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화(3/1120)
3화 미친개 (1)
“아, 비키라고!”
강혁은 엉거주춤하고 서 있는 재원에게 다시 한번 고함을 쳤다.
재원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잽싸게 옆으로 빠져나갔다.
강혁은 건 재원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굼뜨긴. 잘 봐. 외상 외과 한다는 놈이 심낭 천자도 못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저, 전……. 항문 전공인데요…….”
강혁의 힐난에 재원이 한껏 억울하다는 눈으로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외상 외과를 세부 분과로 신청하겠는가.
중증외상팀이 있던 병원도 죄다 없애거나 축소하는 판인데.
설령 운 좋게 있는 병원에 취직되었다 해도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어차피 구색 맞추기 용으로 만들어 둔 팀이라 눈칫밥이나 먹으면서 중증외상 환자를 보는 척이나 해야 했으니까.
그에 비하면 항문외과는 이름만 좀 그럴 뿐 전망은 좋았다.
치질이란 현대인들이 숙명처럼 지니고 사는 병이었기 때문이었다.
“항문? 근데 왜 응급실에 내려와 있어.”
“제가 팀 당직이라서요. 일반 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에서 돌아가면서 한 명씩 당직이에요.”
“돌아가면서라. 허 참.”
강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계속 떠들어 대면서도 왼손으로는 초음파 프로브를 잡아 정확히 심낭을 가리키고 있었다.
심낭엔 강혁이 말했던 것처럼 짙은 피가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 피로 인해 눌린 심장이 애처로울 만큼이나 힘겹게 뛰는 중이었다.
“야, 항문.”
“양재원입니다, 양재원.”
“난 쓸 만한 사람만 이름으로 불러. 그러니까 넌 ‘항문’이다. 알았어?”
“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보고 항문이 뭐란 말인가.
재원은 처음으로 자신이 택한 전공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항문, 일단 내려온 김에 이거나 잘 봐라.”
“아, 네…….”
“뭐, 항문 하는 놈이 보여주면 뭐 알까 싶긴 한데…….”
“제 세부 전공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너 무시하는 건데?”
“아.”
재원은 아무래도 눈앞의 강혁과 대화를 이어나가 봐야 기분만 잡치게 될 거란 강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기만 하려 했는데, 그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강혁이 왼손으로는 초음파 프로브를 잡은 채 오른손으로는 두꺼운 바늘을 그대로 찔러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어찌나 신속하고 정확한지 재원은 전문의 시험공부 할 때 읽고 잊어버렸던 심낭 천자 내용까지 떠올릴 수 있었다.
강혁은 어느새 바늘을 심낭 안쪽까지 찌른 후 입을 열었다.
“심낭을 찌를 땐 아까 네가 하던 것처럼 바늘을 수직으로 세우면 안 돼. 그럼 심낭도 뚫리겠지만 십중팔구 심장이 뚫린다고. 뭐 네가 나처럼 훌륭한 손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예외겠지만…… 발발 떠는 꼴을 보니 아닌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강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찌르고 들어간 지점을 가리켰다.
“자이포이드 프로세스(Xyphoid Process: 명치 끝에 만져지는 뼈) 좌측으로 45도…….”
“그래, 항문. 딱 이렇게 찌르면 된다고.”
그냥 곱게 가르쳐줘도 될 거 같은데 사사건건 시비였다.
하지만 재원은 기분 나쁜지도 모르고 있었다.
강혁이 들고 있던 주사기 안쪽으로 탁한 피가 줄줄 차오르고 있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심낭에 들어차 있던 피가 줄어들고, 압력이 줄어들자 심장이 재차 제대로 뛰기 시작했다.
“혀, 혈압 돌아옵니다…….”
여태 기관 삽관 후 숨을 짜 넣고 있던 레지던트가 활력 징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안도의 한숨이 섞여 있어, 듣는 사람까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강혁의 표정은 별반 변화가 없었다.
응당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는 것 같았다.
“야, 항문.”
그는 기뻐하는 대신 재원을 불렀다.
