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231)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231화(231/1120)
231화 중요한 사람이긴 한가 봐 (1)
수술이 진행되는 사이, ‘신원미상의 남성’이라는 이름으로 접수되어 있던 용의자의 이름이 변경되어 있었다.
‘유지상’
강혁도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한때 뉴스에서 엄청 떠들어 댔던 이름이었으니까.
중국과 미얀마, 태국 등지를 돌며 마약을 들여온다고 하는 한 마약 조직의 수장이라고 했든가, 어쨌든가.
아무튼, 강혁이 방금 살려 낸 인간은 지금까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죽인 사람의 수가 수천을 헤아릴 정도의 악마 그 자체였다.
“와……. 우리 엄청 거물을 수술했었네요.”
재원은 배에 거즈를 붙인 채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는 깡마른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상체를 심하게 다친 데다가 이것저것 달 것이 많아서 환자복 상의는 거의 풀어헤쳐 있었다.
그런데도 맨살이 드러나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는 않았다.
거의 문신이었다.
그것도 한 땀 한 땀 장인이 공들여 새긴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런 문신.
“그러게. 흠.”
강혁은 아직 정신을 차리려면 한참 남은 것으로 보이는 유지상에게서 눈을 뗀 채, 뒤에 서 있는 박철순 반장을 돌아보았다.
눈에서 불이 난다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만큼이나 독이 올라 있었다.
반장 뒤에 서 있는, 아까 유지상의 혈액에 노출되었던 형사 둘 때문인 듯했다.
“망할 새끼.”
그는 짤막한 욕설을 내뱉었다.
함부로 유지상의 멱살을 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래 봐야 얻을 수 있는 소득도 없을뿐더러, 이놈이 멀쩡히 눈을 떠야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휴우.”
해서 짙은 한숨으로 답답한 마음을 털어 낸 후 방금 강원도에서 복귀한 자신의 부하를 가리켰다.
“백 교수님, 여기 두 녀석입니다. 그……. 예방적 치료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겁니까?”
강혁은 답을 즉시 해 주는 대신, 찬찬히 두 형사를 살펴보았다.
주로는 안면부와 손이었다.
‘안경 좀 끼고 다니지.’
둘 다 눈이 좋은 건지, 렌즈를 끼고 있는 건지 안경이 없었다.
‘하긴 육탄전에서 안경은 약점이 되겠지.’
강혁은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고 잠시 반성했다.
이 둘은 강력계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마약 수사대 소속이라는 것을 뒤늦게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혹시 아까 이 환자와 접촉할 때 상처를 입었습니까?”
약은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뭔가 따라야 할 절차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놈의 절차 때문에 외상 외과가 처한 어려움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는데.
심지어 HIV 건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더랬다.
그래서 그런지 강혁의 얼굴에도 미미한 분노가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터뜨릴 대상을, 재원에게만 제외하면 잘 구별하는 편이었기에 앞의 두 형사는 그의 분노를 눈치채지 못했다.
대신 강혁의 질문이 있자마자 자신의 몸을 부리나케 점검할 뿐이었다.
“손, 손은 괜찮습니다.”
장 형사가 자신의 멀쩡한 손을 가리키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HIV라니, 에이즈라니.
너무 무시무시한 병명 아니던가.
특히 의료진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가 없는 그에게는 그저 죽음을 대신하는 단어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 어…….”
반면 김 형사는 상태가 좀 더 심각했다.
그는 차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는데, 단순히 긴장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접촉이 있었습니까?”
강혁은 촉이 꽤 좋은 편이었다.
특히 의학적인 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김 형사의 이상한 반응에 즉시 감이 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이렇게 떨려면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하지.’
용병들도 그러지 않았던가.
작전에 들어가는 순간 목숨을 우선순위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그들은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도 않았다.
아마 마약 수사대 형사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 입……. 입에 들어간 거 같습니다.”
“입?”
그 말에 강혁을 비롯한 여러 의료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구강 점막은 아무래도 피부보다는 약한 보호막이었으니까.
심지어 점막을 통해 흡수되는 약들도 적지 않지 않은가.
바이러스가 그렇게 들어갈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이 바이러스의 경우 만약을 상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어디 봐 봐요.”
강혁은 가운에 늘 꽂고 다니는 펜 라이트와 설압자를 이용해 김 형사의 입안을 들쑤셨다.
상당히 불편했을 테지만 김 형사는 가만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의사에 대한 신뢰도 한 가지 이유이긴 하겠지만.
태반은 얼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흠. 일단 육안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는데…….”
강혁이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일단 점막에는 상처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의 육안은 어지간한 내시경을 이용한 검사보다도 훨씬 정확했으니까.
“저……. 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해서 강혁은 어느 정도 감염 위험성을 줄일 수 있었지만, 김 형사의 불안감까지 줄여 줄 수는 없었다.
“어, 어떻게 되는 거냐고요!”
김 형사는 거의 공황장애에 빠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형사씩이나 돼서 주요 용의자가 있는 중환자실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철순 반장은 그런 김 형사를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 아니던가.
“감염의 위험이 아주 크지는 않아요.”
더 환장할 노릇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형사에게 괜찮을 거란 말을 해 줄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가 재원이나 강행처럼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끼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말해 줄 수 있었을 터였다.
HIV는 기본적으로 다른 바이러스들에 비해 감염력이 아주 강한 놈은 아니니까.
