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289)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289화(289/1120)
289화 그나마 헬기가 (1)
“에디슨 포셉(Adson forceps: 아주 작은 핀셋).”
급히 서둘러 준비를 마친 강혁은 환자의 머리 앞에 선 채 손을 내밀었다.
환자의 머리는 헬기에서와는 달리 완전히 수술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도 물론 그렇게까지 흔들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작정하고 흔들어도 안 흔들릴 수준이었다.
“네, 교수님.”
게다가 강혁과 재원이 디디고 있는 바닥도 더 없이 안정적이었다.
덕분에 강혁은 아까보다도 더 안정적으로 환자의 머릿속을 살필 수 있었다.
“흐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망가진 뇌 조직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기에.
강혁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역시……. 이쪽은 좀 많이 망가진 거 같죠?”
“어? 어. 뇌가……. 아이, 이거. 아까 네가 석션해서 그런 거 아냐?”
“네? 아니, 언제는 석션 안 한다고 그 난리를 쳐 놓으시고선?”
“이게 인마. 딱 적당하게 해야지. 적당하게.”
“와……. 환자 안 좋다고 저한테 떠넘기시는 것 좀 봐.”
“뭐? 떠넘겨?”
재원은 이제 곧 뭐가 날아올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아마 지금 이곳이 수술실이 아니라 중환자실이나 당직실이었다면 백 퍼센트 확률로 머리를 맞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곳은 수술실.
얼마든지 회피할 방도가 있었다.
“어어. 환자 여기 너무 붉은데요?”
“어디.”
강혁은 재원이 예상했던 대로 환자 얘기를 하자마자 금세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온 정신이 환자한테만 쏠려 있는, 조금 이상한 사람다운 반응이었다.
“음.”
게다가 지금 이 환자의 상태는 확실히 심각했다.
평소처럼 수술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지 않도록 가벼운 농담 꺼낼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측두엽이……. 너무 많이 죽었어. 이건……. 이건 진짜 좋지 않은데.’
강혁은 붉게 변한, 심지어 뭉그러지기까지 한 환자의 좌측 측두엽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절제는 불가피해 보였다.
제아무리 소중한 뇌 조직이라 해도.
죽은 다음에는 다 감염원이고 염증의 원인이 될 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관건은 최소화……. 절제를 최소화해야 해.’
좌측 측두엽은 주로 언어와 관련한 기능을 많이 담당하는 곳이었다.
이곳을 너무 많이 절제하게 되면 환자는 실어증에 걸릴 수도 있었다.
더 들어가면 감정 중추까지 건드릴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보호자가 마주하게 될 환자의 모습은 이전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게 뻔했다.
‘그런 일을……. 반복할 수는 없지.’
강혁은 예전 시리아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던 환자를 기억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그러고도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역시 백강혁은 명의라고 칭찬했지만.
강혁의 머릿속에 그 케이스는 실패한 것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분명 그전까지만 해도 제법 유쾌했던 녀석이 사고 후에는 음산할 정도로 기괴한 녀석으로 변해 버렸으니까.
“잠깐 이거 받아 봐.”
“에디슨이요?”
“그래. 좀 더 보고 결정해야겠어. 절제 범위를.”
“아, 네.”
뇌를 절제해야 한다는 건 재원도 동의하는 바였다.
해서 별말 없이 에디슨을 받아다 놓고는, 절개해 둔 면을 당겨 강혁에게 최대한의 시야를 확보해 주었다.
강혁은 잘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주 천천히 장갑 낀 손을 환자의 뇌를 향해 가져갔다.
‘여긴……. 여긴 안 돼.’
그의 초월적인 시각에 더불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촉각이 더해져 아직 살아 있는 뇌와 그렇지 않은 뇌가 서서히 구분되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기엔 지리할 정도로 느린 작업이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이렇게 시간을 끌어도 좋을 정도로 헬기에서 시간을 많이 벌어 두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게 일반 헬기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냥 절개면 몰라도……. 부러진 조각까지 제거는 어려웠을 거야.’
