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2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25화(325/1120)
325화 무대 인사 (3)
끼이익.
강혁은 직원의 안내를 따라 1번 상영관 안으로 들어섰다.
코엑스의 그 거대한 영화관 중에서도 제일 큰 상영관이었다.
심지어 아이맥스였는데, 이곳에서 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또 그걸 보러 올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허 참.’
하지만 꽉꽉 들어찬 상영관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영화관도, 관객들도 아이맥스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그냥 우리를……. 보러 온 거구나.’
사람들은 강혁과 또 다른 의료진들을 보자마자 거대한 함성을 내질러 주었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뒤에서 벌벌 떨고 있던 재원이나 경원, 강행 등도 용기를 얻어 손을 흔들었다.
장미나 지민이야 원래부터 그렇게 떨지도 않고 있었고.
“네네, 제가 한유림입니다!”
오기 전에는 원장 앞에서 주책이네 뭐네 했던 한유림은 정작 자기가 제일 신나서 떠들었다.
직원은 환갑 가까운 노교수의 잔망스러움에 피식 미소를 띄워 주고는 무대 가운데로 모두를 이끌었다.
“자. 오래 기다리셨죠? 영화 상영에 앞서 주인공분들의 무대 인사가 있겠습니다.”
상당히 능숙한 진행이었다.
그야말로 프로다웠는데, 덕분에 강혁을 비롯한 일행들은 마음 편히 인사를 올릴 수 있었다.
“중증외상센터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의료계가 좀 더 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강혁의 인사는 짤막했다.
메시지 또한 간결했고.
“제 보잘것없는 일상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간중간 제가 좀 웃기게 나오는 장면도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진 않습니다! 연출은……. 아닌데, 진짜 그때만 그런 거예요. 그리고…….”
그에 반해 재원은 횡설수설했다.
솔직히 평범한 축에 속하는 그가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설 수 있겠는가.
그것도 완전히 관심이 쏠린 채로, 정면에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선생님. 이제 감사하다는 인사로 마무리하시죠.”
다행히 옆에 있던 직원이 베테랑이었다.
재원은 계속해서 이 얘기 저 얘기, 주로 안 해도 되는 얘기들을 이어 나가고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강혁에게 조언을 구해 완성했던 인사로 길었던 얘기를 마무리했다.
“더 많은 생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은……. 네, 백장미 선생님.”
세 번째는 중증외상센터의 실질적 이인자라 할 수 있는 백장미였다.
물론 센터의 얼굴이자 리더는 백강혁이기는 했지만.
강혁은 환자 살리는 것 말고는 젬병이지 않은가.
수가나 환자 관리 등은 거의 장미와 재원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해서 마이크를 건네받자마자 살짝 울컥했다.
그간의 고생이 물밀듯 밀려 왔기 때문이었다.
“어…….”
하지만 그녀는 절대 눈물 흘리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얼굴로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가 입을 재차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중증외상센터 간호사 백장미입니다.”
단지 한 마디일 뿐인데,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중증외상센터 간호사라는 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 어쩐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장미는 그렇게 침묵이 감돌게 된 상영관에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24시간 응급 대기인 데다가, 실려 오신 환자분의 상태는 매우 좋지 못하죠. 애써 치료한 환자분이 잘못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인력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나마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는 여러분들의 관심 속에 잘 크고 있지만 다른 병원들은 열악합니다. 3교대가 무의미해지고, 밥도 제때 못 먹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을 같이 해 보자고 얘기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어찌 들으면 한탄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다.’라고 하소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상영관에 들어찬 사람들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 선 이들조차 입을 다물게 된 것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다.
장미는 자신의 힘듦을 호소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정말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이건 그냥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 어떤 힘이 담겨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여러분. 그럼에도 저는 중증외상센터를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정말로 저 때문에 살아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다른 곳에 갔어도 살았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봤어도 살았을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제가 봐서 살아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여전히 상영관은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장미가 처음 입을 열 때만 해도 어둡기 그지없었던 그들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간절히 바랍니다. 더 많은 간호사가, 의사가 그리고 또 다른 의료진들이 저처럼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를요. 더 많은 중증외상센터들이 자리를 잡아서 더 많은 의료진들이 일할 수 있기를요. 감사합니다. 백장미였습니다.”
침묵은 장미가 말을 마친 후에도 잠시 더 이어졌다.
그러다 우레와 같은 박수로 끝을 맺었다.
‘하이고…….’
그 다음 순번이었던 한유림은 슬그머니 뒤로 돌았다.
장미야 저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은 아니지 않은가.
제대로 근무한 지도 이제 겨우 1주일인데.
저런 울림을 줄 수는 없을 거 같았다.
“어, 교수님?”
당황한 강행이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지만.
한유림이 쪼는 대상은 백강혁뿐이었다.
“뭐, 뭐. 네가 가.”
“아…….”
“뭐 인마. 네가 백강혁이야?”
“아뇨…….”
“그럼 말 들어야지.”
“네…….”
해서 강행은 울면서 앞으로 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인사는 조져 버렸다.
장미 뒤에 한다는 부담감에 더해 너무 많은 사람 앞이라 긴장한 탓이었다.
‘자식. 고맙다.’
덕분에 한유림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연륜을 담아 인사를 올릴 수 있었다.
나이 든 의사에게는 또 그 나름이 울림이 있는 법이라 반응도 좋았다.
톡톡.
