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6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64화(364/1120)
364화 사람을 살리는 사람 (1)
“아니, 전…….”
문국진 대원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방 안에 두고 나온 시신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시신들 뒤로 닫혀 있던 문.
그 문이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옆 방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통로였던 곳이 불덩이로 가로막혔다는 건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 사실 아니던가.
말로 설명해 줘 봐야 아무도 알아먹지 못할 터였다.
오래된 건물이었고, 도면은 엉망인 데다 불길은 잡힐 생각을 안 하고 있었으니까.
“익.”
하지만 눈앞에 있는 강혁은 완고했다.
조금 전까지 불 앞에 서 있던 터라 뜨거운 열기를 담고 있는 보호의를 꽉 잡은 채 놓아 주질 않았다.
‘무, 무슨 힘이…….’
일반인은 절대 제대로 훈련받은 소방관의 힘을 견뎌 낼 수 없었다.
애초에 온전히 혼자서 사람 하나 들고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강혁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애쓰지 말아요. 다쳤잖아.”
“안에……. 안에 사람이…….”
“지금 들어가면 당신도 위험해요. 주변을 보라고. 동료들, 많아.”
강혁은 손목을 꽉 잡은 채 주변을 가리켰다.
아까보다 소방대원들의 수가 월등히 많아져 있었다.
불길이 쉽게 진화되지 않는 데다가, 상업 빌딩에서의 불이기 때문에 워낙 많은 구조 요청자가 있을 거로 예상되는 상황 아니던가.
인근 소방서에서 증원이 왔고, 또 오고 있었다.
“음.”
그런데도 문국진은 쉽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분명 아까 구조 요청자 하나를 안아 들고 나올 때만 해도 통증이 어마어마하긴 했더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금은 버틸 만했다.
아니,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까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느껴졌다.
“말, 거 참. 더럽게 안 듣네. 김 팀장, 이 친구 좀 잡아 줘.”
“아, 네.”
“엇…….”
“김강률 팀장이야. 중앙 구조단. 알죠? 까마득한 선배인 거.”
“어…….”
하지만 김강률이 나서자 그도 더는 뻗대지 못했다.
지금 김강률이나 안중헌은 젊은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거의 아이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니.
그럼에도 불평 한 번 터뜨리지 않고 있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읏차.”
덕분에 강혁은 보다 수월하게 환자의 보호의를 벗길 수 있었고.
“억…….”
그 뒤에 있던 위탁 교육생 둘.
즉 김정화, 박우식은 비명 비슷한 신음을 흘렸다.
드러난 문국진의 옆구리 상처가 상당히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왜, 왜……. 그러시죠?”
국진은 무려 두 의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것을 보고야 겁을 집어먹었다.
차마 아래를 쳐다보고 있지 못하는 그를 향해 강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쇠에 찔렸죠? 달궈진 쇠에 찔렸으니……. 상처가 이렇게 되지…….”
피가 나오고 있진 않았다.
단 한 방에 타 버린 까닭이었다.
강혁이 보건대, 간까지 분명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내부 장기 화상이 발생했다는 뜻인데, 이건 정말이지 심각한 일이었다.
누차 말하지만, 화상은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열기로 인한 누적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처 안쪽으로 보이는 무언가는 분명 달궈진 쇠 같았다.
손상을 더더욱 가속화시킬 터였다.
‘이걸 이대로 방치하면 간부전이 생길 수도 있어. 아니…….’
강혁은 전쟁터에 있어 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얼핏 생각해 보면 총상이 제일 심각한 부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전쟁터에 가 보면 총상은 거의 제일 가벼운 손상에 해당했다.
무서운 건 열이었다.
‘장기가……. 익는다…….’
주변부가 싹 다 타들어 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강혁은 그렇게 드러난 상처를 살짝 쓸어내리며 문국진의 얼굴을 살폈다.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아예 감각이 없는 듯했다.
당연히 좋지 않은 사인이었다.
“지금 제가 여기 만지는 거 못 느끼셨죠?”
“네? 만졌습니까?”
문국진은 그제야 고개를 아래로 돌렸다.
그래 봐야 보호의가 워낙 두꺼워서 시야 확보는 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음.”
강혁은 매우 굳은 얼굴로 손을 뗐다.
그리곤 현장 쪽을 돌아보았다.
아까부터 물을 뿌리고, 헬기도 뜨고, 대원들도 들락날락하고 있는데.
현장 상황은 별로 좋아진 것이 없어 보였다.
대원들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저 현장이 너무 궂은 것일 뿐이었다.
‘앞으로 어떤 환자가 나올지……. 알 수가 없어.’
정말 심각한 환자들이 나올 가능성이 아주 컸다.
이 환자처럼 열기를 머금은 어떤 물질에 의한 화상이 아니라.
불에 직접 화상을 입은 환자가 나올 수도 있었고.
기도 화상 환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환자는 이 사람이야.’
더구나 이 사람은 소방대원이었다.
훌륭하기로 따지자면 강혁보다도 더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강혁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곳에서 사람을 살리지만.
이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람을 살리니까.
실제로 임무 중 순국하는 소방관들이 얼마나 많던가.
환자에게 빈부로 인한 차이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는 강혁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1호. 현장을 부탁한다.”
“네?”
해서 강혁은 재원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내던졌다.
당연하게도 재원은 다소 황당하다는 얼굴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혼자 기도 화상 환자를 진단하고, 간단한 화상 환자들은 처치해 주고 있던 참이긴 했지만.
그래도 강혁이 이곳에 있고 없고는 너무 큰 차이 아니던가.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소방대원이 다쳤어. 소홀히 할 수가 없어. 2호 보낼 테니까, 그동안 여기 김정화, 박우식 선생하고 같이 좀 있어.”