재원은 날카롭기 그지없던 조각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잘못해서 뇌를 푹 하고 찔러 들어갔다면.
‘지금보다 더……. 안 좋았겠지.’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쩐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동안에도 강혁은 쉬지 않고 환자의 뇌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어루만진다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부드러운 손짓이었다.
그에 반해 눈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왜 ‘칼로 베는 듯한’이라는 표현을 눈빛에 대고 쓰는지 알 것 같을 지경이었다.
“메스.”
모두가 강혁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강혁이 별안간에 손을 내밀었다.
퍽 의외의 타이밍이었고.
퍽 의외의 기구였기에 장미는 즉시 메스를 건네주지 못했다.
“조폭, 메스.”
해서 극히 드물게도 강혁에게 재촉을 들어야만 했다.
장미는 약간의 민망함을 느끼며 메스를 건네주었다.
“네, 교수님.”
“집중해. 어려운 수술이야.”
“네.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강혁은 그리 말하며 메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아까 뇌를 어루만질 때와 같은 속도로 메스를 뇌를 향해 가져갔다.
지이익.
메스는 곧 붉게 물든 뇌 어딘가를 파고 들어갔다.
재원으로서는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절개를 넣은 건지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지이익.
하지만 강혁에게는 다 이유가 있을 거란 확신은 있었다.
해서 별말 없이, 그저 강혁에게 최대한의 시야를 확보시켜 주기 위해 절개 면을 당겼다.
중간중간 석션도 해 가면서.
‘어?’
그리고 그제야 강혁의 기준이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석션을 가져다 댔을 때의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남겨질 뇌 부분의 절개면은 뭔가 좀 단단한 느낌이라면.
제거될 부위의 뇌는 흐물거리고 있었다.
석션에 막 들어오려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말로 설명하기는 좀 힘든데 그랬다.
“후우.”
강혁은 그렇게 절개를 이어 나가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저냥 나오는 그런 한숨은 아니었다.
정말 힘들어서 나오는 한숨이었다.
‘무리하고 계시는군…….’
재원은 언젠가 강혁이 픽 쓰러졌던 때.
그리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던 때를 떠올렸다.
이제 보니 지금 강혁의 얼굴이 딱 그때와 같았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어마어마하게 무리하고 있는 건 틀림이 없어 보였다.
지이익.
하지만 강혁은 멈추지 않았다.
한계까지 끌어올린 집중력에 머리가 비명을 질러도.
눈알이 빠질 것 같이 괴로워도.
일단 보이는 길대로 메스를 그었다.
다른 건 재원에게 맡길 수 있겠지만.
이건 오직 강혁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옛날 같으면 이렇게 뇌를 절제하고, 머리를 닫는 것까지 모두 강혁이 해야만 했을 테니.
그거까지 염두에 두어서 체력을 안배해야만 했을 테니.
‘그랬으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절제를 할 수는 없었을 거야.’
강혁은 나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메스를 그어 나갔다.
뒷일은 재원에게 맡길 거로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 탓에 속도가 점점 붙었다.
그래 봐야 옆에서 보기엔 답답한 속도긴 했지만.
“후. 석션.”
“네. 근데…….”
“근데?”
“이 정도라도 절제하게 되면 환자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재원은 겉이 걷어 내어지고 있는 뇌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불안한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 소장이나 대장도 아니고.
우리 몸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 뇌였으니까.
“글쎄……. 그나마 상당 부분 남고 있긴 하지만……. 장애가 남긴 할 거야.”
“측두엽이니까, 아무래도 언어일까요?”
“그렇지.”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언어와 관련된 기억, 감정 또한 연관이 있었다.
즉 측두엽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된단 뜻이었다.
기억과 감정은 그 사람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으니.
“흐음…….”
“일단은 살리는 데 집중해. 사실 그것만 해도……. 우리 충분히 한 거야.”
