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2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22화(322/1120)
322화 긴 밤 (2)
슈욱, 슈욱.
1호 재원은 경원, 장미와 함께 중환자실 및 일반 병실 회진을 돌고 있는 중이었다.
옛날에는 중간중간 모르는 게 많아서 강혁에게 줄곧 전화를 걸어야만 했었지만.
이젠 그냥 알아서 잘만 돌았다.
재원도 엄청 늘긴 했지만, 경원이나 장미 또한 베테랑 아니던가.
서로서로 돕다 보면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강혁에 비해 그렇게까지 크게 밀리진 않았다.
“한 교수님은 어디래?”
강혁이 함께 있던 강행에게 물었다.
“엄청 성질내셔서 자세히는 못 물어봤는데……. 아직 방인 거 같습니다.”
“몰래 남은 거 먹고 있는 거 아냐?”
“아니……. 그럴 거 같지는 않던데요.”
강행은 방금 한유림의 말을 떠올렸다.
‘이놈아! 지금 어디냐는 말이 나오냐!’
한유림이 딱히 인격자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홍재훈 기조실장에 비하면 양반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이렇게 화를 낼 줄이야.
‘하긴……. 그럴 만도 하긴 하지…….’
기조실장이면 사실 진짜 높은 사람 아닌가.
드라마에서처럼 교수 하나 자르거나 하는 힘까진 없었지만.
그 교수의 앞길을 무척 성가시게 할 정도의 힘은 있었다.
예를 들면 재원의 임용 자리를 없앤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그런 사람한테 방 청소라니…….’
화가 안 나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헉헉.”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며 나타난 한유림의 모습은 그저 순한 양 같기만 했다.
“뭘 그렇게 헐떡거려요. 요 앞에서부터 뛰기 시작한 거 다 봤구만.”
“내 나이……. 되어 봐라.”
“그럼 아예 뛰질 말든가.”
“와……. 저 처먹던 거 다 치우고 왔더니 한다는 소리가?”
“에헤이. 진정하시고. 진정. 이거 가르쳐 주려고 그러지.”
“뭔데. 나 뭐 놓친 건 아니지?”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기는 해도, 강혁에게 뭔가 배우고 싶다는 열정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와서 처치실 내부를 샅샅이 살피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니, 뭐 별로. 놓친 거 못 보는 사람이면 의사 하면 안 되는 거고.”
“그……. 그래, 뭐.”
한유림은 어쩌면 자신이 못 보는 것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단 그냥 넘어가기로 작정했다.
괜히 들쑤셔 봐야 마음만 아프지 않겠는가.
“근데 왜 시작 안 해?”
“아직 1호 안 와서요.”
“아.”
“저기 오네. 쟨 진짜 상놈인가 봐.”
강혁은 열심히 회진 돌고 온 자신의 제자에 대해 막말을 지껄여 댔다.
그가 그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는 재원은 그저 달려올 따름이었다.
아무래도 한유림보다는 그래도 체력이 좋아서 속력은 꽤 빨랐다.
오히려 강혁 밑으로 오기 전보다도 빨랐다.
여전히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하지는 못했지만.
워낙에 출동을 많이 하다 보니 그게 운동이 된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 느려.”
물론 그래 봐야 강혁에게 칭찬받을 수준은 안 되긴 했지만.
“회진이…….”
“뭐, 안 좋은 환자라도 있어?”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
“얘기도 좀 들어주고 해야죠……. 교수님처럼 딱딱 치료만 하면 환자들이 섭섭해해요.”
“음.”
누가 봐도 맞는 소리지 않은가.
해서 강혁은 꾹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옹알거리는 모양새가,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한 듯했지만.
마음이 있다고 해서 꼭 할 말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에이 망할.”
“와……. 제자가 맞는 말 했다고 욕하는 것 좀 봐.”
“조용히 하고 치료하는 거나 봐.”
“와…….”
“안 가르쳐 준다?”
“와…….”
“진짜로?”
“죄송합니다…….”
강혁은 기어코 재원의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환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지고 왔지?”
“네, 교수님.”
강혁의 물음에, 옆에 서 있던 레지던트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는 스플린트와 붕대 몇 개를 들고 있었다.
