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0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05화(305/1120)
305화 서해대교 (2)
“복부 자상입니까?”
안중헌 또한 반쯤 공중에 뜬 채로 장화 신은 발을 파닥거리며 강혁에게 달려갔다.
아무래도 늘 훈련을 아끼지 않는 인간이라 그런지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어! 유리가 박혔어!”
강혁은 그런 중헌에게 고개를 돌리는 대신 환자의 상처에 집중했다.
“크, 크으윽.”
환자는 강혁이 상처 난 곳을 누르는 바람에 발생한 통증에 눈을 떴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조금은 미안한 기색을 보였을 테지만.
뼛속까지 의사인 강혁은 그러지 않았다.
“됐어! 통증에는 반응이 있어!”
미안해하기는커녕 좋아하기만 했다.
환자는 아주 당황스러웠지만, 뭐라 말할 겨를은 없었다.
“으, 으아아.”
강혁이 계속해서 다소 우악스러운 방법의 진찰을 이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출혈량은……. 그나마 아주 많지는 않아.’
물론 주변이 갯벌이기 때문에 아주 정확한 출혈량을 파악하는 건 어려웠다.
피가 흘러나오는 족족 펄로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혁에게는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다.
‘기껏해야 아직 1l도 안 빠져나갔어.’
환자의 상처와 그 상처를 통해 실시간으로 빠져나오고 있는 피의 양 그리고 색을 보면 어느 정도는 파악 가능했다.
다른 의사들은 불가능하겠지만.
강혁은 피의 색만 봐도 대강의 산소 포화도를 알 수 있었다.
“자, 환자분! 이름이 뭡니까!”
강혁은 계속해서 일정 강도 이상의 통증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는 의식을 놓으려야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통증 대신 질문이 들어오니, 환자 입장에서는 반갑기까지 했다.
“김혁수! 김혁수!”
“좋아요. 김혁수 님! 여기가 어디죠?”
강혁은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어느새 다가온 안중헌 단장에게 지혈 밴드와 타코콤 등의 지혈제를 받아 들었다.
환자는 어차피 자세도 엉거주춤한 데다가 시선을 돌릴 정신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강혁의 질문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여기……. 여기 공항 가는 길이었는데…….”
게다가 사고 직후 잠시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다른 이라면 이 대답에서 그다지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겠지만.
강혁은 그렇지 않았다.
‘두부 외상이 딱히 있어 보이진 않았는데……. 의식을 잃었던 모양이야.’
의식을 잃을 정도의 머리 충격이 있었다면 반드시 확인은 해 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지금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후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으니까.
‘뇌수막하 출혈 같은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잘 봐야겠어.’
강혁은 그렇게 마음먹으며 복부에 틀어박혀 있던 작은 유리 조각들을 뽑아내었다.
“으, 으악.”
“좀 따끔해요.”
“으. 으아아!”
“따끔하다니까.”
강혁은 자신이 뽑아내면서도 이게 단순히 따끔한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거할 수 있는 이물을, 그것도 유리를 계속 몸 안에 두는 건 너무 위험한 선택이었다.
안에서 깨지기라도 하면 진짜 최악의 상황을 맛보게 될 수도 있었으니까.
“안 단장, 그거 부어.”
“아, 네.”
“끄아아악!”
물론 강혁은 단순히 유리 조각을 뽑아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안 단장을 시켜 베타딘을 상처에 들이부었다.
거의 상처 난 데 소금 뿌리는 수준이었는데, 당연하게도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잘했어.”
정말이지 끔찍스러운 비명이었지만.
강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소독된 상처에 타코콤을 쑤셔 박았다.
다행히 혈관이 다친 것은 아니었던지라, 타코콤만으로도 피는 멈추고 있었다.
“이건……. 이건 어떻게 할까요?”
중헌은 그렇게 네 개가량의 유리 조각을 제거한 후, 환자의 배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유리 조각을 가리켰다.
조각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녀석이었다.
강혁은 중헌의 손가락을 멀리 치우며 고개를 저어 댔다.
“이건 지금 뽑으면 환자 죽어.”
안에서 깨져도 죽기는 할 테지만.
다행히 지금 그들이 타고 온 기종은 MD 902였다.
안정성이라면 세상에서 둘째가라고 해도 서러울 정도로 우수한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이대로 수술방으로 가야 해.”
“그럼…….”
“일단 다른 환자들부터 헬기로 이송해서 다리 위로 옮기고……. 지금 우리 병원으로 간 헬기는 어디 있지?”
“AW 169 말씀입니까?”
“어, 그거.”
“아마 연료 때문에 기지로 복귀했을 겁니다.”
“음.”
강혁은 중헌의 말에 화를 내는 대신 침음했다.
이건 딱히 그의 잘못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헬기 자체의 한계일 따름이었으니까.
“그럼 인하대 병원하고, 또 갈 병원 쪽으로 문의를 좀 해 보지?”
“구급차 말고……. 헬기 말씀입니까?”
“응. 거기 지금 보유하고 있는 게 있나?”
“병원 자체 보유는 없습니다. 인천 쪽 소방서가 보유한 헬기는 AW 109뿐이고요.”
AW 109.
소형 기종이며 사실 다목적 헬기로 쓰이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는 기종이라 할 수 있었다.
‘구색 맞추기용이지…….’
그저 닥터 헬기를 운용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 나라에서 부랴부랴 마련한 것들일 따름이었다.
대부분의 출동은 반려되고 있었는데, 헬기 기종을 떠올려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괜히 무리해서 떴다가 순직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몸을 사리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봐야만 했다.
‘그래도 지금은……. 그거라도 있으면 좋아.’