그렇게 만족스러운 인사를 마친 한유림은 강행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씨익 웃어 버렸다.
그제야 강행은 한 가지 깨닫는 바가 있었다.
백강혁 앞에서야 약한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한유림은 기조실장이라는 사실이었다.
‘교수들은 다 조심해야 해…….’
그가 인생의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사이 무대 인사는 완전히 종료되었고, 일행은 우르르 상영관을 빠져나와 다음 상영관으로 향했다.
분위기는 대개 비슷했다.
환호하다가 숙연해지고, 다시 환호하고.
그 반응 자체는 인사가 거듭될수록 더더욱 좋아지는 중이었다.
실전으로 인사 연습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생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상영관에서 마지막 인사를 다 같이 올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왜애애앵!
그것도 그냥 전화벨이 아니라, 도저히 안 받고는 배길 수가 없는 그런 전화벨이었다.
“미쳤나?”
“어떤 놈이 영화관에서 진동 안 하냐?”
당연하게도 객석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어마어마한 비매너 행위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네, 백강혁입니다.”
하지만 그 장본인이 지금 무대 위에 있는 강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마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저 전화가 그냥 전화가 아니라, 어떤 사람의 생명이 담겨 있는 전화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 저 김강률입니다!”
김강률.
이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직접 전화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강혁은 아까보다도 좀 더 진중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사고 신고가 왔는데, 코엑스입니다! 혹시 지금도 거기 계십니까?”
“응, 영화관. 혹시 지게차 사고야?”
강혁은 이미 무대에서 제멋대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직원 하나가 그런 강혁을 제지하려 했으나, 머리를 동여맨 직원이 말렸다.
“아니, 그냥 가시게 둬. 바깥 통제하고!”
무대 인사는 이 정도면 된 셈 아니겠는가.
원래 강혁이 연예인도 아니고.
의사가 의사 본연의 업무로 복귀하는데, 방해해서는 절대 안 될 터였다.
해서 직원들은 도리어 강혁이 재빨리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지게차요? 사고 목격하셨습니까? 이건 다른 사고긴 한데…….”
강률은 강혁의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한번 예언가 흉내 좀 내 보려 했던 강혁이 민망해하며 재빨리 말을 덮었다.
“아니, 아냐. 뭔데?”
“네. 딱 코엑스는 아니고요. 그 옆 파르나스 타워 쪽 사고입니다. 건물 외벽 오물 오염으로 외관 청소 중에 추락했습니다. 하필 밑에 행인이 있어서 총 사고 인원은 셋입니다.”
“추락인데, 셋? 이런 망할. 높이가 얼마나 되지?”
이제 강혁은 뛰고 있었다.
다른 의료진들 또한 강혁을 따라 달렸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강혁이 괜히 뛸 리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다다!
덕분에 통제를 맡은 직원들도 뛰어야 했다.
소리 높여 외치면서였다.
“비켜 주세요! 응급 환자 발생했습니다! 교수님 가셔야 합니다!”
그러자 강혁을 발견하고 우 몰려들던 사람들이 또 우 하고 비켜섰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이, 또는 구급차 앞에 선 차들이 갈라지듯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강혁은 그런 존재였다.
“소란스러운데, 괜찮습니까?”
“괜찮아. 너는 얼마 걸려? 나는 뛰면…….”
강혁은 대강 파르나스 타워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지도로 보면 바로 옆이겠지만 코엑스가 좀 넓은 구조물이던가.
아예 달리기로 힘 뺄 작정이라면 모르겠지만.
체력을 안배해서 뛰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다.
“한 5분 걸려.”
“영화관이 그렇게 가까웠나요?”
“뛰면 돼.”
“어…….”
반면 김강률 생각에는 좀 말이 안 되는 말 같았다.
‘하지만…….’
강혁은 한 번 내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지 않은가.
강률은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지금 사고 지점 상공에 있습니다. 곧……. 내립니다.”
“착륙이 가능해? 아니면 라펠이야.”
“라펠입니다.”
“오케이. 알았어. 길은 많이 막혀? 구급차가 나을 수도 있어.”
“엄청 막힙니다. 지금이라면 여기 오는 데만 20분은 걸립니다.”
“안 되겠네. 알았어. 그럼 바로 고정해 줘.”
“네.”
강혁은 강률의 짤막한 답변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다리에 힘을 줘서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죄다 따라와! 추락이고, 환자 셋! 위치는 파르나스 타워 우측! 이따 안 보이면 그놈은 오늘 밥 없다!”
정말이지 나는 듯이 뛴다는 게 저런 거구나 싶은 달리기였다.
“어어! 셋이요?”
재원 또한 용케 그의 뒤를 따를 수 있었다.
워낙 실전에서 훈련을 받다 보니 절로 체력이 좋아진 덕이었다.
다다다!
장미나 지민, 경원 그리고 강행도 얼추 뒤를 따를 수 있었다.
“이놈들아! 같이 가! 좀 천천히……. 아니, 아니지. 환자가 있지.”
다만 한유림만 뒤처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잠시 헉헉거리더니, 이내 멈춰서고야 말았다.
“설마……. 진짜 밥 안 주진 않겠지?”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하면서였다.
“안 줄걸요?”
그리고 그 답은 하림에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망할.”
동시에 한유림은 다리에 재차 힘을 줘 달리기 시작했다.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머릿속에 떠 오른 것은 한 끼 식사가 아니라 환자였다.
셋이나 되는 환자가 중증외상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