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267)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267화(267/1120)
267화 대형 재난 (2)
끼이익.
곧 장미가 몰고 온 구급차가 로비 앞에 멈춰 섰다.
비는 더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해서, 코앞에 있는 구급차가 형태만 아스라이 보일 지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강혁과 함께 이 비를 헤치고 나가야 하는 강행과 장미보다 뒤로 남겨진 한유림, 재원 그리고 지민이 더더욱 불안해 보였다.
“뭐 죽상이야. 내가 아빠냐? 어디 죽으러 가?”
해서 강혁은 껄껄 웃으며 재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물론 별 소용은 없었다.
애초에 강혁도 그를 위로할 생각보다는 놀리려고 한 말이었으니까.
“하아.”
“한숨 쉬지 말고. 아, 한 교수님.”
강혁은 재원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날려 준 후 한유림을 바라보았다.
한유림은 설마 이 새끼가 내 뒤통수도 날리려고 이러나 하는 눈빛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당연하게도 강혁은 제법 눈치가 있는 사람인지라 남들 앞에서 한유림을 때릴 생각은 없었다.
아무도 없고, 맞을 만한 짓을 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었다.
“왜 그래요? 사람들 보면 오해하겠어.”
“아니. 왜. 가까이 오지는 말고. 딱 거기서 말해. 딱 거기 서서.”
“뭐……. 알겠습니다.”
강혁은 어차피 때릴 생각도 없었기에 쿨 하게 반응했다.
“여차하면 재난 코드 치라고요. 지금 보니까……. 여기 적어도 스무 명 이상은 올 텐데. 그럼 알죠?”
제아무리 응급실 전원의 손이 빈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에 스무 명이, 그것도 교통사고 환자가 들이닥치게 되면 손 쓸 도리가 없게 될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한국대학교 병원과 같은 3차 의료 기관에는 그럴 때를 대비한 프로토콜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의 쓰이지는 않지만.
재난 코드라는 이름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아……. 그래. 맞네, 그게 있지.”
한유림과 응급의학과 과장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휴일이라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각 과의 레지던트들만 싹 불러들여도 제법 괜찮은 전력이 되기는 할 터였다.
특히 내과 레지던트들은 원인과 관계없이 환자의 숨을 붙여 놓는 데는 고수들이었으니까.
“그럼 맡기고 갑니다.”
“어……. 그래.”
“안 그래도 불안한데 그런 식으로 답하지 마시고요.”
“알았어, 알았어!”
“훨씬 낫네.”
“그래도 빨리 갔다가, 되도록 빨리 와.”
“알겠습니다.”
강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휘적거리곤 응급실을 나섰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비로소 안에 있던 인원들은 밖에 비가 어떤 기세로 오고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미쳤네, 시바…….’
재원은 까딱했으면 자신이 저 차에 타고 이 비를 헤치고 갈 뻔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혁 없이 옆에 있는 한유림과 환자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이 샘솟기도 했다.
그야말로 어디를 택해도 지옥인데, 둘 중 강혁이 없는 지옥에 빠지게 된 셈이었다.
‘이게 과연 나은 선택일까…….’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상황이었다.
마치 아까 여유롭게 테이크 아웃 한 커피를 마시고, 피자를 뜯던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드르륵.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두 발을 디디고 선 응급실로 돌아온 재원이 남은 인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선 외상이 주될 것으로 생각되니까, 처치실마다 수술 세트 하나씩 풀어 두세요. 라인 잡을 준비도 하시고.”
“네, 선생님.”
그동안 강혁이 하던 것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그 누구보다 오래 본 사람답게 지시에 별 막힘이 없었다.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심지어 그보다 까마득한 선배인 한유림조차 그 모습을 보면서 안도감이 들 지경이었다.
부우웅.
그사이 장미가 운전대를 잡은 구급차는 천천히 병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강행은 뒷자리에 탄 채, 응급의학과 과장에게 전달받은 서류를 읊었다.
“신고된 게……. 벌써 20분 전입니다. 사고 시점은 명확하지 않은데……. 꽤 지체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겠지. 일단 지금 통화가 되는 게 신기하지. 이거 봐라, 이거.”
비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세차게 쏟아지는 중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강혁도 이런 빗속에서 출동하는 건 처음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서 내가 정말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는 할까…….’
덕분에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본인 실력에 관한 의심까지 하고 있었다.
“어……. 통화권 이탈 뜹니다. 전화 안 됩니다.”
“괜찮아. 어차피 처치하고 분류하는 건 현장 일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속내를 티 내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뭐가 어찌 되었건 지금 이 구급차의 선장은 강혁이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현장 전체의 선장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사람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어떻게 될까.
될 일도 안 될 가능성이 컸다.
특히 지금처럼 원체 드문 사고 현장에서는.
“야야, 천천히 가. 그러다 우리도 뒤집히면 진짜 대형 사고야.”
“알아요. 지금 다 계산해서 가고 있거든요?”
“이게?”
“저 운전 잘한다니까요.”
“어우.”
“입 다무세요. 혀 깨물어.”
“읍.”
강혁은 혀 깨물 정도로 거친 운전은 지양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외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저 입을 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미가 비가 고인 정도를 고려해 가며 차선 변경을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속도를 높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법 겁나는 상황이었다.
‘와……. 심장이 다 뛰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도 겪어 본 강혁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주다니.
그는 진심으로 장미의 별명을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하며 눈도 감았다.
도저히 앞에 펼쳐지는 이 아수라장을 온전히 다 보고 있을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았으니까.
끼이이이이익!
빗물 때문에 유독 길게 느껴지는 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멈추어 섰다.
‘죽었나? 너무 막 산다 싶긴 했는데, 이렇게 죽나?’
