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1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14화(314/1120)
314화 수술실 2번 방 (3)
강혁은 호통과 함께 복부 대동맥 하단을 집게로 틀어막았다.
그리곤 핀셋으로 복부 대동맥 하단을 집은 후, 메스를 슥 하고 그었다.
당연하게도 안쪽에 고여 있던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워낙에 손상한 부위가 많았기 때문에 그 양은 상당히 많았다.
‘대체 갑자기 왜 이래……. 잘되고 있었는데.’
레지던트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너무 어려운 수술이기는 했지만 일단 체외 순환기를 달지 않았는가.
그 말은 제아무리 심각한 출혈이 있다 해도 심장에 무리가 갈 염려는 덜었단 얘기였다.
즉 시간을 한참 벌었단 뜻인데, 굳이 이런 위험을 대체 왜 감수하는 걸까.
‘진짜 미친 사람인가.’
당연하게도 늘 강혁을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미친놈’이 떠올랐다.
에이 설마 하고 넘어가기엔 지금껏 강혁이 보여 준 각종 기행이 너무 많았다.
‘일부러 이러나? 스릴?’
대체 왜 그냥 해도 되는 수술을 타임 어택을 만들었는가.
뭐 이런 의문이 계속해서 둥둥 떠다녔다.
“미쳤나, 이놈이. 정신 안 차려?”
물론 레지던트는 곧 강혁에게 딴생각을 들켰고, 강일구 교수에게서는 듣기 힘든 쌍욕까지 집어 먹어야만 했다.
“아, 죄송합니다.”
“새끼가. 나 혼자 후달리는 거 같아?”
“아니……. 네.”
레지던트는 그럴 이유는 없지 않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지금 그따위 말을 했다가는 정말 죽을 거 같았으니까.
강혁이 들고 있는 바늘이 푹 하고 눈알이라도 뚫을 것 같았다.
지금 강혁의 얼굴엔 그럴 만한 의지가 충분해 보였다.
푹.
다행히 강혁은 레지던트의 눈알이 아니라 환자의 대동맥 절개 부분과 인조혈관만을 꿰뚫고 있었다.
속도만 보면 정말 거칠기 짝이 없는 봉합을 하고 있을 거 같은데.
실은 섬세한 봉합이 줄지어 이어지고 있었다.
‘잘하긴 잘한다…….’
미친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레지던트마저 감탄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그만큼 완벽한, 어쩌면 아름답기까지 한 봉합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지던트의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저, 근데 교수님.”
그는 이제 막 인조혈관이 완전히 이어졌을 때쯤에서야 참고 참았던 입을 열었다.
마침 강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작정이었기 때문에 화를 내는 대신 물끄러미 레지던트를 바라보았다.
“왜? 일단 저 위에 풀고. 이 밑에 풀어.”
“아, 네.”
레지던트는 우선 인조혈관 쪽을 틀어막고 있던 집게들부터 풀었다.
원래 같으면 이게 정말 피가 잘 흐르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만 했지만.
순식간에 붉게 물든 인조혈관을 보니 그럴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워낙 완벽한 문합술이었으니까.
‘이걸 지금 5분 만에 한 거지?’
위쪽은 시간이 좀 걸렸으니까, 아무리 잘해도 놀라움이 엄청나진 않았는데.
아래쪽은 기껏해야 5분 남짓한 시간에 대동맥을 대체할 인조혈관이 연결되어 버린 참이었다.
‘이유가……. 있었겠지?’
그렇다 보니 비록 강혁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는 레지던트였지만.
어쩌면 강혁의 행동에는 다 의학적인 이유가 있었을 거란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이런 술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단순히 재밌으려고 모험을 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한번 궁금했던 것을 그냥 덮기엔 호기심이 너무 강한 위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굳이 남들 다 말리는 흉부외과에 들어갈 리가 있었겠는가.
지금과 같은 시기에 흉부외과를 전공하고 있다는 건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다는 뜻이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하신 거예요? 사실 위처럼 딱 측면만 막아서 수술했으면 이렇게까지 서두를 이유는 없지 않았을까요?”