“아, 하긴 그건 그렇네요. 아까에 비하면…….”
강혁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랬다.
당장 처음 배에서 환자를 발견했을 땐, 솔직히 환자의 생존율은 거의 0에 수렴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이번에 새로 장만한 헬기가 없었더라면 거기서 벌써 실패했을 가능성이 컸다.
MD 902가 아니라 AW 109나 169와 같은 기종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크게 흔들려서 해상 기동에 부담이 있지 않던가.
항구까지만 헬기로 들어가고, 거기서부터는 배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머리를 헬기에서 열었지.’
이건 벌써 강혁이 여러 차례 보여 준 묘기긴 했지만.
그땐 두개골 골절이 없지 않았던가.
거리가 워낙 가깝기도 했고.
‘아마 그 헬기 가지고 지금처럼 빨리 날았다면…….’
제아무리 강혁이라고 해도 메스를 제대로 쥐기도 어려울 정도로 기체가 흔들렸을 터였다.
‘괜히 일본 다녀오신 게 아니야.’
강혁은 투덜거리면서도 일본 총리 앞에 섰었다.
뒤에서 욕하던 것에 비하면 너무 밝은 얼굴이라 계속 놀려 왔었는데.
이런 닥터 헬기가 무려 두 대나 생길 거로 생각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따 사과해야겠다.’
하고 강혁을 바라보니, 강혁은 이미 손을 뗀 후였다.
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뇌의 겉면이 싹 발라져 있었다.
“인마. 정신 차려.”
강혁은 손에 들린 손상된 뇌 부위를 기구대 위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목소리에 힘이 잔뜩 빠져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뭐 그럴 건 없고. 일부러 그냥 둔 거야.”
“네?”
“체력 비축하라고.”
“어…….”
재원은 뭔가 불안하다는 표정이 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강혁 뒤에 아까만 해도 없던 물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왜……. 의자를…….”
“너무 힘들어서. 앉아서 쉬려고.”
“그럼 이건…….”
“쟤 불렀잖아.”
강혁은 수술 가운을 입은 채로 뒤로 넘어지듯 의자에 앉았다.
수술실 문 근처에 서 있는 인턴을 가리키면서였다.
“인턴이랑…….”
“마무리해야지. 머리 닫아. 드레인 달고.”
“둘이서요?”
“원래 신경외과 수술 둘이 하지, 그럼 셋이 하냐?”
맞는 말이라 말문이 턱 막히긴 했는데.
그래도 하고픈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교수님이랑 나랑 둘이 하는 거랑……. 나랑 인턴 둘이 하는 건 너무 다른 거 아닙니까!’
딱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강혁이 의자에 앉은 채, 바닥을 툭 하고 차서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아예 수술에 다시 들어오지 않겠다는 의견을 표명한 셈이었다.
‘저 사람이 저럴 정도면……. 겁나 힘들다는 뜻이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강혁은 절대 누구 놀리기 위해 환자를 넘길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해서 재원은 한숨과 함께 이제 막 가운까지 걸치고 그의 맞은편에 선 인턴을 바라보았다.
“하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양재원 선생님!”
“응?”
인턴은 재원과는 달리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얘가 왜 이러나 해서 바라보고 있으려니, 인턴이 계속 말을 이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인턴 박준하입니다!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고 싶어서 한국대학교 병원 인턴 지원했습니다!”
“아…….”
재원은 하마터면 ‘왜’라고 물을 뻔한 자신의 입을 다물고, 강혁을 돌아보았다.
강혁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댈 뿐이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노예로 부릴 수는 없는 놈이라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재원이 나서야 했다.
‘꼬시자……. 꼬셔야 나중에 편해진다.’
해서 재원은 애써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근 강혁 때문에 거칠어진 언사를 최대한 다듬은 채였다.
“그, 그래. 그렇군요. 자, 그럼……. 한번 닫아 볼까요? 어려울 거 없어요.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