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37)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37화(337/1120)
337화 OT (4)
촤아아아악!
강혁이 탄 순찰차는 그야말로 눈을 헤치며 위로 달려나갔다.
그간 강혁을 따라다니면서 헬기도 타고, 배도 타고, 보트도 타고.
각종 탈 것을 섭렵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장미도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으아아아!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미끈거려서 그렇지 그렇게 빠른 건 아냐.”
“눈밭에서 미끈거린다는 거 자체가 위험한 거 아닙니까?”
“괜찮아. 나, 이거 5년 몰았어.”
“보통 그럴 때 사고 나던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서는 쭈욱 액셀을 당겨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한참 뒤에 떨어져 있는 순찰차를 몰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성질을 냈다.
“저, 저! 눈 다 박살 내고!”
“환자가 있어서 그래요.”
그 말에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평온해 보이는 한유림이 표정처럼이나 평온한 어투로 답을 해 주었다.
“아니……. 뭐 의사라도 됩니까?”
당연히 열이 오른 그가 성을 냈다.
‘환자가 있으면 있다고 알려 주기나 하면 될 일이지. 이걸 왜 따라오냔 말이야’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였다.
“어. 저도 의사고. 저기 앞에도 의사고. 장미는 간호사.”
“아.”
예상외의 답변에 아르바이트생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설마 여기서 의사라는 답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기 앞에 달리고 있는 깡패 같은 놈은 몰라도 여기 뒤에 있는 한유림은 전형적인 의사 얼굴이기는 했다.
해서 잠시 말을 잃었던 그였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입을 열 수 있었다.
뭐가 어찌 됐든 여기서 주된 역할을 하는 건 안전요원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의, 의사면 답니까? 스키 부상 본 적 있어요?”
아마 이런 질문을 재원이나, 아니, 이제 재원은 경험이 쌓였으니 넘어가고.
강행 정도가 들었다면 상당히 당황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건 한유림이었다.
자력으로 외과 과장에 올랐고, 강혁 덕에 기조실장까지 오른 노회한 의사이지 않던가.
“네. 나는 그렇다 쳐도 저기 저 친구는 자네보다 훨씬 많이 봤을걸요.”
“허…….”
“근데 저 친구 몰라서 묻는 건가?”
“누군데요?”
한유림의 말에 아르바이트생은 정말이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의사면 의사지, 무슨 연예인이란 말인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백강혁.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장.”
“네?”
하지만 이어지는 한유림 교수의 말을 듣고 나서는 입을 쩍 하고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최하림 감독이 제작한 「중증외상센터 : 골든아워」가 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사상 공전절후의 대흥행을 기록하지 않았던가.
천만 관객에 아주 아쉽게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으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한 번쯤은 백강혁 이름을 들어봤다고 자부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어어. 앞에 보고요.”
“백강혁이에요? 정말?”
“그렇다니까. 나는 한유림이고요.”
“몰라요, 한유림은.”
“그, 그래요…….”
아르바이트생은 그렇게 한유림의 입을 다물게 만든 후, 저 혼자 감탄을 이어 갔다.
“와, 씨. 대박. 나 그럼 백강혁 교수님이랑 같이 치료하러 가는 거네?”
“한유림 교수랑 같이 가고 있죠.”
“모른다고요.”
“그, 그래요…….”
아무튼, 덕분에 그 또한 속도를 더 내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웬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놈이 실은 그 유명한 백강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촤아아악!
좀 더 앞장섰던 강혁이 아무래도 더 먼저 보드 점프대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제발 스키는 아니어라.’
강혁은 그런 뒤늦은 기도를 해 대면서 순찰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장미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재원처럼 현장 출동 경험이 잦은 것도 아닌 주제에 꽤 능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중증외상팀에 대한 재능만큼은 장미가 톱이었다.
물론 강혁은 빼고.
“에이 씨.”
그런 생각을 하며 환자에게 다가가던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환자가 신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스키 한 짝이 저 멀리 나뒹굴고 있었고.
다른 한 짝은 여전히 환자의 발에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자는 그 상태에서 허리가 아래로 향한 채 누워 있었다.
‘스키 속도로……. 이 점프대로 왔다 이거지…….’
스키는 보드보다 평균 길이가 훨씬 길기 때문에 일단 기본적인 속도가 더 높았다.
게다가 이건 두 짝이지 않은가.
때문에 보드보다 더 조절이 용이한 측면이 있었고, 그래서 더 빨랐다.
대개 보드 대회가 묘기로 자웅을 겨루고, 스키는 속도로 자웅을 겨루는 연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환자분. 다리 감각 있습니까?”
강혁은 그 속도 그대로 점프대로 돌진한 후, 또 그 속도 그대로 땅에 허리로 처박혔을 경우 발생 가능한 손상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모, 모르겠어요. 없는 거……. 없는 거 같아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환자는 의식이 있었다.
아니, 아주 명료했다.
덕분에 강혁은 아주 빠르게 환자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요추 손상……. 범위는 알 수 없지만…….’
대변 냄새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주 높은 레벨에서의 손상은 아닐 가능성이 컸다.
‘눈이 단단해…….’
아무래도 점프대 앞에 있는 눈 아닌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압력을 계속 받아 온 눈이란 얘기였다.
거의 얼음처럼 단단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조폭, 들것 가져와.”
“네, 교수님.”
강혁 정도는 아니지만 대강 하반신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정도는 눈치챈 장미는 어두운 낯빛을 한 채 차를 향해 달려갔다.
촤아아악!
그사이 아르바이트생과 한유림을 태운 차도 현장에 도달했다.