여태 앰부를 쥐어짜고 있던 강행으로서는 선뜻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걸로……. 치료가 됩니까?”
그냥 골절이 아니라 호흡 곤란을 유발할 정도로 심각한 골절 아니었던가.
심지어 지금은 삽관까지 한 상태였다.
이걸 그냥 스플린트를 대 주면 된다고?
요동 가슴, 즉 Flail chest를 직접 본 경험이 없는 강행에게는 좀 이상해 보였다.
물론 한유림이나 재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이렇게?”
“된다니까. 내가 언제 허튼소리 하는 거 봤나.”
“그건……. 그건 아니지.”
한유림은 곰곰이 강혁의 행적을 떠올려 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한 짓을 수도 없이 많이 저지른 강혁이었지만.
결코 환자에게 해가 되는 짓은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누가 봐도 나쁜 놈인 유지상에게도 그러했다.
그 목적 중에 입을 열게 하려는 것도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럼 일단 보기나 하셔. 저기 영상 잘 보고.”
강혁은 그리 말을 하면서 턱으로 처치실 한쪽에 놓인 모니터를 가리켰다.
방금 찍어 온 CT 영상이 떠 있었는데, 영상이 그대로 떠 있는 게 아니라 3D로 리모델링한 영상이 떠 있었다.
덕분에 방 안에 있던 의료진은 갈비뼈가 정확히 어떻게 부러진 건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 저렇게 부러졌구나.”
“아마 앞에 있던 의자에 부딪혔을 거야. 보면 세로로 쭉 나갔잖아.”
“아하.”
“안전띠를 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대로 거기에 박고 튕겨 나갔을걸?”
그랬다면 현장에서 녹색을 받는 대신 적색이나 흑색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안전띠 하나가 생사를 갈랐다고 보면 된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고. 보면 여기, 여기, 여기, 여기에 여기까지 총 다섯 군데가 나갔어. CT랑 대조해서 보라고. 그럴 정도 수준은 되지?”
강혁은 환자의 우측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환자의 가슴이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야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을 테지만.
지금 환자의 우측 가슴은 온통 멍투성이인 데다 제멋대로 오르내리고 있지 않은가.
헷갈리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이라고 보면 되었다.
실제로 한유림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저기서 저기면. 여기서……. 하, 이런 젠장.’
그래도 한때는 수재 소리 들으면서 수련받았던 적도 있었거늘.
고작해야 골절 위치 하나 잡지 못할 줄이야.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강혁은 한유림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었다.
한유림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골절과는 무척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강혁도 사람이기는 해서 그 정도 이해심은 갖추고 있었다.
자주 발휘하지 않기는 했지만.
“그러니까, 딱, 여기.”
해서 한유림의 손을 잡아 환자의 우측 가슴에 갖다 대 주었다.
달그락거리는 골절이 만져졌다.
환자가 깨어 있었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지금은 근이완제에 진정제까지 맞은 상황인지라 조용하기만 했다.
“알겠어요?”
“어, 여기. 아하……. 이렇게 주르륵. 세로로.”
“그래요. 이런 경우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고. 근데 이거 맞춰 주겠다고 뭐 째고 그럴 필요 없어. 갈비뼈는 잘 붙으니까.”
“아하.”
그제야 한유림은 골절이 어딘지 정확히 파악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재원이나 강행은 아무래도 한유림보다는 상황이 많이 나은 상태였다.
그나마 강혁의 지도 아래 수많은 환자를 보아 온 데다가, 매주 강의까지 서로서로 해 주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자, 그럼 잘 보라고.”
강혁은 셋의 주의가 집중된 것을 확인한 후, 물에 살짝 적신 스플린트를 환자의 우측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곤 골절된, 즉 덜그럭거리는 부분을 툭 밀어 넣는 방식으로 고정해 주었다.
“이렇게 골절 부위를 그냥 다 밀어 넣는 거야.”
“그럼 흉강이 좁아지지 않나요?”
강혁의 말에 재원이 조금은 걱정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물어 왔다.
물론 밀어 넣는다고 해서 무슨 몇 센티미터씩 쑥쑥 집어넣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아까에 비하면 가슴이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좁아지긴 하지.”
강혁 또한 굳이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그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말을 덧붙여 주었다.
