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48)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48화(348/1120)
348화 혼자 보라고? (2)
‘에이 설마.’
재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운동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사이 헬기는 빠르게 그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후, 운동장에 착륙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이착륙장이 아니라 착륙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사방으로 휘날리는 흙먼지 또한 어마어마했고.
심지어 그중엔 헬기 위로 튀어 올라 프로펠러에 부딪히는 것들도 있었다.
띠티티티딩!
한두 번이야 상관없겠지만.
이런 게 몇 번이고 반복되게 되면 결국은 기체 결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강혁이 괜히 그 야단법석을 피워 가며 이착륙장을 만들어 둔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으.”
이제 거의 운동장 쪽으로 근접해 있던 재원을 비롯해 모든 일행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헬기가 시동을 끄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바람이 너무 강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일행은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그대로 헬기를 향해 직행했다.
일단 헬기에 환자를 태워야 일이 진행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따라와!”
그때 누군가 헬기에서 뛰어내리더니, 들것의 앞을 잡아당겨 끌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역시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교, 교수님?”
“그럼 누구겠냐?”
“아니……. 어떻게……. 아까 그…….”
“아, 그 환자.”
강혁은 헬기를 돌아보는 동시에 대략 20분 전을 회상했다.
‘교수님! 혈압 다시 떨어집니다!’
강률이 뒤를 맡기고 떠났던 요원이 외쳤다.
아주 급박한 목소리였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기껏 올린 혈압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그가 외치기 한참 전부터 강혁은 이미 환자의 배를 벌리고 있을 지경이었다.
‘알고 있어! 당겨!’
‘제, 제가요?’
‘그럼 누가 해? 우리 다 같은 팀원이야!’
‘아.’
요원은 잠시 항의했으나.
강혁의 논리에 곧바로 논파 당한 후, 수술에 참여해야만 했다.
“뭐, 어떻게 해결했지. 완전히 끝낸 건 아냐.”
물론 헬기에서, 그것도 10분 안에 수술을 끝낼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혁만이 할 수 있는 부분만 딱 하는 건 해 낼 수 있었다.
평소라면 그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았을 텐데.
요원의 조끼 안에 들어가 있던 무전기를 통해 들려 온 김강률의 목소리가 강혁을 움직였다.
‘아이는 무사해! 어머니……. 어머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혁의 과거가 지금의 강혁을 움직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였다.
‘신장 부상이 의심돼! 이대로……. 이대론!’
뒤이어 들려온 재원의 목소리는 아예 쐐기를 박았다.
‘엄마 없이 크는 일은……. 괴롭고, 외로운 일이야.’
강혁 본인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가.
그러다 아버지마저 잃어 버렸고.
그 아픔과 설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때문에 강혁은 환자가 누군가의, 그것도 어린 누군가의 부모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더더욱 최선을 다했다.
아니, 평소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이럴 땐 무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 더 옳았다.
재원은 살짝 떨려 오는 강혁의 손끝을 눈치챈 후, 그의 손을 잡았다.
“교수님, 괜찮은 거예요?”
오직 숱한 어려움을 둘이 함께 헤쳐 왔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강혁은 그런 재원의 머리를 함부로 헝클어트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처치는 잘했네. 상태는?”
그럼으로써 재원은 강혁이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하긴 이 양반이 환자 앞에 두고 쉴 인간이 아니긴 하지.’
아마 본인이 죽었으면 죽었지, 남 죽는 꼴은 못 볼 터였다.
실제로 자신이 집도했던 환자가 죽었을 때, 남몰래 혼자 병원 근처를 떠돈다는 것을 재원은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심란한 마음에 무작정 밖으로, 그것도 환자 올까 봐 멀리는 못 가고 병원 산책로로 갔다가 강혁을 본 이후에 알게 된 일이었다.
해서 재원은 그저 제대로 된 정보나 주기로 결심했다.
오히려 환자를 빨리빨리 보게 하는 게 강혁을 쉬게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측 신장 파열이 의심됩니다. 혈뇨가 나오는 건 아마도 그거 때문일 겁니다. 다행히 좌측은 기능이 정상인지, 소변량이 아주 적지는 않습니다만. 횡문근융해증이 진행 중일 겁니다.”
“흠. 그럼 가자마자 일단 투석 섭외하고. 우측 신장은 부상 정도를 봐야겠네.”
“네. 그렇습니다.”
“오케이. 알았어. 5호. 넌 나랑 타자. 나머지는 다시 가.”
“교수님은…….”
“난 헬기에서 일단 할 수 있는 거 하고. 올 수 있을 때 올게.”
“음.”
재원은 신음과 함께 현장을 바라보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자신이 이 환자와 함께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싶었다.
이 수술 또한 만만치는 않겠지만, 현장에서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도 모를 환자들을 마주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강혁은 아마 헬기 안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처치를 한 후 바로 돌아올 터였다.
5호야 이대로 가서 병원 수술방으로 직행할지 어떨지 알 수 없었지만.
강혁이 그렇게 하리란 것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것이 환자를 하나라도 더 살리는 일이란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재원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
강혁은 그런 재원의 등을 툭 하고 떠민 후, 들것을 들고 헬기 안으로 향했다.
그리곤 5호 사대진과 함께 환자를 우측 옆구리가 위로 올라오는 자세로 수술대 위로 옮기곤, 곧장 베타딘을 들이부었다.
이미 혈액과 수액은 들어가고 있는 데다가, 재원이 기관 삽관까지 해 놓은 덕에 달리 손을 더 쓸 일은 없었다.
“당겨.”
“네.”
“신장 수술은 해 봤지?”
“아, 네.”
사대진은 고개를 부리나케 끄덕였다.
