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249)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249화(249/1120)
249화 전면 철수해 (2)
“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남윤석을 한국대학교 병원에 보냈던 이가 쩔쩔매는 투로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역정을 내고 있는 사람은 현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어쩌면 다음 대선에서는 더 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고.
“몰라? 모른다고 하면 대수야? 너 미쳤어?”
“그…….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보긴 뭘 알아봐! 저 병원에 지금 유엔 사무총장이 입원했잖아! 여기서 일 치렀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국내 언론뿐 아니라, 외신들까지 주목하는 상황이었다.
아니, 외신 정도가 아니라 각국 정상들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가 알기로 벌써 여러 차례 청와대에 사무총장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걸려 왔을 정도였으니까.
“철수……입니까?”
“그래. 일단 다 빼. 대기 중이던 새끼들도 다 빼.”
“하지만……. 유지상이 입을 열면…….”
“걸리면 죽는다고! 이 멍청아!”
“알겠……습니다.”
역정을 내는 사내의 말에 남윤석을 보냈던 국내 마약 유통의 대부는 뒷걸음질을 쳐서 물러났다.
그리곤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가 남윤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오면……. 이 자식은 죽여야겠지.’
일에 실패할 수는 있었다.
일을 해 본 입장에서 그건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얼굴을 가려야 하는 놈이 TV에 나와?
그것도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방송 중에?
이런 개념 없는 새끼는 죽여야 마땅한 일이었다.
우우웅.
그렇게 살심 가득한 전화가 남윤석의 품에서 울렸다.
마침 기자회견이 끝났던 터라, 그는 별생각 없이 전화를 받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덥석.
그런데 그런 그의 손을 강혁이 잡았다.
눈을 무척이나 가늘게 뜨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윤석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거 안 받는 게 좋을걸.”
전화가 어디서 온지 윤석조차 모르고 있는 와중에 나온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윤석의 얼굴이 대번에 핼쑥해졌다.
‘치고…… 튈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강혁 뒤에 턱 버티고 선 아단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그냥 강혁 자체도 그리 만만해 보이진 않았다.
일단 덥석 잡힌 손목에 느껴지는 힘이 심상치가 않았으니까.
‘떨쳐…… 낼 수가 없네?’
의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아까 봤던 수술이 떠올랐다.
이런 사람을 의사라고 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의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을 터였다.
부우웅.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마지막 진동이 끊겼다.
그제야 강혁은 반대편 손으로 윤석의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워낙 빨랐기 때문에 윤석은 이렇다 할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어.”
그저 헛바람 빠지는 소리나 냈을 뿐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영문을 모르는 아단은 난데없이 강혁이 힘없는 직원의 핸드폰을 뺏어 드는 것을 보며 물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자신도 같이 뺏길 거 같아서 강하게 나가진 못했다.
강혁은 그에게 이렇다 할 답변을 해 주는 대신 강행을 불렀다.
“2호. 너 가서 박철순 불러와.”
“반장님이요?”
“눈치는 새끼. 불러와.”
반장 얘기가 나오자마자 윤석이 부리나케 튀었다.
아니, 튀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강혁의 발이 그의 다리를 걸었고, 윤석은 불의의 습격을 당해 바닥에 나뒹굴어야만 했다.
“아단, 쟤 좀 제압해. 나는 아까 수술하느라 지쳐서.”
“어……. 네.”
그리곤 100kg이 넘는 거구를 자랑하는 아단의 밑에 깔려야만 했다.
“크, 왜. 왜 이러십니까!”
아단은 그저 깔기만 한 게 아니라 윤석의 팔 하나를 뒤로 꺾은 채였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강혁이 괜히 이런 말을 하는 거로 생각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석은 뒤늦게 순진한 척을 해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생각보다 강혁은 예리한 사람이었다.
“왜 이러긴. 내가 아는 남윤석이랑 얼굴이 달라서 그렇지.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직원 얼굴 아는 게 이상하지? 근데 난 사람 얼굴이랑 이름 외우는 게 특기거든.”