“근데 괜찮아. 어차피 흉강 안에 폐가 꽉 차 있는 게 아니잖아.”
“아……. 공간이……. 꽤 남긴 하죠.”
“그래. 그러니까 그 음압이 형성되게만 해 주면 된다고.”
“아하. 그럼 그냥 이렇게만 고정을 하면 적어도 횡격막에 의해 갈비뼈가 움직이지는 않을 테니 호흡이 되긴 하겠네요?”
“그렇지. 뭐……. 진짜 양쪽이 다 으스러진 경우에는 좀 다른 수를 써야 하긴 하지.”
옛날엔 드럼통처럼 생긴 걸 만들어다가 그 안에 집어넣기도 했더랬다.
최근엔 그냥 인공호흡기로 버티는 것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아무튼, 드물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 말은 곧 강혁에게는 반드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 지식으로 인식된다는 뜻이었다.
“그건 2호가 강의로 따로 준비하고.”
물론 이젠 모든 것을 떠다 먹여 주진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게 좀 힘들기도 하거니와, 자신들이 준비하고 강의를 해 보는 편이 훨씬 기억에 오래 남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아.”
당사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다고 강혁이 생각을 바꿀 만한, 그런 위인은 아니지 않은가.
한 번 지목됐으면 그대로 가야 했다.
“설마……. 이거 나도 매번 준비하고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
강행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가는 것을 확인한 한유림이 세상에서 제일 불안해하는 표정이 된 채 물었다.
“해야죠. 저도 하는데?”
“아니……. 나는 이제 60…….”
“40년은 너끈하시다니까? 내가 볼 때 확실히 그래.”
강혁은 자신의 그 날카로운 눈으로 한유림을 슥 훑어보았다.
그의 말대로 이제 곧 60이 될 사람이기는 했다.
그런데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건강 관리를 강박적으로 하기라도 했는지 병이 없었다.
그 흔한 만성 성인병이 없는 것은 물론이었고, 관절이나 다른 데 통증이 있는 곳도 없었다.
“아니, 그…….”
한유림은 강혁같이 우수한 의사가 40년 운운하는 게 그리 싫지만은 않은지 아까보다는 확연히 표정이 좋아져 있었다.
강혁은 그런 한유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후, 말을 이었다.
“암튼, 쓸데없는 소리는 이따 혼자 하시고. 지금은 이거나 봐요. 할 줄 모르면 배워야지.”
“아, 안 끝난 거야?”
“와……. 진짜 환자 안 보고 사셨구만.”
“난 항문외과라고! 골절을 내가 왜 봐!”
“아니, 골절 환자 안 봤다고. 왜 성질을 내셔. 찔리나.”
“야…….”
지금까지는 고혈압 없이 잘만 살아왔었는데.
어쩐지 강혁과 함께 지내다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고혈압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강혁은 그런 한유림을 뒤로하고 레지던트가 들고 있던 붕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곤 그 붕대가 아까 스플린트를 살짝 밀어 넣었던 부위를 누를 수 있도록 몸통을 빙 둘러 묶어 냈다.
매듭은 제일 힘이 들어가야 할, 그러니까 골절 부위를 눌러야 하는 부위에 위치하게 했다.
그러자 아까보다도 한층 가슴 압박이 더 단단해졌다.
“이렇게 하는 거야. 뭐 좀 아프긴 하겠지만. 이따 진정제 효과 빠지면 슬슬 깨워도 될걸.”
“그냥 이렇게 지켜보면 됩니까?”
“응. 어렵지 않지?”
“어……. 네.”
“그럼 이 환자는 여기까지 하는 거로 하고. 나머지 경환들 좀 보러 가라. 난 좀 쉬어야겠다.”
강혁은 벌써 아까 한 번 고개를 둘러본 것만으로 지금 응급실에 자신까지는 필요 없을 거란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의 말에 한유림이 기대감을 품은 기색으로 사라져 가는 강혁을 붙잡았다.
“나도 쉬어도 되지?”
“지금 11시인데요?”
“어?”
“12시부터 6시까지 자는 겁니다.”
“야…….”
“그럼 이따 와서 자요. 조용히 들어와서 자요. 나 자다 깨면 성질을 좀 내는 편이라.”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