그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잔뜩 흥분한 얼굴로 강혁을 향해 달려갔다.
“배, 백강혁 교수님! 아까는 몰라뵈어서 죄송했습니다! 어떻게 도우면 될까요?”
“아. 백강혁……. 교수님? 후……. 다행이다…….”
그 말에 바닥에 누운 채 실의에 빠져 있던 부상자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혁이 볼 때는 전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짓밟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단 수술장에서 보고 판단을 해 주어도 늦지 않을 테니.
다만 환자가 너무 젊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기껏해야 대학교 1학년 또는 2학년이나 되었을 정도로만 보였다.
“일단 저기 무릎 다친 환자 부축해서 이리로 데리고 와요. 한 교수님은 배낭에서 부목 빼시고.”
“아, 응.”
“네!”
아르바이트생은 거의 무슨 4성 장군 앞에 선 이등병처럼 군기가 팍 들어서 무릎 다친 환자를 데리고 왔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스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강혁은 도저히 웃음이 나오진 않았다.
‘하반신 마비라…….’
최악의 경우 이렇게 될 가능성이 너무 큰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거의 십중팔구는 그렇게 이어질 터였다.
‘이걸 원주 병원에서……. 가능하려나.’
자연히 강혁의 머릿속엔 한국대학교 병원이 떠올랐다.
맨날 싸우고 깽판 치는 곳이긴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우리나라 제일의 병원이었다.
시설은 물론 보조 인력 및 거의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는 얘기.
툭툭.
하지만 하늘이 너무 흐렸다.
그리고 그 하늘에서는 거짓말처럼 차디찬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MD 902를 운용한다면 올 수는 있겠지만.
위험 부담을 져야만 했다.
‘일단 원주로 간다. 거기서……. 해결해야지.’
그렇게 마음을 굳힌 강혁은 장미가 들고 온 들것에 환자를 옮겼다.
“조심! 절대 허리 안 흔들리게!”
먼저 고정판을 허리에 대 준 후였다.
그렇지 않고 그냥 함부로 옮기게 되면 그나마 이어져 있던 척수 신경들이 끊어져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꽤 자주 발생하는 일이었다.
특히 스키장처럼 환자 이동 자체가 쉽지 않은 곳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알바! 원주 병원 번호 알지?”
“네? 네! 지금 바로 연락할까요?”
“번호만 찍어서 여기 줘.”
“아, 네.”
그는 아까처럼 빠릿빠릿했지만, 아까처럼 흥분에 들떠 있지는 못했다.
비록 의술에는 문외한인 그였지만.
그런 그가 보기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서 입은 최대한 닫은 채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네, 원주 병원이죠?”
그렇게 핸드폰을 넘겨받은 장미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원주 병원에 해당 상황을 알려 나갔다.
환자가 어떻게 다쳤고, 어떤 부상이 의심되고, 따라서 어떤 과가 필요한지 조목조목.
원주 병원 또한 이런 부상 환자들을 보기 위한 인력이 부족하나마 준비된 병원이긴 했기 때문에 무척 협조적이었다.
워낙 이런 상황에 익숙한 덕이기도 했다.
“네. 휘닉스 파크죠. 바로 그쪽으로 차량 보내겠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20분 이내로 갑니다. 이 시간에는 막힐 일이 없어요.”
“네. 감사합니다. 부탁드린 조치만 미리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백장미 선생님. 저도 팬이에요. 부족함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백장미라는 이름값까지 더해지자 금상첨화였다.
“교수님, 연락됐습니다.”
“오케이. 그럼 바로 내려가자. 무릎 다친 친구는 저기 태우고.”
비교적 만족스러운 통화를 마친 장미의 말에 강혁 또한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들것에 실린 환자와 장미와 함께 천천히 슬로프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올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역시 환자에 따라……. 대처가 다르구나.’
장미는 그런 강혁을 보며 역시나 의료 쪽으로는 배울 점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쪽으로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료 하나만큼은 뭐 틀림없는 대스승이었다.
촤아아악!
강혁은 천천히, 그러나 그렇게 느리지는 않은 속도로 슬로프 하단까지 도달했다.
“바로 입구로 간다.”
“네.”
“환자 혹시 너무 흔들리지 않는지 잘 좀 봐 줘.”
“아, 네. 교수님.”
순찰차는 비단 눈 위에서만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강혁 일행은 그대로 스키장 입구까지 달릴 수 있었다.
“저깄네.”
원주 병원 마크가 달린 구급차 한 대가 입구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응급 구조사로 보이는 사내가 강혁을 발견하자마자 즉시 차에서 뛰어 내렸다.
“백강혁 교수님?”
아무래도 전화 받았던 간호사에게 사정을 대강이나마 전달받은 모양이었다.
강혁은 뭐가 됐든 빠르면 좋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 환자 있으니까, 일단 옮깁시다. 아예 안 흔들리게 주의하면서.”
“아, 네. 저희 쪽 이송 카트 내리겠습니다.”
“조……. 아니, 장미. 가서 좀 도와.”
“네.”
장미는 구조사와 함께 내달려 구급차 뒤편에 마련된 이송용 카트를 내렸다.
그사이 강혁은 환자를 돌아보았다.
발에 감각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발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탓인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무리도 아니지.’
딱 다치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몸 아니겠는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부상을 입게 되면 몸도 문제지만 정신도 문제였다.
“최선을 다할 테니, 일단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해서 강혁은 그나마 그간 좀 늘었다 싶은 교감 스킬을 이용해 환자 안심시키기에 돌입했다.
다행히 환자가 강혁을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효과는 꽤 좋았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