. 보세요, 이거.”
이현종 대위는 쓴웃음을 지은 채 명함 뭉치를 슥 하고 펼쳐 보였다.
그냥 보면 수수해 보이는 명함들이었지만, 이름과 소속을 보면 대단하기 짝이 없었다.
“이거…….”
“네. 저 러브콜 받습니다. 그것도 엄청.”
여당은 물론이고 제1 야당, 제2 야당, 제3 야당까지.
모든 당 대표, 원내대표, 최고 위원 등등 이름을 들어봄 직한 사람들의 명함이 죄 놓여 있었다.
강혁이야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옆에 있는 재원은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이현종 대위는 아마 다가올 총선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당장 있을 보궐에서도 당선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당 이미지에도 좋겠지.’
국민적 영웅이지 않은가.
이현종 대위가 딱히 누구를 지지한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그가 카메라에 얼굴을 비칠 때마다 집권 여당과 정부 지지율이 쭉쭉 올랐다.
“정치하려고?”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현종 대위를 향해 물었다.
“하면 안 될까요?”
“자네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
강혁은 비록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두고 본 정치인들은 이현종 대위와는 좀 달랐다.
품고 있는 뜻이 숭고하거나 순수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때가 타 있었다.
“뭐……. 어렵겠죠.”
그건 이현종 대위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는지, 곧장 고개를 흔들어 댔다.
“그럼 이런 말은 왜 한 거야?”
“그래도 제 발언이 도움이 되기는 하겠죠.”
“어떤?”
“교수님. 교수님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교수님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그거야 알지.”
“하하.”
다른 사람 같았다면 한 번은 아니라고 손을 흔들 텐데.
강혁은 그러는 법이 없었다.
이현종 대위는 참으로 강혁다운 반응이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그것도 그렇지.”
“제가 그들을 대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어요.”
“흠.”
“그러려면 아무래도 군인이어선 안 되겠죠.”
“뭐?”
강혁과 이현종 대위가 대화할 때, 강혁만 자신의 포부를 일방적으로 털어놓은 건 아니었다.
이현종 대위도 그러했다.
“평생 군인으로 살고 싶다며?”
“예전엔 그랬죠. 하지만…….”
이현종 대위는 자신의 왼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원래 같으면 잘라 내든지, 아니면 죽든지 해야 할 상처를 입었던 곳이었다.
강혁 덕에 가볍게나마 뛸 수는 있게 되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전력 질주는 무리일 터였다.
억지로 보직 변경 요청을 하면 군인 생활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이현종 대위가 바라던 군인이 아니었다.
“이젠 다른 일이 하고 싶어졌어요.”
“그……. 그게 나를 돕는 거라고?”
“아까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교수님한테 목숨을 빚졌다고.”
“그거야 맞는 말이지만.”
“그럼 그거 좀 갚아 드려야죠.”
이현종 대위는 그 말을 하면서 명함 뭉치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그러려면 싫어도 정치를 해야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