강혁은 이 비슷한 생각을 대략 한 열 번 정도 반복하고 나서야 눈을 떴다.
다행히 차는 전복되지 않았고, 어디 부딪히지도 않은 채 잘 서 있었다.
넘어진 건 커다란 버스 세 대였다.
이미 세 대의 구급차 한 대의 소방차가 도착해 구조 작업을 펼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버스 세 대에 비하면 너무 작아서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우리도……. 내리자.”
“네, 교수님.”
강혁은 잠시 압도적인 재난의 규모에 말을 잊고 있다가 애써 입을 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기는 했지만.
강혁과는 달리 백강혁이라고 하는 믿을 구석이 있는 장미와 강행은 씩씩하게 답하며 구급차에서 뛰쳐 내렸다.
다다다.
내리자마자 마치 누군가 온몸을 두들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빗방울이 아까보다도 더 거세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구조 시도조차 더딘 모양이었다.
일단 버스 밖으로 구조된 사람의 수가 불과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이런 망할.’
강혁은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은 채 버스를 향해 달렸다.
등에 멘 가방은 어느새 비에 흠뻑 젖어 버려서 땅에 끌릴 듯 무거워져 있었다.
“교수님, 같이 가요!”
그런 강혁의 뒤를 장미가 바짝 쫓았고, 중증외상센터의 대선배 양재원의 저질 체력 전통을 열심히 이어 가고 이는 강행이 헐떡거리며 외쳤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사지 멀쩡한 놈 챙길 겨를은 없는 상황이었던지라 강혁과 장미는 그대로 달렸다.
“아, 백강혁 교수님!”
가까이 가 보니 안중헌이 있었다.
중앙 구조단장이라는, 이제는 현장과 멀어진 녀석이 왜 휴일에 여기 나와 있을까.
와 같은 의문보다는 역시나 반가움이 앞섰다.
“아, 안 단장!”
“김강률 팀장도 와 있습니다!”
“상황은 어때!”
비가 하도 거세서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계속 소리쳐서 대화를 이어 나가야 했다.
좋지 않은 사인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현장에서 중앙 통제의 중요성은 딱히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데.
소리가 닿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구조가……. 여의치 않습니다! 아직 인력 충원도 덜 되고 있고요! 게다가…….”
“게다가 뭐!”
“환자 대부분이 일본 사람이라 소통이 안 됩니다!”
“하, 이런 망할.”
응급 상황에서 문진은 거의 필수 요소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안 된다니.
빗속에 가려 있던 희망이 곤두박질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 저!”
그때 뒤늦게 도착한 강행이 손을 들었다.
헐떡거리는 모양새가 곧 쓰러져도 이상할 거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뭐, 너 뭐.”
“저 일본어……. 잘합니다.”
“어? 그래?”
자고로 의사나 의대생이란 종자들은 보수적이기 이를 데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해석이 필요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았다.
만약 의사나 의대생이 ‘아, 나 피아노 칠 줄은 알아’라고 했다면, 녀석은 콩쿠르에 나갈 정도는 안 되지만 동네 수준에서는 거의 최고일 가능성이 컸다.
만약 잘한다고 했다?
그럼 피아노 선수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즉 강행이 무려 교수 앞에서 일어를 잘한다고 자부했다는 것은 거의 원어민 수준이라는 얘기가 되었다.
“네.”
“언제 공부를 했대?”
“제2 외국어가 일어였어요. 독일어 교실이 꽉 차서.”
“아무튼, 다행이네. 아니, 잘됐어. 1호 데려왔으면 낭패 볼 뻔했네.”
강혁은 껄껄 웃고는 재차 안 단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구조된 사람들 어딨지? 그 사람들부터 상태 봐야 할 거 같은데.”
“아, 네! 이쪽으로 오시죠!”
안 단장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천막 같은 것이 쳐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안에 환자들을 옮겨 둔 모양이었다.
안에는 무려 온풍기 같은 것이 돌아가고 있어 가까이 가자마자 훈기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강혁은 즉시 안 단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어깨에 고여 있던 비가 사방으로 튀면서 찰박거렸다.
“잘했어.”
천막에 온풍기라.
지극히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물에 젖으면 체온을 빼앗길 테니까.
게다가 부상까지 입었다면 어떻게 될까.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여름에 저체온증으로 환자를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보내 주신 자료 보고 공부한 덕이죠, 뭐.”
“그 자료로 공부를 했다는 게 중요하지. 어디…….”
강혁은 재차 안 단장을 치하한 후 천막 안을 둘러보았다.
먼저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부터 골라내기 위함이었다.
상당히 잔인한 생각이고 또 건방진 생각이기도 했다.
의사라 해도 일개 인간일 진데.
다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해야 했으니까.
‘에이, 시발.’
당연하게도 강혁이라고 이 과정이 썩 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정된 의료 자원을 가지고 분에 넘치는 사람을 살려야만 할 때는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가망 없는 환자에게 매달리다가 정말 살릴 수 있던 환자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천천히 천막 안을 걷던 강혁은 어떤 한 남자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머리 뒤로 피가 배고 있는 사람이었다.
‘개방형 골절이 두개골에…….’
그 말은 곧 뇌가 밖으로 노출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뇌는 심지어 다른 장기와는 달리 독립적으로 혈액뇌관문(Blood Brain Barrier, BBB)이 있어 따로 보호받아야 하는 장기였다.
수술실에서도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상황인데, 이런 곳에서는 어떻겠는가.
“진통제……. 놔 드리지.”
강혁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장미를 돌아보았다.
강혁의 말뜻이 뭔지 단박에 깨달은 장미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교수님.”
“서둘러. 아직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