재원은 항문이라는 부름에 대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고민을 그리 길게 이어나갈 수 없었다.
강혁의 차가운 눈빛이 마치 재원을 도려내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쏘아보고 있었으니까.
“네, 네.”
“적응은 빨라서 좋네. 그래, 이제 다음엔 뭐해야 하지?”
“다음, 다음…….”
재원은 마치 교수에게 질문당한 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물쭈물했다.
분명 강혁은 오늘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까 제멋대로 난입해 난리를 피울 때, 간호사들과 인턴도 입 하나 벙긋하지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다음은 죽일 거야? 시간 끌어서?”
강혁은 질문을 던진 지 불과 10초 만에 말을 이었다.
연신 활력 징후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차하면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진행할 생각인 듯했다.
“C, CT요! 이제 호흡, 혈압 안정되었으니까……. 좌측 상복부 부상 정도를 판정하기 위해 CT를 찍습니다!”
“흐음…….”
“맞죠? 그래서 그런 표정 짓고 계시는 거죠?”
“아니. 이게 전문의가 맞나 의심이 돼서.”
“의심이라뇨……. 제가 전문의 시험 1등인데.”
“그렇게 말하니 더더욱 의심이 가는군.”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레지던트를 바라보았다.
“힉.”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보기만 했을 뿐인데 레지던트는 숨을 들이켰다.
강혁이 그냥 그 무섭다는 ‘교수의 눈빛’ 정도만 하고 있었다면 이런 반응까지는 보이지 않았을 터였다.
응급의학과 4년 차 레지던트 정도면 정말이지 모든 일에 무덤덤해질 정도로 많은 일을 겪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강혁의 눈빛은 그런 4년 차 레지던트로서도 처음 보는 종류였다.
“지금 혈압 어때.”
“어……. 65에 40입니다. 어?”
“다시 내려가지?”
“네……. 이게 왜…….”
“승압제 쓰지 말고, 피 부어. 이제 혈액형 나왔을 거야.”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심장 어딘가에 상처가 나서 심낭에 피가 찼던 상황이 아닌가.
혈압이 떨어진다고 함부로 승압제를 써대다가는 또다시 심낭 압전을 만들 따름이었다.
다행히 레지던트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몸이라 삽질하는 대신 알맞은 혈액형을 응급실에 비치된 응급 보관소에서 타다가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막 55 밑으로 떨어지려 하던 혈압이 유지되었다.
강혁은 다소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재원을 돌아보았다.
“이래도 CT야?”
“아, 아닙니다.”
“그럼 이제 뭐 해야 해.”
“아…….”
재원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는 뭐가 어찌 되었든 CT는 찍어야만 했다.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치료 계획을 세우고 실제 치료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가 CT를 찍어야 한다고 할 때마다 강혁은 고개를 저어댔고, 자신도 계속해서 강혁의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설마……. 이젠 CT겠지.’
일단 심낭 압전도 잡았고, 피도 달았고.
그렇다면 이제 배가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하고 수술방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CT…… 를 찍습니다.”
“야, 항문.”
“네?”
“너 뭐 CT 못 찍어서 죽은 적 있냐? 왜 그렇게 CT를 못 찍어서 안달이지?”
“수술 전에 CT를 찍는 건 상식이니까요.”
“상식? 뭔 상식이 그래.”
“아니…….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재원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를 비롯해 이 처치실 안에 들어와 있던 의사들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CT가 없는 병원이거나 길바닥이면야 조금 다르겠지만.
여긴 한국대학교 병원이 아닌가.
멀쩡히 잘 있는 자원을 활용하지 않는 건 멍청한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강혁은 이번에도 재원에게 합격점을 주지 않았다.
“항문. 너 이 환자 상처 봐봐.”
“네? 아, 네.”
재원은 이제 핏덩이가 되다시피 한 거즈를 치웠다.
그러자 사시미에 찔린 자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거 보면서 뭐 이상한 거 못 느끼겠냐?”
“어…….”
재원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아까와 비슷하게만 보였다.