그런 주제에 맨날 이름 모르는 척하고 별명 부르는 아주 고약한 버릇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과 관련된 과 사람들에 대한 업데이트를 거의 매주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쓸 만한 사람이 있으면 뽑아 오겠다는 아주 좋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은 어떻게 요상한 방식으로 얻어걸려 버린 셈이었다.
“그…….”
할 말이 없어진 윤석은 뭐라 중얼거리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뭔가 깨물려고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입안에 쑥 하고 밀고 들어온 플라스틱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어. 이 새끼들. 아주 독한 놈들이라니까?”
고개를 들어 보니, 강혁이 자신의 입에 플라스틱 쪼가리,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도 확보기를 쑤셔 넣고 있었다.
딱딱.
이미 팔이 잡혀 있다 보니 제아무리 씹으려 해 봐야 이가 닿질 않았다.
그사이 강혁은 장갑까지 낀 채로 윤석의 입에서 작은 알약을 빼냈다.
씹는 순간 청산가리가 튀어나오는, 이른바 자살용 알약이었다.
“그건…….”
아단 또한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미군 군의관은, 특히 아단처럼 파병 다니는 군의관은 나름 교육받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 새끼 뭔가 구리더라고. 아까 머리 잡을 때부터 알아봤지.”
환자 머리를 무슨 니킥 날리기 직전 사람처럼 잡는 간호사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수술실과 관계없는 병동에 있다 해도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간호사가 되려면 4년간 제대로, 빡세게 교육을 받아야 하니까.
게다가 이런 대학 병원의 간호사라면 소위 시니어라는 사람에게 죽도록 갈굼을 당해 가면서 배우게 되어 있었다.
절대 남윤석처럼 어리바리한 태도를 보일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어? 무슨 일…… 이십니까?”
박철순 반장은 아주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외국인 밑에 깔린 채 숨을 컥컥거리고 있는 간호사는 분명 아까 TV에서 봤던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그 사람이 여기 깔려 있을까.
‘심기를 거슬렀나?’
만약 강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러고 있으면 뭔가 중대한 사건이 있었을 거로 생각했을 텐데.
강혁이 이러고 있으니까 어쩐지 사소한 일로만 여겨졌다.
“일단 이거 좀 보시죠.”
하지만 강혁이 내민 알약을 보고 나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일반적인 알약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른 녀석이었는데, 일부러 씹지 않으면 말할 땐 결코 씹히지 않는 그런 모양새였다.
“이거…….”
“이 새끼 입에서 나온 겁니다. 남윤석이 아니에요.”
“그럼……?”
“이 핸드폰 좀 받아 보시죠.”
강혁은 아까 윤석에게서 빼앗아 들었던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부재중 통화가 와 있었는데, 저장된 이름이 ‘형님’이었다.
딱 봐도 수상하지 않은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형님이라니.
예전에는 꽤 좋은 뜻으로 불렸을지도 모르는 호칭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특수한 계통에 계시는 분들이 주로 쓰는 호칭이었으니까.
“허. 이 개새끼들이 또 보냈어? 너 누가 보냈어?”
박철순 반장은 아직도 다쳐서 누워 있는 준석 순경과 금세 회복되어서 깝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마음 졸이게 했던 우 형사를 떠올리며 물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윤석의 옆얼굴을 잘근잘근 밟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
하지만 윤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청산가리라도 씹어서 죽을 생각을 했던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강혁이 입을 열고 나서부터는 얘기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새끼. 너 이대로 버티고 있으면 걔들이 어이구, 잘했다 할 거 같지? 살려 줄 거 같지? 아닐걸.”
“…….”
“너 아까 나랑 TV 나갔잖아. 내가 괜히 널 데리고 갔겠어? 신규는 중환자실에 두고 굳이 널? 네가 이뻐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
윤석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는 있었지만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설마하니 강혁이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자신을 TV에 노출했으리라는 건 전혀 몰랐으니까.
‘이…… 이 개새끼가…….’
