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89)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89화(389/1120)
389화 늘어나는 제자들 (3)
“저기. 저기 보입니다.”
“확실히 군부대라서 이런 건 또 잘하네.”
강혁은 거의 무슨 캠프파이어를 연상케 하는 신호를 보며 중얼거렸다.
헬기가 뜨자마자 근처 개활지에 병력을 이동시켜 불빛을 낸 모양인데, 아주 10분 전부터 눈에 띌 정도로 화려했다.
옆에는 안중헌 단장이 타고 왔을 거로 생각되는 헬기가 하나 서 있었다.
“네. 처치도 잘되고 있으면 좋을 텐데…….”
“부대 내 군의관이 몇이라고?”
“둘입니다.”
“둘…….”
강혁은 다소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교대라고 했던가.’
그렇게 말해 봐야 사실 강혁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온 경험은 없었으니까.
해서 동주에게 물어보니 아마 전문의 둘이 있을 거란 얘기를 해 주었다.
‘내과랑…….’
신교대 인원들은 워낙에 밀폐되고 낙후된 공간에서 한꺼번에 단체 생활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병에 걸리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면역 결핍 환자들이나 걸리는 거라고 생각하던 바이러스성 폐렴을 이십 대 초반 남성이 걸릴 정도니 말 다 한 셈 아니겠는가.
때문에 내과는 필수였다.
‘정형외과라 했지.’
정형외과야 뭐 군대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터였다.
워낙 많이 다치고 아플 테니까.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둘 다 전문의니까 아마 대학 병원에선 날아다녔을 터였다.
정해진 질환에 정해진 일을 할 때는 필경 그랬으리라.
하지만 대량 전사자 상황에서는 어떨까.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않으면 다행일 것이었다.
타타타!
강혁이 하나 마나 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헬기는 빠르게 개활지에 내려앉았다.
완전히 주변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바람에 흙먼지가 이리저리 휘날렸다.
그 바람에 근처에 있던 병사 몇몇이 거센 기침을 해 대기 시작했다.
그중 일부는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모두 나중에 한 번쯤 진료를 봐야 할 사람들이긴 했지만, 지금 급한 사람들은 따로 있을 터였다.
“내려!”
해서 강혁은 머릿속을 완전히 정리한 후,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그 뒤를 따라 동주와 홍창기도 부리나케 뛰었다.
물론 김강률을 비롯한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충성! 박종철 대위입니다! 백강혁 교수님, 환자는 저쪽에 있습니다!”
강혁이 내리자마자 달려온 군인 하나가 경례를 붙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오히려 헬기 내리는 곳보다도 더 어둑해 보이는 곳이었는데, 개활지에서는 도보로 5분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아, 안내하시죠.”
“네! 발밑이……. 좀 꺼지는 부분이 있으니 주의해서 오십쇼.”
“야, 들었지? 내 발만 보고 따라와.”
“네!”
강혁은 바닥이 위험하다는 말에 박 대위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야 어차피 어지간한 현장에는 다 돌아다녀 본 경험이 있지 않던가.
아마 모르긴 해도 눈앞에서 씩씩하게 달리다 이따금 헛발을 디디는 대위보다는 자신이 나을 터였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강혁은 앞서 달리던 대위가 대략 5번인가 발목 접질리려는 위기를 겪는 동안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뒤를 따르던 인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 여깁니다.”
“하……. 이거…….”
그렇게 도달한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딱 봐도 크게 다친 것으로 보이는 인원들만 네다섯은 되었다.
“이거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내려온 거 맞아요?”
같이 올라가던 중이었다면 차와 인원들 간에 간격도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속도가 그렇게까지 붙지도 않았을 텐데, 부상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
박 대위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뒤늦게 다가온 이가 그의 입을 막았다.
어깨에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중령이었다.
“대대장 노승석 중령입니다. 백 교수님, 일단 환자부터 보시죠. 좀 심각합니다.”
상당히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는데, 강혁은 일단 넘어가 주기로 했다.
어차피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를 캐는 건 자신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강혁이 우선으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환자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조명을 좀 밝히죠.”
“네, 지금 앞서가던 중대에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유 뒤집어쓴 사람들은 어딨습니까?”