길이는 5cm가량, 깊이는 불명.
“모르…… 모르겠습니다.”
“어이구. 우리 항문…….”
강혁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츠츠’ 차고는 장갑 낀 손으로 상처의 단면을 가볍게 훑었다.
“여기 뭐 묻었어?”
“아, 아뇨.”
“칼에 베인 상처를 훑었는데 뭐가 묻지 않는다. 이게 뭘 뜻하지?”
“아, 아!”
재원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저혈량성 쇼크!”
“그래. 심낭 압전이 좀 더 급했던 거지, 저혈량성 쇼크가 없었던 건 아냐. 생각해 봐. 칼 맞은 지 얼마나 됐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환자인데, 피가 많이 났겠지? 그렇지? 항문?”
“네, 네! 그럼……. 피를…… 아, 들어가고 있는데.”
“그런데도 이 모양이야. 이제 곧……. 그래, 피 나기 시작하지.”
강혁은 아까까지만 해도 바짝 말라 있던 상처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피를 가리켰다.
재원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맹렬한 기세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기겁했다.
“이, 이런.”
“비장 껍질만 다친 게 아니라 안쪽도 살짝 다친 모양이네.”
“그럼 어쩌죠?”
“네가 당직이라며. 어찌할 거야. CT 찍을 거야?”
재원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 상태로 CT를 찍으러 갔다간 환자를 잃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수술실로 가는 것 또한 망설여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CT를 통해 대략적인 상처의 범위를 알고 들어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였으니까.
“항문, 멘탈 터졌네.”
강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재원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아주 진중한 목소리였다.
“응급 수술 들어간다. 좌측 상복부 자상 및 비장 부분 절제술 또는 전 절제술. 응급실 수술 팀에 연락해.”
“아, 네!”
레지던트는 급히 스테이션으로 달려가 전화를 걸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오늘은 정규 수술이 다른 때보다 조금 잡혀 있는 날이었다.
그러니 마취과도 일손이 조금은 빌 터였다.
“왜.”
그의 예상대로 상대가 아주 피곤하다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보통 중증외상팀 당직은 있으나 마나 한 당직이어서 전날 당직 후에도 잡히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중증외상팀 당직이셔서…….”
“뭐야. 수술한대? 그냥 쏘라고 해……. 근처에 그 어디야…… 그래, 「세린 병원」. 거기 그런 환자들이라도 보고 싶어서 환장했잖아.”
“저, 그렇게 하기엔 너무 중환자라서요.”
“아이, 씨……. 그럼 들어간다고? 야, 나 어제 당직이라 오늘 오후 오프야. 이제 곧 퇴근이라고.”
“그럼 다른 선생님이라도……. 바로 들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장난치냐? 뭔 다른 선생님이야.”
마취과 당직의는 어차피 들어가야 할 수술임에도 엄한 화풀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응급 수술에 끌려들어 가게 된 억울함을 풀 길이 없는 것처럼.
“쟨 뭐 해? 연애하나?”
한참 전화기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레지던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혁.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전화기를 뺏어 들었다.
“어어.”
“새꺄, 그리고 수술 잡힐 거 같으면 미리미리 전화해서 준비하게 했어야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나 마취과 당직의는 아직도 레지던트가 전화기를 들고 있는 줄 알았다.
당연하게도 폭언도 이어지는 중이었다.
“4년 차라는 새끼가 감이 없어. 너 언제 사람 될래?”
“아, 거, 쫑알쫑알 말 많네.”
“음?”
“너 안 내려오냐? 아까 얘가 하는 말 못 들었어? 응급 수술이라고! 지금 안 열면 환자 죽는다고!”
난데없는 호통에 기세등등하던 마취과 당직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누, 누구신지…….”
“그게 중요하냐? 넌 누구야. 누군데 당직이 쳐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아!”
“아, 아니……. 제가 어제 당직…….”
“핑계 대지 말고 빨리 내려와. 내가 환자 데리고 수술방 갔는데 거기 없으면 넌 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