비록 헬기에서는 처음이긴 했지만.
여기서 그따위 말을 했다간 난리 나지 않겠는가.
다행히 강혁은 헬기가 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지장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의 월등한 집도 실력은 모든 환경적 요인을 무위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지이익.
덕분에 벌써 갈비뼈 아래, 후면으로 절개가 제대로 들어갔다.
사대진은 부리나케 절개 면에 아미(Army)를 걸어 당겨 주었다.
강혁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전기칼로 절개면 사이로 난 틈을 그었다.
치지직.
아까와는 조금 다른 소리와 함께 빠르게 후복막이 갈라져 나갔다.
5호 사대진은 한 손으로는 절개 면을 당겨 줌과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석션을 집어 들고, 흘러나오는 미량의 피와 연기를 빨아들여 주었다.
확실히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중증외상센터에 들어온 재원다웠다.
솔직히 강혁은 여전히 왜 이렇게 우수한 친구가 여길 왔는지 잘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고마운 일이지.’
성적도 우수한 데다, 전공의도 우수하게 돈 친구 아니던가.
아마 원했다면 다른 분과 어디든 들어갈 수 있었을 터였다.
“좋아. 자, 이제 벌려. 피 좀 나온다.”
“네.”
강혁은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벌어진 상처 틈새를 바라보았다.
재원이 말했던 대로 우측 신장은 직접적인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음.”
“으.”
강혁은 완전히 예상했던 대로의 모습을 보고 있었기에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이진 않았지만.
사대진은 그러지 못했다.
예정된 수술이야 많이 해 봤으나, 아직 이런 부상을 입은 환자를 다뤄 본 경험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놀라지 말고. 기본은 똑같아.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없앤다. 오케이?”
“아……. 네.”
“그래. 그래도 멘탈 좋네.”
강혁은 신음은 흘려 대고 있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돌려 대고 있진 않은 사대진을 칭찬하면서 동시에 손을 놀려 대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전기칼을 들고 있었는데.
어느새 핀셋 두 개가 각기 양손에 들려 있었다.
핀셋 하나에는 거즈가 물려 있었고, 다른 핀셋은 비어 있었다.
빈 핀셋으로는 조직을 잡아당기고 거즈로는 그 조직에 묻은 피나 기타 다른 것을 닦아 시야를 확보할 요량이었다.
“일단 제일 중요한 부분은 여기야. 여기…….”
그리곤 신장에서 소변이 나가는 부위, 즉 요관으로 이어지는 부위를 가리켰다.
이미 거즈로 슥 하고 닦아 냈기 때문에 시야는 완벽했다.
그렇게 들여다보게 된 요관 근처는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냥 맞아서 부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들이찬 것으로 보였다.
“이거 왜 이런지 아냐?”
“어…….”
“긴장하지 말고. 이제 1년 차잖아. 몰라도 돼. 1호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지만.”
“아…….”
사대진은 이게 다행인 건가 싶으면서도 뭔가 묘하게 울적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강혁은 사대진의 감정 따위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아니, 환자의 현 상태에만 관심이 있었다.
교육도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은 환자가 명백히 죽어 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강혁은 그렇게 내버려 둘 수가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여기, 여기 봐라.”
때문에 질문은 뒷전이었다.
대신 수술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었다.
“어……?”
“이제 알겠지. 이런 둔탁한 부상에서는 장기 손상이 눈에 띄게 바깥쪽에서 찢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아…….”
“대신 안에서 터지지.”
강혁은 요관으로 모이는 부위를 핀셋으로 집어 들고 있었다.
“허.”
그렇게 집어 들자, 신장의 붓기가 조금 줄어드나 하는 착각이 일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진짜로 조금은 줄어들었다.
“이게……?”
“안에서 터진 게, 여기 고여서 틀어막은 거야.”
강혁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얼굴이었다.
만약 부상이 이 정도가 아니라 더 심했다면 아예 여기서 신장으로 향하는 혈관을 모두 결찰하고, 병원에 가서 잘라 내야 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신장에 가해진 둔중한 충격은 그저 일부만을 뭉개 놨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혈액을 완전히 걸러내지 못하게 되어 혈뇨가 죽죽 방광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긴 했지만.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게 아니면……. 나중에 잘라 내면 돼.’
기회가 있다는 게 중요했다.
해서 강혁은 우선 요관을 기계적으로 틀어막고 있는 신장 내부에서 터져 나온 조각들부터 제거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지이익.
일단 요관 상부에 절개가 들어가자, 안쪽에 있던 덩이가 보였다.
사대진에게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어떻게 이걸 그냥 보자마자 알 수 있을까.
‘보다 보면 황당한 일 많을 텐데,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재원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사실 웃어넘겼더랬다.
이동주와는 달리 강혁에 대해 듣기만 했지 직접 보지는 못한 그였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직접 수술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럽다기보다도 황당했다.
“멍하니 있지 말고. 이거 받아.”
“아, 네.”
어떻게 이렇게 빨리빨리 문제를 파악할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둘째치고서라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안에 들이찬 조각들을 집어 뺄 수 있을까.
아예 다른 조직들에는 손상을 가하지 않으면서.
“좋아. 이제 봉합한다.”
어찌나 손이 빠른지 아직 헬기가 병원 앞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강혁은 재차 봉합 기구를 집어 들고 있었다.
“어, 네.”
“일단 요관만 닫고, 수술방으로 이동해. 가서 이강행 콜 하고. 둘이 마무리해.”
“네. 네? 교수님은요?”
“나? 난 다시 가야지. 환자 계속 나오는데 1호가 어떻게 저걸 다 감당해.”
“어…….”
“괜찮아. 이제 2호도 잘해. 믿고 내려.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