강혁은 한창 대원들이 처치 후 헬기로 이송하기 위해 들것에 고정하고 있는 환자들을 돌아보았다.
죽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경상자였다.
간략한 처치만 하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법한 환자들.
“지금 저 환자들 일단 대교 위로만 옮기고, 각 병원으로는 AW 109 사용하면 어때?”
“아……. 이 환자는 우리 헬기로 가고요?”
“그래야지. 그리고 AW 169도 준비되는 대로 다시 오라고 하고. 우리 아직 버스 안은 뒤져 보지도 못했는데.”
“알겠습니다. 근데…….”
중헌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가타부타 말은 없었지만, 강혁은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저 멀리 밀려났던 바다가 이제 슬금슬금 돌아오려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망할. 우리 시간 얼마나 있지?”
강혁의 말에 안중헌이 신음하듯 답을 내뱉었다.
“대략 세 시간……? 완전히 물이 들이치려면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시다시피…….”
“조금만 물 들어와도 구조는 어렵지.”
오히려 더 물이 차면 더 나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보트라도 띄우면 되니까.
하지만 애매한 상황에서는 그냥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세 시간이라……. 세 시간…….’
강혁은 같은 단어를 연신 되뇌면서 중헌과 버스 그리고 눈앞의 환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미친놈이 이 사람 하나 살리자고 법원까지 헬기 타고 온 건 아니지.’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자면 MD 902는 계속 여기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구조 작업이 계속될 수 있을 테니.
‘1호가 대교 위에 있지…….’
강혁은 문득 대교 쪽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박살 난 난간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재원이나 다른 대원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지금 한창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뛰고 있으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안 단장.”
마침내 결론을 내린 강혁이 입을 열었다.
내내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던 중헌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교수님.”
“일단 이 환자, 위로 데리고 가지.”
“아……. 네.”
그리곤 어쩐지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혁이 뭔가 다른 결정을 내릴 거라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혁의 말이 계속되자 점점 표정이 바뀌어만 갔다.
“그리고 1호도 헬기로 불러들여.”
“네?”
“이 환자, 헬기에서 수술할 거야. 그동안…… 버스 내부 계속 수색해. 다른 환자들 대교로 옮기는 건 가능하지?”
“음…….”
중헌은 잠시 헬기 쪽을 바라보았다.
대교로 이동하려면 조금은 헬기를 이동해야 할 터였다.
그 모습을 본 강혁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괜찮아. 그 정도는. 나는 할 수 있어. 단장도 알잖아? 저 헬기는 그렇게까지 안 흔들려.”
“그……. 알겠습니다. 근데 기장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중헌은 아까 라펠 타기 전에 기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지간하면 빨리 끝내라고 했었는데.
이젠 안에서 수술하는 동시에 버스 안에서 환자들을 구조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날은 점점 더 어둑해져 오는 데다가 바람 또한 점점 더 거세져 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의는 무슨. 누군 저기서 수술하고 싶어서 하나? 일단 올리자고.”
물론 강혁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이었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의 불편 정도는 얼마든지 침해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수술을 하시겠다?”
당연하게도 기장의 반발이 있긴 있었다.
“하아…….”
하지만 기장 또한 일단 강혁의 사명감에 동조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다 경치 보려고 머무는 것도 아니고, 사람 최대한 많이 살려 보겠다고 하는 말인데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알겠…… 습니다. 그래도 위험해지면 제 말 듣는 겁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언제 이런 거로 고집부리나.”
“와……. 진짜 맨날……!”
“아무튼, 잘 버텨 주세요. 흔들리면 안 됩니다.”
“어휴.”
해서 강혁의 안 지킬 게 뻔한 약속을 위안 삼으며 헬기를 고정시켰다.
그사이 밖에 있던 환자들은 이미 모조리 대교 위로 옮겨진 후였던지라, 그나마 당분간 왔다 갔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수술을 하시겠다 이거죠?”
영문도 모르고 올라오래서 올라온 재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환자와 강혁을 번갈아 보면서였다.
“어. 여기서. 밑에서 구조해야 할 거 아냐. 지금 그거 가능한 헬기가 이것뿐이라고.”
“그……. 근데 배가……. 배에 너무 큰 게……. 박혔잖아요?”
“피는 인하대 병원에서 배달 오기로 했어.”
“아니…….”
세상에 피만 있으면 수술이 되겠는가.
그런 세상이었으면 죽을 사람이 없었을 터였다.
“뭐 새꺄. 지금 내릴래?”
하지만 재원은 지금 당장 이 수술에 참여하지 않으면 헬기에서 내려야 할 판이었다.
‘라펠을……. 타게 해 줄까?’
아마 아닐 터였다.
그냥 밀 것이 분명했다.
‘그럼 나도 구조 요청자가 되겠군…….’
세상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럼 여기로 바짝 붙어서 서.”
“네, 네.”
재원은 다 죽어 가는 얼굴로 헬기에 마련된 수술대 옆으로 와 섰다.
다른 헬기 같았으면 쭈그려 앉아서 수술했어야 했을 텐데.
지금은 그나마 수술대 옆에 설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환자분.”
“네, 네…….”
강혁은 재원이 오는 동안 기다리는 대신 환자를 돌아보았다.
환자는 어찌 되었건 구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아까보단 표정이 좋아 보였다.
지금 자신의 배에 언제든 깨지면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폭탄이 박혀 있고, 그 수술을 여기서 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못 하고 있었다.
“여기서 바로 수술을 할 겁니다.”
“네?”
“헬기에서 한다는 겁니다.”
“아니, 아니…….”
“자, 그럼 주무시고…….”
“야!”
“약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