하고 욕을 되새기고 있으려니 강혁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까 그 전화, 회견 딱 끝나자마자 왔지? 우연일까? 너희 형님인지 뭔지……. 그거 본 거야. 네가 전 국민 아니, 전 세계 앞에 얼굴 드러내는 걸.”
“그…….”
“무사히 도망갔으면 가서 죽었을거야. 그리고…….”
강혁은 이 녀석이 망설임도 없이 청산가리를 물려고 했던 일을 기억했다.
이 비슷한 일을 시리아에서는 숱하게 보아 왔던 이가 바로 강혁이었다.
‘다른 누가 걸려 있을 수 있지.’
가령 부모님이라든가.
동생이라든가.
“가족도 죽일걸? 넌 역적 정도가 아니라 수치고, 이제 반드시 죽여야 할 리스트에 올랐을 거거든.”
“이……. 이 개새끼야!”
“누가 누굴 보고 개새끼래, 새끼가. 사람 죽이러 온 놈이 말이야.”
“그…….”
“그래도 내가 진짜 착한 사람이거든. 여기 박철순 반장님도 그렇고.”
강혁은 짐짓 정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박철순 반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박 반장은 강혁의 모습에서 마치 오래 현장에서 굴러먹은 요원의 향기가 느껴지던 참이라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에?”
해서 다소 얼빠진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는데, 그게 강혁의 마음에는 들었다.
“이것 봐. 이래서 어디……. 뭐 사람이 너무 순해서 탈이라니까.”
“뭔……. 뭔 개소리야.”
“기회를 주겠다, 이거야. 너 사실 지금은 그렇게 큰 죄를 저지른 건 아니거든? 그렇죠?”
강혁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박철순 반장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죠. 뭐……. 살인미수도 아니죠, 이건.”
“그러니까.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데……. 제 증언에 따라서는 또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강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윤석의 표정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박철순 반장 또한 베테랑답게 아주 잘 받아쳤다.
“당연하죠. 살인미수에 마약에 뭐 걸고넘어질 거 많죠. 일단 이게 있으니까요.”
그는 남윤석의 입에서 나온 청산가리를 가리켰다.
강혁은 그걸 장갑에 감싼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 살인의 대상이 유지상이 아니라 톰 커크먼 사무총장이었다니. 이거야 원…….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야, 야! 그, 그건 아니지!”
“어허. 가만히 있어. 영원히 입 다물 것처럼 있더니 갑자기 왜 이래?”
“어……. 억울하잖아, 그건!”
“그럼 안 억울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니까?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강혁은 그렇게 껄껄 웃고는 윤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색깔까지 모조리 구별할 수 있는 강혁의 눈빛은 뭔가 좀 달랐다.
정말로 꿰뚫린다는 그런 느낌마저 줄 지경이었다.
“그……. 어,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일단 아는 거 다 털어놓아야지.”
“그……. 음.”
남윤석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고민의 결과는 너무나도 뻔한 것이었다.
강혁이 교묘하게 틀어 둔 그의 고개 때문에 보이는 TV에는 지금도 윤석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불안 요소가 된 그를, 조직에서는 절대로 살려 두지 않을 터였다.
“대, 대신……. 우리 엄마……. 엄마 데려와 줘……. 내가 전화해서 시간을 벌 테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죠?”
강혁의 말에 박철순 반장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강혁이나 박철순이나 맡겨진 일을 하고자 할 땐 딱히 법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유지상의 입을 열 뿐 아니라, 다른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면 경찰력을 동원해 범죄자의 어머니 구해 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강혁은 곧 박 반장이 어디론가 지시를 내리는 것을 보며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박 의원 말대로 정적이 엮여 있으면 좋고, 아니더라도 좋고.’
전자에 해당한다면 자신에게 우호적인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올라갈 테니 최고로 좋은 일이 될 터였다.
후자라면 약간은 아쉽긴 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대한민국이 좀 더 깨끗한 나라가 될 터였다.
‘그거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