“저기……. 물론 일단 씻기고 있습니다.”
“어디? 아, 저기. 여기도 있는 거 같은데?”
“아, 부상이 너무 심한 인원은 일단 여기 두고 있습니다.”
“음.”
강혁은 차에 치임과 동시에 석유를 뒤집어쓴 것이 확실해 보이는 환자를 보다 말고 혀를 찼다.
조명은 어두웠고, 피와 석유는 뒤섞여 있어 상처 분간이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누군가 환자 머리맡에 쪽지 같은 것을 붙여 놓았는데, 그 쪽지에 간략한 환자 상태 및 활력징후들이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
‘혈압은 90에 60. 수액 잡고 혈액 요청 중, 산소 포화도 더 떨어지면 노티, 기관 삽관 요망.’
게다가 상당히 정확하기까지 했다.
“이거 누가…….”
강혁은 쪽지를 들여다보다 말고 앞쪽에서 서성이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디지털 군복 여기저기에 피와 석유를 묻히고 있었는데, 지금도 다른 환자 곁에 쪽지를 적어 두고 있었다.
“거기!”
그는 강혁이 부르자마자 뒤를 돌아보았는데, 견장엔 대위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아……. 백 교수님.”
강혁을 알아보는 즉시 달려왔는데, 그제야 강혁은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경민 대위?”
“네, 내과 전문의 이경민입니다!”
“환자 분류 혼자 한 거예요?”
“아뇨! 안중헌 단장님과 함께했습니다. 제가 외과적 처치를 하기는 좀 어려울 거 같고……. 일단 급한 환자들부터 활력징후만 잡고 있었습니다.”
“오.”
아예 제대로 된 처치는 기대도 하지 않고 있던 강혁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적어도 활력징후라도 잡고 있었다면 생존 확률이 그만큼 크게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덜컥.
그 와중에 앞서가던 중대, 뒤따라오던 중대에서 부리나케 보내온 차들과 조명이 도착해 일시에 불을 뿜어 내기 시작했다.
순간 어둑하던 현장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덕분에 강혁은 아까보다 훨씬 정확하게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도 좋지는 않군.’
확실히 애초에 부상 정도가 너무 심각했다.
아마도 언덕배기에 세워 두었던 트럭이 밑으로 굴러떨어진 모양인데, 그렇지 않고서는 이만한 인원의 부상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대낮이었으면 그나마 피하기라도 했을 테지만.
깜깜한 밤에 불까지 꺼진 트럭을 피하기란 불가능했을 터였다.
‘하나는……. 사망이야. 구할 수 없다.’
이경민 대위가 남긴 쪽지에도 아무 글씨도 적혀져 있지 않았다.
그의 상황 판단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방증이리라.
“4호, 너 저기 기관 절개. 위탁은 나 따라 와.”
“네, 교수님!”
강혁은 그중 상기도 손상으로 호흡이 가빠져 오고 있을 뿐, 당장 급한 처치가 필요치는 않아 보이는 환자를 가리켰다.
자신은 정작 다른 환자에게 다가가면서였는데, 방금 이경민 대위가 다른 누군가와 낑낑거리며 수액을 달고 있던 바로 그 환자였다.
“아, 오셨습니까?”
낑낑대고 있던 자는 다름 아닌 안중헌이었다.
이제 단장쯤 되었으면 뒷짐 지고 있어도 될 텐데.
큰 사고가 있으면 언제든 출동하는, 참으로 변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 환자……. 수액만으로는 못 버텨. 일단 지혈을 해야 해.”
강혁은 마음속에 부유하는 수많은 반가움을 표하는 말 대신 일단 의학적인 견해부터 밝혔다.
안중헌은 그게 강혁다운 것이라 생각하며 몸을 비켜 주었다.
“네, 교수님.”
“그리고 저기 저 사람 우선 한국대학교 병원으로 보내요. 가는 동안엔 괜찮을 거야. 좀 더 있으면 죽겠지만.”
“아, 네!”
“박…… 종철 대위라고 했나? 잠깐 와 봐요!”
강혁은 끊임없이 지시를 내리면서도, 손은 쉬지 않았다.
홍창기의 보조를 받아 가며 찢어진 부위 혈관을 톡톡 묶어 나갔다.
