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25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255화(255/1120)
255화 귀천은 없다 (1)
<예견된 인재>
<또다시 반복된 스크린 도어 사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 청년>
<말로만 재발 방지 외치나>
강혁이 탄 헬기가 환자를 구출한 이후, 현장은 오히려 더 시끄러워져 있었다.
이놈의 스크린 도어 수리하다가, 또는 점검하다가 난 열차 사고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처음이 아닌 게 아니라 올해만 벌써 두 번째였다.
그야말로 잊힐 만하면 터지는 고질적인 문제란 뜻.
하지만 여전히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 남은 새빨간 피가 당시 급했던 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미 수차례 이런 방식의 작업이 위험하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더더욱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이번 사고로 병원에서 치료 중인 김모 씨는 올해 26세로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모 씨는 비정규직으로 밝혀져 서울시와 서울 메트로는 더더욱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현장에는 기자들만 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지하철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동대문구 국회의원과 구청장 등등이 찾아와 의미심장한 얼굴로 스크린 도어 근처를 툭툭 두드리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쇼하고 있네. 이 양반. 지하철 요금도 얼만지 모르면서.”
박성민 의원은 자동차 뒷좌석에서 모바일로 해당 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얼굴에는 그야말로 같잖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에이, 하필이면 재수 없게. 사고가 날 거면 옆에서 좀 날 것이지.’
아까 회의 도중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가 내뱉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살지 않겠습니까? 백 교수님이 맡았는데.”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비서가 백미러를 통해 박 의원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박 의원은 당장 대답하는 대신 창문을 살짝 내리곤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어둑해진 시각이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끝까지 백 교수가 볼 수 있다면 그렇겠지.”
“네?”
“아니, 아냐.”
박 의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잠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던 자동차 창문을 닫은 후였다.
순식간에 차 안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박 의원은 도리어 시끄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에서 아까 회의장에서 들었던 여러 대화가 잔뜩 휘몰아치고 있었다.
‘뭐? 내 손자가? 어디서!’
야당과 여당 수뇌부 회의였더랬다.
당 대표, 원내대표에 수석 의원까지.
한 당을 이루는 핵심 인원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는 회의는 무척 드물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파투 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파투가 났지.’
하지만 지금 박 의원은 예정되어 있던 회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와서 한국대학교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의 앞으로도 검정 세단이 줄지어 내달리고 있었다.
‘지, 지금 당장! 당장 근처 병원 수배해!’
현용수 여당 대표의 처절한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비록 정적이긴 했지만.
눈앞에서 손자를 잃게 생긴 노인의 얼굴을 보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해서 백강혁이 있는 한국대학교 병원을 추천해 주었고, 현용수 또한 백강혁의 실력을 최필두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죽으라고 들은 참이었던지라 바로 승낙했다.
‘근데 전화가 안 되더라……. 이 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박 의원이 아는 강혁은 잘 때도 전화기를 놓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그 끔찍한 벨 소리는 도저히 받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딱 한 번 들어 봤음에도 불구하고 꿈에 나올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 아니겠는가.
그 이유는 바로 다음 다른 의원에게 걸려 온 전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필이면 지하철 사고가 겹쳐서…….’
강혁은 이미 헬기를 타고 출동 중이었던 것.
하지만 현용수 의원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야 다른 병원을 찾았을 테지만.
트럭에 치인 톰 커크먼 유엔 사무총장이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다른 의사는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연락이 안 되면 가서 만나면 될 거 아냐! 내 손자부터 일단 보라고 해!’
당장 같은 당 의원이 스크린 도어 붙잡고 울고 있는 모습이 TV를 통해 송출되고 있는 마당에 저런 말을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격앙되어 있었다.
“의원님, 이제 곧 병원입니다.”
비서는 한참 말없이 뒷좌석에서 눈을 감고 있던 박 의원을 향해 도착을 알렸다.
그제야 박성민 의원은 상념에서 깨어나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역시 한국대학교 병원이었다.
“저건가?”
그리고 응급실 로비 앞에는 검은 차들에 둘러싸인 구급차가 한 대 와 있었다.
원래 같으면 구급차 외의 다른 차가 서서는 안 되는 곳이었지만.
있는 사람에게까지 원칙을 들이밀지는 않는, 융통성 넘치는 나라 아니던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 누구도 이를 문제 삼고 나서진 않았다.
“일단 나만 내려 주고, 주차장에 세워 놓게.”
“네, 의원님.”
물론 박성민 의원은 그런 이들과 구분되길 원하는 사람이니만큼, 차를 무분별하게 세워 두진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내린 후, 구급차를 향해 가 보니 이제 막 어린아이가 침대에 실린 채 끌어 내려지고 있었다.
‘웁.’
딱 보자마자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라고 해서 경미할 줄 알았는데.
안에서 속도를 얼마나 냈는지 몰라도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목에는 이미 튜브가 박혀 있었는데, 다행히 심장이 멈춘 것 같진 않았다.
“백 교수! 백 교수가 보라고 해!”
고함에 고개를 돌려 보니 현용수 의원이 눈에 들어왔다.
현 여당 대표이자, 현직까지 총 세 명의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하는 킹 메이커.
차기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그……. 의원님. 지금 백강혁 교수님은 수술 중입니다.”
당연하게도 그의 앞에는 최조은 원장이 나와 있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작았나 싶을 정도로 고개를 조아리면서였다.
“누가 그걸 몰라? 지금 내 손자 안 보여? 상태가 훨씬 급하잖아! 빨리! 빨리 데려와!”
“그건…….”