어찌나 서둘렀는지, 강일구 교수와 재원은 아직 폐엽 절제술도 채 못 한 상황이었다.
더 중요도가 떨어지는 수술이 절반쯤 진행되고 있는데, 아래쪽의 큰 수술은 거의 다 끝나 버렸다 이 말이었다.
두 집도의의 역량 차이가 물론 있기는 했지만.
어린애와 어른처럼 차이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번엔 분명 강혁이 지나치게 서두른 감이 없지 않았다.
레지던트는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고, 강혁은 그 의문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자신이야 이상이 보이니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이었으나,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정상일 테니까.
“아. 그게 궁금하구만.”
해서 강혁은 재차 시선을 혈관으로 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혈류가 차단되어 버린, 췌장 효소에 의해 손상된 복부 대동맥이 눈에 들어왔다.
길이가 대략 15cm 가까이 되는 병변이었다.
이만한 손상을 입고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수술은 성공적인 셈이었다.
강혁은 역시 난 천재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위를 집어 들었다.
“말로 하는 것보다는 역시 보여 주는 게 낫지. 거기 잡아 봐.”
“아, 네.”
강혁은 그리 말한 후, 이제는 쓸모없어져 버린 손상된 부위 혈관을 서걱서걱 잘라 버렸다.
‘이렇게 시원하게 복부 대동맥을 자를 수 있다니.’
레지던트로서는 기분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원래 같으면 애지중지하다 못해 털끝 하나라도 다치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조직이 잘려나가고 있었으니까.
물론 혈류는 강혁이 연결해 둔 인조혈관을 통해 콸콸 흘러가고 있기는 했지만.
기분이 이상한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 봐라.”
강혁은 그렇게 잘라 낸 혈관 아래쪽 끝을 다른 집게로 물었다.
아까 전까지 인조혈관으로 향하는 혈류를 차단하고 있던 집게였다.
“물 부어 봐.”
“물이요?”
“그래.”
“네.”
그리곤 장미에게 식염수로 혈관을 채우게 시켰다.
여유가 철철 넘쳐 보였는데, 실제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 그랬다.
이제 더는 아까와 같은 급한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같아서는 체외 순환기를 괜히 달았나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물론 그랬다면 애초에 대동맥 수술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콸콸콸.
아무튼, 묘한 여유 속에서 장미는 식염수를 얼마간 들이부었다.
혈관이 통통해지기 시작할 때쯤, 강혁이 손을 저어 댔다.
“이제 그만. 자, 이만하면 원래 볼륨보다도 더 적지?”
강혁은 일부러 이 정도가 딱 80%에 해당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믿기 쉽지도 않을 것이고, 굳이 그걸 말해 줄 이유도 없었으니까.
“네. 조금?”
“네가 위쪽에서 한번 꾹 잡아 봐. 심장이 박동하는 것처럼.”
“아, 아, 네.”
레지던트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혈관의 위쪽을 잡았다.
그러자 마치 심장이 박동해서 혈압이 올라가는 것처럼, 잘린 혈관 벽에 압력이 훅 전해졌다.
물론 처음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좀 더 통통해졌다가 약간 홀쭉해지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었다.
“어…….”
하지만 그걸 열 번 정도 반복하고 나자, 뭔가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단 강혁의 눈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이거…….”
“여기가…….”
“계속 짜 봐.”
강혁은 놀란 눈을 한 채 잠시 손을 멈춘 레지던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혈관 벽 하단에 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한, 곧 터질 것처럼 보이는 부위를 바라보고 있던 레지던트가 겨우겨우 혈관 짜는 작업을 재개했다.
부우욱.
그럴수록 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한 부위가 점점 더 커졌고.
찌지직.
급기야 거의 투명해져 보일 지경이 되는가 싶더니.
왈칵.
종래에는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버린 후, 안쪽에 있던 생리 식염수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기껏해야 2, 3분 이내에 일어난 일이었다.
강혁은 발등이 물에 젖은 채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지던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왜 이랬는지 이제 알겠냐?”