재원은 역시나 아까 한 번 들은 이름을 찰떡같이 기억하고 있는 강혁을 보며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앞에 말 때문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소방대원…….’
중증외상센터엔 VIP가 없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늘 그렇듯 원칙에는 예외가 생길 수 있는 법 아니겠는가.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같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었다.
가족처럼 대해 줘야 했으며, VIP 대접을 해 줘야만 했다.
“네. 알겠습니다. 대신……. 빨리 보내야 해요.”
“알았어. 가자마자 보내도록 할게. 김 팀장, 요원 좀 빌려줘. 환자 옮겨야 해.”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률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이미 강혁과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 온 바 있는 요원 둘이 들것을 들고 뛰어 왔다.
그 모습을 본 문국진은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치료를 받겠다고는 동의했지만 실려 가진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저, 저 괜찮습니다.”
“아니, 아닐걸요.”
“무슨…….”
“지금 조금 움직이니까, 숨차죠?”
“어…….”
문국진은 아주 당황스럽다는 얼굴이 되었다.
강혁의 말대로 호흡이 짧아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얌전히 누워요. 당신, 생각보다 아주 심각하다고. 내가 현장을 이탈한다는 게 어떤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심각하게 생각해.”
“아……. 그…….”
문국진은 손을 내저으려다가.
강혁의 심각해진 얼굴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뭔 놈의 의사 얼굴이 이렇게 무섭냐…….’
물론 강혁에게 설득이 되어서는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강혁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었다.
“자, 그럼 달리자고.”
“네, 교수님.”
“빨리 와야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강혁은 재원의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아까 헬기가 내려섰던 그 빌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하면 들것을 든 요원을 돕는 그였지만.
지금은 그저 환자 상태를 살피는 데만 주력하고 있었다.
아직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이나 진행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었다.
‘체력도 비축해 두는 편이 좋겠어.’
이 환자는 암만 봐도 쉽지 않을 거 같지 않은가.
강혁을 대체할 만한 의사가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아직 재원이나 강행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수술은 맡길 수조차 없었다.
이런 말을 하면 한유림이 무척 서운해하긴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이 그러한데.
때문에 강혁은 그저 달리고 있었고, 요원들은 그런 그를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띵.
그저 최대한 빨리 헬기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뛰고 있을 뿐이었다.
타타타타!
김강률이 미리 기장에게 연락을 취한 덕에 헬기는 이미 시동이 걸려 있었다.
강혁과 요원들은 세차게 돌아가고 있는 프로펠러에서 불어오는 흙먼지를 피해 고개를 숙였다.
물론 달리는 속도는 전혀 줄이지 않은 채였다.
문국진 대원은 프로라는 말로밖에는 표현되지 않는 이들의 행동에 속으로 못내 감탄했다.
아마 몸 상태가 지금보다 좀만 더 좋았다면 겉으로도 표현했을 텐데.
이젠 그렇지가 못했다.
“우…….”
일단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고열로 인해 횡격막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였고.
간 손상 또한 조금씩 더 진행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몸속을 휘저었던 건 천 도가 넘는 어마어마한 온도로 달궈진 철이었으니까.
순식간에 피부가 익어 피가 나오지 못한 것은 다행이 아니라 불행인 셈이었다.
“일단 수액 들어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요. 여기서 뭘 하기가 너무 어려워.”
강혁은 신음을 흘리는 환자를 돌아보며 손을 잡아 주었다.
“크.”
“자, 빨리 갑시다. 빨리!”
“네, 교수님.”
기장은 늘 그러하듯 뒤가 정리되자마자 헬기를 띄웠다.
그리곤 최선을 다해 병원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타타타타!
강혁은 그와 동시에 멀어져 가기 시작한 화재 현장을 돌아보다가 이내 환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현장이 걱정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환자에게 집중해야 할 때였다.
‘믿자……. 시바……. 안 믿기긴 하지만…….’
그러자면 재원을 신뢰해야 했다.
강혁에게는 더없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그놈 말고는 뭐가 없는데.
“믿을 만한 놈이다……. 믿을 만한 놈이다…….”
해서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문국진이 다소 불안해진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자기 치료를 전담할 거 같은데.
믿음 뭐시기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설마 나 같은 환자 처음 보는 건 아니겠지.’
문국진의 머릿속에 불현듯 처음 훈련받았을 당시의 마음가짐이 떠올렸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런 문장을 노상 가슴에 지니고 살았었는데.
‘아……. 아니…… 겠지?’
강혁은 문국진 대원이 자신을 그런 눈빛으로 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자신의 수제자에 대한 불신을 애써 지워 내고 있었다.
“자, 이제 내립니다!”
그사이 헬기는 병원에 도달했고, 곧 이착륙장으로 내려앉았다.
미리 연락받은 장미와 강행이 뛰어나와 있었다.
강행은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참이라, 배낭을 메고 있었다.
강혁은 그런 강행의 어깨를 툭 친 후, 장미와 함께 옥상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금방 갈 테니까, 1호랑 잘하고 있어. 다 살려 놔야 해. 죽더라도 나 가고 나서 죽게 하라고.”
“아.”
상당히 부담되는 말을 남긴 채였는데.
강행이 뭐라 대꾸를 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강혁은 옥상 엘리베이터에 다다른 후였다.
아마 그가 가까이 있었더라도 뭐라 말을 걸기란 무척 어려웠을 터였다.
“기관 삽관! 환자 산소 포화도 떨어진다!”
환자 상태가 급변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보다 멀리서도 확연히 보일 만큼 강혁이 가장 긴장 중이었다.
적어도 강행은 이런 강혁을 본 기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