최조은 원장은 눈앞의 현용수 의원과 수술실에 있는 백강혁 중 누가 더 무서운지를 재빨리 계산했다.
사실 일개 의사와 여당 대표를 저울질하는 게 진짜 웃긴 일이긴 했는데.
강혁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었다.
“그건 안 됩니다.”
게다가 최조은 원장은 이사장으로부터 백강혁의 이미지를 지켜 달라는 분부까지 받은 몸이었다.
해서 안 된다고 하고 있으려니, 현용수 의원이 대번에 그의 멱살을 잡았다.
“어?”
최조은 원장은 진짜로 놀란 얼굴이 되었다.
새파랗게 어렸던 레지던트 시절을 제외하면 누가 자신의 멱살을 잡은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저 막 나가는 강혁도 이러지는 않았더랬다.
“지금 누구 백 믿고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당장 불러! 안 그러면……. 내가 내 자리 걸고 이 병원 망하게 해 준다. 그게 아니더라도 너, 너는 망하게 해 줄 수 있어.”
게다가 대놓고 협박이 이어지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최조은 원장을 구원하고 나선 이는 다름 아닌 박성민 의원이었다.
“대표님, 대표님! 점잖으신 분이 왜 이러십니까.”
“점잖? 지금 손자가 죽게 생겼는데, 점잖? 애초에 백강혁 추천한 게 당신이야!”
“상황이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한국대학교 병원, 최고의 병원 중 하나입니다. 수술할 선생님들 백 교수님 말고도 많아요.”
“최고가 아니잖아! 지금 저 상태를 보라고!”
현용수 의원은 감히 고개는 돌리지 못한 채 손만으로 손자를 가리켰다.
줄줄 흘러나온 피가 이송용 침대를 적시고, 바닥으로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박성민 의원이라고 그런 모습이 익숙한 것은 아닌지라 금세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고집만 부리고 계시면 뭐합니까? 일단 응급처치라도 하셔야죠! 저러다…….”
박 의원은 죽는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으……. 음.”
하지만 뜻은 명확히 전달되었고, 현 의원은 잠시 신음을 흘리다 이내 최조은 원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응급처치하고 있어!”
“그……. 네, 알겠습니다.”
대뜸 멱살을 잡힌 거로도 모자라 명령이라니.
최 원장은 몹시 기분이 상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숙였다.
제아무리 병원장이라고 해 봐야 여당 대표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게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란 건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그리고 백 교수 어딨어.”
“네? 그건 알려 드릴 수…….”
“중증외상센터에 있겠지. 됐어, 비켜!”
현용수 의원은 응급실 의사들이 손자에게 달려드는 것을 확인한 직후, 곧장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의 경호원들과 비서들도 함께였다.
떨떠름한 기색이 있긴 했지만, 딱히 현 의원을 말릴 생각도 없는 듯했다.
그럴 생각이 있는 건 오로지 박 의원뿐이었다.
“대, 대표님! 지금 수술 중인 거 뻔히 알면서 어디 가십니까!”
“더 급한 수술이 있다고 알려 줘야지! 제깟 놈이 어쩔 거야.”
“제깟 놈이라뇨……. 세계 최고의 의사한테…….”
“아, 비켜!”
박 의원은 아무래도 현 의원에게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긴 어려웠다.
그에 반해 현용수 의원은 아예 망설임이 없었고, 그 바람에 박 의원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고야 말았다.
뒤늦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온 비서가 이를 발견하고 소리쳤지만 이미 현 의원은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나, 나는 괜찮으니까! 현 의원 잡아!”
“네? 의원님 넘어지셨잖아요!”
“괜찮아. 안 부러졌어! 가서 저 사람이나 잡아!”
“아……. 네. 백 교수님 걱정되셔서 하시는 말씀이지요?”
“내가 미쳤어? 현 의원 걱정하는 거지! 거기 가서 최 원장한테 하듯이 했다간…….”
진짜 죽도록 처맞을 것이 분명했다.
그냥 회진 돌던 상태에서도 그럴 텐데.
수술장에서 난동을?
메스에 난도질당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였다.
“아!”
비서 또한 그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현용수 의원 또한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벌어진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 대기실 근처를 맴돌던 인원들은 전부 현 의원보다 아랫사람들이었다.
드르륵.
덕분에 현 의원은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된 것은 강혁의 으르렁거림이었다.
“뭐야?”
그는 시선은 여전히 환자의 다리에 고정한 채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릎 아래까지만 절개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손상 기전이 워낙 험했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 환자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역시 무릎 아래에서 승부를 봐야 했다.
이 절단이 위로 올라가는 순간, 환자는 목발이 없으면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될 터였다.
“백강혁 맞나?”
현 의원은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일단 반말로 물었다.
그 말에 강혁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슬쩍 현 의원을 향해 돌렸다.
‘헙.’
기세에 눌린 경호원들이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현 의원은 어지간히 눈치가 없었다.
아니, 눈치를 살필 경황이 없다는 게 맞을 터였다.
“나 여당 대표 현용수야. 내 손자가 크게 다쳐서 왔거든. 이 환자 수술 일단 중단하고, 내 손자부터 봐 주게. 내, 내 뭐든지 해 줌세.”
“여당 대표?”
“그래, 그래. 뭐든지 해 줄 수 있어.”
“그렇단 말이지.”
강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 현 의원도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여당 대표인데 어떻게 감히 홀대해. 세계 최고라더니 원장하고는 좀 다르네, 역시.’
그리곤 망상을 이어 나가려는데, 강혁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지금 하나만 들어주시죠. 꺼져 줄래요? 수술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