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299)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299화(299/1120)
299화 고맙다 (2)
“어, 어떻게……. 어떻게 됐습니까?”
강혁은 펑퍼짐한 바지에 까슬까슬한 소재의 웃옷을 입고 있는, 뽀글뽀글한 머리의 중년 여성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중년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많은가.’
고된 바깥 일로 인해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성의 얼굴은 새카맣게 타 있었다.
머리 뿌리 쪽은 새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는데, 어느 지점부터는 어색할 정도로 시커멨다.
‘아까 환자 나이가……. 20살이었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을 살리는 데 이름은 그리 중요치 않았으니까.
“우, 우리 아들 어떻게 되었냐구요…….”
옅은 바다 내음이 나는 여인은 말없이 서 있는 강혁을 향해 다시 한번 물었다.
잔뜩 찡그린, 온갖 걱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언제 봐도 마주하기 부담스러워지는 그런 얼굴.
강혁은 뭐라도 말해 주고 싶단 생각에 휩싸였지만, 본인의 욕구를 용케 참고 뒤로 물러섰다.
‘아들이 대학생이라고 했지.’
공부 잘해서 서울로 대학 간, 어머니의 자랑이라고 했더랬다.
친구들과 함께 고향 태안에 놀러와 뭐라도 잡아서 놀라게 해 주려는 생각에 오래 펄에 머물다가 그만 사고를 당한 참이었고.
여기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강혁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어머니. 저는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 소속 외과 전문의 양재원입니다.”
그때 재원이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섰다.
몇 번이나 연습해서 얻게 된 미소를 띤 채였다.
친절해 보이면서도 신뢰감 있어 보이는 미소.
강혁은 볼 때마다 역하다고 놀려 댔지만, 실제로는 꽤 효과가 있었다.
“아, 네……. 그……. 우리……. 우리 승문이는…….”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어머니는 묵묵부답인 강혁 대신, 다소 어려 보이는 재원을 향해 완전히 몸을 틀었다.
“어머니.”
재원은 그런 어머니의 손을 꽉 붙잡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게.
약간은 아플 정도로.
“한승문 씨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그리곤 또박또박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서.
도저히 못 알아듣는 일이 없도록.
“아…….”
그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긴장이 풀렸는지 옆으로 주저앉았다.
아니, 아마 고꾸라졌을 터였다.
뒤로 물러나 있던 강혁이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재원은 강혁에게 잘했다는 신호를 보낸 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까 붙잡았던 손은 여전히 놓지 않은 채였다.
“다만 아까 보셔서 알겠지만, 부상의 정도가 너무 심각했어요. 기억하십니까?”
재원의 말에 어머니의 시선이 멀어졌다.
배 위에서 봤던 아들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익사의 갈림길에 선 상태에서 배에 치이는 바람에 배 위로 끌어 올려졌을 때부터 헬기에 띄워질 때까지 내내 의식은 없었다.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얼굴은 알아보기도 어려웠고, 어디에선지는 몰라도 연신 붉은 피가 퐁퐁 새어 나오고 있었다.
“네……. 네…….”
생각만으로도 너무 괴로운 듯, 어머니는 이제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재원은 그녀가 그 회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곤 따스함과 통증 사이에서 눈을 뜬 어머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차적으로 안면부에 충돌이 있고, 그 후 가슴에 충격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좌측 폐와 심장에 손상이 있었으나, 그건 여기 계신 흉부외과 강일구 교수님께서 수술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 주셨어요.”
“아, 아이구…….”
“이따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다음은 안면부 부상에 관해 설명할 차례였다.
설명하려면 재원도 당시를 떠올려야 했는데, 의사로서도 제법 괴로운 광경이었다.
‘아래턱이…….’
그나마 수술장으로 들어갈 땐, 강혁이 안면 동맥 부위를 눌러서 좀 덜했지만.
처음 발견했을 땐 솔직히 이미 죽은 줄 알았더랬다.
아래턱이 비정상적으로 아래쪽으로 떨어진 채, 피가 마구잡이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 턱은 제멋대로 출렁거리기까지 했다.
‘끔찍했지.’
그 모습에 비하면 지금은 어떠한가.
비록 원래의 얼굴 모양으로 돌아오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기능적인 면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재건된 상황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재원은 애써 가슴을 폈다.
“안면부는 아래턱이 부러지면서 크게는 세 조각이 났습니다. 그 외 자잘한 복합 골절이 있는데, 그 부위는 도저히 살릴 수 없어서 제거했습니다.”
“아래…… 턱이요?”
어머니는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럴 터였다.
숙달된 외상 외과의가 아니고서는 아래턱의 골절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예상되지 않을 테니까.
재원은 굳이 그런 얘기를 덧붙이지 않고 그저 치료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했다.
어차피 설명해 봐야 잘 알아듣지도 못할 테고, 설사 알아듣는다고 해도 끔찍한 기억만 되지 않겠는가.
“네. 저작, 즉 씹는 운동을 못 하게 될 정도로 손상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백강혁 교수님께서 종아리뼈를 이용해 재건해 주셨습니다. 추후 경과를 봐야겠지만, 아마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될 거로 생각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주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재원을 바라보았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보호자들처럼 의료진에게 독살스럽게 굴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앞에 선 이 둘은 아들을 치료해 준 사람들이지 않은가.
게다가 그녀는 어두운 밤을 헤치고 날아온 둘을 목격까지 했더랬다.