하지만 아무 보호장구도 없이 아까 의료진이 겪었던 것보다도 더 심하게 출혈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강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빈말로라도 위로를 전달했겠지만.
강혁은 그런 종류의 인간은 못되었다.
“아, 아주 높지는 않다고요? 씨발, 에이즈라며!”
“욕은 하지 마시고요.”
“약은! 약은 언제 오는 건데!”
“중환자실이니까 나가서 얘기하죠.”
강혁은 잠시 김 형사의 뒷덜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기절을 시키는 것이 어찌 보면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너무 격앙된 상태에서 기절을 시켰다간,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었다.
지금 김 형사를 괴롭히고 있는 온갖 신경 전달 물질이 가라앉지 않고 무의식에 침전할 테니까.
“어어. 미네? 사람 밀어?”
김 형사는 방금 자신이 얻어맞을 운명이었다가 되살아났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강혁에게 붙잡힌 채 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박철순 반장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냥 체격만 큰 게 아닌가 본데?’
김 형사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도 180cm에 90kg에 육박하는 근육질의 형사였다.
그걸 저렇게 그냥 밀고 나가다니.
백강혁 교수란 사람이 대체 뭐 하는 인간인지 궁금해졌다.
“약 왔습니다!”
물론 약이 도착함에 따라 강제로 싹 지워지긴 했지만.
지민은 응급실 입구에서 질병관리본부 당직자가 전달해 준 약을 가지고 숨을 헉헉대며 뛰어오는 중이었다.
그냥 약만 있는 게 아니라 응급으로 검사해 볼 수 있는 키트도 들고 있는 채였다.
이곳은 병원이라 딱히 그거까지 필요하진 않겠지만.
아무튼, 절차대로 하는 일일 터였다.
“아. 자, 잘 봐요. 그냥 무턱대고 먹지 말고.”
강혁은 지민에게 약을 받아 낸 후, 하나하나 같은 처지의 일행들에게 약을 나눠 주었다.
김 형사에게만큼은 아직 약을 주지 않은 상태였는데, 눈알이 이리저리 튀고 있는 것이 확실히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이 약을 약 한 달간 복용해야 합니다.”
“한 달이요?”
그 말에 장 형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약 수사대 일이 급한데 한 달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 형사의 어깨를 박철순 반장이 툭툭 두드려 주었다.
“휴가 받을게. 병가로. 어차피 저 새끼 일어나고 취조하고 하려면 시간 많다.”
“반장님…….”
“새꺄, 네 몸 걱정이나 해. HIV가 에이즈라며.”
정확히 HIV가 에이즈 자체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HIV 감염이 에이즈를 일으키는 것은 맞지만, 최근 개발된 약들에 의해 에이즈로의 진행을 최대한 늦출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이러한 인식으로 남아 있었고, 지금은 그런 인식을 바꿔 줄 타이밍도 아니었다.
“네…….”
해서 강혁은 장 형사가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약의 복용법만 잘 숙지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미 노출이 된 지금, 노출 후 예방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
“약간의 메슥거림이나 구토가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다 먹어야 합니다. 현재까지는 이게 그나마 감염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100% 감염 예방이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당히 높은 확률로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된 바 있었다.
아직은 기관별로 발표하는 수치가 상이해서 어느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긴 했지만.
“김 형사라고 했나요? 이거 일단 드시죠.”
“어……. 네, 네.”
“그리고 숨 천천히 쉬어요. 지금처럼 숨 쉬면 더 심해져.”
“으…….”
강혁은 일단 김 형사에게 약을 먹인 후, 자신도 약을 먹었다.
자신과 제자들은 100% 안전할 거란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찜찜했다.
어서 이 지옥 같은 한 달이 지나고 확정 검사를 받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최하림 감독은 여느 때처럼 그 광경을 카메라에 빠짐없이 담고 있었다.
지이잉.
그리고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돌아가는 카메라가 하나 더 있었다.
‘백강혁과 붙어 있으면 특종이 터진다’라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는 TV 고려의 박상은 기자가 들고 있는 카메라였다.
그녀는 정말이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이거……. 이거 터뜨리면 대박이다.’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심각한지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저 환자.
유지상이라는 이름의 마약 괴수의 존재가 그녀의 심장을 달뜨게 했다.
“참.”
그녀가 그렇게 카메라를 돌려 대고 있는 사이, 박철순 반장이 입을 열었다.
“뭡니까?”
“저 환자 말입니다. 유지상.”
“아, 네.”
“이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백 교수님이 경찰 관련한 일로 헬기 출동한 건 이미 알려져 있는데……. 저 이름이 떠 있으면 좀 위험할 거 같아서요.”
두 아끼는 부하가 HIV에 노출된 바람에 경황이 없어 미처 지시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은 강혁 또한 차마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제아무리 백강혁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게 좋겠네요. 이름을 바꾸죠. 그리고……. 중환자실 앞에는 경찰 인력 좀 붙여 주십쇼.”
“당연하죠. 지원 요청은 진즉에 보내 놨습니다.”
“잘됐군요.”
“모쪼록 치료만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녀석들이나 저 새끼나.”
“언제나 최선을 다합니다, 반장님.”
둘의 대화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급하게, 박상은 기자는 기사 초고 작성에 들어간 참이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굳이 사무실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편집장 허락만 있으면 카페에서도 인터넷 기사 정도는 올릴 수 있었으니까.
‘특종이다, 특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