강혁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출혈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는데, 보조를 하고 있는 홍창기로서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피가 범벅인 것은 물론이오, 석유까지 뒤집어썼는데 귀신같이 딱딱 혈관만 묶고 있지 않은가.
“네, 교수님.”
홍창기가 차마 놀란 표정조차 짓지 못할 만한 술기가 한창일 때 박 대위가 달려왔다.
강혁은 그와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도 역시나 술기는 멈추지 않았다.
“구급차, 오고 있나?”
“일단 이경민 대위 타고 있던 구급차 하나로 경상자 세 명 이송했습니다. 안중헌 단장님과 이경민 대위 판단이었습니다.”
“그거 한 대는 아닐 거 아니에요.”
“그……. 네. 수배 중입니다. 양주 병원이랑……. 그리고 정형외과 류동진 대위도 자차로 이동 중입니다.”
“자차? 아, 오늘 오프였구나.”
“네. 그 차라리 뒷자리 쓸 수 있으면 이송 하겠다고 했습니다.”
“음.”
그 말은 곧 지금 당장 이송 가능한 차는 여기 와서 불을 밝히고 있는.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한 얘기로 똥차란 얘기가 절로 나오는 지프 차량이 다란 얘기였다.
‘이 야밤에 속도 내다가……. 오히려 더 다칠 거 같은데.’
게다가 그 차로 도달할 수 있는 병원이 일단 양주 병원이었다.
어지간한 질환이라면야 군 병원에서도 대응 가능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증외상에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돌아라, 머리야.’
해서 더더욱 급하게 머리를 굴리다 보니, 그나마 가까운 데 있는 큰 병원이 떠올랐다.
아주 큰 병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외과적 처치가 가능할 터였다.
“의정부 성모. 거기에도 의뢰 넣어요. 군 병원으로만 보낼 생각 말고. 어차피 거기 가 봐야 볼 수 있는 환자가 제한적이야.”
“아……. 그……”
박 대위는 약간은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로 노승석 중령 쪽을 돌아보았다.
군인이라 그런지 명령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물론 강혁은 이해해 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사람 생명이 오락가락하고 있었으니까.
“눈치 보지 말고! 부하가 죽어!”
“아……. 알겠습니다, 네.”
“그래. 빨리!”
“네!”
강혁은 부리나케 핸드폰을 꺼내 드는 박 대위를 보고 나서야 시선을 다시 수술 부위를 향해 돌렸다.
수술이라고 하기엔 장비도 환경도 열악했지만.
‘이걸 수술이라고 안 하면……. 뭘 수술이라고 해…….’
홍창기는 벌써 어지간히 지혈된 채, 젖은 거즈로 가려진 환자의 상처를 두 번 세 번 바라보았다.
도저히 아까 피가 철철 흘러나오던 배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이걸 여기서 해 내다니.
괴물인가 싶었다.
물론 강혁의 실력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거기! 이경민 대위라고 했지?”
“네!”
“아까 기관 삽관 고려했던 환자, 지금 해요. 아직 산소 포화도는 괜찮을지 몰라도 저대로 두면 안 돼.”
“아, 네!”
그 와중에 사방을 살피고 있었고.
“이럴 땐 그냥 닫으면 안 돼. 오염된 상처잖아. 그것도 기름으로.”
“네? 아, 네.”
“정신 차려. 넌 일하러 온 거기도 하지만 배우러 온 거야. 날 잘 봐. 현장보다 날.”
“네. 교수님.”
“아무튼, 그래서 봉합을 얼기설기 한 거야. 이따 수술실 가면 다 뜯고 세척하고 다시 닫을 거야.”
“아…….”
강혁은 짤막한 가르침을 멈춘 후, 재차 입을 열었다.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채였다.
“여기, 이 환자도 이제 헬기로! 한국대학교 병원 연락해서 수술해 달라고 해!”
현재 시각은 4시 10분.
결국, 재원이 이끄는 팀도 강혁보다 딸랑 40분 남짓 더 잤을 뿐이었다.
홍창기는 그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어떤 분과에 지원한 것인지 톡톡히 알 수 있었다.
아마 출동하기 전이었다면 후회감이 더 짙었을 텐데.
지금 강혁이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오히려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