피 칠갑을 하고 있던 아들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온, 이 둘에게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그런 파렴치한 인간은 아마도 몇몇 작가들의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상상 속의 인물들일 터였다.
“혹시……. 종아리뼈라는 게……. 그럼 우리 애 못 걷는 건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의문을 그저 꽁꽁 싸매 두지만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세련된 방법으로 질문을 던졌다.
“음.”
강혁은 평생 펄과 들판에서 가정을 일궈 온 눈앞의 어머니가 참 지혜로운 사람이란 생각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재원은 그런 강혁을 말리려다가 말았다.
강혁의 눈을 보니, 평소와는 달라서 사고를 칠 거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강혁은 상당히 친절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걸을 수 있어요. 종아리에 뼈가 두 개 있거든요.”
물론 다른 의사들처럼 마냥 점잖게만 설명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강혁은 아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어머니의 펑퍼짐한 바지를 얼마간 걷어 두고 있었다.
“여기 이 단단한 뼈가 정강이뼈예요. 이건 그대로 있습니다.”
“아……. 뼈가 두…… 개예요?”
“네. 여기 외측으로……. 보면 여기.”
“아, 아픈데요.”
“그렇게 해야 만져져서. 아무튼, 이걸로 재건한 겁니다. 전력 질주는 못 해도 걷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그……. 그렇군요……. 뛰지는……. 못하는구나……. 내 새끼…….”
어머니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강혁은 내가 또 뭘 잘못했나 하는 눈으로 재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재원은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그저 어머니를 두드려 주기만 했다.
세상엔 부정적인 울음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럴 땐 오히려 한 번 울음을 터뜨려 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었다.
적절한 반응을 보여 주지 못한 슬픔은 나중에 더 큰 독이 되어 찾아오기 마련이었으니까.
“저……. 교수님.”
그렇게 한참 보호자에 대한 설명과 위로를 마친 후, 중환자실로 돌아가려는 강혁을 누군가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박상은 기자였다.
“아, 맞아.”
그제야 강혁은 아까 박상은 기자를 봤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혹시 짧게라도 인터뷰 가능하십니까?”
어느덧 시각은 1시 반.
사실 인터뷰를 요청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잠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대고는 흔쾌히 수락했다.
아까부터 지금까지 박상은이 보여 준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TV 고려가 약속을 지킨 덕에 유지상 사건 당시 다쳤던 둘도 생활비나 치료비 걱정 없이 지내고 있기도 했고.
“그러죠. 근데 뭔 인터뷰지?”
강혁은 정말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박상은 기자나 시청자들이 도리어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바로 그제부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이 이런 반응이라니.
너무 어이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게 또 강혁다운 반응이기도 한지라 박상은 기자는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그 천태만상의 김막태 기자와 홍재훈 교수님이 백강혁 교수님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었습니다. 혹시 모르고 계셨나요?”
“홍재훈? 아, 그 전 기조실장? 그 사람이 뭘 했지?”
“그……. 교수님이 미국에서 밀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아, 아아아아.”
강혁은 MD 902가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한 날부터 완전히 환자 보는 데만 몰두하고 있던 참이었다.
심지어 재원도 마찬가지였던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왜……. 기자가 여기까지 와 있나 했더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이제라도 얼굴을 가려야 하나 어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으로는 벌써 법정은 물론 감방으로까지 달려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그저 혀를 쯧 하고 찰 뿐이었다.
“걸렸나?”
의혹을 확인시켜 주는 듯한 말을 하면서.
“아, 아니……. 걸렸다뇨. 교수님……. 어휘가 좀…….”
“아니, 뭐. 밀수를 한 건 사실이거든. 신고하면 세관 통과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거나, 아예 통과가 안 될 수도 있는 물건이라.”
아마 강일구 교수의 사전 인터뷰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강혁이 밀수한 물품에 대한 논의가 어마어마하게 되었을 만한 발언이었다.
딱 저 문장만 보면 마약이나 뭔가 나쁜 물품만 떠오르니까.
“그러니까, 그 인조혈관 말이죠?”
물론 박상은 기자는 혹 이 문장만 뚝 떼서 보도할 만한 기자들을 여럿 알고 있었다.
해서 그러한 사태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질문을 덧붙였다.
“아, 그렇지. 고어사의 인조혈관.”
덕분에 강혁의 입에서 밀수품의 정확한 명칭이 나올 수 있었다.
박상은 기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시청자들도 궁금해하는 질문이겠지만.
무엇보다 박상은 기자가 제일 궁금해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물품을 밀수까지 해서 들여온 이유가 대체 뭔가요? 사실 교수님은 이 인조혈관은 거의 필요하지 않지 않으신가요? 아이들에게 주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밀수는 예로부터 중범죄가 아닌가.
걸렸다간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밀수를 해서 가져온 물품이 의료 물품인 데다가, 딱히 자신이 쓰지도 않는 물품이라니.
대체 왜 가져온 건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강혁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했다.
하지만 강혁은 뭘 그런 걸 궁금해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애들은 생명 아닌가? 살려야 할 거 아냐. 그 인조혈관 없어서 죽을 애들이 우리나라에 수십인데.”
“아…….”
그러니까 결국, 강혁은 자신의 명성이나 명예 그리고 심지어 징역보다도 모르는 이들의 생명이 더 중하다고 판단한 셈이었다.
박상은 기자는 강혁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시청자들 또한 바보가 아닌지라, 한동안 채팅을 못 칠 정도로 압도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