“이, 임펜딩 럽쳐(Impending rupture: 임박한 파열)……. 이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보는 것도 있고 듣는 것도 있지. 터지기 전이 되면 그 부위 근처에서 혈관이 돌기 시작해. 그냥 흐르질 못하고 벽을 치거든.”
“아……. 그걸 어떻게…….”
“주의 깊게 보고 듣고 관찰하는 수밖에 없어. 넌 인마, 흉부외과면 노상 주요 혈관만 볼 텐데 기본적으로 그렇게 해야지.”
“어…….”
맞는 말이긴 했다.
흉부외과가 비단 심장만 보는 과는 아니었으니까.
병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적어도 흉부 대동맥까지의 수술은 흉부외과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의 깊게 본다고 이런 게 보이나?’
그건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그것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슬슬 강혁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신 놓고 있지 말고. 이거나 좀 뽑아.”
“아……. 네.”
우선 강혁은 알루미늄 막대를 뽑게 했다.
뽑고 보니 약간 표면이 녹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위액에 섞인 췌장 효소의 영향인 듯했다.
그래 봐야 남들은 눈치채기도 어려울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기는 했지만.
‘이게 나중에 장기적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군…….’
이런 걱정이 드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 신경을 써야 할 건 나중이 아니라 구멍 난 췌장이었지만.
“췌장 관이 잘렸어. 음.”
“어쩌죠?”
레지던트에게는 아주 생소한 해부학적 구조물이었다.
흉부외과 의사가 언제 췌장이니 십이지장이니 하는 것을 보았겠는가.
익숙한 구조물 보조 서는 것도 헉헉대고 있었건만.
앞으로 더 어려운 보조를 하게 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는 건 네가 고민할 게 아니지.”
“네?”
“1호! 이제 내려와. 손 바꿔. 네 전문 분야 나왔다.”
“아.”
강혁의 말에 레지던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재원 또한 아주 다른 종류의 한숨을 쉬었다.
“뭐야, 인마.”
“아뇨. 아닙니다. 너무 좋아서요. 제가 활약할 시간이 되다니.”
“그럼 내려와. 위에는 어떻게 되어 가죠? 강 교수님?”
강혁은 너스레를 떠는 재원을 향해 피식 웃어 보이고는 강 교수를 바라보았다.
강일구는 여전히 수술 부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혁과는 달리 매사에 진지한 사람다웠다.
“뭐 순조롭습니다. 천천히 꼼꼼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게 최고죠. 손 바꿔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잠깐 멈추겠습니다.”
“네.”
강혁은 강일구 교수의 허락을 얻자마자 보조의 교대를 시행했다.
어차피 암 환자는 아니었기에 따로 손을 다시 씻거나 가운을 교체할 이유는 없었다.
덕분에 재원은 곧장 강혁의 수술에 투입될 수 있었다.
“잘 봐. 어떻게 해야 할 거 같냐?”
아까와는 달리 여유가 좀 있는 상황이었다.
강혁의 표정도 그렇고, 환자의 활력징후도 그렇고.
그럼 재원에게도 좋아야 할 거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강혁은 상당히 우수한 교육 의식을 가진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여유로워지면 부리나케 수술을 진행하는 대신 재원을 가르치는 데 치중했다.
“어…….”
제자 된 입장에서는 참 좋은 스승이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기만 하겠는가.
오히려 싫을 때가 많았다.
그때 당장은 특히.
“어 할 거야?”
“아뇨, 아뇨.”
“그럼 빨리 말해. 체외 순환기 달았다고 시위하냐? 내일 나갈 거야?”
“아뇨……. 음.”
강혁은 무언가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아주 훌륭하게 하는 편이었지만.
그걸 가르치는 방식도 훌륭한가는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똑딱똑딱.”
“그, 그것 좀 하지 마요!”
“소리를 질러? 난청 생기겠어. 이거.”
“저, 저는 미치겠거든요?”
“미치긴 왜 미쳐. 빨리 답을 하라고. 똑딱똑딱.”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